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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8.1. 첫토
주례: 이한택주교님 강의 1,2. 미사
강의주제:“파티마의 두 어린이 성인처럼 우리도 성인됩시다.”
강론: 이한수 안토니오신부님
파티마 평화의 성당
♦성시간
♦묵주기도, 미사지향:
⚫세계평화, 죄인들의 회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종식을 위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이한택 주교님의 영육건강을 위하여
⚫연옥 영혼들을 위하여, 오늘 파티마 평화의 성당을 찾아오신 모든 이들과
이제까지 다녀가신 모든 이들을 위하여, 후원 회원들과 은인들,
그리고 봉사자들을 위하여 봉헌하겠습니다.
⚫성모님께서 천주의 모친 되심과 인류의 어머니이심을 부인하는 이들에 대한 배상으로 기도하겠습니다
♦쎌기도, 묵주기도: 영광의 신비, 남북 통일을 위한 기도
♦영광의 신비 묵상 전문 녹음
♦성체강복
♦하느님 찬미가
♦오전 강의:
♦1강의: “ 파티마의 두 어린이 성인처럼 우리도 성인됩시다. ”
강의 전 시작 성가 34번 1절ㅡ3절부름.
1) 내가 사랑받았고 은총 속에 산 것은 성령께서 나에게 가르쳐 주셨도다 주의 참된 평화여 신성한 감격이여
2) 주님 안에 영원히 나의 삶을 드리니 나의 모든 괴로움 멀리 사라지도다 항상 주께 바라면 근심 걱정 없으리
3) 주님과의 사랑을 끊을 자 그 누군가 주는 나의 힘이요 나의 기쁨되도다 주님 안에 영원히 평화 누리게 되리
후렴 : 주는 나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여러 형제 자매님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여기 와서는 우선 묵주 기도도 하고, 노래도 불렀습니다.
우리 주님께 인사드렸으니까 서로서로 옆에 앉으신 분들께 인사하면서 환영의 박수를 서로 쳐 주세요. 짝짝짝짝.
친구들도 계시고, 가까운 분이 옆에 앉아 계실 수도 있지만, 생소한 분들도 계실 거예요. 처음 오신 분들도 계시고, 우리 주님 안에서 한 자리에서 모여서 기도도 같이 하고, 더위도 같이 하고, 시원한 것도 같이 하고, 이러니까 행복합니까? 안 행복합니까? 행복합니다. 행복하지요? 녜! 무지무지 덥고 그런데도 이게 우리들의 피서예요. 그리고 우리들 이 성당에 모여서 기도한다는 거, 혼자 하는 것도 소중하고 좋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혼자 하는 것보다 모여 하는 기도를 더 좋아하셔요.
이것이 우리 현대인들한테도 큰 의미가 있어요. 요새 우리들 집안에서 밥도 같이 먹고 어떠세요?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오늘도 식사하시면서 식사하실 때 다 여기 쳐다보고 하셨지요. 우리 현대인들 중에 특징 중의 하나가 뭐냐면, 내 개인 생활이 점점 더 소중해져요. 내 개인 생활이 점점 더 소중해지니까 어떻게 해요? 제가 어렸을 때는 저는 할머니 할아버지하고도 같이 살았고, 제가 클 때까지 할머니 할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는, 3세대가 같이 살았어요. 엄마 아버지만이 아니라, 할머니 할아버지도 같이 살았어요. 그분들이 돌아가신 다음에 어머님 아버님하고 같이 살다가, 제가 집을 떠났는데, 우리는 저희 집만이 아니고 우리 동네에서 거의 다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계셨었어요. 드물게 두세 대가 살고, 거의 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같이 살았어요. 이러니까 어떤 때는 엄마 아버지한테 야단을 맞을 때도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이리 오라고 그러면서 역성을 들어 줘요. 또 어떤 때는 아버지한테 벌을 받고 있으면, 할머니나 엄마가 아버님한테 죄송하다고 그래요. 이래서 아버님한테 용서를 청하는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았어요. 이것이 우리 공동 생활이에요. 아름다운 공동생활이에요.
이런 생활을 하다 보면, 학교에 들어가서 배우는 것도 참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도 더 중요한 거, 집에서 인생 교육을 기초 훈련을 집에서 먼저 받았어요. 그다음에 학교 가서 머리를 쓰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오늘날에는 생략되는 것이 너무 많잖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 빨리빨리 하라고 하는데, 날이 갈수록 더 빨라져요. 그래서 요새 젊은 엄마들은 아이들을 세살 때 벌써 학원을 보내요. 근데 엄마한테서 교육받고 아버지한테서 교육 받는 것을 껑충 뛰어서, 학원에 가서 영어 배우고, 엄마 소리도 못 배운 녀석이 마더 파더부터 배워요. 굿모닝서부터 배우고... 근데 집에서 엄마 아버지한테서 재롱부리는 거, 배워야 되고, 재롱부리는 거 자랑해야 되고 엄마 아버지한테서 칭찬을 듣고 이랬어야 되는데, 칭찬 듣기 전에 학원에 가서 점수 따려고 그러고, 이 점수 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요? 집에서는 엄마 아버지가 가르쳐 줄 때 돈 들어요? 안 들어요? 안 들어요. 엄마 정성만 드리면 돼요. 사랑만 주시면 돼요. 돈 안 들어도 돼요. 요새 꼬마들 학원에 보내는데 공짜로 됩니까? 이러면서 사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애들 키우는 거 어렵다고 그래요. 애들 키우는 거, 제일 잘 키우는 사람이 누굽니까?
