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광야의 40일’은 2015년 선댄스 독립영화 영화제에 출품된 콜롬비아 태생, 하버드대학 출신 로드리고 가르시아 감독의 작품입니다. 원명으로는 ‘Last days in the Desert’로, 직역하면 ‘사막에서 마지막 날들’입니다. 40일 동안 광야에서 예수께서 유혹을 받으신 테마를 주제로 이완 맥그리거가 예수아(예수)의 역을 맡아 광야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여 표현하였습니다. 영화의 러닝타임 98분 동안 자연채광조명을 사용하여 촬영된 사막의 잔잔한 영상들과 바이올린의 단선율이 사막의 대지를 부유하며 4명의 배우들과 함께 광야에서 생성된 메시지들을 관객들에게 투출합니다. 현상적으론 사막을 바탕으로 4명의 배우가 각자 말하는 대사들이 서로 부딪쳐 공명하여 팔방으로 흩어 퍼지는 것이 당연한 듯 전체 영상 흐름이 마치 텅 비어 있는 것 같고 무미건조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4명의 배우들이 표현하는 대화들이 서로 충돌해 생성된 다양한 의미들과 영상 곳곳에 숨겨져 있는 상징들이 내포하는 의미들을 관객들 스스로 밝혀 내야하는 과제를 남깁니다.
대부분 블록버스터 영화들은 숨 가쁘게 흘러가는 영상효과가 주는 각종 자극들에 의해서 영화 자체가 풍부하고 꽉 차 있는 것 처럼 보이지만, 단지 인간의 감각들만 자극할 뿐 왜 그 영화가 그러한 의미를 갖는지를 관객들이 자신의 삶의 위치에서 생각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독립영화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렇게 대형자본이 투입된 상업성을 가진 영화와 다르게, 화려한 영상처리에 무게를 두기 보다는 영화 자체의 흐름 속에서 연기와 대사가 관객들에게 던져주는 의미들을 증폭시킵니다. 영화를 본 이후 ‘왜 그렇지? 저 장면이 어떤 삶의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하고 반복된 의문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독립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통해 관객들은 ‘삶’ 속에 ‘영화’, 또는 ‘영화장면’속에 ‘나의 삶’이 서로 의사소통이 가능한, 즉 ‘영화와 나의 삶’이란 관계의 문이 열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광야의 40일’ 영화 또한 이러한 갖가지 다양한 상징적 요소와 이 요소들이 서로 충돌해 상이한 의미를 생성할 잠재성이 영화 속에 즐비하게 숨겨져 있습니다. 이러한 상징적 효과는 관객 스스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자문하게 됨으로써 개인의 삶과 기억 속에 영화 자신의 존재를 하나의 이미지로 각인 시킵니다. 가르시아 감독이 이러한 효과를 영화상영 내내 의도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영화플롯 흐름에서 낯선 장면들과 대사들이 광야의 잔잔한 화면 속에 불쑥 튀어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아가 꿈을 꿀 때 느닷없이 나타난 늑대들의 추격 장면, 별똥별이 떨어지는 장면, 갑작스레 하늘에 떠있는 예수아, 아버지의 시신을 태운 어머니, 여자의 가슴에 손을 대고 기도하는 장면, 십자가에 달린 예수아 앞에 나타난 물총새. 어떠한 대사도 이러한 장면을 인과적으로 설명하고 있지 않지만, 그렇게 화면에 던져 짐으로 관객에게 그 의미를 해석할 숙제를 부과합니다. 이러한 영상 속에 상징들은 일정한 선형을 갖고 논리적 해답을 유도하기 보다는, 영상의 흐름에 따라 비선형적으로 나타나서 그 상징들의 해석을 강압적으로 요구하는 역할을 합니다. 해석이 관객들에게 강압적으로 요구될 수밖에 없는 것은 ‘관객’과 ‘감독’, 그리고 ‘영상'이 서로 다른 환경을 갖고 플롯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는 하나의 플롯 속에 묶여 배우들을 향합니다. 그러나 영화에서 배우들은 각자 다른 삶의 위치 위치에 있어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낯설고 메마른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 메마른 상태가 바로 ‘광야’고 로드리고 감독은 이 광야에서 사람의 아들인 예수아(신)는 어떤 내면갈등을 갖고 주어진 상황을 받아드리는지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통한 감독의 '메마른 상태'의 표현은 서로 상이한 삶의 위치에 있는 배우들이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반복 유사 관계구조를 갖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저는 이 감독의 전략적인 반복 유사관계구조를 하나의 ‘교차’로 이해했고 그 방식은 다음과 같이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낯선 타자로만 남아 있을 수밖에 없던 것은 주인공들이 서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과 목적이 서로 달랐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목적지는 예루살렘입니다. 그러나 가족의 목적지는 광야에서 지속되는 삶의 죽음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러한 광야에서 삶이 죽음으로 치닫기 까지 과정을 숙명으로 받아드린 듯 인생에 또 다른 여정은 없을 것이라고 체념하고 돌아서지만, 젊은 아들은 이곳을 지나쳐 가는 예수아 처럼 자신만의 목적지를 향합니다. 