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시집 가던 날 가슴에 꽂았던 꽃도, 어버이날 들고 온 아들과 딸의 카네이션도 다 시들어 유월이 왔습니다.
똑 같이 심었는데도 오른 쪽은 초라하게 비어 있고 왼쪽만 신이 났습니다.
아치라는 것이 이리 올라 휘우듬 돌면 저리 곤두박질 치는 모양이라
둘인 듯 하나로 이어지는 둥그스레한 곡선을 저는 좋아합니다.
장미가 곱지만 화려하지 않는 작은 풀꽃들도 제 자랑을 숨기지 않죠.
사철패랭이가 이곳저곳에서 얼굴을 내밉니다.
가운데 소나무 새끼 보이시죠?
쌩 땅을 골라 소나무를 심었더니 오며 가며 약한 뿌리를 내리느라 소나무들이 많이 힘들었나 봐요.
솔방울들을 잔뜩 매달고 솔씨들을 곳곳에 흘려놓았어요.
악 조건 속에서 나무도 풀도 힘들어 안 되겠다 싶으면 생명력으로 충만한 번식용 씨앗들을 흩뿌립니다.
그러나 전에 해충에 죽은 일곱 소나무 곁에서 새로 심은 것들이 이태 째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답니다.
어제는 장차 솔잎차가 될 솔순을 세 광주리나 잘라왔답니다.
약초정원에서 잘려나온 열매며 순이며 가지며 뿌리가 일상의 먹거리가 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몇은 탕약으로 몇은 스파이스 재료로 몇은 발효액이 되어 각자의 자리에 올라앉습니다.
인동초가 반 상록성이라면 붉은인동은 겨울을 나는 상록성입니다. 기분 좋으면 11월까지 꽃을 피웁니다.
도담마을 중앙 공간에서 집으로 드는 통로에도 아치가 세워져 있죠.
키로 크지는 않았지만 나름 풍성한 꽃을 달아 주인을 기쁘게 해요. 분홍찔레꽃의 이미지를 웃으며
유월의 초입이 다디답니다...
마당에서 나무를 옮기고 종일 꼬물거리고 있노라면 멀리서 아이들 소리가 들리죠.
항, 내가 지난 날 저 조무래기들을 가르쳤던 선생이었지...
전에 전교조건설로 해직이 되어 교단을 떠났던 때 그 해던가 그 이듬해였던가 스승의 날에
딸의 학교로부터 일일교사 초청을 받았어요.
초등학교 2학년, 얌전하기 이를 데 없는 딸이 교실에서는 어떻게 지낼까 몹시 궁금하여
슬쩍슬쩍 아이의 교실 창문을 훔쳐보던 아비로서 이 제안이 얼마나 설레었겠습니까?^^
냉큼 받아들였죠. 그날의 수업은 미술!
손 드는 아이 얼굴을 차례차례 칠판에 그리는데 그 캐릭터 식 재미에
온 아이들이 뒤집어지고 엎어지고 책상 위로 올라가고 꽈당 걸상이 넘어지는 난장판 속에서
딱 하나, 교실 가운데 앉은 한 아이만은 말뚝처럼 고정되어 꼼짝도 안 하는 겁니다.
그 아이가 바로 제 딸!! 가만히 앉아 눈알만 굴리면서 둘레의 분위기를 감지하는 것인데
그래도 아빠가 재밌었는지 저 모나리자의 미소 같은 미소를 머금더라구요글쎄. 윽...
훗날 아빠를 따라 미대를 나온 딸도 배시시 웃어주었던 정원의 디딤돌이랍니다.
나무 틀을 만들어 하루에 두 개씩 만드니 50개가 한 달만에 다 만들어졌어요.
아침에 몰탈을 붓고 오후에 와서 빼내고 다시 부어 다음 날 아침에 빼내고를 반복하는 거였죠.
표면에 모두 작은 강돌을 얹어 장식하였는데, 사람들이 저 동그란 건 무어냐구 물어요.
바로 '옥장판의 옥'이라 말하면 다들 동그랗게 웃고 맙니다.^^!
집 동쪽 모서리에도 아치가 있습니다.
여기엔 '백화으름'을 사다 올려지요. 개량한 거라 성장력이 얼마나 왕성하지 모릅니다.
아치를 촘촘히 얽고 또 옆으로 손을 뻗어 수통을 타고 올라 지붕 가에 다달았습니다.
사실 아치는 해남현산중에 있을 때 세들어 살았던 자취집 뒤뜰에 버려져 있던 것을 얻어와
압촌동 시절의 앞마당에 세웠던 것이 시초였습니다. 멀꿀과 으름을 양쪽에서 올렸는데
그 언발란스하고도 무성한 난장판에도 그들로선 타고 오르는 생리를 맘껏 충족했던 물건이었죠.
이 아치를 지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이 있답니다. 이 아치가 문제가 아니라 멀꿀 말입니다...
전에 살던 집 아치에서 자라던 바로 그 멀꿀을 밑둥만 싹뚝 잘라 가져왔던 것이죠.
새 집주인에게 가끔씩 미안하고 내 꽃사랑에 대한 병적 진단을 내리곤 하는 넝쿨이기도 해요.
요건 승민 아우네로 통하는 지점의 것인데, 양다래를 올려봤어요. 딱히 심을 자리가 없어서기도 했지만
저 만경의 넝쿨이 머리 꼭지에서 이젠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안타까운 유월이 왔답니다.
줄기는 꼿꼿한 편이라 허공을 허우적거리는데... 이 모양도 참 아니 되었어요.
그럭저럭 유월도 복판을 향하여 승승장구합니다.
붓을 들어야겠다는 말을 하루에 한 번씩은 중얼거리지만 마당은 자꾸만 주인을 불러내고
그러면 또 여름 오고 가을 갈텐데...
첫댓글 그래서 싱그럽게 정원이 웃습니다.
일본식 정원, 한국식 정원이 뒤섞인 아름답고 소소하고 소쇄하며 은밀한 그림이 아직도 제 안 어디에 그려져 있습니다만 그러기엔 경제적 시간적 환경적으로 한계죠. 여생을 던지면 몰라도 일단은 잡초 줄이고 계속 수정하여 옮기고 안정적으로 굳혀지면 그 틈을 시도 그림도 '노리고' 있어요. 정원이와 진수가 서로 마주보며 무심히 또는 싱겁게 또는 싱그럽게 웃는 그날까지 고만 늙었으면 좋으련만!
6월의 정원도 아름답습니다 ^^
천태산 개천산을 앞 울타리로 삼고 바람과 안개와 눈비를 감상하며 계절과 시간과 나를 가꾸는 마음의 뜰이 되어야할텐데 코딱지만한 마당과 연못과 풀꽃들 사이로 왔다갔다하면서 호미잽이 사팔뜨기로 엎드려 골똘하고 있으니 썩 아름답지 못합니다. - 6월도 7월에 죄 없는 땀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