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깬다는 것'은 참 힘든 일. 이미 완강하게 자리를 잡고 있는 기득권을 넘어서는 행위는 아무래도 어려운 작업일 수밖에 없다. 그 장벽이 세계에서 한국과 동의어로 여겨지는 태권도라면 더더욱 그렇다.
여기 한 무도인이 있다. 평생을 태권도인으로 살아온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태권도의 새로운 이론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태권도계의 주류로 자리잡고 있는 국기원은 그의 이론을 쉬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수차례 탄원을 하고 우여곡절끝에 공청회까지 열었지만 변방의 한 무도인이 거대한 단체를 뛰어넘기란 힘에 부쳤다. 아니 애시당초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지도 몰랐다. 국기원의 권위에 대한 도전은 곧 태권도계 전체에 대한 도전인 까닭이었다.
우리 나이로 올해 일흔일곱. 태권도 공인 9단인 창무관 부산본관 및 지헌류 태권도 세계총본부도장 조증덕 관장. 아직도 도복을 고집하는 조 관장은 부산뿐 아니라 우리나라를 통틀어 가장 나이 많은 태권도 현역 지도자다. 이런 경우는 전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빛바랜 검은 띠
조 관장은 이 나이에도 왜 그렇게 도장을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내가 운영하는 도장이 없으면 몸풀기를 할 수 없잖습니까." 간단명료한 답이 돌아왔다.
그렇긴 해도 나이가 있는데 힘이 들지는 않을까.
이번엔 솔직한 대답. "힘들긴 합니다. 나이가 드니까 한 달 한 달이 다릅니다. 그래도 몸이 무겁든 피곤하든 간에 이게 내가 해야 할 숙명이니까 해야죠. 가르치는 것은 전문성이 있는 것이니 이건 자다가도 할 수 있습니다."
어차피 고수를 찾아온 길. 연세 든 분에 대한 예의는 아니지만 시연을 해 줄 것을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조 관장이 단정한 도복차림으로 도장 한가운데 섰다. 몸풀기 동작에서부터 품새에 이르기까지 조 관장이 동작이 이어졌다. 옆에 있는 젊은 사범처럼 힘이 넘치는 것은 아니었지만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다. 동작 곳곳에서 노련함과 관록이 묻어 나온다. 더 놀라운 건 조 관장의 체력. 10분 이상을 쉬지 않고 움직였는데도 지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20대 중반의 사범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조금 쉬었다 할 것을 부탁한다. 고령의 무도인에게 힘든 동작을 주문한 취재진이 더 미안할 정도다.
조 관장이 내친 김에 격파시범에 들어간다. 수많은 단련의 흔적이 남아 있는 주먹을 이용한 정권지르기와 앞차기로써 차례로 송판을 격파한다. 송판은 한 장에 불과했지만 나이를 감안한다면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일.
"격파의 원리는 짧게 끊어쳐야 합니다. 밀어서는 안 되죠. 젊었을 때는 돌도 깨곤 했는데 이제 나이도 먹고 했으니 몸을 아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전설이 된 무도인
조 관장이 무술을 체계적으로 접하게 된 것은 한국전쟁 때인 1952년. 대구에 피란을 와 있던 이동주 관장을 만난 것이 계기가 됐다.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 교사로 부터 가라테의 기본 동작을 조금씩 배웠다.
"모두가 어려웠던 시절을 살다 보니 운동 하나쯤은 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지요. 그래서 처음에는 돌멩이를 주워 들다가 다음에는 산에서 벤 나무에 돌을 끼워 역기 흉내를 내기도 했습니다."
1950년대 중반 군 제대후 부산에서 도장을 운영하던 조 관장은 1961년 경남경찰국 무술경관으로 임용되면서 새로운 길을 걷는다. 경찰이 된 계기는 소박했다. 그 시대에는 운동을 하던 사람은 대부분 깡패라는 사회의 인식이 강할 때. 조 관장은 그런 오해에서 벗어날 겸 무도 차원에서 사회에 공헌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경찰시험에 응시했다. 곧바로 실력을 인정받아 무술사범이 됐다. 1963년 부산시가 직할시로 승격되자 부산시 경찰국으로 자리를 옮겨 계속 경찰들에게 무술을 지도했다.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 조 관장은 1963년 부산시태권도협회의 발족에도 한몫을 했다.
무술경관 시절에는 상당한 실적도 올렸다. 도심의 불량배 소탕 등이 주요 임무였다. 근데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고 그들과 직접 손을 섞어 본 적은 별로 없었다.
"당시 남포동에는 다방 등을 중심으로 불량배들이 횡포를 많이 부렸습니다. 단속을 나가면 제 소문을 들어서인지 그냥 무릎 꿇고 살려달라고 빌더군요. 그러면 그냥 잡아왔지요."
한평생을 태권도와 함께 한 조 관장이 그의 무도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점은 태권도라는 이름을 정착시킨 것이다. 1965년 대한태수도협회 대의원 총회에서 조 관장은 태수도의 이름을 태권도로 바꾸자고 주장해 승인을 이끌어냈다. 주먹을 쥐면 '권(拳)'이고 펴면 수(手)인데 아무래도 태수도(跆手道)는 상승기운을 가진 태권도와 달리 어감상 기(氣)가 아래로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는 게 조 관장의 회상이다.
