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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어린이
제목 :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성경 : 눅 9:46-48
찬송 : 565장
저자 : 이삼규목사
출처 : 20200503 낙양교회 어린이 주일
눅 9:46 제자 중에서 누가 크냐 하는 변론이 일어나니
눅 9:47 예수께서 그 마음에 변론하는 것을 아시고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자기 곁에 세우시고
눅 9:48 그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
(영상-엔젤스 홈 이야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둘러싸인 작은 내륙국가 레소토와 국경을 마주하는 남아공 중부 픽스버그. 인구 1만도 안 되는 작은 도시에 한국인 선교사 노록수, 김은혜 선교사가 20년 째 이곳에서 ‘엔젤스 홈’이라는 곳을 만들어 사역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에이즈 인구의 3/4이 몰려 ‘세계 에이즈의 화약고’라 불리는 남부 아프리카에서 에이즈로 인해 부모를 잃은 아이들을 돌봐줄 곳이 없다는 한 젊은 여의사의 글을 지역 소식지에서 보고 바로 사택 창고를 개조하여 방을 만들고 태어날 때부터 에이즈를 가지고 태어나 버려진 5명의 아이와 부모가 에이즈로 인해 죽어 홀로 남은 아이들, 그리고 에이즈로 인해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가 남은 아이들 11명을 데려와 20년 째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갓난 아이 때나 아니면 조금 더 지나서 온 아이들이라 11명의 아이들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는 일이 힘들어 보모 3명을 고용해서 아이들을 돌보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아이들이 동생들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부부의 일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 크자 선교사 부부는 아이들에게 복음전해 예수님을 영접시켰고, 또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 나갈 수 있도록 공부와 많은 것들을 교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또 에이즈가 걸려 태어난 5명의 아이들의 약한 면역력을 올리기 위해 수십 개의 약을 사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에게 맞게 약을 주는 등 자신의 자녀처럼 아이들을 양육하였습니다. 또한 아이들이 커가면서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병에 대해 알게 되고, 또 자신들이 이곳에 오게 된 이유를 알게 되면 힘든 시기를 겪기도 하지만, 11명의 아이들은 그런 서로의 아픔을 서로 보듬어주고, 함께 장난도 치면서 이겨내었고, 또 부부 역시 더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으로 양육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에이즈에 걸려 태어난 5명의 아이들 중에 존이라는 아이가 2010년 에이즈 정기 검사에서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검사를 하던 의사 역시 깜짝 놀라 몇 달 뒤 다시 재검사를 하였지만, 동일하게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마을에서 기적의 아이라 불리게 된 존, 하지만 존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해주신 것을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마을에 가면 늘 자기 또래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이야기합니다.
부부의 사랑 속에서 자라난 11명의 아이들은 각자의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농장을, 음정도 박자도 틀리지만 하나님께 찬양 드리기 좋아하는 아이는 찬양 인도자를, 또 경찰에 의해 엔젤스 홈에 오게 된 아이는 경찰관을, 에이즈가 완치된 존은 목사님을..... 그 외 다양하게 자신의 꿈을 가지고 나아가는 아이들. 비록 지금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 힘들고 가지고 있는 악기라곤 리코더가 전부이지만 아이들은 교회를 갈 때 가장 멋진 옷을 입고 교회에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선교사 부부 역시 여력이 될 때까지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이런 엔젤스 홈의 아이들과 같은 많은 아이들이 우리 주변에 있습니다. 우리의 다음세대 아이들이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 쓰러지지 않고 하나님의 비전을 가지고 세상 속에 당당히 나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양육하며 또 우리의 노력 위에 아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크신 계획이 있음을 신뢰하며 믿음 안에서 아이들을 양육하시는 여러분이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어린이날은 내일 모레이지만 교회는 오월 첫째 주일을 어린이 주일로 지킵니다.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내 이름으로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강론해 드리려고 합니다.
오늘 봉독해 드린 본문은 변화산 사건이 있은 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왜 예수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지 알지 못했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도 두려워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길을 가면서 ✔‘누가 크냐?’를 가지고 쟁론을 하였습니다.
✔막 9:33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막 9:34 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마가에 의하면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 때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예수님의 질문을 받은 제자들은 부끄러워서 그랬는지 대답을 못하고 잠잠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기 때문입니다. 서열과 신분에 대한 질문은 당시 유대인이 단체 생활을 할 때 일반적인 것이었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요즘에도 청와대나 정치하는 분들을 보면 서열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좌석 배치에 많은 신경을 씁니다. 대통을 중심으로 서열에 따라서 좌석 위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대통령 최 측근에 앉은 사람이 권력 서열로 따지면 높은 자리가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치 체계에 있어서는 그런 질문이 무의미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앉으셔서 열두 제자들을 불러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막 9:35)
예수님께서 파격적인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세상 가치관에 따르면 어떻게 해서든지 남을 짓밟고서라도 첫째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세상을 지배하는 원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다음 행동이 무엇입니까?
