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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하라, 내 영혼아!...
창세기 14장 17절-20절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불렀습니다. 그리곤 각각의 천사에게 바구니 하나씩을 주며 명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내려가서 한 바구니에는 탄원과 기도를 담고 또 다른 바구니엔 찬송과 감사를 담아 오도록 하여라..."
바구니를 든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명하신대로 한천사는 기도와 탄원을 찾아서, 또 다른 천사는 감사와 찬송을 찾아서 세상 여기저기를 두루 다녔습니다. 우리 새누리 교회에도 다녀간 줄로 믿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천사들은 임무를 마치고 다시 하늘로 올라갔고 하나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기도와 탄원을 담은 바구니는 철철 흘러 넘치는 반면 찬송과 감사를 담은 바구니는 텅텅 비어있었던 것입니다. 찬송과 감사를 담겠다며 천사가 온갖 세상을 다 뒤지고 다녔지만, 우리 새누리 교회에도 다녀갔지만 도무지 바구니 하나를 도저히 채울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앞에 이거 달라 저거 달라하는 탄원도 해야겠습니다마는 더 많이 찬송하고 또 주신 것에 더 많이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하는 줄로 믿습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 찬양하라, 내 영혼아!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늘 찬양하며 감사하는 삶을 사는 복된 우리 새누리 인들이 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아브라함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잠깐 설명을 하면 이렇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아브라함과 조카 롯이 헤어졌습니다. 재산으로 인한 분쟁이 있었거든요. 아브라함이 모든 것을 다 양보했습니다. 조카 롯은 배은망덕하게도 삼촌을 배신하곤 좋은 것들을 죄다 챙겨서는 좋다고 떠나버렸습니다. 그러고 잘만이야 살면 뭐가 문제겠습니까마는 그렇지도 못했습니다. 그만 롯이 살고있던 곳에 전쟁이 일어나고 만 것입니다. 소위 가나안 남북전쟁이라고 하는 전쟁이 터진 것입니다. 롯이 속해 있는 사해 연합군과 북쪽의 메소포타미아 연합군 사이에 조공문제로 인한 전쟁이 발발하고 만 것입니다. 싸움의 결과는 막강한 군사력을 앞세운 북군 앞에 사해 연합군은 순식간에 초토화되고 말았습니다. 가진 것 모두를 빼앗기고 포로로 잡혀가고... 난리에 난리에, 비참한 신세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문제는 아브라함의 조카였던 롯 역시도 포로로 잡혀갔다는데에 있습니다. 이 소식을 접한 아브라함은 가병 318명을 거느리고 북군을 추격하여 저들을 무찌르고 포로로 잡혔던 조카도 구하게 되는 전과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승리하여 돌아오는 아브라함을 예루살렘의 왕이면서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이 축복을 하게 되고 그 앞에 아브라함은 찬양과 더불어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러한 본문의 내용을 배경으로 하여 우리는 아브라함이 어찌하여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었는지, 또 그의 찬양의 특징은 무엇인지를 함께 생각하며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찬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거느린 군사의 숫자가 얼마였나요? 예, 그렇습니다. 318명이었습니다. 고작 318명에 불과했습니다. 그것도 가병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상대는요? 상대는 어땠나요? 막강한 군사력을 지닌 연합군이었습니다. 그것도 다섯 개나 연합한 수만명의 군사였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계란으로 바위를 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어땠나요? 아브라함의 승리였습니다. 그것도 대승이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아브라함의 전술과 전략이 탁월해서 일까요?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그 어떤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였을까요? 천만에요!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고 보호해 주신 결과인 줄로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잘나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돌보심으로 인해 가능했던 일입니다. 그러기에 마땅히 찬송을 받으실 분은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다윗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리앗을 어떻게 물리칠 수가 있었나요? 다윗이 워낙 돌 던지는 실력이 탁월해서였을까요? 아니지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이 저와 함께였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능력이 다윗과 함께 하지 않았다면 그는 골리앗의 말대로 공중의 새들에게 밥이 되고 마는 신세가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그와 함께 있었기에 다윗은 거인 골리앗을 물리칠 수가 있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찬양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승리를 주시는 분이시니 말입니다.