유치원 선생님이에요? 수녀님이에요? 애들 제일 잘 키우는 사람이 아버지보다도 엄마예요. 꼬마들한테 엄마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고, 엄마가 진짜로 교육시키는 거예요. 그런데 요새 엄마들은 바빠서 그거 안 한다고 그래요. 그런데 엄마가 제일 바빠야 하는 게 뭡니까?
자녀 키우는 거예요.
제가 이 정도 하면서 오늘 우리들이 이 피정 때는 이 성당이 오면은 우리 공통점이 뭡니까? 우리의 공통점은 파티마의 성모님이에요.
우리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도 여러 가지가 있고, 우리나라 순례객들이 많이 가는 데가 파티마보다도 더 많이 가는 데가 어디예요?
메주고리야죠? 우리 성모님께 대한 신심도 성모님이 어디에 나타나셨는가, 무슨 말씀을 하셨는가, 이것에 따라서 성모님의 영성이 참 폭이 넓은데, 발현하실 때마다 특별한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이 성당에서는 성모님께서 우리한테 알려 주신 여러 가지 중에 파티마에서
세 어린이들을 통해서 우리 세상이 알려 주시고, 부탁도 하시고, 또 세상의 평화에 대해서 방법을 알려 주셨고, 또 부탁까지 하셨어요.
그래서 이 성당은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성당이에요. 이 성당 이름이 뭐죠? 파티마 평화의 성당! 아주 중요한 거예요.
우리가 보통 평화 평화해요. 우리 하느님 얘기할 때, 평화를 빼놓을 수 없죠. 성모님 말씀하는데 평화를 빼놓을 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당에서도 평화라고 하면서, 또 뭐라 그러냐면 파티마의 평화를 강조를 해요. 파티마 성모님의 평화. 근데 이게 돌아가신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이분이 교황님 되시기 전에는 교리성성의 장관이셨어요. 이때 추기경님이셨는데, 교황님 되시기 전에...
이분이 파티마 성모님에 대해서 말씀하시기를 뭐라고 했냐면, 오늘날에도 성모님 발현하신 것은 1917년 이에요. 100여 년 전에 발현하셨는데, 베네딕도 16세 교황님께서 장관으로 있을 때 말씀하시기를,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살아 있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우리 현대인들한테 파티마 성모님의 메시지는 상당히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보세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부터 시작해서 사실은 비오 12세부터 그전 교황님까지 포함해서 근래에 우리 시대의 교황님들은 한 분도 빼놓지
않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까지 포함해서 다 파티마 다녀오셨어요. 파티마 성모님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어요.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냐면 파티마 성모님의 발현 내지는 메시지가 그만큼 우리 현대인들한테 아주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거, 이것을 언급하는 거예요.
보여 주시는 거예요. 이러면서 요한 바오로 2세께서 프란치코 성인과 히야친타 성녀를 복자에 올려 주시고,
프란치스코 교황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이 두 복자를 성인으로 시성하셨어요.
이래서 지금 우리 성당에도 프란치스코 성인하고 히야친타 성녀 있어요.
그럼 이 성당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들은 적어도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아주 강하게 권장 하고 싶어요. 이 성당에 들어오시면 프란치스코 성인하고 히야친타 성녀에게 꼭 인사드렸어야 된다고, 저는 아주 강하게 권장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제가 이 두 어린이 성인들의 영성에 대해서 우리 여기 앉아 있는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다 우리 쉽게 성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드시 성인이 돼야 된다는 거, 제가 이거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먼저 질문을 하나 던지는 거, 여기 성인되기 싫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맞아요. 우리 중에 성인되기 싫은 사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신자가 성인 되는 거, 쉬우냐 이러면 다들 움츠러 드시죠.
나 같은 게 이러시죠. 지금 속으로 나 같은 게 어떻게? 그럼 되지 말라고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요? 기쁘게 돌아가시겠어요? 아마 돌아가면서도 아니 주교가 저런 말을 하고 있어. 댁에 가신 다음에도 되게 기분 나쁠 거예요. 내가 성당에서 그런 소리 들으려고 거기 갔었나?
당연히 그래야 돼요. 우리들이 다 성인 되고 싶을 뿐만 아니라, 여기 특별히 어린이 두 성인들을 이 성당에 모시고 있는데,
이 어린이 성인들을 보면서 우리들 자신감을 가져야 돼요.
이 두 어린이들이 성인 될 때 10살, 하나는 열 살 됐고, 하나는 열 살 안 됐어요. 그래도 성인이 됐어요. 10살도 안 된 꼬마들이 성인이 됐다고 그러면, 나도 성인이 되고도 남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성인이 못된 거, 이거 우리들 생각을 하면서, 이 꼬마들이 성인이 됐으면, 나도 성인이 돼야 되겠다는 거, 다짐을 해야 돼요. 오늘 이 성당에 그냥 친구 따라서 들어오고, 이 꼬마 성인들에 대해서 생각 안 하신 분들은 제가 이거 말씀드린 것을 계기로 해서, 나도 성인 돼야 되겠다하고 다짐하세요. 지금...
제가 지금 침묵한 것은 뭐냐면 속으로 다짐하라고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여기서 이 피정 끝나고 가실 때에는 성당 밖에 나가시면서 우리 한국 사람들 파이팅! 파이팅! 이거 많이 하잖아요? 우리 화이팅 대신에, 나도 성인 된다! 이러시면서 나가셔야 돼요.
그리고 그 성인 되는 것을 지금 이 순간부터 우리 꼬마들 본받아서 시작해야 돼요.
