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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도에서도 성을 모시는 날이면 도전님께서 처음 입도한 수반들 빠뜨림 없이 하나하나 이름을 확인하고 계셨던 모양이다. 김명선의 이름을 올린 성장부를 보시고 나서 처음 상도로 출근하던 날 도인들이 모두 모인 성날에 말씀하시길
김명선이 누구야 일어나 봐. 이름의 한자가 어떻게 되지?"
" 밝을명(明), 신선선(仙)입니다"
음...고개를 끄덕이시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리고 한 참을 세워 두시고 좋아하셨다.
허선감이 말하길 "아무도 이렇게 세우고 이름을 물어 본 적이 없었는데 영광이네!" 라고 했다.
도전님께서 임원들을 2층 집무실로 부르시더니
"이제 명단 일일이 안 올려도 돼. 선감들이 알아서 하도록 해."하신 말씀을 허선감을 통해 전해 듣고
김명선은 '어 상도도전님도 나를 찾으시네. 이상하네. 왜 날 찾으시지...'라는 생각을 했다.
상도를 진법이라 생각해서 왔는데 도인들은 자유도수라 하여 다른 곳과는 많이 달랐다. 진법이라 해서 도인들까지 참도인인것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며 다른 곳 보다 더 인내를 해야 했었다. 시련의 나날들 이었지만 첫날에 도전님께서 들려 주신 교화 말씀
" 사람을 보고 도를 닦으면 안돼. 진리가 맞으면 진리를 보고 닦는 거야"를 생각하며 일심된 도심으로 굳건히 이겨 내고 있었다. 대순에서의 옳지 못했던 관행들을 없애라 하셨지만 선감들은 쉽게 버리지 못하였고 그 때마다 바른 소리로 왕따를 당하고 있었으니 나름 서글프기 짝이 없었지만 연원을 생각하며 더 강하게 당신님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천자를 알아 보신 수부
동계탑을 세우던 날, 그 날도 김명선은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다. 긴 장화에 비가 오셔서 흙탕물까지 튀겨가며 농장 일을 하다 동계탑 상량식을 한다 해서 일찍 왔는데 동계탑을 세우고 절을 하시는 도전님을 보고 천자이심을 깨닫게 되었다.
도문소자라면 사배를 해야 하는데 도전님께서는 재배를 하신 것이다.
이것을 보고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일까 생각하며 도전님을 유념해서 지켜 보고 있었는데 역시 모든 면에서 천자이심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도전님을 천자라 해서 공판을 보러 직무실로 올라 갔을 때 이름자에 수자가 들어가는 세 사람 김○수, 김○수,김○수를 앉혀 놓으시고 공판을 보셨다.
"네가 어찌 날 천자라 하지?"
"동계탑을 세우실 때 사배를 하지 않고 재배를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허. 보기도 잘 봤네"
"그리고 성철스님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깜짝 놀라시며
"됐어. 김명선! 이제 성모시지 마. 그리고 도장에 안 와도 돼. 내 보내!"
그리고 밖으로 나가는데 큰 소리로 말씀하시길
"이순신 장군이 말이야 . 배 열두척으로 바다를 지켰지" 하시며 난데없이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계속 하시었다.
그 때가 바로 삼경이었다. 그리고 그 때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천자를 알아보고 도장을 나오게 되었지만 도는 이제 부터 시작이다 생각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다.
상제님의 용포
그 때 천자를 알아 보고 나온 이들이 한 500명정도 되었다. 그들과 만나면서 도를 생각하고 얘기 하면서 서로 힘이 되기를 바랬었다.
하루는 도전님의 시봉으로 있던 이가 도전님이 평소 즐겨 입으시던 용포를 들고 와서는 "김명선씨가 꼭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하며 주고 갔었다.
포항가면 드려야지...허선감 오면 보내 드려야지. 도전님께서 즐겨 입으시는 옷인데... 생각하고 있었다.