요즘 경제위기로 난리가 아닙니다. 죽네사네 야단들입니다. 온통 절망을 말합니다. 나오느니 한숨뿐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런 중에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를 소망합니다. 그 분 앞에 온맘으로 찬송을 돌려드리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이 '너무 바빠서 기도합니다.'라고하는 빌 하이벨스 목사님의 책입니다. 거기에 그런 내용이 나오더라구요.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와 동행해 주세요!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세요!...' 라고 하는 기도는 틀린 기도랍니다. 왜냐면 이미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도와 주시겠노라고 약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행하겠노라 도와주겠노라고 이미 약속하신 우리 주님앞에 도와달라고 동행해 달라고하는 기도는 앞뒤가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다음 주에 롯데 월드로 소풍갈테니 준비하거라...'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례 후에 교무실로 찾아가서는 '선생님 우리 소풍가요! 다음 주에 가요! 롯데월드로 가요!..'하며 떼를 쓰는 것과 똑같다는 것입니다. 이미 약속한 것을 믿지 못하고 다시 가서 잔소리나 하는 것에 불과하단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동행하고 있습니다.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믿기만 하면 됩니다. 비록 경제위기중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우리를 도우십니다.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보장된 승리를 바라보면서 비록 지금의 삶이 힘겹더라도 승리를 주실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믿음대로 될 줄로 믿습니다. 승리의 주인공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승리를 약속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둘째로, 회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욥은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재산을 잃었고 7남3녀의 자녀들을 하루 아침에 잃었습니다. 건강을 잃었습니다. 친구들을 잃었으며 아내도 잃었습니다. 그에게 남은 것이라곤 병든 몸 하나 밖엔 없었습니다. 어떤가요? 욥의 인생이 그걸로 끝이었나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시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재산을 두배로 늘려주셨습니다. 동방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녀들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건강도 회복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래 오래 살기 위해서는 뭘 많이 먹어야한대요, 뭔지 아세요? 예, 맞습니다. 나이입니다. 확실히 젊은 친구들이라 낫네요... 나이를 많이 먹어야 오래 오래 사는 겁니다. 나이를 많이 먹기 위해서는 건강해야겠지요! 건강해야 나이를 먹고 오래 오래 살지 않겠습니까? 욥이 바로 그런 건강을 회복한 것입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습니까?
제가 몇년 전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다녀 왔습니다. 모세의 발자취를 따라 애굽을 순례했고 요르단도 돌아 보았습니다. 예수님의 흔적을 좇아 예루살렘도 가 보았습니다. 여러 곳을 둘러 보는 중에 가이드가 그런 말을 하더군요!
"예루살렘에는 독일제 밴츠자동차가 많습니다. 택시도 벤츠이고 버스도 벤츠이고 트럭도 벤츠입니다. 왜 인줄 아세요?"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독일하면 히틀러이고 히틀러하면 유대인들을 육백만 명씩이나 죽인 사람이잖아요? 무슨 말이지요? 원수의 나라라 이 말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원수의 나라 독일제 자동차인 벤츠가 많다니... 이상하잖아요? 가이드의 설명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다니는 자동차의 90퍼센트가 독일제 벤츠인데 그 이유는 독일 사람들이 무상으로 주었기 때입니다. 자신들의 조상이 저지른 죄를 후손들이 사죄한다며 벤츠자동차를 무료로 준 것입니다. 때문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독일 사람들에 대하여 적대감을 갖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좋은 감정을 가지고들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본을 생각했습니다. 뻑!..하면 독도가 자기네 땅이니, 신사참배를 하니마니, 위안부 문제는 어떻구요...두 나라 사이가 회복되질 않잖아요. 원수처럼 지내잖아요.. 축구를 하든 야구를 하든 일본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게 지는 건 괜찮아요! 일본에게 지면 어떻게 되나요? 감독, 바로 교체입니다. 가깝고도 먼나라!...일본!... 왜 인가요? 왜 이토록 미워 미워 미워하고 있나요? 회복이 안 되었기 때문입니다. 독일과 이스라엘이 회복이 되다보니까 사이좋게 잘 지냅니다마는 일본과 우리나라는 늘상 그저 그러니까 못잡아 먹어서 안달입니다.
회복이 안 되면 이렇습니다. 부작용이 많습니다. 껄끄럽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우리 하나님은 롯을 찾게 해 주셨습니다. 재산을 회복 시켜주셨습니다. 자유를 회복케 했습니다.