✔막 9:36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막 9:37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
오늘 본문은 ✔“너희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그가 큰 자니라.”라는 말씀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어린 아이는 ‘작은 자’를 대표한다고 볼 수 있고, ‘영접’은 받아들임, 존중하고 받들어 섬김을 뜻합니다.
오래전 독일 베를린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노인이 공원에서 무엇인가를 열심히 주워서 주머니에 넣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경찰관이 하도 이상히 여겨 가까이 가니 무엇인가를 주머니에 가득히 담고 막 가려고 하는 참이었습니다. 그 노인을 파출소로 연행하여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내놓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주머니 속에서는 깨진 유리병 조각과 못, 그리고 삐죽삐죽 나온 쇠붙이 같은 것들이 나왔습니다. 깜짝 놀란 경찰관이 그런 것들을 무엇 하려고 주워 모으느냐고 묻자 이러한 것들을 어른들이 무심코 버릴 때 얼마나 많은 어린아이들이 다치게 하겠느냐고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스위스의 유명한 교육학자 요한 페스탈로치였습니다.
우리가 작고 연약한 사람들을 존중하고 섬길 때 그 동기가 중요한 것입니다. ‘영접하면’(데코마이)이라는 말은 ‘받아들이다, 환영하다, 환대하다’등의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주간에 KBS에서 방영된 ‘그렇게 가족이 된다’라는 인간극장을 방영하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나이 많은 딸과 자녀들을 입양하여 한 가족이 되는 이야기입니다. 보육원에 있는 아동들은 18세가 되면 보호가 종료되어 독립을 해야 합니다. 그 이전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 보호가 종료되고 나면 살아가기가 막막하다는 것입니다. 의지할 곳도 없고 그래서 힘들게 사는 청소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청소년들을 입양하여 아버지가 되어 주고 어머니가 되어 주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아무 조건 없이 아이들을 입양하고 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보면서 귀한 분들이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오늘 본문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내 이름으로’라는 말은 ‘나를 위해서’, ‘나와 관련해서’라는 의미입니다. 시작할 때 영상을 보여드렸던 노록수, 김은혜 선교사가 날 때부터 에이즈에 걸려 버려진 아이들을 영접한 것은 누구 때문입니까? 바로 예수님을 위해서, 예수님과 관련되어서 그들을 영접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의 핵심은 어린이를 영접하는 것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이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어린이를 영접하면 하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어린이를 통하여 예수님을, 나아가서 하나님을 영접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영접하는 방법을 어린이를 통하여 가르치십니다.
어린이를 위대하게 보신 주님은 “나를”이라고 하여 어린이와 성자 예수님을 일치시키고, “보내신 이”라고 하여 성부와 어린이를 같은 대열에 두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얼마나 높이셨는가 하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성부와 성자와 어린이는 같은 대열에 오를 만큼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손님을 극진하게 영접하는 것이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우리나라에서 손님을 잘 영접한다는 것은 음식을 푸짐하게 대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손님으로 어디를 방문했다가 대접을 잘 받았다는 것은 음식을 잘 먹었다는 뜻입니다. 러시아에서는 손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발레를 구경시켜 줍니다. 오래 전에 영국 친구들에게 간다고 하면 연극을 보고, 테니스를 함께 치는 것으로 영접합니다. 이런 것이 그들의 극진한 대접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주님을 영접하는 것은 주님께 무엇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마음에 모시고 나의 구주로 믿는 것입니다.
어린이를 영접하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어린이의 가치를 인정하고, 어린이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20세기 최대의 발견은 어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20세기를 ‘어린이의 재발견 시대’라고 합니다. 어린이가 어른의 아버지라고 발견하는 것이 위대한 사실입니다. 20세기에 와서 어린이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고 어린이의 위대함을 알게 되어 어린이를 작은 아이가 아니라 큰 사람으로 보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만져 주심을 바라고 어떤 사람들이 어린이를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꾸짖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도 몰랐고, 어린이의 가치도 모르는 제자들이었습니다.
✔막 10:14 예수께서 보시고 노하시어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어린이를 꾸짖는 제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노하셨습니다. 신약성경에는 예수님께서 노하셨다는 말이 몇 번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한 편 손 마른 사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셔서 고쳐주시려고 하는데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주시하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은 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린이를 꾸짖는 제자들에게 노하셨습니다. 어린이를 꾸짖는 것이 예수님께 얼마나 나쁜 일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7:42에는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고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이 어리다고 업신여겼습니다. 골리앗과는 상대가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교만이 골리앗을 죽게 하였습니다. 블레셋이 참패하게 만들었습니다. 다윗은 작은 아이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리 작아도 작은 사람이 아니라 큰 사람입니다.
