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샬롬! 오래전에 쓴 글을 검토하며 다시 뒷 부분을 첨가했습니다. 약 4년전에 쓴 글이라 부족한 곳이 많습니다. 세상은 점점 발전한다고 하나 제가 보기엔 사는 것이 행복하게 진행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공기만 해도 좋은 공기를 마실 수가 없게 되었고 물은 오래 전에 사서 먹고 있습니다. 집도 땅도 없는 우리 이웃이 너무나 많고 빛이 없는 청년이 없는 현실입니다. 천만의 성도가 일어나서 하나님나라의 법을 지키며 한국을 구하지 않으면 이 나라도 소망이 없습니다. 내가 세상을 따라서 살 때 내가 낳은 자녀도 소망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미 돈은 넘치나 정은 찾기 어렵고 법은 있으나 하나님의 법과 다른 법이 한국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믿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법 율법을 지켜야 하나 이에 대해서도 성도가 모르는 경우도 있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으로 모든 신학과 목사나 신학자의 주장을 이기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 이 세상에 사는 누구도 이의를 달 수가 없고 어겨서는 아니 되는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섭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도 율법을 알아야만 내 행위가 그에 비추어 옳은지 그른지 알게 됩니다. 율법을 주장하지 않고 율법을 잘못 가르치는 분은 이 말씀을 보면서 이 말씀이 없이 어찌 하나님의 나라가 질서있게 설 수가 있는지 혹시 아시면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하고 모두가 하나님의 뜻이라 합니다. 지금 한국에서 성령을 받지 않았다고 스스로 시인하고 성령을 받기를 기다리는 분이 혹시 계십니까? 제가 알기론 모두가 받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 모두가 서로 옳다고 하면 과연 누구를 따라서 성도는 가야 합니까? 교회에 가서 봉사도 하고 헌금도 하고 직분도 받고 그리고 우리는 또 세상에서 살아야 합니다. 그냥 세상 사람과 똑같이 직장 다니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집과 땅을 사면 됩니까? 그리고 성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집과 땅에 대해서 말입니다.
사람이 저지르는 악한 일
사 5:8. 가옥에 가옥을 이으며 전토에 전토를 더하여 빈 틈이 없도록 하고 이 땅 가운데에서 홀로 거주하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리니 크고 아름다울지라도 거주할 자가 없을 것이며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가 나겠고 한 호멜의 종자를 뿌려도 간신히 한 에바가 나리라 하시도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1776년)
18세기 유럽은 봉건주의에서 자본주의로 사회가 변하고 있을 때였다.
영국의 공업화로 인해, 시중에 떠도는 상품은 많아졌고, 자유무역은 흔해졌다.
당시 유럽을 지배하던 사상은 중상주의였다.
중상주의는 금과 은으로 국가의 부를 평가하는 것이었는데,
애덤 스미스는, 이 같은 중상주의를 매우 불편하게 여겼다.
결코 금과 은이 국가의 부를 평가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가 프랑스로 여행을 갔을 때 일이다.
그는 프랑스의 주치의 '프랑수아 케네'를 우연히 조우하게 된다.
그는 의사라는 신분에 맞게, 사회를 하나로 육체로 표현했다.
"사회가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통화(자본의 흐름)가
혈액의 역할을 한다."라는 그의 말에서
애덤 스미스는 많은 영감을 얻게 된다.
프랑수아 케네는 당시 중농주의를 주장했는데, 중농주의란, 토지가 부의 중심이고
토지의 크기가 국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프랑수아 케네의 경제에 대한 해석은,
애덤 스미스에게 큰 영감을 주고, 3년의 여행을 마친 뒤
애덤 스미스는 그의 희대의 역작'국부론'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그는 집필 기간에, 영국의 실증주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자주 사교 자리를 가졌는데,
데이비드 흄의 객관적, 과학적 근거에 기인하는
실증철학 또한 역시 국부론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들의 만남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대화가 탄생한다.
"우리가 빵이나 고기, 술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빵집 주인의 이웃에 대한 자비심 때문이 아니라,
각자의 이기심 때문 일세"
빵집 주인은, 그들의 이윤을 추구하기 위해 빵을 만들어 파는 것이지
이웃을 먹이기 위해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때 '보이지 않는 손'이 빵 가격이 치솟지 못하게 제어하고,
시장을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단어는 국부론에서 실제로 자주 언급되는 말은 아니지만,
그 개념 자체가 당시에는 획기적인 경제 논리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는, 그의 저서 '국부론'에서 최초로 '분업'이라는 새로운 생산 방식을 소개했다.
공장 하나에서 한 명이 “핀” 하나를 만들면 하루에 48개를 만드는 제품을,
18개의 공정 과정으로 분업화하면 하루에 4만 8천 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한 번 산업 혁명과 기술의 진보에 큰 영향을 끼쳤다.
국부론, 즉 국부는 무엇에 의해 결정되는가?
애덤 스미스는 금과 은이 국가의 부를 결정짓는다는 중상주의를 정면으로 반박하고
국부는 노동에 의해 생긴다고 주장하였다. 이때, 국민 총생산(GNP)의 개념이 생긴다.
이는, 현재 국가의 경제적 위상을 결정짓는 핵심 요소이다.
국부론은, 다윈의 종의 기원이나 뉴턴의 책처럼 중요하다.