우리 경제도 회복 시켜주실 줄로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도 회복의 역사가 있을 줄로 믿습니다. 비록 봉명동에 있을 때 보다는 많은 것이 상실된듯 보이나 이 모든 것들이 일시에 회복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회복의 복을 허락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세째로, 평강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림 대회가 열렸습니다. 주제는 '평강'이었구요. 최종 두 작품이 결선에까지 올랐습니다. 한 작품의 내용은 연기가 모락 모락 피어나는 농가의 굴뚝과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양떼들, 하늘을 날며 지지배배 지저귀며 노래를 하는 새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또 다른 그림 하나는 태풍이 몰아치는 바다에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 닥치고 있습니다. 벼랑끝에 아스라이 매달린 갈매기의 둥지에서는 어미새의 품안에서 새끼새들이 곤히 잠들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여러분, 이 두 그림중 어떤 그림이 우승을 했을까요? 후자입니다. 평강이란 모든 것이 고요한 중에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온통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풍랑 속에 느껴지는 것입니다. 마치 창 밖에는 눈보라가 휘몰아 치고 있는데 비바람이 몰아 치고 있는데 창문 안에서는 너무 진하지 않은 커피를 마시며 바깥 날씨를 감상하는 것과 같은 것... 이것이 다름아닌 평강이다 이겁니다.
실컷 두들겨 맞은 바울과 실라가 평강의 찬송을 드렸던 것처럼, 내일이면 죽을 상황에서도 베드로가 평강의 잠을 잤던 것처럼 말입니다.
비록 경제가 어렵고 또 직장에서는 위기감이 휘감고 있지마는 주님안에 있는 우리는 풍랑에 아랑곳하지 않고 하늘의 평강을 누리는 것처럼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목숨을 건 전쟁을 치루었습니다. 주변엔 온통 이방인들 뿐입니다. 그러나 그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멜기세덱이라고 하는 제사장을 보내셨고 떡과 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아브라함을 위로케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늘의 평강을 누린 줄로 믿습니다. 지쳐버린 영혼을 가지고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에게 우리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위로하시고 새 힘을 북돋우시며 평강을 채워 주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 역시도 평강을 찾아 헤매입니다. 위기를 겪으면서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그리고 저들이 평강을 얻자고 택하는 것들이 술이며 마약입니다. 세상 쾌락입니다. 될까요? 안 됩니다. 몸 버리고 마음 버리고 인생을 버릴 뿐입니다. 더한 고통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뿐입니다. 오직 참된 평화는 우리 주님안에서만 가능한 줄로 믿습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평강만이 우리를 세파와 풍랑속에서 건져내고 또 평안의 삶을 살게 하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에게 참 평안과 안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음으로, 아브라함이 드린 찬양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드러내놓고 찬양했습니다.
어제 박상열님이 결혼을 했잖습니까? 물론 제가 주례를 했구요! 식사를 하고난 후 저는 주일을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신어진 집사님 차를 얻어타고 교회로 향했습니다. 식당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의 일입니다. 사람들로 꽉 찬 엘리베이터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저와 신집사님이 맨 나중에 탔거든요. 근데요, 있잖아요! 일단의 아주머니들이 저를 알아보시더라구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어, 주례선생님이시네!...' 그러자 옆에 있던 신집사님이 뭐라셨는고 하니 '어이구, 알아보시네요...'여러분, 그 다음 말이 중요합니다. 아주머니들이 뭐란줄 아세요? 저야 늘상 듣던 말이긴 했습니다만, 말씀하시길
'미남이시잖아요... 젊으시잖아요...'하시더라구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저야 늘상 듣는 말입니다. 그러니만큼 생소하거나 낯선 말은 아니었습니다. 아주머니들은 제가 꽤나 젊은 줄 아셨나봐요!...얼마 안 있으면 저도 시집을 갈만한 딸이 있다고하자 영...믿으려고 하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삼십대로 본 모양입니다. 제가 서른 일곱살부터 주례를 했다고하자 놀라시면서 한다는 말이 '그럼 지금 몇이신데요?' '사십을 넘은지 옛날입니다...'했다는거 아닙니까?... 교회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길래 신방동에 있다고 했지요...그랬더니 당신도 신방동 향촌 현대에 사신다고 하더군요... 그 짧은 시간에 별말을 다했습니다. 여러분께 한가지 묻습니다.젊고 미남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의 제 기분은 어땠을까요? 1번, 아주 드러웠다... 2번, 쫌 기분 나빴다...3번, 좋았다... 4번, 째지게 기분 좋았다... 몇 번일까요? 당연히 4번입니다. 제 기분이 너무 좋았다니까요... 왜 안 그렇겠습니까? 아주머니들이 저를 드러내놓고 칭찬을 하는데요... 만약 그분들께서 단지 속으로만 '잘생기셨네, 젊으시네...'생각하시곤 밖으로 표현을 하지 않았다면 제가 그렇게 기분이 좋았을까요? 아닙니다. 천만에요... 드러내놓고 입 밖으로 표현을 하니까.. 제가 그 말을 듣다보니까 기분이 좋은 것 아니겠어요? 우리가 속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고백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어떠실까요? 기분이 썩...좋지를 않으실 겁니다.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음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표현할 때 우리 하나님도 기분이 '째'지시는 줄로 믿습니다.