우리 각자가 지금 쎌기도책이 앞에 있어요. 이 쎌기도책에서 중요한 것이 뭐냐면, 성모님께서 5월 달서부터 10월 달까지 발현하신 역사가 들어 있어요. 1917년 5월서부터 10월까지, 매달 세 어린이들한테 나타나셔서 대화하신 그 기록이 여기 다 들어 있어요. 성모님께서 매달 나타나시면서 꼬마들한테 반복해서 권장하신 거, 무슨 기도하라고 그러셨죠? 묵주기도 하라고 그러셨고, 또 뭘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희생을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이 두 가지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모든 형제자매님들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어린이들이 이것을 성실하게 해서 성인이 됐어요. 그러면 우리들도 성인 되고 싶으면, 이 어린이들만큼은 해야 돼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매달 어린이들한테 만날 때마다 반복해서 묵주기도 몇 단 하라고 그러셨어요? 백단? 단수 말씀하시지 않았어요. 단수는 말씀하시지 않고 그 대신에 뭐라고 그러셨어요? 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매달 이것은 반복해서 나오는 거예요. 매달 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열심히 한다는 것은 뭡니까? 내가 정성껏 하라는 것이죠.
우리 매일매일 정성껏 사는 것, 우리들한테 어떻게 보면 도전인데, 내 행복이 달려 있어요. 오늘 내가 열심히 사나 아닌가요 따라서 내가
행복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어요. 날씨 덥고 이런 날, 성모님을 만난 꼬마 셋은 이 더운 날에도 더워 죽겠다 이러지 않고, 주님 더운데
제가 이거 바치겠어요. 주님 제가 희생으로 바치겠어요. 이렇게 하면서 기뻐했어요. 땀 뻘뻘 흘리면서도 엄마가 양떼 데리고 나가라고
그럴 때도 알았어 엄마, 양떼 몰고 나갔어요. 이럴 때 짜증내거나 도망가거나 이러지 않고, 양떼 물고 나가고, 이런 거 이때 이게 뭐예요?
내가 기꺼이 할 것 같으면, 내가 행복해져요. 그런데 기꺼이 하지 않고 이럴 것 같으면, 무지하게 힘들어요. 짐스러워요. 부담스러워요. 이렇게 보면 우리 열심히 사는 게 뭡니까? 열심히 산다는 것은 예를 들어서, 이한택 주교가 오늘 파티마 평화의 성당에 와서, 여러 형제자매님들 만나는 거, 제가 여기 들어올 때부터 얼굴 찡그리고 들어오면, 여러 형제자매님들 기분 좋으시겠어요? 여기 계속해서 1시간 앉아 계시겠어요? 시계 보면서 언제 끝나나 그만하지 이러실 거예요.
그런데 저 나름대로 열렬히 이야기하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졸 수가 없잖아요. 저 늙은이가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내가 봐서라도 졸면 안 되지. 말똥말똥 쳐다보고 계시잖아요. 지금 이게 뭐냐면, 엄마들이 밥상을 차릴 때도 마찬가지예요. 고기가 있어야 되고, 아주 비싼 것을 차려 놔야지만, 맛있는 밥상이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우리가 된장찌개를 끓여 먹는다 하더라도, 뽀글뽀글 맛있는 향기가 나게 상위에 놓을 때도 김이 모락모락 나고 이럴 때, 그리고 상 들고 올 때도 정성껏 하는 것을 보면 어때요? 맛이 더 나지요. 그런데 얼굴을 잔뜩 찡그리고, 상에 놓는 것도 탁탁 놓고 말이죠, 숟갈 놓는데도 뚝 떨어지고, 이러면 엄마가 밥상 차리는 것의 의미도 없어도, 오늘 엄마가 기분 나쁜가 봐, 그러니까 마음 놓고 밥을 못 먹지요. 엄마가 얼마만큼 열심히 차리느냐에 따라서 밥맛이 나는 거예요.
그 자료가 무엇인지 상관이 없어요. 콩나물국이라도 그렇고, 된장찌개라도 그렇고, 엄마 정성이 들어가 있고, 엄마가 상 차리는 것에 대해서 정말로 식구들을 위해서, 나를 위해서, 이렇게 하신다는 것을 볼 것 같으면, 맛없는 것 하나도 없지요. 이것은 제 경험이에요. 저희 집은 부자가 아니었어요. 물론 내가 어렸을 때는 우리 대한민국이 다 가난했지만, 저희 집은 그 중에서 더 가난한 편이었어요. 엄마가 밥상 차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하는 것을 제가 어렸을 때도 느낄 수가 있을 정도였어요. 엄마가 그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밥상 차리는 거를 보면서, 정말로 감동을 안 받을 수가 없었어요. 무엇을 차려 놓으시든지 간에...
그러면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기도를 하라고 그랬을 때도, 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제가 오늘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성인 되는데, 제일 빠른 거, 나도 두 어린처럼 성인 될 수 있다. 그런데 무엇을 갖고 할 수 있는가?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좋은 기도문이라든가, 이런 것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부탁하신 것은 묵주기도였어요. 묵주기도에 포함된 것이 무엇입니까?
성호경, 영광송, 주의 기도, 성모송, 그 다음에는 예수님의 생애를 알려 주는 복음, 기쁨의 신비에서 사진 다섯 장이에요. 이 사진 다섯 장에 복음을 요약한 거예요. 이 사진 다섯 장이 뭡니까?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태중에 잉태 됐을 때, 임신하실 때부터 몇 살 때까지?
5단이 예수님 몇 살 때예요? 12살이지요. 빛의 신비 1단, 예수님 세례 받으실 때가 몇 살이십니까? 30살이에요.
그러면 기쁨의 신비에 우리 묵상하는 사진은 다섯 장인데, 12살 때까지 사진 밖에 없어요. 그러면 12살서부터 30세까지는 묵주신공에도
없어요. 사진이 없어요. 또 복음에도 성모님이나 예수님에 대해서 12살서부터 30살 때까지는 한마디가 없어요.
