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7시 23분.
형사 강민준은 식어빠진 커피를 손에 든 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 마포구의 낡은 빌라 3층, 그의 사무실은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장 지저분한 공간이었다. 책상 위엔 미결 파일들이 탑을 이루었고, 재떨이엔 어젯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담장 위에 까치 한 마리가 앉았다.
검고 흰 깃털. 또렷한 눈동자. 녀석은 민준을 똑바로 바라보며 한 번 울었다.
*짹짹.*
민준은 무심코 손을 들어 흔들었다. 까치는 잠시 고개를 갸웃하더니 날아올랐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옛말에 까치가 울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미신을 믿을 나이는 지났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강 형사님. 사건입니다."
피해자의 이름은 **오태원(52세)**.
직업은 국제 원자재 브로커. 쉽게 말하면 원유 거래 중개인이었다. 중동과 아시아를 오가며 수십억 단위의 계약을 성사시키는 인물이었고, 업계에선 '검은 물의 귀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가 죽었다.
발견 장소는 여의도의 고급 오피스텔 22층. 아침 6시, 청소부가 반쯤 열린 문 사이로 그를 발견했다. 책상 앞 의자에 앉은 채였다. 눈을 뜬 채로. 손엔 여전히 마우스가 쥐어져 있었다.
모니터 화면엔 국제유가 실시간 차트가 떠 있었다.
배럴당 **101.3달러**.
민준은 현장을 천천히 훑었다. 외상은 없었다.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창문도 닫혀 있었다. 독극물 여부는 부검 결과를 기다려야 했지만, 국과수 반장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심장마비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런데?"
"너무 깔끔해요."
민준은 오태원의 최근 통화 기록과 거래 내역을 추렸다. 그의 마지막 72시간 안에 세 사람이 있었다.
**첫 번째 인물 — 이수현(38세), 헤지펀드 매니저**
이수현은 오태원과 함께 유가 선물 거래를 진행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최근 두 사람 사이에 균열이 생겼다. 이수현이 설계한 포지션에서 오태원이 독단적으로 이탈했고, 그 탓에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민준이 찾아갔을 때, 이수현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오 선생님이 돌아가셨다고요."
그는 놀라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언제 마지막으로 만나셨습니까?"
"어제 저녁 8시. 여의도 식당에서 식사를 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네요."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유가가 100달러를 넘으면 그 사람은 무조건 움직입니다. 아니, 움직였었죠. 누군가를 만나러."
"누구를요?"
이수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형사님, 원유 시장엔 보이지 않는 손이 있습니다. 그 손이 방아쇠를 당기기도 하고, 멈추기도 하죠."
**두 번째 인물 — 카림 알-파르시(47세), 이란계 무역상**
테헤란 출신. 현재 서울 이태원에서 무역 법인을 운영 중. 오태원과는 십오 년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민준이 사무실을 찾았을 때, 카림은 통화 중이었다. 아랍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빠른 대화. 민준이 들어서자 그는 통화를 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사님, 저는 오 선생을 형제처럼 생각했습니다."
"그분과 마지막으로 연락한 게 언제입니까?"
"어젯밤 11시. 문자를 받았습니다."
카림은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오태원 → 카림] 오후 11:07 / "다 끝났어. 내일 아침 연락해."**
민준은 그 문자를 오래 바라보았다. *다 끝났어.* 무엇이 끝났다는 뜻인가.
"요즘 본국 상황이 심각하죠?" 민준이 물었다.
카림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었다.
"우리나라는 항상 심각합니다, 형사님. 새로운 지도자도 생겼고, 전쟁도 계속되고 있으니까요." 그는 잠시 멈추었다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검은 물은 더 중요해지죠."
**세 번째 인물 — 박지은(34세), 오태원의 비서**
오태원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 7년째 그의 스케줄과 거래 장부를 관리했다.
그녀는 현장 인근 카페에서 발견되었다. 민준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두 손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 눈은 빨개져 있었다. 그러나 울고 있지는 않았다.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그녀는 즉각 대답했다. 너무 빨랐다.
"선생님께서 오늘 새벽 일찍 모니터 앞에서 발견되셨습니다. 유가 차트를 보면서."
박지은은 고개를 들었다.
"그분은 유가가 세 자리를 넘으면 잠을 못 주무셨어요. 꼭 차트를 보면서 밤을 새웠죠."
