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20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
고려 후기, 227.9cm×125.8cm, 비단에 채색, 일본 대덕사 소장의 〈수월관음도〉, 1323년, 고려불화.
백의 수월관음도
백의 수월관음도
수월관음도는 여러 모습으로 중생 앞에 나타나 고난에서 안락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자비를 상징하는 관음보살이 사는 정토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물 제1286호로 지정되었다. 수월관음도는 서울시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우학문화재단에 소장되어 있다.
이 그림은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가로 52cm, 세로 1m 크기이며 보수작업으로 원래의 모습을 상당 부분 되찾아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관음 보살은 화불이 있는 보관을 썼으며 치마를 입고 있다. 보관에서부터 전신을 감싸는 베일을 걸치고 오른발을 왼 무릎 위에 올려놓은 반가좌 자세이며 몸을 약간 틀어 오른쪽을 향한 채 바위 위에 앉아 있다. 관음보살의 등 뒤로는 한 쌍의 대나무가 표현되어 있고, 앞쪽으로는 버들가지가 꽂힌 꽃병이 있으며 주위에 금가루로 원형을 그려 놓았다. 왼쪽 아래 구석에는 허리를 굽혀 합장한 자세의 선재동자가 배치되어 있다. 윤곽선과 세부 묘사는 붉은색을 주로 사용했는데, 베일의 바탕과 주름선은 백색으로 그린 다음 금가루에 아교를 섞은 금니로 겹쳐 그렸고 안쪽에는 고려불화의 특징인 연화당초원문을 금니로 그려 넣었다. 치마는 붉은색을 칠하고 백색으로 거북등껍질 문양을 그린 다음 그 위에 먹선으로 덧그려 문양이 뚜렷하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안정된 모습이며 고려 불화의 전통적인 기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어 수월관음도의 시대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섬세하고 절제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水月觀音圖〉, 1323년, 고려불화. 보물 926호
오늘날 고려불화로 알려진 그림은 일본에 105점, 한국에 12점, 그리고 미국.유럽에 16점이 전해지고 있다. 주로 13세기 말에서 14세기 중엽에 이르는 고려 후반의 것들이 대부분인데, 아마도 거란의 침입, 몽고의 대란 등으로 그 이전의 그림들이 거의 다 없어졌기 때문인 것 같다. 종류별로 보면 탱화가 대부분이고, 그 외에 부석사 벽화 1점,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小屛 하나, 사경변상으로 되어있는 것 등이 있다.
1286년 제작된「아미타여래입상」, 동경 천초사 소장의 「양류관음도」, 서구방이 1323년에 그린 「수월관음도」등은 고려시대 불교회화의 높은 수준과 독특한 성격을 특히 잘 보여준다. 고려시대 불화사들이 지향한 조형의지가 잘 표현된 이러한 불화들은 유연하고 곡선적인 자태와 금색, 청록 등 화려한 채색을 가지며 색을 뒷면에서 칠하여 앞으로 배어나오게 한 복채법을 사용하여 한결같이 유려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의습과 문양이 정교하며 자태가 단아하여 고려적인 특색을 짙게 풍긴다. 적색과 청색, 녹색의 극채색이 주조를 이루며, 밝은 빛을 주면서 동시에 장중한 느낌을 주는 금니를 베풀어서 금채의 반사에 의해 무한한 빛의 공간을 펼쳐주고, 이러한 빛의 반사효과로 해서 회화의 한계인 평면성을 극복해 낸다.
서구방의 「수월관음도」는 왼편을 향해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유연한 자세, 가늘고 긴 부드러운 팔과 손가볍게 걸쳐진 투명하고 아름다운 사라, 화려한 군의, 보석 같은 바위와 그 틈새를 흐르는 옥류, 근경의 바닥에서 여기저기 솟아오른 산호초, 이 모든 것들이 함께 어울려 아름다움을 자아내고 있다. 가늘고 긴 눈, 작은 입, 배경의 긴 대나무, 투명한 유리사발 안에 안치된 쟁반과 그것에 꽂혀있는 대나무 가지, 얼굴과 가슴 그리고 팔과 발에 그려진 황금빛 등도 이 시대의 불교회화에서 자주 발견되는 특징이며, 화려하면서도 가라앉은 품위 있는 색채, 섬세하고 정교한 의복, 균형잡힌 구성 등도 간과할 수 없는 특징이다.