분업, 국민 총생산, 무역과 개방의 중요성,
보호무역의 문제점 등 동서고금을 막론한, 경제 문제를 전방위적으로 다루며,
근대 경제의 기본 원리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근대 경제학의 효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집필하고, 또한 많은 오해를 받았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완전경쟁시장을 이상적인 상태로 보았다는 것은 혹자들에겐 자유로운 부의 추구를 지향하는 것으로 비치며, 돈 많은 부자들의 편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국부론 집필 이전에 '도덕론'이라는 책을 출판했다.
같은 맥락에서 인간의 경제적 이기심은 사회적 도덕 아래에서만 허용된다는 것은
애덤 스미스에게는 당연한 지론이었다.
'인간은 도덕적 존재이고, 경제도 그 도덕적 역할 중에 하나이며
국부론은 인간 행동 규범 안에서 생긴 이론이라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러하다.
그는 인간이 이기적인 동물인 것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속에서는 배려와 연민이 있기 때문에
이기적인 행동조차도 공공의 이익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재택부업 알바 센터 백설 공주님의 글)
국부론의 내용요약에 대한 글을 보다가 위의 백설 공주님의 요약이 가장 잘 된 것 같아서 인용을 했습니다. 저는 행정 학도로서 고시공부를 위해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애덤 스미스의 글이나 경제에 관계된 주변의 서적을 차분히 먼저 읽었으면 제 공부에 더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인데 시간적인 제약이 있어 그러하지 못했고 공부 내내 경제학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모든 공부나 학문에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그 풍성함을 더해주는 공부가 성경공부입니다. 성경공부는 단순히 우리가 믿는이라서 읽는 것도 있지만 우리의 삶이나 배움에 너무나 큰 유익이 있습니다. 믿든 믿지 아니하든 어릴 때 자녀에게 성경을 읽게 하면 이후의 공부에 너무나 큰 도움이 됩니다. 아래의 글은 신대원 논문의 내용인데 애덤 스미스의 가장 중요한 가정 중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한 부분이 성경의 가르침과는 너무나 다른 부분이 있어 이에 대한 글을 쓰려다 과거에 논문 자료(전도자의 입장에서 본 교회 성장과 나눔에 대한 연구)가 있어 그중의 일부를 이에 대신해서 올립니다. 8년 전의 자료이기에 임금에 대한 부분만 수정했음
1. 자본주의 경제학
이제 이 지구상에서 경제제도로는 자본주의가 홀로 기세를 떨치고 있다. 자본주의는 완전경쟁, 사유재산제도, 영리추구, 가격기구, 자유계약 등을 원리로 하여 현 경제체제를 이끌고 있다. 인간의 동기와 심리에 대한 정밀한 분석, 수리적으로 설명, 뛰어난 경제학자와 영국과 미국의 성공에 따라 모든 나라가 조금은 차이가 있지만 따르는 경제제도이다. 경쟁을 통한 인간의 노력은 물질적으로 많은 부를 창출하고 승리를 거듭하였지만, 또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홀로 승승장구할 줄 알았지만 미국의 위기와 최근의 경제 위기를 겪으면서 이 제도 또한 믿기 어려운 경제제도임이 밝혀지고 있다. 경쟁은 경쟁에서 이기는 자에게는 유리하나 지는 자에게는 가혹하다. 인간이 모두가 경쟁할 수 없고 또 경쟁력이 없는 사람이 있기에 경쟁에서 승리한 자가 나누어 주지 않으면 지는 자는 사는 것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제도이다. 완전경쟁이 그 근본이기 때문에 국가의 통제에도 한계가 있다. 또한 자원적인 측면에서도 지구에서 생산되고 가용할 수 있는 자원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가 많이 가져가면 자연히 다른 나라는 적게 가져갈 수밖에 없다. 자본주의 경제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경제를 운용하면 생기기 때문에 이 제도가 불확실한 것이다. 최근의 경제 위기를 보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의 해결책이 없다고 했지만 산에서 도를 닦는 법정 스님께서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불교적인 측면에서 분석하고 제시하였는데 경제학자도 아닌 분의 분석이 너무나 정확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도 또한 정확하여 놀란 적이 있는데 이분이 설명하지 못하고 간과하는 한 가지는 경쟁의 부분이었다. 그리고 이 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경제 원리에 대한 학문을 하여야 하는데 그것이 결코 간단하지 않고, 정확히 문제의 원인을 분석해서 처방을 정책으로 실시해도 잘 맞지 않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시차, 인간의 예측 등) 실로 자본주의 경제학자의 고백같이 경쟁과 시장, 가격기구 등을 통하여 부의 창출에는 탁월한 제도이지만 분배 문제에 들어가면 방법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제도 속에서 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법을 잘 알아 실천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사례와 통계) 우리를 보면 부모가 획득한 재산을 자녀에 물려주는 편에 더 치중하고 나누는 데에는 인색하다는데 이 경제제도를 운용하면서 미국보다 더 큰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우리는 길게 보고 정확성의 측면, 변치 않는 부분, 실천하기 쉬운 부분, 등을 살펴볼 때 우리는 믿고 따라야 할 금과옥조가 아니다. 우리는 이 법과 제도를 국가의 일원으로서 존중하고 따라야 하지만 또 많은 부분 청교도들의 근면하고 성실한 정신이 반영된 훌륭한 제도이기도 하고 수많은 경제학자와 기업인 노동자들이 땀을 흘려 이룩한 제도로서 존중하여야 하지만 하나님의 법을 우선해서 무조건 따라가는 것은 세상을 판단 없이 쫓아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어쩌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너무나 아름답게 보여 벗기기 어려운 포장일 수도 있다. 현 지구상의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 핍박도 박해도 없는 상황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이 날마다 싸우며 벗어 버려야 할 우리의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육신의 정욕일지도 모른다.
