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5일
대구에서 울산 드라이브~
한 번 꼭 그 흔적을 들러보고팠던
신라시대 눌지왕 때 충신 박제상
1970년대 잘 사는(?) 친구집 들러 흑백TV 드라마로 시청했었던 기억이..
더불어 한국의 위인전에서도 읽었던..
따라서
<충렬공박제상기념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박제상로 200
이제서야 추억 속 아련함과 추억 속으로 찾아 나선다.
충렬공 박제상
신라 눌지왕 때 고구려와 왜(일본)에 건너가 볼모로 잡혀 있던 왕제들을 고국으로 탈출시켰고, 본인은 왜군에 잡혀 유배되었다가 살해당했다.
즉 왜왕의 회유로부터 "계림(신라)의 개ㆍ돼지가 될지언정 왜국의 신하는 될 수 없고, 계림의 형벌을 받을지언정 왜국의 벼슬이나 상은 절대 받지 않겠다"라고 말하며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충렬공박제상기념관》에는 당시의 시대상과 박제상 이야기가 그려져 있다.
그리고 죽음을 맞은 박제상을 기다리는 가족들
<삼국유사>에는 부인이 남편 박제상을 그리워하며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鵄述嶺) 고개에 오르고, 왜국을 바라보며 통곡하다 죽어 치술신모( 鵄述神母)가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더불어 치술령 고개에서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 돌이 되었다는 망부석(望夫石)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김종직의 <치술령 망부석>
그 얼마나 애절함과 슬픔이 배어날까.
※ 김종직(金宗直/1431~1492)
시호는 문충(文忠), 호는 점필재(佔畢齋)
조선 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이자 영남학파의 종조
이와 같이 그리움과 애절함, 그리고 가득한 슬픔으로부터 쓸쓸함이 사뭇 묻어나는 치술령 고개
치술령 고개 꼭 한 번 오르고 싶다!
<충렬공박제상기념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