「水月觀音圖」- 물가의 기이한 바위와 아름다운 풀, 커다란 둥근 두광(頭光)을 배경으로, 머리 위에서 발끝까지 속이 훤이 비치는 얇은 비단으로 몸을 감싼 모습으로 한 보살이 앉아 있다. 보살의 뒤로 가녀리게 뻗어 있는 두 그루의 대나무, 바위의 한쪽 끝에 놓인 정병(淨甁)과 버들가지는 이이가 자비의 상징인 관음보살임을 말해주고 있다. 보살의 시선이 머무는 물 건너의 언덕 위에는 한 어린 동자가 두 손을 공손히 합장한 채 서 있으니, 이는 관음보살로부터 한 마디 진리의 감로수(甘露水)를 얻기 위해 멀고 먼 길을 달려 온 선재동자(善財童子)라는 구도자이다. 동자와 보살의 정감어린 시선이 맞부딪치고 이를 상징하듯 커다란 둥근 광배가 이들을 포근하게 감싸안았다. 다음 순간 진리의 말씀을 가슴에 품고서, 동자는 또 다른 선지식(善知識)을 찾아 길을 떠날 것이다
백의수월관음도(白衣水月觀音圖)
사람 키의 몇 배가 되는 거대한 크기. 그러면서도 그 지극한 화려 섬세함이란. 최근 일본에서 엄청난 재력과 공력을 들여 이를 재현했는데, 도저히 그 맛을 따라갈 수 없었다. 현존하는 고려 불화가 100여 개. 그 중 80점 정도가 두루마리로 남은 탱화로, 대체로 14세기 것인데, 그 대부분이 일본에 있다. 이 불화는 왜 고려 불화가 일본인 수중에 남게 되었는지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1310년에 제작되었고, 1359년 왜구에 의해 약탈되었다
수월관음도는 관음 신앙의 유행에 따라 사찰의 원통전의 후불화 또는 극락전에 모시는 불화로 많이 제작되었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의 준말. 대승 불교의 위로는 진리를 찾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한다는 이상 가운데 중생 제도를 몸소 실천하는 자비의 화신. 즉, 중생의 갖은 고난에 적절히 대처함으로써 모두를 구제, 안락한 세계로 인도하는 구제자이니, 관음보살만큼 진심에서 우러난 친근감과 열렬한 환영을 받은 보살도 다시 없을 것이다. 수월관음도는 우리나라 에서 아미타도와 함께 가장 많이 그려진 도상인데, 선재 동자, 암굴, 염주, 공양자, 보주를 든 용, 한 쌍의 청죽 등의 표현은 다른 나라의 수월관음화에서는 잘 볼 수 없는 특징이다. 보타락가산에 살고 있는 관음보살을 선재 동자가 방문하여 청문하는 장면을 소재로 한 도상이 널리 유행하였다. 아마도 의상이 친견했다는 낙산의 수월관음을 도상화한 것이 계속 유행하였던 것 같다.
일본 소장. 혜허의 〈양류관음도〉
고려시대 양류관음도 가운데 구도와 형태에서 특이한 그림이다. 화면의 중심에 관음보살이 서 있는데, 이 보살을 버들잎 모양의 광배가 둘러싸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평평한 암반과 여기에 연이어 연못이 길게 놓여 있고, 반대쪽 왼편 모서리에는 보살을 우러러 보는 선재동자가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대각선 구도는 다른 양류관음과 비슷하지만 버들잎 속에 서 있는 입상이나 화면 오른쪽의 절벽과 쌍죽(雙竹)이 없어지고 버들잎 광배가 화면의 중심을 압도하는 구도는 이 상의 독특한 특징인 것이다. 오른쪽으로 몸을 비틀면서 왼쪽 모서리의 선재동자를 내려다보면서 서 있는 입상형태는 일본 백학미술관(白鶴美術館)이나 동경국립박물관 소장 아미타삼존도 같은 불화들의 관음보살입상을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동경국립박물관이나 구세열해미술관(救世熱海美術館) 소장 아미타삼존도의 관음보살입상과는 자세나 형태, 천의와 장신구, 그리고 버들가지와 정병을 든 인상(印相)까지 비슷한 것이 주목된다.
이 보살의 풍만한 얼굴은 1323년 서구방필(徐九方筆) 양류관음도 얼굴보다는 좀더 온화한 표정이며, 오히려 1310년 김우문(金祐文) 등의 양류관음도와 유사한 편이다. 부드러우면서도 세련된 어깨의 곡선이나 완만한 굴곡을 이루는 신체의 흐름 등과 함께 오른쪽으로 휘어진 날씬한 자태는 당시 왕공귀족의 기품있는 모습을 연상하리만큼 뛰어난 것이다.
여기에 투명한 흰 사라의 기품이나 꽃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엷고 은은한 천의의 금선과 흰선의 강렬한 대비 등은 어두운 갈색 바탕색에 훨씬 돋보이고 있다. '해동치납혜허필(海東癡衲慧虛筆)'이라는 화기가 있어 혜허가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는데, 불화양식으로 보아 1320년년보다는 앞서는 1310년 또는 1300년을 전후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서구방의 수월관음도
양류수월관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