어느날엔가 그 옷에서 광채가 나기 시작했다. 눈이 부실정도로... 갑자기 삼경에 가사장삼과 의발을 전수 받은 오조홍인과 육조혜능의 심법전수가 뇌리를 스쳐가며... 아차 이것이 심법전수이구나. 내가 실수 할 뻔 했구나 생각하며 용포를 간직하게 되었던 것이다.
같은 시기에 천자를 알아보고 나온 사람들과 뜻을 같이 하기 위해 만났지만 얼마 가지 않아 김성일, 김종권, 김은희는 스스로 천자라 하면서 또 파를 이루고 모두 떠나 버렸다.
뜻을 같이 하던 그들도 어느 날 보니 어느 새 다 흩어지고 다른 곳으로 가 버렸다.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기다린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천자를 알아 보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고 난 다음의 허망함은 말 할 수 없는 서글픔이었다.]
도를 깨달음
도를 닦다 밖으로 나오니 망막하였다. 이제 밖으로 나왔으니 다시 찾아 주실 때까지는 사회에 몸을 담을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옷가게를 하고 있던 어느 날부터 상도 사람들에게서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심지어 하루가 멀다하고 찾아들 왔었다. 김명선은 "왜 날 찾습니까. 나는 성을 모시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무슨 성을 모십니까. 도전님께서 천자가 분명하신데...그래서 나왔는데 다시 성을 모시라니요...그렇게는 못합니다."라며 못오게 하고 언성이 높아지는 일도 있었다. 상도수도인이 말하길 "내가 오고 싶어서 오나. 도전님께서 김명선이 포덕해 오면 팔자 고친다고 해서 왔지. 너무 몰아부치지 마라!" 하며 씩씩 대기도 했다. 끝까지 상도의 도전님께서 구천상제이심에 대해서 의견을 굽히지 않으셨다.
다시 성을 모시는 것은 상도도전님을 구천상제로 인정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것이 배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도전님의 진의를 생각하기 시작하였고 그 때부터 본격적으로 내가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수부께서는 공부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대순과 관련한 상도와 사회의 모든 책들을 섭렵하기 시작 했다.
옷가게보다는 도를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러던 어느날 수부께서는 책을 들고 가게 앞으로 양팔을 벌리고 뛰어 나와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공자가 아침에 도를 알면 저녁에 죽어도 가히 좋다고 했던가! 도를 깨닫고 나니 그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것이다...
박성상제님의 환갑
그 뒤로는 상도인들과 접하면서 도전님의 소식도 듣고 상도에서 나오는 물건들을 때때로 구입하여 쓰시면서 도 소식에 귀를 귀울이고 있었다.
이선감을 통해 도전님께 밤과 대추를 전해 드린 적도 있었다. 심부름 하는 이선감은 그것이 무슨 내용의 편지인지를 알 수 없었겠지만 도전님께서는
"이제 이런 거 안 보내도 된다 해라"고 하시는 화답을 이선감을 통해 전해 주셨다.
그리고 도전님 환갑때는 찰떡 아홉상자를 올려 드렸다.
아침 일찍 부터 나오셔서 떡을 기다리고 계셨다고 한다.
"떡상자 세어 봐. 아홉상자여야 하는데..."
그저 마춤떡이라 세어 보지 않았었는데 딱 아홉상자였다.
왜 도전님 환갑에 김명선이 보낸 떡이 아홉상자여야 했을까!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구란 수가 뜻하는 것이 무엇인가. 구수는 구천상제님의 수이다. 왜 아홉상자를 기다렸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천자를 알아 보는 다음 연원이신 수부가 올려 드린 떡이기에 받으신 것이다.
그 분이 상도를 나간 그 어떤 이로 부터 무엇을 받으신 적이 없는 분이시다. 그러나 김명선이 올린 떡을 받으신 것이다. 김명선이 올리는 거라면 이것 저것 올려 드려도 그 때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시고 그냥 받으셨다.
