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산성은 사적 제126호로 군내면 용장리에 위치하며, 고려 원조 11년(1270년) 고려정부가 몽고와 굴욕적인 강화를 맺고 개경환도를 강행하자 이에 불복하여 대몽항쟁의 결의를 다짐한 삼별초군이 원종의 6촌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추대하고 강화도에서 남하하여 대몽항쟁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으로, 둘레가 약 13KM에 이르며 산성안에는 석축이 웅장한 계단형상의 행궁터가 남아있다.
진도 안내도
남도석성에서 용장산성으로 가는길에 잠시 정유재란순절묘역을 들렀다. 정유재란순절묘역은 정유재란 때 순절한 진도 군민의 무덤이 모여 있은 곳이다.
정유재란은 1597년 조선 선조30년 진도 울둘목을 중심으로 치루어진 수군전을 말한다.
DSC03330 정유재란순절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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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재란순절묘역은 진도군 고군면 도평리와 오일 시장 사이의 야산으로 정유재란이 끝날 무렵인 1597년 부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묘역의 면적은 50.553제곱미터이며 232기의 무덤이 있다한다. 진도군은 2001년 9월 27일 이묘역을 문화재자료 216호로 지정했다.
용장산성 홍보관
용장산성에서는 홍보관, 용장사, 행궁터를 볼 수 있다. 먼저 홍보관을 소개한다.
용장산성 홍보관은 용장사 아래에 있다. 홍보관에는 영상실이 있어 삼별초 항쟁에 관한 영상 등 용장산성에 관한 역사를 보여준다.
DSC03338 용장산성 홍보관
DSC03341 홍보영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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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348 전시실
전시실은 13세기로의 여행, 삼별초의 탄생, 삼별초의 대몽항쟁, 유적지의 남겨진 흔적들, 삼별초 대몽항쟁의 의의 순으로 전시관이 구성되어 있다.
삼별초는 최우의 집권기에 나라 안에 도둑이 들끓자 용사를 모아 매일 밤에 순찰, 단속하게 하여 그 이름을 야별초라 하였다. 군사의 수가 많아지자 이를 나누어 좌별초와 우별초라 하였고 또 몽고에 포로로 잡혀갔다가 도망온 자들로써 편성된 신의군과 함께 삼별초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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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361 청자류
DSC03363 숫막새
DSC03364 암막새
DSC03368 말굽부분과 머리부분이 일부 결실된 토제마
DSC03369 귀면와
용장사
용장사는 원래 고려 무신정권때의 장수 배중손이 이끌던 삼별초가 몽골의 침량에 대항하여 항쟁을 벌이던 진도 용장산성내에 있는 고려시대 사찰이다. 그러나 현재의 용장사는 과거의 용장사터에 새로지은 절이다.
DSC03401 용장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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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383 범종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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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387 석탑과 범종각
DSC03388 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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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394 약사여래불
약사전에 있는 용장사 석불좌상은 고려시대의 약사불상으로 원형이 많이 훼손되었다. 사각형 대좌 위에 광배를 등에 지고 앉아 있는 모습이다. 대좌에는 단판연꽃무늬가 소박하게 묘사되어 있고, 광배는 의자의 등처럼 보이는데 세련된 무늬가 새겨져 있다.
현재의 모습은 지장보살처럼 민머리를 하고 있다. 얼굴은 둥글고 원만하며 짙은 눈썹, 작은 눈, 긴 코, 알맞은 입 등이 투박하지만 안정된 모습이다. 가슴이 빈양하게 처리된 반면 어깨와 팔이 두드러지게 표현되어 있다.
결과부좌로 앉아 있는 하체는 너무 높고 커서 비례감이 떨어지는 고려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오른 손을 내리고, 무릎위에 올린 왼손에는 약그릇이 들려 있다. 무릎 위에 올려놓은 두 발은 큼직하고 투박한 모양으로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양어깨에 옷을 두른 통견의 법의는 물결모양이 옷 주름이 빈틈없이 촘촘하게 표현되어 고려불상 특유의 형식을 나타내고 있다. 좌우로 서 있는 두 보살상은 본존불과 비슷한 인상인데 상체는 벗고 하체는 군의(긴치마 모양의 옷)을 입은 신라식 보살상을 나타내고 있다. 좌측편의 불상은 높이 1.64m로 얼굴은 시멘트로 보수하여 원형을 알 수 없다. 우측편의 불상은 높이 170cm으로, 역시 얼굴형태를 알 수 없다.
DSC03399 약사전 뒤에 있는 종
용장산성 행궁터
용장산성 행궁터는 주변이 산을 이루어진 산성이었다. 성의 길이는 12.85km이며 제일 높은 곳은 4m 정도이다. 삼별초 대몽항쟁의 대표적인 유적지로 만들어진 연대가 확실하고 고려왕실에 대립되는 궁전이 건립되었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고 한다.
DSC03403 용장산성 행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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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세계 최강의 군대를 맞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하면서도 39년간 끈질긴 전투를 치루어냈다. 비록 내정간섭과 경제적인 수탈은 격심했지만 장기간에 걸친 대몽항쟁은 몽골군을 지치게 만들었다.
삼별초의 대몽항쟁은 13세기 후반 고려의 가장 큰 반외세 독립투쟁으로서 몽골 침략자들과 야합한 통치자와 권력자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으며, 고려의 정복과정을 힘들게 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큰 의의를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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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별초가 중심이 된 대몽항쟁은 몽골에 예속되어 그들의 힘으로 나라를 지배하려는 개경정부의 태도에 대하여 민족적 예속을 반대하고 자주성을 확고히 하려고 했던 것이다. 몽골은 인류역사상 세계 최강의 군사력으로도 고려를 완전하게 정복하지 못하고 6차례나 침입하고서야 강화를 맺게 되지만, 그 이전까지 그 어떤 국가와도 전쟁을 5년이상 끌지 않았다는 점을 미루어 볼때 이는 고려가 막강한 군사력과 정신력을 가진 나라였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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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삼별초가 불굴의 의지로 진도 고려정부를 세우고 대외적으로 정통임을 주장하며 힘차게 대항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결국 진도 고려정부는 몽골의 일본 정벌 실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고, 이는 세계사적으로 볼때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일이다.
DSC03426 우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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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장산성은 나라를 침범하는 외침에 결고 굽히지 않는 우리 민족정신의 본보기가 되며 더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고려인의 자주정신과 꿋꿋한 기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귀감이 되어 주고 있다.
다음은 충무공 벽파진 전첩비로 갑니다.
여행 TIP
용장사 :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 용장리 산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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