어느 경로당에서 있었던 일이래요. 할머니들이 모여 앉기만하면 손주들 자랑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답니다.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다 싶었답니다. 왜 안그렇겠어요? 모이기만하면 온통 손주 자랑이니 말입니다. 그래서 할머니들끼리 약속을 했습니다. 앞으로는 손주들 자랑 않기로요... 그런데도 얼마간을 이야기하다 보면 또다시 어느새 손자 손녀 자랑하느라 여념이 없는 거에요. 누구랄 것도 없습니다. 죄다 그렇습니다. 결국 할머니들은 벌금제도를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손주 자랑하는 사람들은 만원씩을 내기로 했던 것입니다. 만원! 어때요, 큰 돈이잖아요! 할머니들에게 있어서는 백원 이백원도 큰데...만원이라니요... 할머니들은 더이상 손주자랑을 하지 않았습니다. 입이 근질 근질해도 꾹!...참았습니다. 벌금 만원을 내야했으니까요... 그런데요, 여러분! 어떤 할머니가 주머니에서 떡허니!...만원짜리를 꺼내시더니만 하시는 말씀이 '난, 만원내고 내 손주 자랑하겠습니다!'하더랍니다. 차라리 만원 벌금내고 드러내놓고 손주들 자랑하겠다 이겁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그 할머니의 손자손녀들의 기분은 어땠을까요? 기분 '째'졌을 겁니다. 그런 할머니를 둔 것이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우리 하나님이 그렇습니다.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하나님을 향해 사랑한다며 많은 사람앞에 고백할 때 우리 하나님의 입은 귀에 걸리신다니까요!....좋아서 말입니다.
오늘 본문의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그의 곁에는 소돔왕이 있었습니다. 소돔왕이 누구이던가요? 이방인입니다. 불신자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천국이 뭔지, 구원이 뭔지 모르는 사람이다 이 말입니다. 그런 사람앞에서 아브라함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하나님앞에 예물을 드렸습니다. 비그리스도인을 옆에 두고 당당하게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인정하고 찬양하고 높여 드렸다 이겁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해 기분이 좋았을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바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유혈이 낭자한 상태입니다. 얼마를 맞았든지 뼈가 다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맞은 것이 밤입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무엇을 했던가요?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한 줄로 믿습니다. 옆에 있던 죄수들이 들을 정도로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찬양한 줄로 믿습니다. 저들을 통해 우리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불신자들이 가득한 직장안에서 하나님을 높이시며 드러내놓고 찬양하고 계시나요? 당당하게 하나님을 높이시며 믿음을 고백하시나요? 그러신다구요!...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런데 간혹 보면 그렇지 못한 분들이 계시더라구요... 하나님을 드러내놓지를 못하더라구요. '속으로'만의 믿음을 가진 분들이 있다니까요... 한번 점검해 봅시다.