‘499살 외계인, 지구에 오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어린이 공상소설인 이 책이 주는 의미는 아주 깊습니다. 잘 익은 바라티 호박을 따서 햇볕이 잘 드는 따뜻한 장소에 둡니다. 80일이 지나면 인간이 호박에서 나오는데 갓 태어난 인간을 어른이라고 부릅니다. 어른이 나이가 들수록 어린이로 성장하는데 우리도 어린이가 되기 전에 다들 어른이었던 때가 있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교훈입니다. 이 소설이 설정하는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거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린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이 자라서 어린이가 됩니다. 요즘에는 유치원이 변하여 ‘노치원’이 생겼습니다. 노치원은 노인 유치원이라는 의미입니다.
‘소로우의 탐하지 않는 삶’이란 책도 어른들에게 깊은 교훈을 줍니다. 이 책에는 “어린이보다 지혜로운 어른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실제로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깊은 지혜가 있습니다. 순수성 그 자체가 어른들은 가지지 못하는 하나님 나라의 지혜입니다.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입니다. 어린이에게는 어른 이상의 숨겨진 지혜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는 가장 큰 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아이가 가장 큰 자라는 것을 어른들은 알아야 합니다.
교육전문가 데일 스펜더는 “어른들이 세상을 움직이는데 필요한 기술을 아이들이 갖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어린이들은 세상에 필요한 온갖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세상을 편히 살고 즐겁게 살고 두려워하지 않고 삽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을 보세요.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서 고침을 받고 주님을 영접하고 받들어 섬겼습니다. 베다니의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오실 때마다 예수님을 잘 영접하고 말씀을 경청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여리고로 가시는 길에 만났던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서 예수님께서 내려오라고 하실 때에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린이 하나를 영접하면 이것이 곧 예수님을 영접하는 셈이 됩니다.
어린이들을 영접하여 예수님을 영접합시다. 우리 교회 과거 주일학교 때 유명한 ‘민손김’이 있습니다. 민손김은 ‘민씨, 손씨, 김씨’라는 뜻입니다. 주일학교 때는 천방지축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제 이들이 자라서 우리교회 중요한 일꾼들이 되지 않았습니까!
아이들 어리다고 업신여기고, 마구 대할 아이들이 아닙니다. 이들이 장차 교회와 사회와 세계의 일꾼들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훌륭한 인재가 될지 누가 압니까? 장래의 대통령, 장래의 위인, 장래의 지도자를 섬기는 자세로 우리 어린이들의 가치를 알고 잘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끝으로 예화 하나를 소개해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폴은 10살 난 꼬마 소년이었습니다. 그 당시 무디는 콜로라도 주 덴버시에서 개최된 집회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어린 폴은 무디의 설교가 매우 듣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집회 장소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입구에서부터 안내인의 제지를 받았습니다. 안내인은 폴을 세워놓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타일렀습니다.
"꼬마야, 여기는 아이들이 들어갈 수 없는 데란다."
이 말을 들은 폴은 크게 상심하여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울음소리는 점점 커져 급기야는 그 건물 전체가 울릴 정도였습니다. 소년은 다시 출입문으로 들어가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안내인이 그를 붙잡고 꾸짖었습니다. "안 돼, 어린애들은 이곳에 들어갈 수 없다니까!" 안내인은 벌컥 화를 냈습니다. 소년은 더욱 상심하여 큰 소리로 울고 말았습니다. 그 때 연미복을 입은 멋진 옷차림의 신사 한 분이 만면에 동정의 빛을 띠고 폴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꼬마야, 왜 울고 있니? 내가 너를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구나. 그래, 무엇을 도와줄까?"
신사의 다정한 말을 듣자 소년은 목이 메어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저는요. 무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려고 왔어요. 저는 오래 전부터 그 분의 말씀을 듣고 싶어 했거든요. 왜냐하면 그 분은 미국에서 최고로 설교를 잘하시는 분이니까요. 그런데 이 아저씨가 저를 보고 어린애는 들어갈 수 없다고 못 들어가게 하시잖아요."
이 말을 들은 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폴의 손을 잡고는 다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자, 꼬마야, 내 옷자락을 잡으렴. 내가 너를 강단에까지 데려다 주마. 이제 너는 무디 목사님의 설교를 들을 수 있을 거야."
마침내 무디와 소년이 강단 위로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수많은 청중들은 매우 놀라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습니다. 잠시 후 무디 목사가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러분, 여기 서 있는 이 소년은 조금 전까지 밖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안내인이 이 소년에게 어린이들은 들어올 수 없다고 돌려보내려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소년에게 제 옷자락을 잡고 따라오면 강단에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 소년이 저와 함께 서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저는 오늘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여기까지 온 이 소년을 위해 이 강단 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소년을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소년이라 지칭하여 부르겠습니다."
무디 목사의 말이 끝나자 감격한 청중들은 "아멘."하고 크게 외쳤습니다. 훗날 소년 폴은 저명한 설교자가 되었습니다. 그의 설교를 통해 수많은 죄인들이 주님을 찾게 되었고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어린이 주일입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또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라”
오늘 어린이 주일을 맞이하여 ‘다음 세대’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어린이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영접하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