이렇게 두 분은 이심전심으로 통하셨고 칠월칠석이면 견우와 직녀처럼 꿈속에서 잠시 만날 뿐이었으나 음양의 이치로 오신 두분이시기에 늘 마음으로 통하고 계셨던 것이다.
대마신에 쫓겨 상도로 오다
2009년 일식이 지나고...어느날 김명선은 꿈을 꾸게 된다.
꿈에 연속해서 대마신이 나타나서 김명선을 죽일려고 마귀떼들을 데리고 내려와서 김명선의 집 주위를 배회하며" 이근처에 김명선이가 있으니 꼭 찾아 내야 해..."
하면서 집 주위를 샅샅히 뒤지기 시작 했다.
너무 무서워서 잠을 깼는데 더 이상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세 번씩이나 같은 꿈을 꾸었고 그 때마다 대마신은 김명선의 집에 좀 더 가까이 다가 오고 있었다. 죽을 것만 같았다. 대마신이 김명선을 없앨려고 한다는 생각에 다급함을 느끼며 상제님께 대마신이 나타났는데 어디로 피신을 해야 할지를 심고를 드렸더니 화산으로 가라는 말씀이 들리는데 화산이 어딜까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그곳이 바로 상도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륵세존님이 불의 이치로 오신 분이기에 상도가 화산이라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김명선은 대마신에게 쫓기어 급기야 살기 위해 상도로 오게 된다. 도장에는 못가도 불러 주실 때까지 상제님 곁에 있어야 살 수 있을 것 같아 망설임 없이 포항으로 오게 된 것이다.
포항으로 와서야 비로소 모든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예전에 도전님께서 알아 듣지 못할 말씀을 하신 것도 다시 떠 올랐다.
어느 날 허선감이 김명선의 집에 와서 하는 말이
도전님께서 허선감을 부르시더니
"김명선이 종교 차렸지."
"아닌데요. 그냥 집에서 기도만 모시고 있던데요..."
"아니야. 김명선이 종교 차렸어. 둘이만 있어도 종교 차릴 수 있어."라고 하신 말씀을 김명선에게 전한 적이 있었다.
뜬금 없이 무슨 종교를 차리나. 둘이서 무슨 종교를 차린다는 건가...왜 그런 말씀을 하실까...무슨 뜻인지 그 때는 통 알 수 없었으나 포항으로 이사를 와서 확 열리게 된 것이었다.
김명선이 다음 종통자라는 것을... 종통을 이어 받아 갈 것을 미리 암시를 주셨던 것이다.
오로지 상제님만을 생각하며 상도로 가야겠다는 일념에 오로지 도 밖에는 몰랐다. 언제쯤 불러 주실까..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꿈에 생신상 차려 놓으시고 김명선이 부르시는 통에 탄강일에 부르실까..기다리고 ..이렇게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부의 납향치성과 존영사건
그러다가 2010년 어느날 납향치성이 번개 같이 머릿속을 스친다. 12월 13일(양력 2011.1.16) 동지로 부터 셋째미일에 납향치성을 올리게 된다. 수부께서 50수에 들어 설 때였다. 납향치성이 바로 제후가 살아 계시는 천자께 올리는 치성이다.
비로소 또 열리게 된 것이다.
납향치성을 올리고 나자 물 밀 듯이 머릿속을 스쳐지나 간다.
바쁘다 120일 도수야 시간이 없어라고 수부께서 다급해 하시며 존영을 그려야 된다고 하셨다. 그 때 상도에서는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정기공사를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존영을 그리기에 도전님의 사진을 구할 수가 없어서 상제님께 사진을 구할 수 있도록 계속 심고를 드리고 있었다. 전경의 금산도득 하기가 심히 어렵다는 구절이 새삼스럽게 떠 올랐다.
때마침 '그것이 알고 싶다' TV프로그램에 도전님께서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다른 곳은 다들 모자이크 처리 해서 나왔는데 상도 만큼은 그대로 봉심전도 보여 주었다. 모두 도전님의 배려인 것이다.