이제 막 가정예배를 드리려고 하는데 옆집에서 마실을 왔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나요? 1번, 손님도 왔고 분위기도 영... 거시기 하니까 오늘 가정예배는 드리지 않는다고 아이들에게 눈짓으로 말한다... 2번, 그래도 하나님과의 약속이니까 예배를 드린다... 3번은 없습니다. 몇 번이신가요? 이제 막 성경책을 들고 열린 모임에를 가려고 하는데 예기치않은 손님이 왔습니다. 어쩌시겠습니까? 1번, 셀리더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하기를 '집사님, 죄송해요! 오늘 꼭 가려고 했는데 손님이 오셔서요... 담번에 갈께요..'철크덕! 이 소리는 아직 저쪽, 그러니까 셀리더 집사님은 말도 다 안했는데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소리입니다. 2번, 찾아온 손님에게 말하기를 '두세 시간 걸릴건데 기다려 주세요...'하곤 열모에 참석한다... 3번은 없습니다. 몇 번인가요? 손님을 데리고 열린 모임에를 간다구요? 와!...이쯤되면 기절입니다. 셀리더가 기절할 겁니다. 좋아요! 그건 3번입니다. 1,2,3번 중에 몇 번이신가요?모 르긴해도 망설임없이 셀모임을 참석한다든지, 아니면 가정예배를 드린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는 않은 분들이 꽤나 계실 것입니다. 아닙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시기를 소원합니다. 특히나 불신자들 앞에서는 더욱 그리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인 줄로 믿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고... 잘 아실겁니다. 그는 요즘 말로 하면 국회의원이었습니다. 부자였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자 어떻게 한줄 아시나요? 자신을 위해 준비한 무덤을 기꺼이 예수님을 위해 내놓았습니다. 제자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죄다 줄행랑을 놓았습니다만 요셉은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오히려 빌라도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곤 예수님의 시신을 내어달라고 합니다. 그 누구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예수님의 시신을 수습한 사람이 다름아닌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었습니다. 당시 로마법에는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을 동정하거나 시신을 거두거나 하는 일이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자칫하면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간 자신이 쌓아온 명예며 권세며 부귀등을 일순간에 날려 버릴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드러내놓고 자신이 예수님의 제자임을 밝힌 것입니다. 죽음이라도 불사하고 말입니다. 요셉을 통하여 우리 주님께서 큰 영광을 받으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또한 아리마대 요셉과도 같은 삶을 살아야하는 줄로 믿습니다. 드러내놓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믿음을 고백하시는 복된 새누리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을 크게 영화롭게 하는 역사가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둘째로, 자신을 낮추며 찬양했습니다.
아브라함은 318명의 가병을 거느리고 막강한 메소포타미아 5개 연합군을 물리쳤습니다. 이제 팔레스틴 근동지역에서 아브라함만한 영향을 미칠 사람은 없습니다. 말 그대로 아브라함만이 최강자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영웅으로 추앙했을 것입니다. 자칫 아브라함이 교만에 빠질 상황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아브라함을 자세히 보시기 바랍니다. 어느 구석 하나 교만이라곤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아니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또 그분께 예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높이고 자신은 낮추는 겸손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브라함의 위대한 믿음의 모습인 줄로 압니다.
성도 여러분, 어떠신가요? 여러분들이 집이라도 한간 마련해서 살고 있는 것이 여러분들이 잘나서 그렇다고 생각하시나요? 직장에서 과장이 되고 차장이 되고 부장이 되는 것이 여러분 스스로가 많이 배우고 또 잘났기 때문에 당연히 누려야하는 권리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에 가능한 일임을 믿으셔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찬송을 받으셔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연약하고 부족하고 나약한 우리들을 복주고 또 복쥬셔서 자녀삼아 주시고 건강 주시고 물질 주시고 명예 주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이 찬송의 대상인 줄로 믿습니다.
엘리야를 보십시요. 그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상대로 하여 능력 대결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통쾌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엘리야를 주목합니다. 일약 스타가 되었습니다. 그런중에 엘리야의 행동을 보십시요. 어땠나요? 큰기침을 해대며 거드름을 피웠던가요? 안하무인이 되었나요? 아니지요...오히려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게 되지요.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앞에 자신을 낮춥니다.무릎 사이에 얼굴을 넣고 하나님앞에 기도를 드립니다. 철저히 낮아지는 목습으로 오직 하나님만을 높이고 또 높인 것입니다.