2. 자본주의 경제학의 체계
자유경쟁, 사유재산의 인정, 시장기구, 영리 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자본주의의 이념적 근거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이다. 경제학의 시조 애덤 스미스는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성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시장 기구는 개인이 이기심에 따라 영리활동을 할 때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반 인위적인 수요, 공급의 조절 기능을 통하여 전체 경제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이때 이기심은 개인의 가치관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으나 인간의 본성에는 타인을 배려하려는 성향이 있어 도덕적 감정의 발로가 일정한 제약을 하기에 자유경쟁이라 할지라도 부질서한 혼돈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고 했다. 경제를 미시적으로 거시적으로 분석하기도 하는데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미시적 분석
미시경제학은 경제주체들과 시장의 형태를 분석하여 공통적인 경제문제들이 어떻게 해결되며, 또 그렇게 얻어진 경제문제들의 해결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바람직한지를 평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미시경제학 p44) 시장은 소비자(사는 사람)와 생산자(파는 사람)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미시경제학의 분석 대상은, 1. 소비자 2. 생산자 3. 시장 구조이다. 주류경제학(신고 전파 경제학)의 미시 분석에 따르면, 소비자는 소득(예산)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효용(상품 소비로부터 얻는 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소비량을 결정한다. 또 생산자는 가능한 기술 수준에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생산량을 결정한다. 소비와 생산에서의 두 가지 결정이 만나는 점에서의 상품량과 가격이 각각 균형상품량과 균형가격이 된다. 미시경제이론에서는 이 균형점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이다. 또한 시장구조는 경쟁 시장, 독점 시장, 과점시장, 독점적 경쟁 시장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각 시장구조에서의 균형점이 어떻게 결정되는지를 설명하는 것 또한 미시경제학에서 시도하는 것 중 하나이다.(위키 백과사전) 즉 소비자와 생산자의 경제행위 분석과, 시장구조분석, 아울러 생산자와 소비자의 의사결정이 공통적인 경제문제들의 해결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아닌가를 분석하는데 이 자원배분의 평가를 보며 정책을 건의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미시경제학의 방법은 경제주체들의 의사결정 모형을 제시함으로써 자원배분의 과정을 설명하고, 또 그러한 의사결정 모형 하에서 어떤 정책을 써야만 바람직한 자원배분을 얻을 수 있는가를 분석하는 접근 방법이라고 하겠다.(미시경제학 p46)
<2> 거시적 분석
거시경제학은 미시경제학과 더불어 경제학을 이루는 분야 중 하나로, 미시경제학이 가계와 기업 등의 개별경제주체들 간의 행위와 상호 영향 등에 의해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과 거래량의 결정을 설명하는데 비해, 거시경제학에서는 모든 개별경제주체들의 상호작용의 결과로 인해 나타나는 한 나라의 경제 전체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국민소득, 물가, 실업, 환율, 국제수지 등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의 결정요인과 이러한 변수들 간의 상호 관련성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또한 장기적인 측면에서 국민소득의 변화를 설명하는 경제성장 이론과 단기적으로 실업과 밀접한 연관을 가지고 있는 경기변동 이론 또한 거시경제학에서의 주요 연구 대상이다. 경제순환 모형을 보면 가계와 기업만 존재하는 단순 모형에서 가계는 생산요소를 공급하여 얻는 소득으로 생산물을 구입하고. 기업은 생산물 판매를 통해 얻은 수입으로 생산요소를 구입한다. 이러한 경제의 순환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며 일정 기간 동안의 이러한 흐름에서 소비와 투자를 측정할 수 있다. 이러한 모형에 정부와 외국이라는 경제주체를 추가하면 경제순환을 통해 일정 기간 동안 이루어지는 소비와 저축, 투자와 무역수지 등을 측정할 수 있으며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국민소득을 측정할 수 있다. 미시경제학이 가격 결정이론이라면 거시경제학은 국민소득 결정에 관한 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거시경제학은 크게 봤을 때, 시장은 안정적이기 때문에 정부의 개입이 불필요하다고 보는 고전학파와 시장은 불안정하므로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경제 안정을 이루어야 한다는 케인스 학파로 나누어진다. 고전학파는 시장경제체제는 흔히 말하는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자체 교정능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정부 개입은 경제를 왜곡시킨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사상은 1970년대 통화주의 이론으로 이어졌고, 새 고전학파가 또한 이를 계승하고 있다. 케인즈 학파는 1930년대 경제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시장경제체제의 자체 능력으로 불황을 극복하는 것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대두되면서, 정부가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등을 통한 총수요 증대를 통해 시장의 불안정성을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한 케인즈에 의해 발전되었고, 새 케인즈 학파에 의해 계승되고 있다.(위키 백과사전)
3. 자본주의의 미래
공산주의의 멸망 후 자본주의가 홀로 득세하고 있지만 미국에서 시작된 세계적 경제위기를 보면서 이 제도 또한 온전히 믿기가 어렵다는 의견이 많이 제시되고 있지만 아직 새로운 경제제도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믿는 사람들은 한동안 이 제도의 영향 아래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영향력도 오래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모든 제도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도 있지만 결국 종언을 고하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보면서 이 제도의 영속성 역시 보장하기 어려울 것이다. 공산주의는 생산물을 뺏어서 나누어 평등한 세상을 꿈꾸어 다양한 전략전술로 빼앗는 데는 성공했지만 자신들이 그것을 관리하고 생산하는 부분에 있어서 경쟁하며 생산하는 자본주의를 당할 수 없었다. 자본주의는 물질을 경쟁을 통하여 취하며 부를 이루고 공산주의도 이겼지만 이 역시 인간의 본성을 이해함에 있어 오류를 범하고 출발하였다. 우리가 진리로 믿고 있고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은 죄로 물들어 올바로 살 수 없는 인간이다. 인간의 탐욕을 인간이 제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권력이든 물질이든 보이지 않는 손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하는 어느 국가든 국가의 개입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지만 너무나 많은 장점을 지닌 경제제도로서 단점만 보고 공산주의의 사고대로 타도의 대상으로 보아서는 아니 되며, 모두의 노력으로 그 단점을 보완하고 국가의 개입과 교회의 세상에서의 역할을 통해 보다 나은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 미래도 밝다고 하겠다.
