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人間革命 29卷 第3章 淸新(47~52)
<청신 47>
야마모토 신이치는 윌슨 교수와 나눈 회담이 매우 유익하다고 느꼈다. 많은 의견에 찬동했다.
특히 종교가 원리주의와 교조주의에 빠지는 것을 우려해 경종을 울린 교수의 의견에 크게 공감했다.
인간도 종교도 사회, 시대와 함께 살아간다. 그리고 종교의 창시자도 그 사회와 시대 속에서 가르침을 설한다.
따라서 가르침에는 불변의 법리와 함께 각 나라나 지역의 문화와 습관 등의 차이, 또 시대의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해야 하는 가변적인 부분이 있다.
불법(佛法)은 ‘수방비니(隨方毘尼)’라는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불법에 본의(本義)에 어긋나지 않는 한 각 지역의 문화를 비롯해 풍속, 습관, 시대의 풍습에 따라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이것은 사회, 시대의 차이, 변화에 대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나타낼 뿐 아니라 문화 등의 차이를 오히려 적극적으로 존중하도록 가르친다.
이 ‘수방비니’라는 시각의 결핍이 원리주의, 교조주의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이 믿는 종교의 가르침을 비롯해 문화와 풍속 그리고 습관 등을 ‘절대 선(善)’이라고 확정 짓고 다양성과 변화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 자세다.
그것은 결국 자신들과 다른 것을 일방적으로 ‘악’이라 단정 짓고 차별하고 배척하게 된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 물리학자인 파스칼은 “사람은 종교적 신념을 가졌을 때 가장 철저하고 자발적으로 악행을 저지른다”고 날카롭게 통찰했다. 즉 종교는 양날의 검이 된다는 인식을 잊으면 안 된다.
본디 종교는 인간이 행복과 사회 번영 그리고 세계평화를 위해 존재한다. 종교의 복권은 종교 본연의 사명을 완수하는 일이며 그러려면 종교의 올바른 모습을 되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종교가 스스로 끊임없이 개혁하고 향상해야 사회를 개혁하는 위대한 힘이 되기 때문이다.
<청신 48>
종교가가 자신이 신봉하는 가르침을 강하게 확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확신이 없으면 포교도 할 수 없고 그 가르침을 흔들리지 않는 정신적 지주로 삼을 수도 없다.
다만 그 주장에 확실한 근거가 있고 검증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뚜렷한 근거가 없는 확신은 맹신이고 독선에 지나지 않는다.
니치렌(日蓮) 대성인은 ‘법화경최제일(法華經最第一)’이라 하시고 법화경의 간요(肝要)가 남묘호렌게쿄(南無妙法蓮華經)라고 선언하셨다. 그리고 분명한 근거도 들지 않고 법화경을 부정하는 제종(諸宗)의 잘못을 날카롭게 지적하셨다.
그런 대성인을 제종은 독선적이니 비관용적이니 배타적이니 하고 비판했다.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비난이라 할 수 있다.
히에이산 등지에서 제종, 제경(諸經)을 수학한 대성인은 문증, 이증, 현증을 바탕으로 각 가르침을 객관적으로 비교 연구하시고 자세히 조사해 결론지은 말씀이었다.
다시 말해 치밀하게 검토하고 얻은 확신이었다.
또 불교의 진실한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폭넓게 논의하고 대화하자고 제종의 승려들에게 거듭 제안하셨다.
그러자 “지자에게 아의(我義)가 타파되지 않는 한 채용하지 않으리라”(어서 232쪽) 하고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지자가 더 올바르고 깊은 가르침을 제시한다면 그것을 따르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종교가 삶의 자세와 행불행을 결정짓는 근본의 가르침이기에 독선을 철저히 배제하고 진실을 규명해 공개해야 한다는 진지한 탐구와 구도하는 자세가 있다.
더불어 절대로 법론에서 지지 않는다는 확신에 찬 말씀이라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견고한 종교적 신념을 갖고 열린 논의를 하는 것은 배타성, 비관용과는 전혀 다르다. 이상적인 종교 비판은 종교의 가르침을 검증하고 또 향상시키는 데 오히려 없으면 안 되는 요건이라 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공적인 자리에서 법론을 하자고 주장하는 대성인과는 반대로 제종의 승려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막부의 권력자와 한통속이 되어 박해와 탄압을 일삼았다.