스스로 잘났다 강하다고 여기는 것들 치고 오래가는 것 없습니다. 공룡들을 보세요. 어떤가요? 제가 예배를 준비하면서 공룡 이름들을 외워보자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만 결국 못 외웠습니다. 웬! 공룡 이름들이 그다지도 어렵대요...그래서 그냥 하나로 뭉뚱그려서 공룡이라고 하기로 했습니다. 지구 역사상 공룡만큼 강한 종자도 없었을줄 압니다. 강자의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어떻지요? 지금 녀석들이 한마리라도 남아 있던가요? 아니지요. 죄다 죽고 말았습니다. 동물의 왕이 사자니 호랑이니 하잖아요! 어때요? 사자와 호랑이들이 많던가요? 아닙니다. 우리나라만 해도 호랑이들이 꽤나 있었다고 하던데...지금은 한 마리도 없습니다. 녀석들을 천연기념물이니 뭐니 야단 법석을 떨며 보호해 주어야만이 간신히 종자가 보존될 판입니다. 강하다 싶은 것들은 죄다 없어졌습니다. 반대로 약하다 싶은 것들은 죄다 없어지겠거니 하지만 끈질기게 남아 있습니다. 대표적인게 뭐지요? 바퀴벌레잖아요.. 녀석은 지구역사상 가장 오래된 녀석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죽여도 죽여도 다시 나타납니다. 없어졌겠거니 싶으면 또 어느새 기어나옵니다. 공룡보다도 사자보다도 더 강하다니까요... 자신을 약하다 고백하고 하나님앞에 낮출 때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는 것입니다. 자신을 높여서는 고작 멸망 밖에는 받을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산을 오르지 않습니까? 산도 태조산이니, 봉서산이니 하는 동네산 말구요! 에베레스트니 킬리만자로니 하는 수천미터의 산들을 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요.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언제 많이 죽는 줄 아세요? 올라갈 때일까요? 내려올 때일까요? 내려올 때입니다. 올라갈 때는 초긴장을 합니다. 바람앞에 눈보라앞에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춥니다. 조심 조심 또 조심합니다. 그러다가 천신만고 끝에 정상에 오릅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내려올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마음이 풀어진 것이지요. 정상을 정복했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방심을 합니다. 헤이해져 있습니다. 결국 조난을 당하고 만다니까요! 낮추세요. 그리고 하나님만을 높이세요. 이것이 성경 정신이요 예수 정신인 줄로 믿습니다. 우리 주님은 친히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런 그분께서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인간이 되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으로 이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것도 말구유에 말입니다. 머리 둘 곳 없으신 삶을 평생 사시다가 결국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죽음을 맛보셨습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름아닌 겸손의 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며 하나님을 높이는 그런 것 말입니다. 언제나 하나님만을 높여 드리는 찬송의 삶을 사는 중에 하늘에 예비된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새누리인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세째로, 삶을 드려 찬양했습니다.
쥐쌔끼들이 모여서 회의를 했답니다. 주제인즉 '어떻게 하면 고양이의 마수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고양이의 등살에 쥐새끼들이 도대체가 살 수가 없었거든요. 여러 쥐들이 이런 저런 의견을 내놓았습니다마는 딱히 이렇다할 묘책이 없었습니다. 바로 그때 똑똑하다고 자타가 인정하는 쥐 한마리가 좋은 의견을 내 놓았습니다. 모든 쥐들은 그의 의견에 동의를 했구요. 의견인즉 다름아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자는 것이었습니다. 방울을 달아놓으면 고양이가 움직일 때마다 딸랑 딸랑!... 소리가 날테고 그 소리가 들릴 때면 도망을 치면 될거라는 의견이었습니다. 모두들 좋아라 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를 만나고 말았습니다. 누가 과연 고양이 목에다가 방울을 달 것인가 였습니다. 좋은 의견은 나왔지만 정작 목숨을 걸고 고양이에게 가서 목에 방울을 달 쥐는 누구겠느냐의 문제에 걸렸던 것입니다. 좋은 생각이었지만, 그만한 의견을 따를 자가 없었지만 정작 실행할 쥐, 행동으로 옮길 쥐는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떻지요? 행동으로 옮기고 있나요? 하나님을 향한 좋은 의사를 가지고 헌신을 생각하고는 있지만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며 삶 가운데에 헌신하며 살아가고 있느냐 이 말입니다.
마리아와 같은 헌신된 자가 누구냔 말입니다. 시집을 가겠다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고 모으고 모은 돈을 예수님의 장례를 위하여 향유옥합을 탁! 깨뜨린 마리아와 같은 헌신을 할 자가 누가 있느냐는 말입니다. 본문의 아브라함을 보십시요. 그는 전리품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드렸습니다. 무슨 뜻인 줄 아십니까?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였습니다. 나의 전 삶을 바쳐 하나님께 헌신하겠다는 의미였습니다. 삶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의미였다 이 말입니다. 마리아처럼 삶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브라함처럼 전 삶을 드려 그분께 헌신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대충하려고 하지 마십시요. 온전하게 헌신하셔야 합니다.
