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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 팸투어 포스팅(후기) 스크랩 남한강 상류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 모아 놓은 곳, 청풍문화재단지
산수유 추천 0 조회 85 09.11.14 21:59 댓글 1
게시글 본문내용

 청풍문화재단지

제천시 청풍면 물태리 6-5 ☎043-647-7003

문화관광해설예약 ☎043-641-4301

 

 

청풍은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다. 이곳은 선사시대 문화의 중심지로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으며

삼국시대에는 고구려와 신라의 세력쟁탈지로 중원문화를 이루었던곳이다.

고려와 조선시대에도 지방의 중심지로 수운을 이용한 상업과 문물이 발달한 지역이나

 1978년부터 지작된 충주 다목적댐건설로 제천시의 청풍면을 중심으로 한 5개면 61개 마을이 수몰되자

이곳에 있던 각종 문화재들을 한곳에 모아 문화재단지를 조성했다

단지내에는 보물과 지방유형문화재, 비지정문화재등 53점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이곳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 선돌 등의 거석문화재와 민가· 향교· 관아 등을 나누어 복원·배치했으며,

 고가(古家) 내에는 생활유품 1,900여 점을 옛 풍속대로 전시해놓았다. 이곳은 현재 제천시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지로

해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중부내륙답사 일번지가 되었단다.

 

 

팔영루는 지방유형문화재 제35호로서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으로 조선 숙종28년 부사 이기홍이 창건하여,

'남덕문'이라 한것을 고종때 부사 민치상이 청풍명월의 8경을 시제로 한 '팔영시'로부터 '팔영루'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청풍부를 드나들던 관문의 역할을 하듯  주차 후 문화재단지내로 걸어가다보면 가장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물이다.

팔영루를 지나 건물 뒷편으로 산수유나무가 많이 심겨져 있었다. 나무마다 주렁주렁 달린 빨간열매가 햇살에 빛나고 있었다.

 

   

 

 

   

단지내에는 한 마을을 이루듯 고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 고가들은 충주댐건설로 옮겨 복원한 것으로서

각종 생활유물 1,900점이 전시되고 있으며, 작은민속촌 역활을하여 청소년들에게 환경친화적 학습장으로 자리잡고 있단다.

 

멀리 망월 산성과 전망대가 보인다. 일정보다 이른시간에  도착한 우리는 해설사님을 기다리며 전망대 부터 오르기로 했다.

 

 전망대(망월루)로 오르다 뒤돌아 본 문화재 단지

 

전망대 오르는 길목에 연리목과 연리지 나무가 청풍호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연리목

 

 

 

 연리지와 연리목
가까이 자라는 두 나무가 맞닿은 채로 오랜세월이 지나면 서로 합쳐져 한나무가 되는 현상을 연리라고 한다.

두몸이 한몸이 된다하여 남녀간의 애틋한 사랑과 흔히 비유하였다. 알기쉽게 '사랑나무' 라고도 부른다.

나무가지가 서로 이어지면 연리지, 줄기가 이어지면 연리목이다. 연리목은 가끔 볼 수 있으나 가지가 붙은 연리지는 매우 희귀하다.

 

가지는 다른 나무와 맞 닿을기회가 적을 뿐만 아니라 맞닿더라도 바람에 흔들려버려 좀처럼 붙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전설상의 새와 나무인 비익조와 연리목에서 유래된 비익이라는 새는 암수의 눈과 날개가 각각 하나이기 때문에

항상 나란히 한몸이 되어서 난다하며, 연리라는 나무는 두 그루의 나무이지만 가지가 서로연결되어

나무결이 상통한다는데서 남녀간의 깊은 정분을 뜻한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는 당나라 6대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비련을 그린

장한가에서  <하늘에서는 비익조(비익조)가 되고 땅에서는 연리지(연리지)가 되도다>라고  읊었다고...


 

 

 가지가 붙은 연리지

 

 

망월산성은 지방기념물 제93호로 지정되었다.

청풍대교 남쪽 망월산(해발373m)의 정상부와 지맥을 둘러 쌓은 495m의 작은 성으로 삼국사기 기록에는 신라문무왕 13년(673년)에

사열산성을 더 늘려 쌓았다고 적혀있어서 통일신라 이전인 삼국시대에 축성 되었지않았을까 추측하고 있다고 한다.

 

망월루(전망대)에 도착하여 아침햇살에 빛나고 있는 호반을 바라보고 섯는데 해설사님 환한 미소를 머금고 오신다.

시간이 앞당겨져 힘드셨을 텐데  환하게 웃으시며 오시더니 숨도 채  고르지않고 설명을 하신다.

  

 

▼망월 루에서 바라본 청풍호반 풍경들...

 

 망월루에서 바라 본  청풍대교

절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응 본따서 만들었다고 ...

 

수경분수와 수상아트홀 그리고 청풍리조트가 보인다. 그 주변으로는 암벽을 탈 수 있는 시설과 번지점프가 설치되어있다.

  

 

 

 수몰되기전 마을이 있었던 곳이란다. 문화재단지내 생활유물들의 고향이라고나 할까..

이곳에 어릴적 추억이 있으신 일행분의 말씀을 들으니 단지 수몰되었다라고 생각하고 바라보는 느낌과는 사뭇다르다... 

 

  비봉산자락의 청풍호 풍경은 마치 잔잔한 아름다움이 있는 다도해를 보는 듯하다

이 비봉산은 국내 최초로 모노레일 활공장이 있어,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취미를 즐길 수 있다고 한다.

 

그렇게 망월루에서 사방을 둘러보고나니 청풍호반이 한층 더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곳에 추억이 묻힌 일행분의 추억도 함께 기억하며 내려오려는데 해설사님  발걸음을 잡으신다.