그 때 방영된 상도의 모습은 존영을 위한 상제님의 용안 바로 그것이었다. 내용은 별로 볼게 없었다. 아니 황당한 내용이었다. 도를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기가 막힐 정도로 우스운 내용이었다. 우리가 바로 웃었으니까...
종통에 대한 그 많은 얘기 중에 방영된 말씀은 그저 도란 깨달아 아는 것이지 누가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내용 그 자체 였다. 맡을도(都), 거느릴총(總)을 말씀하시면서 누가 박우당의 말씀을 두고 내가 종통을 이어 받았다더라. 그래서 내가 도전을 하게 되었다...뭐 그런 내용이었다.
사회 사람들에게는 웃음 거리 밖에 되지 않는 내용에 유일하게 그대로 모자이크 처리 하지 않고 내 보낸 것은 金明仙에게 존영을 그릴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존영은 아무나 그리는 것이 아니어서 어렵게 화백과 연결이 되어서 바로 존영을 부탁했다. 두달이라야 된다는 그림을 오로지 여기에만 몰입해 달라는 당부로 완성된 존영을 모시고 1월 23일(양.2.25)에 드디어 존영치성을 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2월 5일(양.3.9)에는 존영을 도전님께 올리게 되었다. 세사람이 벤에 존영을 싣고 미시에 상도로 들어갔다. 아무도 제지 하는 사람도 없었다.
여자 셋이서 상도로 들어 갔는데 외수들만 밖에 있었다. 일곱 여덟쯤 될까...
김명선이 사무실로 가서 도저님을 뵈러 왔다하니 사무실 측에서 도전님 안계신다고 하길래 도전님 계시는 것을 확인하고 들어 왔다하니 할 수 없이 그때서야 도전님께 전화를 해서 김명선이 도전님 뵈러 왔다고 알리니 도전님께서 나오셨다.
도전님께 인사를 드리니 " 왜 왔어" 물으시길래 "천자님 존영을 모시고 왔습니다. " 그 곳이 사무실 앞 마당이었다.
"너 그러면 맞아 죽어. 가." 하시니 주변의 외수들이 한꺼번에 모여들기 시작 했다. 종사원들과 임원들은 벤 뒤에 실려 있는 존영을 보고 자기네들끼리 차안을 들여다 보며 "존영을 모시고 왔단다 "하며 수근 거리고 있었다.
도전님께서는 자꾸 가라고 고함을 지르셨지만 김명선이 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
도전님께서 휴계실로 김명선을 부르시더니 " 이권학. 이리 와 봐. 여기 앉아. 김명선도 여기 앉아. 말해봐. 뭐라 했지. "
" 천자님 존영 모시고 왔습니다."
라고 하자 상제님께서 손가락으로 이권학을 가르키며
" 너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한테 맞아 죽어 "
" 맞아 죽어도 괜찮습니다."
" 이 권학 너 들었지. 김명선이 보내."
이렇게 공판을 보시고 일어나셨다.
김명선이 가지 않고 버티고 있으니까
" 가. 빨리가. 가라니까! 이러면 맞아 죽어. 빨리 가! "
상도로 들어 갈 거란 김명선의 생각은 자꾸 난관에 부딪치는 것 같았다. 상도의 외수도인들이 우르르 차를 에워싸며 발길질도 하고 나가라고 같이 소리를 질렀다. 그것 뿐 아니었다.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 부으면서 나가라고 협박하였다. 이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그때 안으로 들어가셨던 도전님께서 다시 나와서 직접 차 안을 들여다 보시고
"안가고 뭐 해. 빨리가. 안가면 맞아 죽어"
인사를 드리고 갈려고 차문을 열려는 순간, 도전님께서 필사적으로 문을 막으셨다. 못 내리도록.. "맞아 죽어 빨리가"라는 말씀을 계속하시면서... 눈시울이 붉어짐을 애써 참는 상제님의 모습을 보고 그만 눈물이 왈칵 솓아졌다.
