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비를 무척이나 좋아합니다. 당연히 제가 가장 좋아하는 철은 장마철입니다.
우선은 약속이 줄어들고,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밀린 일을 하든, 사위가 조용해서
무얼 해도 차분하게 할 수 있습니다. 또, 비가 오면 별미로 즐기는 수제비, 칼국수도 더 맛있어지고
열무로 담근 사각사각한 물김치도 맛있어 질 때 입니다. 게다가 시간과 기억이
마술에 걸리는 밤이 되면 나뭇가지와 잎에, 화단과 보도에 떨어지는 빗소리까지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소리는 마치 젖먹이 아이의 옹알이 같기도 하고, 마법의 세계로 나를 인도하는 주문 같기도 합니다.
빗소리 듣는 동안
- 안도현, 잠들지 않은 것은 나와 기차뿐 시집에서 -
1970년대 편물점 단칸방에 누나들이 무릎 맞대고 밤새 가랑
가랑 연애 얘기 하는 것처럼
비가 오시네
나 혼자 잠든 척하면서 그 누나들의
치맛자락이 방바닥을 쓰는 소리까지 다 듣던 귀로, 나는
빗소리를 듣네
빗소리는
마당이 빗방울을 깨물어 먹는
소리
맛있게, 맛있게 양푼 밥을 누나들은 같이 비볐네
그때 분주히 숟가락이 그릇을 긁던 소리
빗소리
삶은 때로 머리채를 휘어잡히기도 하였으나
술상 두드리며 노래 부르는 시간보다
목 빼고 빗줄기처럼 우는 날이 많았으나
빗소리 듣는 동안
연못물은 젖이 불어
이 세상 들녘을 다 먹이고도 남았다네
미루나무 같은 내 장딴지에도 그냥, 살이 올랐다네
집에서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사이 봇짐과 옷이 가랑비에 젖어 눅눅해 집니다.
집을 나설 때는 방수커버나 비옷은 안해도 될 듯 했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아무튼 일기예보는 오후에 비가 그치고 때때로 소나기가 지나리라 보도하고 있었습니다.
8시 30분, 종각에서 오늘의 산행 팀인 선배님들과 조우하고 다시 버스로 이동해
구기동 이북오도청에서 산행을 시작합니다.
문수봉 앞에서 중식후
비봉, 사모바위, 문수봉을 오르기전 12시경 암봉에서 중식을 하고 대남문, 대동문, 용암문을 거쳐서
16시경 도선사로 하산합니다. 오늘은 먼저 가신 산님들을 추모하는 날입니다.
무당골에 산을 사랑한 님들의 합동 위령비가 있습니다.
추모제
인수봉
- 정호승,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시집에서 –
바라보지 않아도 바라보고
기다리지 않아도 기다리고
올라가지 않아도 올라가
만나지 않아도 만나고
내려가지 않아도 내려가고
무너지지 않아도 무너져
슬프지 아니하랴
슬프지 아니하랴
사람들은 사랑할 때
사랑을 모른다
사랑이 다 끝난 뒤에서야 문득
인수봉을 바라본다
추모제를 지내고 술익는 마을에서 바위팀과 트레킹팀이 모여 간단한 뒤풀이를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디론가 떠나 보낸, 남은 이들이 모여 또 산을 이야기 합니다.
뒤풀이
별이 된 꽃
- 고두현, 사랑을 머금은 자 이 봄, 목마르겠다 시집에서 –
생 텍쥐페리가 살던 집에 와
늦게까지 노니는 밤
무엇엔가 크게 놀란 듯한
눈빛으로 그가
가슴 아픈 동화 한 편을 끝내는 순간
하늘로 올라갔던 수많은 꽃들 중 하나가
술잔에 떨어졌다
먼 사막에서
어린 별이 하나
반짝, 놀란다.
첫댓글 민순아, 글 재주도 좋고 문학에 많은 관심이 있구나~
뒷풀이 비용 잔금을 자청하여 부담해주어 고맙다.
네가 쓴 글은 살아가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산행기라 보는 것이 마땅하다고 보아 산행기로 옮겼다.
자주 산에서 보자꾸나~~^^
민순아, 너의 글솜씨는 29땡중 김광중이를 통해 익히 들었건만 역시 문학도 다운면이 살아있구나. 즐독했다. 자주 산에서 보자꾸나....
민순이가 잔금정리 한줄도 몰랐네?늦게나마 고맙다는 인사전한다.글솜씨 또한 일품이구나,앞으로 암벽반에도 함 오기를 기대하며.....
선배님들의 과분한 격려와 성원에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열심히 산에 다니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