꼭 보고가야 하는게 있다시며..., 어느정도 내려와  해설사님은 걸음을 멈추시더니 요상하게 서있는 

소나무를 가르키며  심장을 품은 소나무'라나..., 그러고 보니 소나무에 하트가 달렸다.

조작된게 아니냐는 어느일행분 질문에 해설사님은 소나무를 잘라 붙이긴 했는데 

함께 자라더라는 것이다. 것도 하트모양으로 형태를 잡고..,어찌되었든 함께 자라고  있다는게 신기하다.

 

 

 

  금병헌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34호로 지정된 금병헌은  명월정 또는 청풍관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숙종7년(1681)에 부사 오도일이 처음 지었다. 그후 숙종 31년(1705)에 부사 이희조가 중건하고,

영조2년(1726)에 부사 박필문이 개축하였다. 청풍부의 동헌건물로서 부사의 집무장소 및 집회장소로 쓰였던 곳이며

유일하게 단청을 하지않은 건물로 당시행정관의 검소한 생활의 단면을 보여주고있다.

 

 응청각은  옮겨오기 전부터 한벽루의 좌측에 나란히 세워져 있었으며 처음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9세기 초기의

건물로 추측한단다.  명종 초 이황 (1501~1570)이 단양군수로 있을때 '응청각'이라 이름하였다고 하며 

인조15년(1637)에 충청감사 정세규의 일기에 응청각에서 유숙한 기록이 있단다.  

관아의 부속건물이며  지방에 일이 있어 내려온 중앙관속들의 객사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응청각은  2층 누각으로서 아래층은 토석축의 담으로 벽을 막고,  그 위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다.

건물 좌측에 목조 계단을 만들어 2층으로 오르내리게 하였다. 
 

보물 제 528호인 한벽루 

고려 충숙왕4년 (1317)에 청풍현이군으로 승격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관아의 부속건물이었다.

1972년 대홍수로 무너진 것을 1975년 원래의 양식대로 복원하였으며. 석축토단의 자연석 주초석위에

기둥이 배가 부른 엔타시스 수법을 쓴 후 아래기둥을 세우고 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정면 4칸 측면 3칸으로  팔작지붕에 주심포계 양식으로  누의 우측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계단식 익랑 (대문간에 붙여 지은 방)을 달았다.

이 건물의 목적은 연회장소로 사용 되었고, 계단식 익랑 중 맨 아래칸은 음식을 놓는 공간이라고 한다.

 

현판은 우암'송시열'의 친필이라고...

 

 

 

 석물군은 비 지정 문화재이다. 고대사회의 장례 풍속을 엿볼 수 있는 선사시대 무덤인 고인돌 5점과 문인석6점,

조선시대 군수나 부사의 공덕비, 송덕비, 선정비21점 등 비지정 문화재 31점을 옮겨다 놓았다.

이외에 97년 제천향교에서 지석 10점을 옮겨 배치함으로써 고대에서 근대까지 남한강변의 거석문화를 한눈에 볼 수있다.

 

   나무가 화석이 된 규화목으로 결이 나무 같은 느낌이다.

 

 

문인석은 세우는 문관(文官)의 형상으로 깎아 만든 돌이다.

 도포를 입고 머리에는 복두(?頭)나 금관을 쓰며 손에는 홀(笏)을 든 공복(公服) 차림을 하고 있다.

구부정한 문인석 등뒤에 믈을 부으니 그 의미에 맞는 모양들이 나타나는데  그 조각됨이 섬세하기가 그지없다.

 

  

   

바위에 뚫린 구멍마다 물을 부으니 북두칠성이 선명히 나타난다. 그 당시도 천문학에 관심이 있었다는것을 알 수있다고 ...

 

  

 

 석조여래입상 (보물 546호)
높이가 341cm이고, 전체적인 조각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말기(10세기 경)의 작품으로 보인다.

불상의 얼굴 모양은 풍만하고 자비로운 상으로 두툼한 양볼에 인중(코와 입술 사이의 우묵한 곳)이 뚜렷하고

 두 귀는 양어깨까지 드리워졌다. 목에는 삼도가 새겨져 있으며, 왼손은 땅을 가르키고 있다.

옷은 통견의 (양어깨를 덮은 법의)를 걸치고 안에 속내의를 받쳐입고 있으며, 배에서 매듭을 지어 V자형으로

겹겹이 대좌에까지 내려왔다. 충주댐건설로 수몰지인 청풍면읍리에서 1983년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미소가 살아있는 느낌이 든다.,

표정이 익살스럽기도 하지만 기도하면 뭐든 다 들어 줄 것 같다.

  

 

   

 

제천시와 SBS가 공동으로 청풍문화재단지내에 조성한 촬영단지로 제천 유물 전시관 인근 6㎞ 지점에 위치한다.

이곳에서 SBS대형사극인 대망과 장길산, 일지매등 촬영되었다.

주요 세트시설로는 관청가, 육의전, 기와 및 촉 객주, 제재소, 어시장, 양반가, 기생집등이 있으며

 조선중기의 생활모습을 재현하여 옛 조상의 흔적을 접할 수 있고 조선시대 저잣거리와 민초들의 경제모습을 엿볼 수있다.

 

 

 

찾아 가는 길

*중부내륙고속도로 - 감곡IC - 제천 - 청풍(82번지방도) - 청풍문화재단지
* 영동고속도로 - 중앙고속도로 이용 - 남제천 IC - 청풍
* 제천 - 82번 지방도 - 청풍문화재단지(24km)
* 충주 - 3번국도 타고 살미면 지나 38번국도 - 수산면근처에서 82번 지방도 - 청풍문화재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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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9.11.15 09:40

    첫댓글 산수유가 빨간게 넘 탐스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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