그래서 12살 때부터 30살 때까지를 우리는 천주교에서는 보통 뭐라 그래요? 예수님의 무슨 생활? 숨은 생활이라고 그래요. 왜냐하면 복음에 전연 나타나지 않으니까... 그런데 오늘 이 말씀 시간에는 바로 요것에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가 묵주기도 할 때, 기쁨의 신비 5단 바치면, 예수님의 12살이죠. 12살 때 사건이에요. 성모님하고 요셉성인하고 예수님하고 성전에 갔다가 예식이 끝난 다음에 돌아가는데,
두 분이 서로서로 생각을 했죠? 예수가 엄마 따라간 거 같다. 또 성모님은 예수가 아버지 따라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셨어요. 그런데 주막에서 물 마시고, 땀 씻고, 이러면서 서로 보니까, 예수 어디 있어요? 이러니까, 아니 당신하고 안 왔어요? 서로가 깜짝 놀라서 예수님이 안 보이니까, 또 하루 길을 가셨어요. 얼마를 가셨어요. 사흘 길을 가셨어요. 하룻길을 가셔서 예수님을 잃어버린 것을 발견하시고서는 잃어버린 예수님을 찾으러 사흘 길을 헤매면서, 다시 예루살렘 가셔서 성전에서 발견하시잖아요. 그런데 요셉성인하고 성모님하고 얼마나 헤매면서 가셨다는 것을 알 수가 있어요. 이건 묵주기도 하면서 묵상하는 거예요. 우리가 그냥 은총이 은총이 하면서,
성모송 열 번만 하고, 후딱 지나가는 것이 아니고, 요셉성인하고 마리아가 사흘 동안이나 헤매면서 하룻길을 되돌아가는 거예요.
우리 이거 묵상하는 거예요. 요셉성인하고 성모님이 다리 밑에도 보고, 나무 밑에도 보고, 골목길 다 찾아보고,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들고 이런 옷을 입은 예수님을 못 받느냐 물어보고, 울고, 이러면서 사흘 길을 가서 만나는 거 아니에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한테 묵주기도 열심히 하고, 매일 하라고 그러신 거, 우리 매일이라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어떻게 표현합니까? 매일이 뭐예요? 꼬마가 매일이 뭐야? 이러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돼요? 아무도 대답 안 하세요.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다른 말로 뭐라 그래요. 날마다. 날마다 이게 매일 아니에요? 그럼 성모님께서 꼬마들한테 매일 묵주기도 하란 말은 다른 말로 하면 뭐 해요? 날마다. 그런데 이한택 주교는 뭐라고 그러냐면, 묵주기도 안 한다 하더라도 묵주기도가 원래 묵상기도이니까. 성모님께서 날마다 하라고 그러신 것을 저는 조금 더 욕심을 부려서 시간마다라고 하고 싶어요. 시간마다 묵주 들고 하는 거보다, 생각을 해라 이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여기 젊은이들 얼굴도 보여요. 젊은이들이 연애 걸거나, 연애 끝나 가지고 지금 결혼한지 얼마 안 되고, 이러신 분들 연애 시절 한번 생각해 봐요. 한 번 만나기 시작한 다음에 일주일이 길어요? 짧아요? 너무 기니까 어떡하죠? 전화해야죠. 요새 같으면 뭐 해요? 식탁에 앉아서 꾹꾹 누르면서 이거 맛있다 하면서 문자 보내지요. 어디서 아름다운 꽃을 봐도 카톡 보내지요. 사진 찍어서 보내고, 난리가 나잖아요. 이게 뭐예요? 날마다가 길어요. 그러니까 시간마다, 그러니까 우리 묵주기도 하는 거, 성모님께서는 세 어린이들한테 날마다 하라고 그러셨어요. 날마다 하라고 그러셨는데, 우리 묵주기도를 날마다 할 것 같으면, 이 사진이 내가 밥 먹을 때도 보이고, 내가 걸을 때도 보이고, 성당에서는 물론 보이고, 운전할 때도 보이고, 걸어갈 때도 보이고, 아플 때도 보이고, 기쁠 때도 보이고, 이러는 거예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을 때에는, 꼭 정해 놓은 시간이 아니에요. 수시로 보이고, 수시로... 제가 군대 생활을 할 때 친구들이 불침범 서고 이럴 때, 상당히 외롭고, 춥고, 이럴 때가 있어요. 그럼 제 친구들이 꺼내서 보는 게 있어요. 자기 애인 사진 보는 거예요. 그러면 자기 애인 사진만 봐도 힘을 내요. 용기를 내고, 추위도 이겨내고, 고참한테 기합 받은 것도, 억울한 것까지도, 다 참을 수가 있어요. 내가 너를 위해서 이거 참아 받는다 이러면서 말이죠. 우리 묵주기도 하는 것도 이런 효과가 있는 거예요. 성모님께서 매일 하라고 그러신 거, 이것은 뭐냐 하면, 저는 욕심을 부려서 매 시간마다 내가 성모님을 그리워하고, 예수님을 그리워하고, 이러는 거, 묵주기도가 묵상 기도라고 하는 거, 요한 바오로 2세께서 묵주기도에 대해서 긴 글을 남겨 놓으셨잖아요. 성모님의 묵주 기도라는 것, 거기에서 강조하신 것이 뭐냐 하면, 묵주 기도는 앵무새처럼 성모상만 반복하는 거, 이것은 제대로 된 기도가 아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묵주기도 제대로 하려면 묵상 기도를 꼭 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를 하셔요. 그리고 우리들 이냐시오 성인, 어제가 대축일이었는데,
로욜라 이냐시오 성인을 인용하시면서, 이냐시오 성인은 특히 이 복음 묵상 할 때 관상이라는 단어를 써요. 관상 기도를 해야 된다고, 관상이 뭐냐면 관상은 내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이 다섯 가지 감각을 다 활용하여 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 보고, 하는 것까지 기도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성모님의 상본을 보면서 기도하는 거, 이거 내가 좋아하는 상본을 볼 것 같으면, 그냥 상본없이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는 거예요. 외국 성당에 가면 입구서부터 조각품이 참 많고, 동상들이 많고, 아름다운 성화들이 많지요. 그게 다 뭐냐면, 기도하는 거예요. 봄으로 인해서 기도를 하는 거예요. 우리 이 십자가의 길도 마찬가지예요. 십자가의 길도 십자가의 길이 동상 없이 내가 십자가의 길을 하는 것은 너무 막연하지요. 그런데 이 십자가의 길 동상을 보면서, 우리가 14처, 15처를 돌면서 기도하는데 도움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묵주기도도 그런 거예요. 그러면 성모님께서 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신 게 뭐냐면, 사진 열심히 들여다보라 하는 거 하고, 똑같아요. 그러면 우리들이 어른이 된 오늘날도 성인이 되는 거, 두 어린이가 이미 성인이 된 것처럼, 나도 성인이 되고 싶으면 어린이들한테 내가 본받아야 돼요.