4. 한국에서의 자본주의
한국도 자본주의 시장 체제를 도입한지 50년이 넘었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초고속 성장을 이루어 냈지만 개선할 부분도 많이 있다. 수출로 이루어낸 부를 잘못 관리하고 활용해서 땅과 건물의 가격을 너무 올렸고 일자리가 줄어들어 평균 연령은 늘어가지만 50세 이후 일자리를 보장받기 어려워지고 있다. 150만 원 전후를 받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3백50만이다 되고 실업자가 75만 명이나 된다. 자원이 없는 상태에서 외국과 경쟁을 하다 보니 교육에 열의가 높아 교육비가 많이 들고 이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게 만들어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편이다. 빈부의 격차가 너무 커서 건물 등 빌딩이나 도시에 땅을 가진 사람은 평생 일을 하지 않고 대대로 살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살기가 참으로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사람을 적게 쓰는 쪽으로 조직화되고 전산화되다 보니 일자리를 얻는 것도 참으로 어려운 여건이다. 많은 사람이 함께 일하며 살 수 있는 직장이 많이 필요하고, 가진 사람의 애덤 스미스의 주장대로 배려가 절실히 요구되는 때이다. 문제를 차례로 집어보자
<1> 너무 높은 부동산 가격
한국만 있는 세상이라면 땅값이 높고 집값이 비싸도 이상할 것이 없을 수도 있겠지만 외국과 경쟁의 시대에 높은 부동산 가격은 환영할 일이 아니다. 한국에 외국인이 들어오기도 힘들어지고 한국인도 기업하기가 어려워지기에 모두들 외국에 나간 지 오래된 일이다. 하루하루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임대료로 평생 일을 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나 집이나 땅이 없는 사람은 부동산을 소유하기가 너무 어렵게 되었다.
<2> 경쟁을 인한 과열된 교육열
교육을 잘 받는 것은 좋은 일이기에 열심히 배우려는 자세는 권장할 만하다. 그러나 자식 교육 때문에 너무나 부모가 힘이 들고 심지어 외국에까지 어머니가 따라가고, 또 젊은 사람이 결혼을 기피하게 되고 자녀 출산도 자제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특히 잘 교육받은 명문대 학생들이 취직을 못하고 사교육에 열중하게 됨으로 공교육이 그에 따라가지 못하다 보니 공교육이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3>인재는 필요한 곳에 가질 않고 돈을 많이 버는 곳으로 몰린다.
부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다 보니 예전에 중인 취급하여 천히 여기던 의사, 배우, 가수, 등 연예인과 상업에 뛰어난 인재들이 몰리고 과거의 선비는 청빈낙도의 멋을 알았는데 한 사람이 물질과 명성, 학문 등 모든 것을 소유하려고 하다 보니 어렵고 힘든 일은 도리어 능력이 없는 사람들이 감당하고 있다.
<4>정신적인 가치의 상실
도시인들에게 이웃은 없다. 한 빌라나 아파트에 살아도 깊은 교제가 없다. 이사를 자주 가고 직장이 다르고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만날 일도 없다. 우리는 고향이 있었다. 어릴 때 자라면서 정겹던 산과 들 바다, 그리고 고향의 이웃과 친지 친구들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름답고 포근한 추억이다. 지금 세대의 어린이나 청년의 기억 속에 어떤 고향이 자리할까? 참으로 우리의 옛 모습은 평화롭고 우애 있고, 또 노인은 쓸쓸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 속에서 형제들끼리 부딛기며, 친구들과 염려 없이 산과 들과 바다를 누비던 우리의 모습은 우리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는 우리 대 만의 추억이 되었다. 물질의 풍요를 통해 우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을 다 잃어버리고 하나님이 주신 그 많은 축복을 집과 땅속에 묻어두고 써보지도 못하고 죽어가고 있다.