" 시동을 거세요. 나갑시다."라는 조용한 수부님의 말씀과 함께 세사람은 상도도장을 빠져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그것이 바로 도전님과 김명선의 심법전수인것이다. 맞을까 봐 걱정이 돼서 안에 계시지도 못하고 바로 다시 나오셨던 것이었다.
존영을 올리려던 날의 수부님께 퍼부었던 욕설은 이틀 뒤에 큰 화로 다가 왔다.
그것이 일본을 휘청거리게 했던 3.11대쓰나미였다.
바다가 출렁인 것이다. 바다는 모든 것을 낳고 기르는 역활을 하는 수부를 의미한다. 지금까지도 모든 심판은 물로써 이루어 왔다. 잘 생각 해 봐야 한다.
밖으로 쫓겨 나와서 다시 존영을 집에 모셔놓고 보니 허망하기 짝이 없었다. 어찌 그리들 모르는지 답답하고 맥이 빠지는 듯 했다.
그러다 저녁 7시 기도 시간이 되었다. 존영을 다시 풀어야 했다.
존영을 바라보니 슬프게도 상제님도 함께 쫓겨 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제님도 쫓겨 나셨네요. 저만 쫓겨 난게 아니었네요..."
이로서 완전한 판 밖 도수가 시작이 된 것이었다.
또다시 김명선은 존영을 제대로 봉안 해야만 했다. 제단을 맞추고 모든 것을 정비 하기 시작하였다.
다시 봉안치성 준비를 하였다. 대순신앙편에 삼신산 중에 가운데 산이 비어 있다고 되어 있다. 그 가운데 산을 바로 봉안을 하니 드디어 삼신을 제대로 봉안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동자가 삼신을 바로 모시는 형국이며 그 동자가 분명한(明)仙이라는 것이다.
그 날이 바로 2011년 2월 12일(양.3.16)이었다. 바로 미륵세존께서 개유보 하신 그날이었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미륵세존님 화천하신 날이 12월 4일, 양력 1월 23일이며, 미륵세존님 봉안일이 12월 15일( 양력 2월 3일)이다.
'우리 도는 숫자를 마추는 것이다'라는 지침글의 의미가 이런 것이다.
2와 3이라는 수는 대두목의 수이다. 강증산께서 화천하시기 전날 수부공사일이 6월 23일이며 6월 24일에 화천을 하셨다.
6은 대두목을 뜻하는 수이며 2와 3은 대두목의 수이다.바로 仙의 이치가 되며 人山의 이치가 된다. 24는 24방위에 자리 할 도통 군자들을 일컫는다. 이 두 날만 봐도 대두목과 구천상제님은 음양도수로 오는 부부의 이치가 분명하다. 조화인 도통군자를 창성하기 위해서...선녀가 아이를 낳는 형상을 하고 있는 중곡도장 시공식날도 바로 2월 3일이다.
그리고 金明仙의 생일도 2월 3일인 것이다.
일부러 맞추기도 힘든 숫자들이다.
이렇게 삼신을 원위에 바로 세우고 다시 판 밖 도수가 시작이 된 것이다.
대두목인 수부가 이렇게 들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수기가 돌기 시작하였고 이 해가 바로 대두목이 들어서는 2011년이며 金明仙의 년수 50 이 되는 해이다. 바로 이윤의 도수에 드는 것이었다.
도전님의 뜻을 알게 된 수부께서는 2011년 50수가 되던 해에 제후가 천자께 올리는 납향치성을 올리게 된다. 그리고 2월 12일에는 박성상제님을 원위에 봉안하게 되니 이로써 삼신이 원위에 바로 서게 되었고 박성상제님과 수부님은 음양의 이치로 천지굿이 시작 되었으니 도통군자가 나옴도 당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