어린이들이 성모님 매달 한 번씩 만나서 대화할 때마다 성모님한테 질문도 하고, 성모님께서 부탁하신 것도 있고 이래요. 이 쎌기도책 내용을 보면,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보시면 우리들이 대화하는 거하고 아주 똑같아요. 성모님께서 두 번째 만나셨을 때 그러잖아요. 너희들 다음 번에 올 때는 읽는 것 좀 배워 가지고 와라. 이 세 어린이들 학교도 안 다니고 그러니까 달력도 볼 줄 몰라요. 나중에 루치아 수녀님이 기억을 하면서, 당신들이 성모님 만났을 때 기억을 하면서 쓴 책이 여기에 있는 발현에 대한 보고서인데, 그러면 이 책에서도 가끔 가다가 루치아 수녀님께서 그렇게 나와요. 예를 들어서 8월 달에 성모님을 만났는데, 8월 달에는 13일에 뵈올 수가 없었어요. 왜냐하면 시장이 세 어린이들을 잡아 놓고, 성모님 만나는 날 못 가게 했어요. 그래서 13일 날 뵙지 못했는데, 그 다음에 시장이 풀어줘서 나왔을 때, 며칠 지난 다음에, 19일 날 성모님을 뵙게 되는데, 이때도 보면 루치아 수녀님이 내가 정확하게는 모르는데, 내가 달력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에, 아마 19일이 맞는 것 같다 이렇게 표현을 해요. 자신있게 19일이다 이러지 않고 말이죠. 이런 것처럼 우리들도 성모님이나 하느님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들이 내가 원하는 만큼 되지 못할 때가 많지만, 세 어린이들이 할 수 있는 것만큼은 나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달리 말할 것 같으면, 우리들이 성인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이렇게 말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 두 어린이 성인들을 보면서, 내 생활을 보면 어린이들이 성인이 될 수 있었다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자신감을 갖게 되는 거죠. 그러면 이 성인들은 확실하게 이 책을 곰곰히 읽어 볼 것 같으면, 나도 묵주기도 열심히 하고, 내가 매일매일 겪는 희생을 관대한 마음으로 바칠 수 있다면, 두 어린이 성인이 되신 것처럼 나도 성인이 될 수 있겠구나, 이 정도의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뭐냐 하면, 매일 열심히 예요. 중요한 것은 내가 무슨 기도를 하든지 간에 내가 열심히 해야 돼요. 내가 무슨 희생을 하든지 간에 열심히 해야 돼요. 그리고 매일 하는 거, 우리들이 이렇게 피정을 하거나, 무슨 유명한 신부님, 주교님의 강론을 들어 가지고 내가 화끈하게 정말로 내가 성인이 되는 것 같은 때가 있어요, 근데 며칠 지나면 또 식어지기 시작을 해요. 그래서 피정을 갔다 와서는 처음에는 천사처럼 성인이 된 것처럼 살아요. 그런데 며칠 지난 다음에는 아이고 그러면 그렇지 내가 뭐 별 수 있나?
세 어린이들한테 배워야 되는 것은 뭐냐면, 세 어린이들은 우리들한테 결코 영웅적인 것 보여 주지 않았어요. 그 대신에 성모님하고 약속한 것, 매일 열심히 하는 거, 이거 열심히 했어요. 제가 이 성당에서도 여러 번 반복해서 말씀드리지만,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성물방에서 이 어린이들 성인전을 사서 보면 거기 그런 것이 나와요. 어린이들이 묵주기도를 할 때 우리들하고 똑같아요. 묵주기도 열심히 한다고 어떤 때는 빨리 끝나고서 놀고 싶어서 뭐라 그러냐면 은총이 은총이 은총이 나머지는 그냥 지나가 버렸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이 뭐냐면, 이 어린이들을 나름대로 열심히 한 거예요. 성모님이나 예수님은 그거 인정해 주셨어요. 열심히 한 거... 이게 뭐냐면 우리들 각자가 나 같은 게 뭐... 이러지만 나 나름대로 열심히 하면 다른 사람하고 비교할 때는 모자라는 것이 있는 것 같지만. 예수님이 보실 때, 성모님이 보실 때는, 날마다 기특하게 보셔요. 내가 바치는 거, 기꺼이 받아들이세요. 우리 이거 잊지 말아야 돼요. 중요한 것은 내가 정말로 열심히 바쳤나? 정말로 성실하게 바쳤나? 그리고 꾸준하게 매일 바쳤나? 이게 중요해요. 무슨 큰 피정 나오고, 유명한 신부님 오시면, 그때 열불나게 쫓아다니고,
막 앞자리에 앉아서 이러지만, 신부님 간 다음에는 또 옆에 사람하고 눈을 흘키고 싸우고 이러는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 성실하게 하는 것이 참 중요해요. 제가 아까도 어렸을 때 말씀을 드렸는데, 저는 지금도 주교가 되고, 늙은이가 돼서, 저 역시도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제 어머니를 기억할 때는 부모님께서 매일매일 성실하게 하신 거, 지금도 정말로 감동이에요. 기억만 난다 하더라도...