어느 교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목사님이 주일 낮예배 때에 설교를 하다가 그만 넘어지셨대요. 설교를 어떻게 하셨길래 넘어졌대요,그래! 그래도 천만 다행인 것은 아무도 목사님이 넘어진 것을 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잖아요? 주일 낮 예배 시간인데... 설교하다가 넘어지신건데...어째서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을까요? 성도들 모두가 죄다 눈을 감고 자고 있었기 때문이라는군요... 건성으로 예배드리다가 죄들 잠들고 만겁니다. 역사의 주역이 되겠습니까? 이래 가지고야... 이런 사람들이 삶을 드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께 헌신할 수가 있겠습니까? 예배 끝난 다음에 목사님이 찾아다니면서 예배 끝났다고...이제 그만 자고 일어나라고... 이런 사람들 데리고 하나님의 나라를 일구어 갈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온맘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찬양하고 헌신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쇠는 녹슬어 못 쓰게 되어서는 안됩니다. 닳아서 못 쓰는 쇠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함에 있어서 파트타임 사역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풀타임 사역자가 되어야하는 줄로 믿습니다. 이번 수요일이 성 수요일입니다. 부활절까지의 주일을 제외한 사십일을 사순절이라고 합니다. 사순절이 시작되는 날을 우리는 성 수요일이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사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다시 한번 예수님의 사랑과 고난을 되새기며 주님의 십자가를 가슴에 기리는 복된 절기가 되어야할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보십시요. 물과 피를 다 쏟기까지 우리를 위해 전 삶을 희생하셨습니다. 일점의 부족함도 없이 완벽하게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전 삶을 다 쏟으셨다 이말입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그런 주님을 위해 온 삶을 드려 찬양하고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주도에 가면 가볼만한 곳이 참으로 많이 잇습니다. 한라산 백록담이니, 삼방산 검은 모래 해변이니. 중문 단지니...말입니다. 그런 곳들 중의 한 곳이 분재 식물원입니다. 몇 년전 제가 제주도를 방문했을 때 분재 식물원을 관람했었습니다. 참으로 희귀하고 진귀한 식물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습니다. 그런데요, 여러분! 저를 더욱 놀랍게 한 사실은 가이드의 설명이었습니다. 식물원에 있는 각종의 식물들에게 음악을 틀어주면 훨씬 더 잘 자라고 아름다워진다는 말이었습니다. 음악 중에도 바위가 굴러가는 듯한 락앤롤보다는 클래식이 낫답니다. 또 클래식보다는 찬송이 낫답니다. 찬송을 틀어줄 때 녀석들이 더 잘자라나고, 또 더 아름다워지고 예뻐진다 이겁니다. 한번 따라해 보겠습니다.
...한낱 나무 쪼가리들도 그럴찐대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우리의 인생 여정 가운데 승리를 주시고 회복을 주시며 평강을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찬양하되 드러내놓고 찬양하며 자신을 낮추는 가운데에 찬양하며 온 생애를 드려 찬양하는 복된 삶을 삽시다. 놀라운 일이 우리의 삶 가운데에 일어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나누어 봅시다.
1.당신의 차량이나 가정에는 찬양테잎이나 CD가 비치되어 있습니까? 자주 듣고 계시는지요? 어떤 은혜를 받습니까?
2.당신이 그리스도인이며 새누리교회의 성도라고 하는 사실을 주변인들에게 알리고 있습니까? 어떤 식으로 당신이 그리스도인임을 드러내시는지요?
3.강한 것은 없어집니다. 공룡이 그렇고 사자나 호랑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강자가 사라졌거나 실패한 경우, 반대로 약자가 살아났거나 승리한 경우의 경험을 했다면 언제였을까요? 나누어 봅시다.
4.현재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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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1등 아하 목사님 요번주는 제가 댓글 1등 이네여..ㅋㅋ 위 설교말씀을 안읽고 댓글을 달아볼까하는 맘이95%였는데.. 다 읽었읍니다. 요즘 매일 라이브로 찬양에 욜창중하고 있읍니다. 노래실력은 영 안느네요 ㅋㅋ 오늘도 아멘입니다...
^^* 등수 놀이 예전에 즐겨했었는데^^
올 등수 놀이에 기타까지 치셔요^^* 멋져 부렁
셀모임시 남상칠님의 기타 반주에 맞춰 찬양을 했습니다... 보혈을 지나 하나님 품으로~~~~ 사랑하는 자여 내영혼이 잘됨과 같이 내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넘 좋았습니다... 찬양을 통해 은혜주시는 하나님께 영광돌립니다.
우와~ 부럽부럽... 저두 악기는 아니고 잘하는 노래는 아니어도 라이브로 찬양을 합니다^^ 승리와 회복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찬양을 부르면 주님의 평강이 맘 속에 솟아오름을 느낍니다. 내 모든 삶을 드려 하나님만을 찬양하겠습니다.
