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아버지, 아버지, 아버지.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리니 모든 것은 그대로 있었다. 그늘이 있는 가로수와 싱그러운 햇살 그리고 간간이 보이는 사람의 집들은 늘 그곳에 있었다. 나는 그가 말하는, 생전에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한 사람은 바로, 돌아가신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벌이가 시원찮았지만, 늘 대문을 박차고 들어와 당당하게 술을 더 받아오라며 어머니를 비롯한 나와 형제들을 몰아세웠다. 그 와중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가정폭력도 있었다. 살림살이가 창밖으로 날아가고 집기가 부서질 때쯤, 당신은 술에 취해 잠을 잤다. 그 사이, 어린 나와 형, 누나는 옆집으로 때론, 집 뒤편 산으로 도망 다녔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다음 날, 우리를 붙잡고 아버지는 술 때문에 그리 행동하는 것이지, 결코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다독였다.
아버지는 오십을 갓 넘겼을 때 술병에 걸려,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었다. 나를 비롯한 삼 형제의 교육과 집안의 생계는 훨씬 이전부터 어머니의 몫이었지만, 그때부터 어머니는 버스로 몇 정거장이나 되는 당신의 생활 터전에 걸어가고 걸어오면서 허리띠를 더 졸랐다. 어머니는 내가 네 살 때부터 시장에서 빨래집게 등 잡화를 팔고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돌아오는 어머니의 손에는 아버지를 위해 늘 소주 2병과 우유 한 개 그리고 간단한 안줏거리가 있었다.
“행님! 면사무소에 도착하면 이장할 일꾼들이 나와 있을 겁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선친의 산소에 안내부터 하고, 그담에 면사무소에서 서류를 뗄 겁니다. 신분증 가져왔지요?”
목적지 중간쯤 왔을 때 그가 큰 소리로 말했다. 내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회상에 젖은 모양이었다.
“물론이죠.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그 사람들이 산소 파헤치는 건 유족이 보는 게 아닙니다. 그들이 알아서 유골을 수습하여 화장터에 보낸 다음, 화장 증명서를 가져오니까 그 시간은 빼고, 우리가 서류 떼고 그들에게 주는 것부터 돌아오는 시간까지 대략 서너 시간이면 충분해요.”
삼십 년 전에 돌아가신 아버지 묘의 유골을 수습해 화장한 후, 어제 유명을 달리한 어머니와 합장하고자 한 건 형의 생각이었다. 사흘 전 중환자실로 옮겨진 어머니 머리맡에서 형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마침 내가 사는 시골 마을에 군에서 운영하는 봉안당(납골당)이 있었고, 비록 막내아들이지만 내 곁에 함께 모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아 나는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무턱대고 가족을 괴롭히고 못살게 굴지는 않았다. 아버지는 술만 마시지 않으면 동네 사람들 말로 ‘알 양반’이었고 괜찮은 사람이었다. 특히 당신은 막내아들인 나를 귀여워하여 일이 없을 때면 해수욕장이나 인근 공원에 자주 데려가 주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형과 누나와는 달리 중국집에서 자장면 곱빼기를 먹기도 하고 멍게나 해삼 같은 해산물을 배불리 먹기도 했다. 중학교 2학년 때 시험을 잘 봤다는 이유로 그 당시 귀했던 자전거를 선물 받기도 했다. 젊은 시절의 아버지는 백구두에 중절모 그리고 하얀 양복을 즐겨 입는 멋쟁이였다. 단지 술을 마시면 아버지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고, 주사로 인해 우리 집은 동네 여느 술꾼들의 집처럼 난장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