<5> 농촌의 황폐화
소득이 높은 곳으로 사람의 관심이 쏠리고 농업이나 어업 등의 1차 산업은 외면하게 되어 시골에는 60 이상 된 노인들이 농업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농촌 인구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외국인들이 농사를 짓는 곳이 많아지고 시골에는 모든 분야가 인구 감소로 어렵게 되었다. 농촌에 아이 울음소리가 끊인 지 오래되었다.
<6>미국과는 다른 부에 대한 태도
미국에서는 기부와 재산의 사회 환원 부분이 관례가 되다시피 되어있다. 그리고 여러 가지 비판이 있지만 국제사회에서 강대국으로서 여러 가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열심히 벌고 사회에 환원하고 어려운 나라를 돕고 기부하며 살고 있다. 한국에서의 자본주의는 그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도 많이 나누고자 하고 나누고 있으며 나눔의 실천에 대해 모두들 애를 쓰고 있음은 다행한 일이다.
<7>소망 없이 사는 수많은 우리의 이웃들
필자는 본의와는 다르게 은행에서 근무를 하다 대학에 들어가려고 은행에서 나온 지 27년 동안 참으로 힘들게 살았다. 은행 친구들은 지점장이 대부분 되었고 같이 고시공부를 하던 이들도 경찰서장, 3급 이상 공무원, 변호사, 회계사 등 지금 한국에서 대부분 중류 이상의 삶은 사는 동안 필자는 맨 밑바닥에서 고물수집인, 공공 근로인, 경비, 영업직, 등의 삶의 살았다. 교회 관리인으로서 안정을 조금 찾았지만 여전히 극빈층에 속한다. 이런 삶은 배운 사람이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나누고 전하며 산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요 교회와 주변의 도움이요, 같이 사는 사람의 눈물 덕분이었다. 필자는 성인군자도 아니고 전적으로 많이 가지고 싶고, 높아지고 싶고, 잘 살고 싶은 보통 사람이다. 특히 아들이 좋지 않은 환경에서 살면서 고통받는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참기가 어렵다. 그런데 반평생을 그렇게 모든 이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서도 목마르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목마르지 않은 물을 마시며 산 이유 외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또 사람이 27년을 한 달에 100만 원 정도 벌면서 살아보니 못 살 일도 아니었다. 빚도 있지만 끼니를 굶은 적은 결코 없고 TV, 냉장고, 세탁기 등 있을 것 다 있고 결혼해서 자녀도 가지고, 생선, 고기 등 못 먹은 음식도 없었다. 오히려 고등학교 친구들이 누리지 못한 대학 대학원에다 신학대학원 그리고 복음을 전하며 살았기에 훨씬 좋은 일이었다. 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나 같이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기회가 되기도 한다. 없어서 죽는 것은 결코 아니다. 쌓아두고 나누지 않아서 죽는 것이요, 진리를 믿지 않아 죽는 것이다. 정말 염려 걱정 버리고 나누어주라고 권하고 싶다. 그것이 내가 살고 이웃이 살고 나라가 사는 길이다. 어려운 이의 상황을 알아주는 것을 중국에서는 ‘동병상련’이라 표현했고, 한국에서는 홀아비가 과부의 마음을 안다고 했는데 맞는 말이다. 필자는 그들과 같이 생활을 하면서 그들이 처한 상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경비나 청소 직위 경우는 대부분 용역직이다. 월급은 150만 원 내외이다. 이들은 용역회사에 고용되어 자신의 소속도 아닌 곳에 가서 일을 한다. 이들이 일을 하는 회사나 사업장은 용역회사에 이들이 받는 월급의 30-100만 원 정도를 더 준다. 이들은 상관이 두 곳이 되어 두 곳 모두의 눈치를 보며 살고 두 곳 어느 곳의 소속도 아닌 상태로 보호도 없이 살고 있다. 이들이 우리 주변에 300만이 넘게 살고 있다. 새벽에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며 평균 노동시간도 주 80시간이 넘으며, 휴일도 공휴일도 없다. 우리는 이들 덕분에 저녁에 발 쭉 뻗고 걱정 없이 살고 있다. 취직할 길 없는 청년들, 40대 50대에 실직해서 갈 곳 없는 가장들, 퇴직금도 없이 시간제로 일하는 수많은 사람들, 보라 우리는 숨도 쉴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도 있다. 우리는 차를 몰고 가다가 앞에 오토바이나 잠시 둔 물건이 보이면 1초도 기다려 주지 않고 곧바로 경적을 울린다. 우리는 남에게 1초도 배려해주지 못하고 또 배려도 받지 못하는 숨 막히는 세상 속에 살고 있다. 그래서 견디다 견디다 못하면 죽는 것이다. 하루에 30명 이상이 죽어나간다. 나와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꼴 보기 싫어서이다. 이 외에도 얼마나 많은 문제가 있는지 모른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이 모든 잘못된 것을 고칠지 참으로 암울한 현실이다. 모두들 돌이켜야 한다. 잘 살려는 생각보다 올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쳐야 한다. 그리고 나누어야 한다. 추운 것은 견디기 힘들다. 배고픈 것도 견디기 힘들다. 춥고 배고프면 견딜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우리는 50여 년 전에 모두 그런 견디기 어려운 역경에 대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잘 살려고 몸부림친 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께서도 적극적으로 복을 주셔서 세계적인 경제력을 가진 나라가 되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달라고만 해서 되겠는가? 이제라도 주여 우리가 어디로 가서 무엇을 할까요? 누구를 도울까요? 그런 기도할 때다. 우리의 베풀 수 있는 삶이 과연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해 보면 지금 베풀지 않으면 기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신 이를 만날 면목도 없을 것이다. 진실로 복받을 때라기보다 나눌 때다.