찬양함으로 나의 삶 또한 은혜가 가득한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기도로써 은혜를 받는줄만 알았는데 찬양으로도 은혜를 받는다는걸 깨달았습니다 저는 차에 MP3를 비치해두고 매일 차량이동할때마다 찬양을 들으며 이동을 합니다 찬양을 들을때마다 마음이 편안해지고 운전할때 조심운전을 하게 되어 좋습니다
남상칠님의 기타치는 모습이 눈에 그려집니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딴분들은 뭐하시나!...우리 모두 악기 한가지씩 꼭 배우도록 합시다. 생각만으로가 아닌 행동으로...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아이디어와 함께 실행을...할렐루야!!!
샬롬! 항상 사회생활을 하면서 전 찬양을 합니다 맘껏 크게는 부르지 못하지만...힘들고 괴로울때나 모든일에 찬양을 합니다 맘이 편안 해지잖아요 안그런가요? 드럼은 치지만 저도 요즘들어 다짐한 것이 있는데 셀모임할때나 청년부 모일때나 등등 쌩으로 하려니 좀...빨리 배워 맘껏 발휘 하고싶어요 노력하여 하나님께 더욱 기쁨 맘으로 영광을 드리고 싶어요 하나님 사랑합니다
소리셋 찬양인도를 할 때마다 찬양 가운데 주님의 능력이 임재함을 느낍니다. 우리가 찬양할 수 있다는 것은 주님의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교회가 찬양이 넘치고, 찬양가운데 주님께서 크게 일하시는 교회가 되길 기도합니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요!"아멘!! 정말입니다!!!찬양을 통해 은혜를 주시고 삶의 활력을 주시는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제 삶속에는 찬양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성탄 칸타타를 할때, 예전에 워쉽할때 정말로 해야하는 책임감 때문에 찬양을 틀어 듣곤 했지요... 요즘은 조금씩 달라지려고 노력한답니다... 내 삶속에~ 아니 내 찬양속에 주님이 역사하심을 기대합니다.
찬양이 언제나 넘치게 하시고 찬양을 통해 모든것이 변화 되는줄 믿습니다.
이번주간 컨디션이 많이 안좋았습니다. 피곤 겹치고 체하기까지 해서 입맛도 떨어지고(절대 오해하지 말것.) 수요예배때도 몸도 안좋은데 가야하나 갈등했지만 하나님 앞에 나와 찬양했습니다. 찬양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치료해주시리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집에 와서는 몸이 많이 좋아졌고 지금은 아주 멀쩡해졌습니다. 다시 식욕이 돌아올까 겁납니다. 살 빼야 하는데...ㅋㅋㅋ 찬양을 통해 역사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눈물 흘려가며 불렀던 찬양들이 많습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 없는자... 나같은 죄인 살리신 주은혜 놀라와... 가장 적당한날에 가장 좋은것으로... 주님께 찬양을 드려야 할 이유가 너무도 많습니다. 저의 삶가운데 깊숙히 관여하고 계신 주님을 찬양하며 살아가고 싶습니다.
찬양하라 내 영혼아~~~ 내속에 있는 것들아 다 찬양하라....
요즘 입에서 찬양이 많이 맴돌고 있습니다. 목사님 설교말씀을 통해 습관적으로 찬양이 입에서 흘러 나오는것 같습니다. 기쁨과 평안을 주시는 주님 감사합니다. 내영혼이 주님을 찬양합니다.
내 삶이 찬양이 되어 주의 이름을 날마다 높일수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할렐루야~~~
힘들고 지칠때 찬양을 통하여 평안을 얻을때가 있습니다. 더욱 즐겨 찬양하는 삶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지났지만 댓글답니다. ^^! 요새는 찬양이 참 좋아지네요. 아침의 시작을 찬양과 함께 하는 날도 늘어나고 있어요. 울 쭈니에게도 동요보다 찬양을 더 많이 들려주는 날도 있답니다. ^^
찬양이 언제나 넘치면 은혜로 얼굴이 환해진다는 찬양가사처럼 아무때나 찬양하고 아무대서나 찬양하고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부릅니다 저희들이 할 수 있는건 오직성경,오직예수,오직기도,오직찬양이란걸 깨닫고 함께 나와 찬양하면 하늘에서도 기쁠것이란 생각을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