그니까 제가 성모님께 묵주기도 드리는 것도 제 어머님이 아니면 제가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없었을 거예요. 왜냐하면 제가 제 어머님을 보면서 성모님께서 이렇게 열심히 하셨겠구나. 우리 어머님이 성모님 닮으셨구나. 이렇게 생각을 하니까... 그리고 제가 지금도 많은 엄마들을 이렇게 뵈면서 제 어머님하고 성모님하고 이렇게 오늘은 겹쳐 보게 되요. 이럴 때 저는 우리나라의 오늘날도 많은 엄마들한테 감사하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 더위 속에서도 우리의 어려운 가운데서도 모든 가정에 있어서 엄마들 때문에 가정의 평화가 오고, 여러 가지 어려운 것이 극복이 되고, 평화가 오고, 행복이 오고, 이러는 것을 저는 믿는 사람이에요.
돌아가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성모님을 강조하시면서 우리 교회에 강조하신 것이 뭐냐면, 우리 교회는 아직도 너무나 남성적이고, 여성적인 것이 너무 모자란다. 이렇게 말씀을 자주 하셨어요. 그러니까 신부님이나 주교님들이나 권위를 강조하시고 그런 것을 보면, 너무 엄격하고, 너무 규칙적인 것, 이런 것을 강조하고, 엄마처럼 부드럽고, 엄마처럼 포용하고, 엄마처럼 받아들이고, 엄마처럼 참아주고, 하는 이런 것이 우리 교회는 부족하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런 점이 있어서 저는 모든 가정에 있어서 엄마들의 역할, 여성들의 역할, 남성들은 나는 배운 게 없다 하고 이치를 많이 따져요. 엄마들은 항상 감성적인 것, 식구들이 느끼게 해 줘요. 평화를 느끼고, 엄마들이 용서해 주는 거, 받아들여 주는 것, 참는 것, 이런 거는 엄마들이 더 우리들한테 느끼게끔 해 줘요. 성모님께서는 이런 것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 묵주기도 기쁨의 신비에서 빛의 신비로 들어가는 기간적으로 시간적으로 봐서 18년이 쭉 빠져 있어요. 기록상으로는 쪽 빠져 있어요. 복음 어디서든지 예수님 스무 살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25살 때는 어떻게 사셨는지, 이런 것은 기록이 없어요. 그런데 잊지 마세요. 아까 우리 성체강복 하고서. 하느님 찬미가를 우리가 할 때 셋째번 것, 또 한번 읽어 보겠어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 받으소서.
이것 참 중요한 말씀이에요. 예수님은 하느님이신데, 이 세상에 왜 인간이 되어 오셨는가? 이거 우리들한테 큰 위로가 되는 거예요.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다들 성인이 되고 싶은데, 겸손하셔 가지고, 나 같은게 어떡해 성인이 돼? 이러신 분들 계시죠? 그런데 보세요.
여기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가 아까 성가 34번 부를 때 끝에 뭐라 그랬어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그랬죠?
이것은 뭐냐면 하느님이 왜 사람이 되셨는가? 예수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전능하신 하느님이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 돼서 오신 분을 예수님이라고 그래요. 예수님이 굳이 왜 인간이 돼서 오셨는가? 중요한 거 한 가지가 뭐냐면, 지금 여기서 우리가 읽은 것처럼 참 사람이라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예수님은 성모님 태중의 잉태하실 때부터 죽었다 살아나셔 가지고, 승천하실 때까지 우리하고 똑같은 인간이셨어요. 나하고 똑같은 인간이셨어요.
그러면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18년 동안, 12살 때부터 30살 때까지 기록이 없지만, 우리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있어요. 그동안 예수님은 18년 동안 참 사람이셨어요. 그런데 18년 동안 기록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것은 달리 우리가 어떻게 해석해야 됩니까? 나하고 아주 똑같으셨다는 이야기예요. 나하고 똑같으셨기 때문에 기록해 놔도 그까짓 것, 이럴 정도예요. 이것을 우리가 뒤집어서 얘기하면 뭐예요? 내가 지금 이 더위 속에 쩔쩔매면서 어떤 때는 땀을 씻으면서도 아이고 주님은 왜 이렇게 더워요? 왜 내 기도 안 들어 주셔요? 이럴 때 예수님도 이 과정을 겪으신 거예요. 왜냐하면 이 과정을 안 겪으셨으면 예수님 참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없어요. 복음의 예수님 똥 싼 거, 오줌 싼 거, 기록되어 있어요? 없어요. 그런데 성모님이 예수님 기저귀 안 갈아 끼셨다면 이거 맞는 거예요? 틀리는 거예요? 대답해 보세요? 틀렸어요. 틀려요. 참 사람이면 똥도 싸고, 오줌도 싸야지요. 그러면 성모님께서는 예수님 갓난이 때, 똥 싸고 오줌 싼 거, 다 가리셨어요. 이거 보면은 기록 안 했어요. 제가 목사님하고 얘기할 때, 어떤 때는 성모님 얘기를 하면, 성모님을 안 받아들이잖아요? 제가 그때 이런 비슷한 얘기를 해요. 종종 해요. 왜냐하면 모든 것이 개신교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것만 진리라고 그러고,
기록된 거 없으면 안 받아들인다고 그래요. 제가 그래요. 예수님은 화장실에 한 번도 안 가셨네요? 그러면 지저분한 소리 한다고 그래요.