5. 하나님의 경제학
우리의 현실이 암울하다면 이에 대한 개선 내지 치유가 필요하다. 모두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다. 국가와 사회단체 또 많은 지각 있는 사람들이 이의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래서 복지정책이 실시되고 다양한 나눔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시행되고 있다. 기업은 기업대로 선행을 하며, 각종 단체와 기관들도 구제를 행하고 있다. 이젠 정말 기부도 많아지고 선행의 사례도 많이 발표된다. 환영하고 참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웃을 살리는 가장 큰 의무는 교회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교회가 어두운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더욱더 나누고 베풀고 선행하고, 기부하고 구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어려운 이웃을 절대로 외면하지 말고 우리가 더 고통을 많이 나누어야 한다.
1) 하나님의 경제학이란?
하나님의 백성이 따라야 할 경제 원리를 하나님의 경제학이라 이름을 붙였는데 믿는 사람은 누구나 아는 쉽고 틀림이 없고 불변하는 원리이다. 목사님, 신부님들이 매일 강단에서 설교하고 강론하는 경제생활의 원리 속에 다 들어있다. 우리가 처음 듣는 내용이 아니고 익히 들어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2) 하나님의 경제학의 내용
먼저 구약의 십계명을 살펴보아 경제에 관한 내용을 뽑아보자. 제4계명은 엿새 동안 힘써 일하라. 5일도 아니 되고 7일도 아니 되고 엿새 동안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되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힘써하라는 말씀이다. 그다음에 제8계명으로 도적질하지 말라이다. 소매치기나 강도질 말고, 속여서 빼앗지 말고 몰래 훔치지 말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제10계명인데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라이다. 타인의 소유를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구약 말씀 중 레위기를 보면 먼저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대한 설명이 있다. 번제와 소제, 화목제와 속죄제 그리고 속건제를 통해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의 종류와 방법, 시기 등이 나와 있다. 그리고 제사장의 몫에 대한 설명이 있다. 추수 땐 이삭을 줍지 말고 귀퉁이는 남겨두고 열매를 다 수확하지 말도록 하셨다. 품꾼의 삯은 즉시 주도록 명하시고, 각종 절기를 정해 주시고 어떤 때는 당일 어떤 때는 7일 동안 쉬도록 하셨다. 안식년을 두시고 그 해에는 파종하지 말고 스스로 난 것은 종들이나 품꾼이 거두게 하셨다. 50년에는 희년이라 하여 종은 해방시키고, 이주한 자는 본래의 기업이 있던 곳으로, 기업을 잃은 자는 회복케 하시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으로 팔지 못하게 하시었다. 사람이 가난해져서 자기 기업을 팔았으면 동족이 무를 수 있고 자기가 부요해지지 않거나 무를 힘이 없을 경우 희년에는 무를 수 있게 하시고 외국인을 자신같이 여기게 하셨고 이웃을 자기 몸과 같이 여기도록 하셨다. 소산의 10의 1은 하나님의 것이라 하시었다.
과수는 3년 동안 먹지 말고 4년째는 하나님께 드리고 5년째부터 먹을 수 있으며, 초 태생은 사람이나 동물이나 하나님의 것이라 하시었다. 느헤미야 도 나누어 주라고 했다. 이러한 계명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셨는데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오서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지도자들의 잘못을 꾸짖으셨으며, 제자들을 가르치셨다. 부자에겐 소유를 팔아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줄 것을 당부하셨다. 안식일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하셨다. 원수를 선대하고 사랑하여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고 하시고, 주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게 주실 것을 약속하셨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통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울 것을 명하셨다. 주님 이름으로 작은 자에게 한 것은 꼭 상이 있다 하시었다. 율법을 폐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시키려 오셨다 하시면서 율법의 준수와 사랑을 강조하시었다. 세금을 잘 낼 것을 가르치셨다. 이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우선 하나님에 대한 부분이 있다. 초 태생, 십일조, 감사, 서원, 속죄, 속건, 번제, 소제, 4년째 실과 등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둘째 이웃에 대한 부분은 도적질과 탐내지 않음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다양한 배려가 있다. 상사를 잘 섬겨야 한다. 개인 소유를 인정한다. 경쟁을 인정한다. 자본주의와 비교를 할 때 많은 부분이 같은 부분이 있지만 자본주의가 해결하지 못하는 이웃과 어려운 이에 대한 배려가 다양한 약속과, 상, 그리고 천국을 들어가는 조건으로 명시되어 실천되었으며, 실천되고 있다.