어깨에서 힘을 빼라
우리나라 태권도계에서 조 관장을 모르는 이는 드물다. 그건 우선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현역으로 있는 조 관장의 무도정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이보다는 아무래도 그가 만든 '지헌류(知軒流)' 태권도가 불러온 충격을 예로 드는 게 더 적절하다.
지헌류 태권도는 조 관장이 지난 2005년 완성한 태권도 이론. 지헌은 그의 호다. 조 관장은 2001년부터 두문불출하며 새로운 이론 개발에 몰두했다. 수십년간 제자들을 가르치는 동안 기존에 나온 국기원 태권도 교본은 뭔가 딱 부러지는 법칙이 없다는 것을 느낀 까닭이다.
"젊을 때는 일격필살의 정신을 가지고 운동을 했습니다. 일본식으로 말하면 무사도 정신이지요. 그 때 스승이던 이동주 관장이 말했습니다. '조 군, 어깨에 힘을 넣으면 안된다'라구요. 그게 아마 지헌류 태권도를 만들게 된 동기가 된 것 같습니다".
'어깨에서 힘을 빼라'는 격언은 무술뿐 아니라 웬만한 스포츠에도 적용되는 말. 프로야구중계에서조차 타자가 공을 헛치면 '저 선수 어깨에 힘이 너무 들어갔다'는 해설이 나온다. 해서 이 말은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최대의 힘을 모아 부드럽게 가격을 하라는 뜻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하지만 말이 쉽지 어깨에서 힘을 뺀다는 것은 웬만한 노력으로서는 힘든 일. 따라서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원리가 있어야 한다는 게 조 관장의 지론이다.
"지헌류에는 2분의 1의 원리, 음과 양의 원리, 작용과 반작용의 원리 등 모두 172가지의 법칙이 있습니다. 예컨대 태권도에 상단막기라는 것이 있습니다. 근데 왜 그렇게 자세를 취하느냐고 물으면 아무도 답을 못합니다. 그냥 관습적으로, 몸이 편한 대로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인간의 모든 동작에는 과학적인 법칙이 숨어 있습니다. 지헌류는 그것을 발견해낸 것입니다."
문외한들이 보기엔 조 관장의 지헌류와 국기원의 태권도 교본은 큰 차이가 없다. 태극1장에서부터 일여까지 품새의 진행도 똑같다. 반면 주먹을 쥐는 방법이나 공격과 방어시 팔·다리의 각도, 선 자세에서 벌리는 양 다리의 거리 등이 다르다. 즉 지헌류는 국기원의 모순된 동작을 정리한 것이지 기존의 것에서 보태거나 뺀 것은 하나도 없다는 것이 조 관장의 설명이다.
고독한 싸움
조 관장의 지헌류 태권도 교본은 발간과 동시에 우리나라 태권도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거기에는 국기원의 교본이 일본의 가라테를 모방했다는 조 관장의 도발적인 발언도 일조를 했다. 조 관장의 주장을 지지하는 태권도인들이 속속 등장했다. 반면 태권도를 향한 열정은 이해하지만 원로 무도인의 과욕이 아닌가라는 지적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국기원이 지헌류 교본에 대한 공청회를 열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마침내 지난해 3월 공청회가 열렸다. 그러나 결론은 나지 않았다. 국기원은 지헌류 교본에서 필요한 부분은 받아들이겠지만 태권도인으로서 국기원 교본을 무시하지는 말아달라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우리나라 태권도계에서 지헌류는 철저한 소수다. 전국에서 오직 조 관장의 도장에서만 지도를 한다. 태권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대부분 국기원 교본에 따르다보니 지헌류를 배우게 되면 국기원이 주최하는 품새 심사 때 제대로 점수가 나오지 않는 불이익을 받는다는 게 조 관장의 생각이다. 설사 지헌류 교본이 맞다고 여기더라도 일선 지도자들이 채택을 못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한다.
너무 외골수가 아니냐의 주위의 시선에 대해서도 조 관장은 할 말이 많다. 태권도를 하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했는데 왜 그걸 아예 무시하느냐는 항변이다.
"나만이 새로운 태권도 이론을 할 수 있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나이에 이제 얼마나 더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죽기 전에 꼭 지헌류를 전수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지헌류 교본만 봐서는 이해를 하지 못하는 동작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조 관장은 고독감을 느낀다고 털어 놓는다. 국기원과 맞선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요 몇년새 뼈저리게 느낀 까닭이다.
국기원 교본이 맞는지 아니면 지헌류 교본이 맞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정답은 없다. 하지만 누가 이기고를 떠나 태권도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노무도인의 열정만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는게 태권도계의 일반적인 여론이다.
그동안 많은 무도인들을 만났을 텐데 어떤 사람이 고수라고 생각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 고수라고 할 만한 사람이 있는지 의문입니다. 목숨을 걸고 무도를 했던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