지저분한 게 뭐예요? 화장실에 가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 복음에 화장실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맞아요? 틀려요? 지저분하다고 대답도 안 해요? 그럼 제가 그래요. 예수님 참 사람 이시라면 나하고 똑같아요. 똑같게 화장실도 가셨어야 되고...
그러면 지저분하지 않은 거, 제가 여쭤볼게요. 목사님 이런 메시지가 뭐라 그랬냐면은 그럼 예수님 한 번도 웃으시지 않았네요? 울으신 거는 있는데, 웃으신 건 없잖아요? 그럼 예수님 진짜로 안 웃으셨어요? 예수님은 한 번도 안 웃으셨으면 사람이에요? 사람은 사람이지만 이상한 사람이지요. 참 사람은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여기서 우리가 기록한 거. 읽은 거. 참 중요한 거예요/ 예수님 참 하느님이신 동시에 참 사람이라고 그러는 거. 이거 아주 중요한 거예요. 그러면 18년이 얼마나 중요한가? 우리 잊지 말아야 돼요. 18년 동안, 예수님 열두 살 때 부터 30살 때까지 기록이 없는 것은 우리 모두 하고 같은 거예요.
성모님 입장에서는, 예수님 입장에서는, 기록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우리들하고 똑같기 때문에 그래요. 그리고서 보세요. 예수님이 어디 가시든지 강론하셨잖아요. 예를 드실 때도 보면, 우리들한테 어려운 얘기를 하실 때에도 비유를 들면서, 아주 친절하게 우리한테 이야기해 주셨어요. 이게 뭐예요? 예수님 참 사람으로 농사짓는 것도 봤고, 동네 사람들이 사는 것도 봤고, 요셉 성인하고 성모님하고도 평범하게 사셨기 때문에... 요새 우리가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공경하지만,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는 동네 사람들이 마리아를 성모님이라고 그런 사람 있었어요? 없었어요. 예수님 강론하셨을 때도 사람들 그러죠. 마리아의 아들이 아니야?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런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가 있지? 이랬어요.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안 했어요. 그러면 이게 뭐냐면, 성모님이나 예수님이나 정말로 예수님이 나자렛에서 사신 거, 우리들에게 똑같게 인간적으로 사셨기 때문에,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준비과정이에요. 예수님께서 나자렛에서 30년을 제대로 살지 않으셨으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 못했을 거예요. 보세요. 올리브동산에서 기도하셨잖아요. 세 번이나 아버지 나 죽기 싫어요. 이 잔을 멀리 해 주십시오. 세 번이나 기도하셨어요. 이거 우리들하고 똑같아요. 무서워요. 공포예요. 죽기 싫어요. 그런데 하느님 아버지께서 대답 안 하시니까,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가 가기 싫어도 이 십자가의 길을 가야 되겠다 하고 가신 것이 십자가에서 못 박혀 돌아가신 거예요. 우리들도 그런 때가 많아요. 여러 형제자매님들도 열심히 살고, 기도 생활 열심히 하고, 이러는데 사업이 망할 때가 있어요. 내가 열심히 열심히 일했는데,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암이라 그래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아요. 이때 우리들 하느님한테 원망이 나와요. 하느님 내가 지금까지 잘못한 게 뭐가 있어요? 난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잖아요? 내가 우리 식구들을 위해서 이렇게 땀을 흘리고 일을 했는데, 이것밖에 안 돼요? 이럴 수 있어요. 이거 나쁜 거 아니에요. 이거 내가 희생으로 바칠 수 있는 거예요. 희생으로 바치면 이것은 예수님 닮는 거예요. 예수님하고 같아지는 거예요. 사실 예수님도 이 길을 가신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인생길이 결코 아무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님께서 우리한테 보여 주신 거, 이분이 훌륭한 말씀만 하신 것이 아니라, 삶과 죽음과 부활로 우리한테 내 인생길에 대해서도 말씀하시고, 보여 주신 거예요. 그래서 나도 세 어린이들처럼 할 수 있는 만큼 내가 힘껏 하고, 매일매일 열심히 살 것 같으면, 나도 예수님처럼 살고, 예수님처럼 죽을 수가 있어요. 그러면 그때 나도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 모두 내가 마음만 먹을 것 같으면, 그리고 내 힘껏 노력하면, 나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이런 소신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삼종기도 바치겠습니다.
♦삼종기도
♦점심 뷔페식
♦오후 강의:
♦2강의: “매일 아침 생각과 말과 행동을 선물로 바칩시다.”
점심 맛있게 드셨죠? 녜!!!
이 시간에도 오전에 우리 생각한 거, 계속 가도록 초대합니다.