3) 하나님의 경제학의 특징
<1> 불변성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변함이 없다. 오늘은 이랬고 세월과 상황이 바뀌면 저랬고 하는 일이 도무지 없다. 구약은 3500년 이상 신약은 2000년 이상 글자 한자 바뀜 없이 그대로이다. 수많은 사상이 시간의 흐름과 도전 앞에 종말을 고하고 사라졌지만 성경 말씀은 만고불변이다. 성경 스스로가 이것을 증명한다. 법적 안정성과 적응성은 서로 같이 가기 어렵다. 안정이 되자면 변치 않아야 하고 세상에 맞추자면 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치 않는 주님의 말씀은 언제다 안정되어있다. 이는 경제 이상이나 상황에 따라 다른 설명과 논리로 무장되어 있는 경제이론과는 비교할 수가 없다.
<2>간단성
경제이론은 앞에서 간단히 설명했지만 정말 공부하기 쉽지 않다. 복잡하다. 필자도 고시 2차에 과목에 있었기에 원론에다 거시, 미시, 국제, 화폐 금융론 등 경제 과목을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 필자의 우둔함도 한몫했겠지만 학문 자체가 석학들의 다양한 연구를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정말 쉽지 않게 느껴졌다. 그러나 성경에서 경제적인 부분은 위의 것이 다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대부분이기에 알고 배우기에 경제학과 비교할 수 없이 쉽다.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시면서 인간이 충분히 지킬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신명기와 그의 설명에 대해선 바이블 아카데미 신명기 강해 박준서 교수님)
<3>정확성
경제학은 미래에 대한 다양한 사람의 행동의 예측과 관계가 있으므로 언제나 이론이나 처방이 맞는다고 말할 수 없다. 또한 예측이 행해지고 맞는 부분도 많으나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서 증권이나 주식을 통해 낭패를 보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정확하다. 틀림없이 그대로 된다. 정말 남에게 베풀고 나누어 주면 하나님께서 채워주신다. 십일조에 대한 통계조사도 그것을 증명한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성에 대해 조금이라도 불신이 있으면 역사를 통해 그 말씀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수많은 사람이 순교를 했겠는가? 한국에도 천, 개신교를 합쳐 만 명 이상의 순교자가 있다.
<4> 사랑과 신뢰 중심의 가르침
공산주의 경제이론은 남의 것을 빼앗아 나누자는 사상이다. 자본주의는 이윤 내지 영리를 바탕으로 하는 사상이다. 하나님의 경제학의 근본은 사랑이다. 또 신뢰를 추구한다. 그래서 사랑하면 모든 율법이 완성된다고 하셨다. 자식이나 가족같이 사랑하면 얼마나 나누겠는가?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한 것이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주변과 경쟁적으로 열심히 일하고 살되 이웃을 배려하면서 하고 가난한 사람과 약한 사람을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서 같이 잘 살자는 경제학이다. 가장 완전하고 온전한 경제학이다. 나누고자 해도 남을 배려하고자 해도 내가 너무 어려우면 베풀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어려운 시절 우리 조상들은 서로 나누고 산 전통이 있다. 지금의 한국의 사정은 보리밥 먹는 사람은 찾기 어렵고, 그래도 밥을 굶는 이도 있지만 어떻게는 조금만 노력하면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국가적이나 발전의 상태를 보면 많이 나눌 수 있음을 본다. 기독교는 축복을 받는 종교이고 또 나누는 종교이다
<5>상급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께 순종하면 천대의 복이 보장되어 있다. 천대의 복을 우리가 풀어 이해하기는 어렵지만 어떤 사람이 사는 곳에 지하철역이 들어선다면 그곳은 한국에서 완전히 다른 곳이 된다. 땅값 건물 값 임대료 등이 오르고 사람들의 왕래가 빈번해져서 장사가 잘 될 가능성이 커진다. 자신의 노력과는 상관없이 부가 증가하는 경우인데 우리는 그런 것을 보면서 잘 되는 사람의 조상을 생각해 보게 된다. 어쨌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이를 축복하시고 천국에서 상급을 달리 주신다 하셨다. 이생에서의 풍요를 보장하는 자본주의와는 차원이 다르다.
<6> 실례
구약에서는 자신의 외동아들을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해 믿음의 조상이 된 아브라함, 배로 받은 의인 욥, 빈손에서 많은 무리를 얻은 야곱, 룻을 도와서 예수님의 족보에 오른 보아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해 왕이 된 다윗, 하나님께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은 솔로몬 등과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온전히 바침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을 구원하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을 보았다. 실로 성경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 복받은 분들을 구름같이 만날 수 있다. 신약 이후 프란체스코는 나눔과 선행을 통해 그의 일신의 영광만이 아니라 현재에도 수많은 사람이 그의 본을 따라 살고자 하며, 온전한 십일조로 세계 최고의 부자에 오른 록펠러, 오만 번 기도 응답의 밀러, 실로 예를 다 들 수 없이 수많은 사람들의 나눔을 통한 축복의 간증이 있다. 필자는 사이토 히토리의 ‘부자 상인과 서점 주인’을 읽어보고 놀랐는데 그가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해 종목 종목 설명을 해놓은 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과 너무나 같았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기독인 3%의 일본이 잘 사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미국의 부와 일본 최고 부자의 가르침을 통해 성경의 가르침대로 장사하면 틀림없이 성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더 나아가 솔로몬 탈무드란 책에서는 유태인의 상술에 대해 설명하는데 민법의 근본원리인 신의 성실이 그대로 설명되어 있었다.(곽윤직) 우리는 성경을 통해 성경대로 축복받은 사람을 통해, 일본 최고 부자의 가르침을 통해, 유태인의 상술을 통해, 그리고 한국 민법 전의 근본원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명에 순종하고 사랑하고 나누고 베풀고 신뢰를 중히 여기며 사는 것이 축복의 원리임을 배우게 된다.