<청신 49>
니치렌 대성인은 1253년 4월 28일 세이초사에서 입종(立宗)선언하시고 첫 설법에서 염불은 잘못된 가르침이라고 지적하셨다.
당시 염불신앙은 민중의 이행(易行)으로서 제종이 인정한데다 전수염불(專修念佛)을 설하는 호넨의 문하들이 널리 유포해 크게 유행했다.
이행은 난행(難行)의 반대말로 행하기 쉬운 수행을 뜻한다. 또 전수염불은 오로지 염불만은 부르면 죽은 뒤에 서방정토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다.
세상은 기근이 들고 역병이 돌아 말법사상을 근간으로 하는 염세주의가 만연했다.
이 세상을 ‘예토’라고 하고 서방십만억토라는 타토(他土)에 왕생하는 길만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이라는 염불신앙에 사람들의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사람들을 현실에서 도피하게 만들고 타력에만 의지하는 무기력한 사람으로 만들었다.
말하자면 스스로 행복해지려는 노력을 포기하게 만들어 사회를 향상시키고 발전시키려는 의욕을 빼앗아버렸다. 그야말로 인간을 약하게 만드는 작용이었다.
더구나 호넨은 법화경을 포함해 염불 이외의 가르침을 ‘사폐각포(捨閉閣抛)’라서 해서 ‘버려라, 닫아라, 젖혀놓아라, 내던져라’ 하고 말했다.
호넨의 제자들은 문증, 이증, 현증을 모두 무시한 독선적이고 배타적인 이러한 주장을 활발하게 펼쳤다.
법화경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부처의 생명이 있다고 설하는 만인성불의 가르침이다. 법화경 이외의 가르침은 생명의 부분관에 지나지 않지만, 법화경은 생명을 빠짐없이 설명한 원교(圓敎)의 가르침이다.
이 무렵 호넨의 제자인 염불승들이 막부의 권력자에게 아첨하여 염불은 더욱더 번성했다. 그것을 방치하면 정법(正法)은 짓밟히고 민중은 더욱 고뇌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성인은 막부의 실권을 쥔 호조 도키요리에게 <입정안국론>을 제출해 세상을 혼란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원흉은 염불이라고 설한 뒤 간언했다.
<청신 50>
니치렌 대성인이 <입정안국론>을 쓰실 무렵 가마쿠라는 대규모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기근이 이어지고 역병이 만연했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은 최악의 사태가 이어지면 자신이 놓인 환경과 사회에 절망을 느끼고 ‘더 이상 뭘 해도 소용없다’는 마음에 ‘이러한 괴로운 현실에서 어떻게든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이것은 가마쿠라시대에 ‘서방정토’를 꿈꾸는 현실도피와 ‘타력본원(他力本願)’에 빠져 노력을 포기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염불사상은 인간이 궁지에 몰려 고뇌에 빠졌을 때 빠지기 쉬운 생명경향의 상징적인 유형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사람은 염불 지향적인 생명의 작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염불에 동조한다.
대성인은 염불을 파절하여 포기, 현실도피, 무기력이라는 인간의 생명에 내제하면서 결과적으로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약한 마음’을 뿌리째 뽑으려고 하셨다.
대성인은 이렇게 외치셨다.
“법화경을 봉지(奉持)하는 곳을 당예도량(當詣道場)이라고 하며, 이 곳을 떠나서 저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니라.”(어서 781쪽)
남묘호렌게쿄를 부르고 신심에 힘쓰는 곳이 성불에 이르는 불도수행의 장소다. 지금 있는 곳을 떠나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니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미처 날뛰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 생명력을 끌어내어 행복을 구축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런데 대성인은 염불을 비롯해 선, 율, 진언의 가르침을 엄격히 검증하고 비판하셨는데, 법화경 이외의 다른 모든 경전의 의미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것은 어서에서 여러 경전을 인용해 신심의 올바른 자세 등을 설하신 것을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청신 51>
제2대 회장 도다 조세이(戶田城聖)는 청년들에게 “우리는 종교의 천심(淺深), 선악(善惡), 정사(正邪)를 철저히 연구한다. 문헌이나 혹은 실태조사를 통한 연구를 하루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중략) 그 실태를 과학적으로 조사한다”는 지침을 주었다.