즉 젊은 아들의 삶의 종착지는 결국 술 취한 여자가 웃는 소리,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생선소스 냄새, 서로 육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시장풍경이 있는 ‘항구’였습니다. 서로 각자 다른 환경에서 각자의 삶을 향해 달려가는 흐름 속에서 서로를 낯설게만 바라보는 소외의 순간도 있지만 결국 이러한 소외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서로의 삶에 참여하게 되는 순간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 소외는 사탄이 예수에게 바랐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사탄은 예수의 귀에 끊임없이 아버지는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서만 단지 존재할 뿐이라고 이야기하고, 예수아는 철저히 가족과 떨어져 있는 존재며 결국 혼자뿐인 존재라고 귀에 속삭입니다. 물 한 모금 먹을 수 없는 사막에서 조차 선을 행하길 바랐던 예수아는 본인이 가진 것 마저 달라는 사람에게 모두 나누어 줍니다. 그러나 인간으로서 선의를 베푼 것에 대한 일종의 자존감을 인정받으려는 안락함도 버림받습니다. 이웃에게 베푸나 그 애덕이 비웃음이 되어버리는 메마른 상태… 이러한 메마른 상태를 이용해서 사탄은 예수가 예루살렘으로 가지 못하게 교묘히 갖가지 말을 꾸며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에 가는 것은 아버지의 뜻이 이뤄지기 위함 임을 예수는 무엇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거짓 예언으로 한 가족의 관계를 뒤틀어 보여주고 ‘너는 혼자야’라고 하며 지금 광야에서 있는 순간을 무의미하게 단정 짓습니다. 디아블로(διαβολειν), 악마란 단어의 어원도 그리스어로 '따로 떼어 던지다'라는 의미를 갖습니다.
영화에서 사탄은 이완 맥그리거가 1인 2역을 하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 악마의 모습은 예수 자신이기도 하면서 밤에 예수를 유혹하는 여자의 모습으로도 나타납니다. 즉 내 안의 ‘악’을 표현한 감독은 메마른 광야에서 분열된 자아를 그림으로 신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관계의 단절과 소외됨을 표현합니다. 나아가 가족 내에서도 소외현상은 지속됩니다. 수십 년 함께 살았던 가족 내 아버지는 아들의 관계에 있어 서로 모른다고 이야기합니다. ‘오직 나’의 의미만을 강조합니다. 아버지는 예수아에게 고백합니다. ‘아이는 저를 몰라요, 저도 그를 모르고요...’ 영화에서 광야는 이렇듯 서로 다른 삶을 지향하는 주체들이 교차하는 지점이자 주체가 객체가 되어 서로가 서로에게 소외되는 곳입니다. 가족과 예수아의 관계 속에 예수아의 금식이 하나의 사치와 낯설음으로 표현되는 순간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들. 예수아는 예루살렘, 아버지는 죽음, 어머니는 광야, 아들은 항구, 이렇게 각자 인생의 삶에서 주어진 길을 향해 나아가게 된 순간들은 상이한 존재들의 흐름들이 교차된 결과일 것입니다. 이 다양한 흐름들이 교차되어 표현된 영화 내에 다양한 상징들 - 예수를 위로하는 물총새, 창에 찔린 심장, 찢겨진 가슴, 손에 못 자국, 가시관에 찢겨진 이마, 무덤 앞에 있는 제자와 여인들 등, 영화 막바지에 이르러 쏟아져 나오는 영화의 이 상징들을 어떻게 해석할지 관객들에게 숙제를 던집니다.
광야의 한복판에 떨어져 살아가곤하는 현대인들. 우리들은 광야의 목마름을 어떻게 체험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지금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영화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사진만 찍고 있는 두 커플처럼 삶의 메시지를 마치 죽어있는 고정된 이미지로 간직하는 서로 소외된 사람들로서 삶을 살아가고 있진 않을까요. 광야에서 관계의 메마름과 고통을 한 순간의 기념으로만 생각하는 ‘너희들’은 아닐런지요. 예수의 수난, 이곳에서 죽음이 있었던 그 장면을 하나의 기념으로 생각하며 지나치는 ‘너희들’일까요. 광야에서 수난이 결코 타인의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그곳 광야에서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른 채 살아가곤 하는 ‘나'는 아닌지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영화의 내용을 잘 설명해주어 마치 영화를 보고 있는 느낌입니다.
예수와 사탄의 두 관계는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광야에서 분열된 그림을 보고 있는 듯 합니다.
예수의 상징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창에 찔린 심장, 손에 못 자국, 가시관에 찢겨진 이마 등등 이러한 것들이 신앙인으로써 삶을 통해 거쳐야 하는 것들이기에 광야의 체험은 나를 성숙시키는 좋은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영화 소개에 감사합니다. ~^^
삭막하게 변해버린 스스로를 되돌아 볼 수 있도록 영화를 상세하게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행복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항상 감사하게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