성경을 공부하고 이해한다는 것은 모든 이론 사상의 바로 볼 수 있는 척도이고 기준입니다. 믿지 않는 분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지 않고 고전으로 보거나 성인의 말씀으로 보아 올바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성경은 틀림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천지의 창조와 하나님의 존재, 인간의 죄와 타락과 예수님을 통한 구원, 성령의 사역과 우주의 미래, 그리고 인간의 생사화복과 국가의 흥망성쇠의 원인과 복을 받는 비결에 대해서 정확히 기술되어 있고 다른 학문을 하신 이도 성경을 잘 읽고 비교를 해 보시면 얼마나 성경이 정확하고 풍성하고 온전한 흠이 없는 진리임을 잘 알게 될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회개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보시면 틀림없이 살아서 우리 모두들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어려서 성경을 배우지 못하고 고시공부를 하다 떨어지고 그 이후에 조금 읽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신도 성경을 읽으시고 자녀에게도 읽기를 권장하고 잘 가르치면 유대인 이상 가는 민족이 될 줄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하나님의 나라의 사상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고 죄를 하나님께 용서를 받으면 성령께서 선물로 오십니다. 이렇게 된 성도는 누구나 마음이 부드럽게 됩니다.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법, 율법을 지킵니다. 이들이 모여서 질서가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를 성령안에서 만듭니다. 성령께서는 오셔서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며 분별력을 주시고 선한 길로 인도하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성령의 인도로 사랑을 실천해서 율법이 지켜지는 세상이 이 땅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나라이고 예수님이 오셔서 개인을 구원하신 것도 이런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을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구약에서 버릴 것은 없습니다. 구약의 제사제도를 그대로 예수님께서 성취하셨기에 이제는 짐승의 제사가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의 조항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틀림없이 모든 성도가 조문 조문 지켜야합니다. 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가 없다고 예수님께서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가정에서 교회에서 그리고 세상에서 엄격한 법이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그 법이 율법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의 성취는 사랑을 통해서 옵니다. 가정에는 사랑의 법이 지배합니다. 그렇지만 부부사이와 부모와 자식사이의 율법이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를 사랑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부부사이에도 여자는 남편을 주와 같이 섬겨야 하고 남편은 여자를 주께서 교회를 사랑한 것과 같이 사랑을 해야 합니다. 이런 질서가 무너진 곳은 평안이 없고 힘이 있는 자가 판을 치고 약한 사람은 살지 못합니다. 한국에 천만의 교인이 있고 10만이 넘는 목사가 있고 그리고 5만개의 교회가 있는데 모두가 성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대로 하면 누가 무엇이 옳은지 아무도 알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럴때 그름과 올바름, 공정과 불공정을 분별하는 법이 모세 오경의 율법입니다. 성경을 정말로 올바로 이해를 하면 이렇게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었다고 하고 오직 믿음이라 해서 행위에 관심이 없고 율법는 폐기가 되고 이제는 성령의 인도만 받으면 된다고 하면 온 세상은 무질서의 극치가 될 것이고 어디서도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찾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성령의 받고 아니 받고는 하나님께서 아시지만 누구 누구를 분별할 수가 있습니까?
로마시대 교인들이 로마에 살면서 로마법과 다르고 로마의 사상과 달라서 핍박과 순교를 당했습니다. 지금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하의 세상에서 모든 나라의 교인들이 살고 있습니다. 세상법 즉 헌법과 각종 하위법에 저촉이 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돈을 벌고 집을 수백채를 가지고 있어도 누가 뭐라고 할 수가 없고 처벌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이런 사람은 망할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초대교회를 생각해 보아도 모든 소유를 팔아서 사도들의 발아래 신도들이 놓자 이를 필요에 따라서 나누어서 모두가 잘 살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이 되었고 그나라가 점점 커져가고 있습니다. 나는 성경이 가르침을 따라서 삽니까? 인간이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도 제대로 못하고 쓴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서 나온 자본주의를 따라서 오늘도 정신없이 살고 있습니까?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세상에서 살면서 내가 승리하고 돈을 많이 벌면 교회를 통해서 어려운 형제를 돕고 이웃을 돕는다면 너무나 좋은 일이 많이 생길줄로 믿습니다.
먹는 음식보다 몸이 귀합니다. 그리고 가진 집이나 땅보다 영혼이 귀합니다. 몸도 영혼도 구원하지 못한 채로 땅과 집을 많이 소유하고 자신의 몸과 영혼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지옥이 가까워지고 있는데 모두 놓고갈 재산을 움켜쥐고 주변의 가난한 집도 땅도 없는 형제들을 외면하고 어떻게 천국에 가겠습니까? 그러나 자본주의는 이를 부추기고 이에서 승리하고 승리에 진 자에 대해서 별로 말이 없습니다. 이 경제학을 진리로 알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분주하게 천국으로 가는 삶과 완전히 다른 삶을 나는 살고 있지는 않는지? 그 삶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나에게 무엇을 줄 수가 있는데 그 귀한 율법은 처다 보지도 알지도 지키지도 않고 사는지 나와 우리 모두를 점검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