이 글에서도 분명하듯 창가학회는 니치렌 대성인의 정신을 이어받아 종교에 검증작업을 늘 해왔다.
그리고 조사와 연구를 거듭하고 검증을 거쳐 니치렌불법이 인류를 구제하고 세계평화를 실현하는 최고의 종교라는 확신을 얻었다.
흔들리지 않는 행복으로 나아가는 길을 알았다면 사람들에게도 알려 공유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회는 포교에 힘쓰며 좌담회라는 대화의 장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종파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 대화로 의견을 교환하려고 노력했다. 왜냐하면 이해와 공감으로 사람들에게 진실한 최고의 가르침을 전하려 했기 때문이다.
종교가 대화의 창을 닫는다면 독선주의, 교조주의, 권위주위의 미궁에 삐지고 만다.
종교는 대화가 있어야 인간 소생의 빛을 내뿜으며 민중 속에서 영원히 살아서 숨 쉴 수 있다.
좌담회를 비롯한 모임에서 불법대화를 통해 신심을 해보고 싶다며 입회를 희망하는 사람이 많다. 또 신심은 하지 않아도 대화하면서 학회에 대한 오해가 풀려 니치렌불법을 좋게 인식하고 이해하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상대방의 행복을 바라며 진지하게 대화할수록 우리의 진심이 전해져 신뢰와 우정이 자라난다.
니치렌 대성인의 불법은 고뇌를 이겨내고 행복을 구축하기 위한 종교이다.
대성인이 “일체중생이 이(異)의 고(苦)를 받음은 모두가 이는 니치렌 일인(一人)의 고가 되느니라”(어서 758쪽) 하고 말씀하셨듯이 불법의 목적은 인간을 고뇌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종교가 인간의 구제를 내건다면 절대 인간을 수단으로 여기면 안 된다.
<청신 52>
1979년 당시 동서냉전의 먹구름이 세계를 뒤덮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름 아래에는 대국의 압력이 봉쇄하고 있었지만 민족이나 종교 대립이라는 불씨가 존재했다.
동서대립은 반드시 끝내야 한다. 그러나 그 뒤에는 민족, 종교 간 대립이 한꺼번에 불을 내뿜고 인류의 앞길을 가로막아 서서 평화를 위협하는 새로운 난제가 될 것이라고 신이치는 우려했다.
그것을 해결하려면 민족, 종교, 문명 간에 국가와 정치 차원만 아니라 대화의 다리를 겹겹이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도다가 제2대 회장이던 1956년 소련의 군사 개입으로 헝가리에 친소 정권이 들어서는 헝가리사건이 일어났다. 동서 양 진영의 긴장을 배경으로 한 사건이다.
이때 도다는 이러한 비참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세계를 하루 속히 만들고 싶다고 염원하며 펜을 들었다.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서로 싸우려고 만든 제도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두 사상이 지구에서 정치적으로 분쟁을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슬픈 일이다.”
인간의 행복을 위한 사상들이 어째서 분쟁을 낳는지. 도다는 그 모순에 정면으로 파고들었다.
“여기서 석가의 존재와 예수의 존재 그리고 마호메트의 존재를 생각해 볼 때 서로 다툴 리가 없다.
만일 이들 성인이 한자리에 모인다면 또 그 회견에 마르크스와 리카도✲도 참석한다면 아니 칸트도 천태대사✲도 포함해 큰 회의를 연다면 절대 이러한 잘못된 협의를 하지 않을 것이다.”
도다는 분쟁을 낳은 원인을 사상과 종교의 창시자라는 “대선배의 의견을 올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했기에 이기심과 질투 그리고 분노에 사로잡혀 대중을 그르치게 만든 것이 아니냐” 하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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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카도(1772~1823): 영국의 경제학자. 노동가치설 등을 전개한 고전학파의 대표자.
천태대사(538~597): 중국 천태종의 실질적인 개조(開祖). 법화경의 ‘이(理)의 일념삼천’을 밝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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