"왜요?"
그녀는 잠시 망설였다.
"유가가 오를 때마다 누군가는 돈을 버니까요. 그리고 누군가는... 위험해지니까요."
민준은 사무실로 돌아와 화이트보드 앞에 섰다.
세 명의 용의자. 하나의 현장. 그리고 배럴당 101달러라는 숫자.
그는 담배 한 개비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창밖엔 어느새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까마득하게 멀리, 여의도의 불빛들이 하나씩 켜졌다.
*무엇이 다 끝났다는 걸까.*
오태원이 카림에게 남긴 마지막 문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다 끝났어.* 체념인가. 결론인가. 아니면 고백인가.
민준은 오태원의 거래 내역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한 줄에서 손이 멈췄다.
이틀 전. 오태원은 자신의 명의로 된 원유 선물 포지션 전량을 청산했다. 수백억 규모였다. 그리고 그 돈은 이름 모를 해외 계좌로 이체되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넘겼다.*
그는 전화기를 들었다.
"국과수요? 부검 결과 나왔습니까?"
잠시 침묵.
"네. 독극물 반응 나왔습니다. 극소량입니다만—"
민준은 담배를 재떨이에 눌러 껐다.
다음 날 아침.
민준은 다시 창가에 앉아 있었다. 담장 위엔 어김없이 까치가 와 있었다. 녀석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꼬리를 살랑거리며 주변을 살폈다.
*짹짹.*
민준은 그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까치는 알고 있다. 아니, 정확히는—까치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알고 있다. 편견이 없다. 이해관계가 없다. 그저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그것이 진실에 가장 가까운 시선이다.
민준은 파일을 다시 폈다.
세 명의 용의자 중 한 명은 거짓말을 했다. 오태원이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를 숨겼다. 독극물은 식사 자리에서 전달되었을 것이다. 어젯밤 8시, 여의도 식당.
*이수현.*
그는 전화를 걸었다.
"이수현 씨. 어제 식사 자리에 몇 명이었습니까?"
수화기 너머로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이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천천히, 조용하게.
"...형사님은 유가가 왜 100달러를 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민준은 대답하지 않았다.
"전쟁 때문이라고들 하죠. 공습, 반격, 불안한 정세." 이수현의 목소리는 흔들림이 없었다. "하지만 형사님, 시장은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움직입니다. 누군가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 아주 미리."
민준의 손이 천천히 파일 위를 움직였다.
"오태원 선생이 그걸 알았던 겁니까?"
또 침묵.
"알았던 게 아니라..." 이수현이 낮게 말했다. "팔아버렸죠."
열흘 후, 이수현은 구속되었다.
오태원은 중동의 내부 정보, 즉 공습 계획의 사전 정보를 특정 세력에게 넘기고 그 대가로 선물 포지션 수익을 챙겼다. 이수현은 그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가 다음 거래에서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을 배제하려 한다는 사실도 알았다.
독극물은 와인 잔에 들어 있었다. 극소량. 심장이 약한 사람에겐 충분한 양.
오태원은 자신이 팔아넘긴 정보가 결국 자신의 심장에 꽂혀 돌아오리라는 것을 알았을까. 아마 몰랐을 것이다. 세상의 거미줄은 항상 예상치 못한 방향에서 진동을 전달했다.
민준은 사건 종결 보고서를 제출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창밖엔 까치가 와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짹짹.*
민준은 의자에 등을 기댔다. 국제유가는 오늘 아침 97달러로 내려앉았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중동 협상이 재개되었다고 했다. 시장은 안도했다. 사람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민준은 알았다.
거미줄은 끊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번 진동이 잦아들었을 뿐이다. 어딘가에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가 검은 물의 가격을 계산하고 있었다. 전쟁을 숫자로 환산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을 배럴 단위로 거래하고 있었다.
그런 세상에서 까치는 오늘도 울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채.
*짹짹.*
민준은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밀려 들어왔다. 까치는 그를 한 번 바라보다가 날아올랐다. 높이, 더 높이, 도시의 스카이라인 위로.
그는 오래도록 그 자리에 서서 까치가 사라진 하늘을 바라보았다.
세상이 아무리 복잡해도, 아침은 오고, 새는 날고, 누군가는 진실을 찾는다.
그것으로 충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