여러 형제자매님들 점심 맛있게 드신 것은 뭐예요? 우리 성인들 때문에 힘이 더 생기는 거예요. 오전에 제가 예수님께서 참 하느님이시고 또 참 사람이신 분이라고 제가 강조를 했습니다. 여러 형제자매님들 어려울 때마다 예수님만 믿고 꼭 같이 하면 우리들 절대로 절대로 실망하지 않아요. 우리들이 여기까지 어려움을 많이 겪었는데, 우리 중에는 십자가 지지 않으신 분이 한 분도 안 계셔요. 저도 저 나름대로 십자가가 있어요. 지금도...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는 어떠한 형태로든지 십자가를 지지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예수님께서 하느님이시면서도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한테 보여 주신 것이 바로 그거예요. 아까 제가 잠깐 언급했습니다만, 예수님 지상 생활하실 때, 예수님을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인정하는 사람들은 예수님 제자들 가운데에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들 사실 없었어요. 예수님 수난 받으실 때, 십자가의 길을 갈 때, 어떠셨어요? 다들 도망갔었잖아요. 만일에 예수님의 올리브동산에서 하느님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이때, 기도하시는 것 대신에 여러분들 민주주의식으로 하면은 내가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 찬성하는 사람 손들어 봐 이러셨으면, 어떻게 됐을까요? 투표에서 이기셨을 것 같아요? 졌을 것 같아요? 아마 한 사람도 찬성하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 시대에 우리가 민주주의 민주주의 하는데, 민주주의가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우리가 어떤 때는 민주주의라 그러고,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그러고, 이게 민주주의예요. 지금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지금 되고 있습니까? 대답 한번 해 보세요. 제대로 되고 있어요? 아니요. 민주주의 제대로 안 되고 있어요. 우리들 원칙은 다 알고 있어요.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투표하고, 투표하면, 다수결의 원칙을 우리가 있기 때문에, 다수결로 결정하기 위해서 투표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지난번에 소위 말하는 6.3 선거 때 보세요. 민주주의 제대로 지켰는가?
우리나라 선거는 의무로 되어 있고, 대통령 있고, 국회의원 있고, 이런 분들 다 하나같이 민주주의 원칙을 살고 있는 분들이에요. 민주주의 원칙 때문에 월급도 받고, 모든 것 다 누리시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진짜 백성들을 위해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하고 있는가? 6.3 사태만 본다 하더라도, 선거관리위원회가 뭡니까? 선거 잘 지킬 수 있도록 평상시에 준비를 하고, 더군다나 선거 날에는 아무 차질 없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있거든요. 그런데 그 위원회는 봉사회가 아니에요. 월급 많이 받는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막상 투표날 뭐 했어요? 여행 가고, 친구하고 가고, 이랬던 분들이에요. 근데 막상 투표소에서는 어떻게 됐습니까? 투표용지가 모자르고, 투표용지가 모자란 것 때문에 요새 젊은이들이 올림픽공원에서 지금도 데모하고 있어요. KBS는, 신문에서는, 사진도 안 찍어 주고, 보이지도 않지만, 실제로는 거기서 매일매일 이 더위 속에서도 그 투표함, 그 용지 흐트리지 못하도록 지키고 앉아 있거든요. 이게 무슨 말이에요? 특별위원회가 있었으면 이런 차질이 없이 잘 진행돼야 되고, 평화로워야 되는 거죠. 그런데 그거 안 됐잖아요. 원칙이 있지만, 그거 지키지 않아요. 이런 점에서 민주주의가 안 지켜지고. 다수결의 원칙이 기가 막힌 거예요. 그리고 법치주의가 뭡니까? 민주 사회에서 법치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뭐냐 하면, 법 앞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 이거예요. 모든 사람이 뭡니까? 대통령서부터 해서 어린이들까지 포함해서 심지어는 뱃속에 있는 태아까지 포함해서, 법 앞에는 평등해야 돼요. 솔직히 보세요. 지금 진보 보수 갈라치기 하는 거 아니에요.
실제 대한민국의 대통령서부터 해서 장관들 중에 전과자 아닌 사람들 몇 안 돼요. 다들 3범 4범 이래요. 우리 대통령도 재판 안 하려고 중간에 끊었잖아요. 어제 통과시킨 게 뭐예요? 재판 안 하려고 검사도 법을 바꿔 버렸어요. 기가 막히잖아요. 민주사회에 이런 점에서 우리들 다시 한번 오전에 우리 생각한 게 뭐예요? 성모님께서 발현하셨을 때, 어린이들한테 성모님께서 말씀하신 거, 세계 평화에 대해서 말씀하신 거, 묵주기도 메일 열심히 하고, 매일 희생 바쳐라 이러셨어요.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우리 신자들만이라도 천주교 신자들만이라도 더 욕심을 부린다면은 개신교도 예수님을 믿고 복음을 믿으니까, 개신교까지 합쳐서 하면 더 좋고 이러는데, 개신교는 성모님을 공경하지 않으니까, 그럼 우리 천주교 신자들만이라도 성모님께서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한테 말씀하신 것, 그대로 실천 할 것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에 평화가 안 올 수 없어요. 제가 말씀드린 것을 뒤집어서 얘기하면 무슨 뜻이데요? 파티마 성모님께서 백여 년 전에 세 어린이들한테 아주 중요한 것을 말씀하시고, 간곡히 부탁을 하셨는데, 우리 천주교의 지도자들이나 신자들까지 포함해서 성모님의 메시지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려요. 오늘날도 마찬가지예요. 우리 성당에 성모님을 공경하기 때문에, 파티마 성모님을 좋아하기 때문에, 여기에 와 계시지만, 지금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제가 볼 때는 다 헤아려 봐도 100명이 안 되세요. 우리 천주교 신자가 지금 대한민국에 600만 명이 넘는데, 지금 여기 100명도 안 돼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파티마 성모님 죽으라고 말씀하셨는데도, 신부님들이나 수녀님들 포함해서 파티마 성모님 맞아 맞아 이러면서도 나한테 별 볼 일 없어. 이러니까 성모님이 간곡히 부탁을 하셨는데도, 물론 파티마 성모님 메시지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버렸다고 그래서 지옥가지 않아요. 지옥가지 않으니까 내가 꼭 가야 돼? 내가 꼭 파티마 성모님 말씀을 들어야 돼?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면 그렇게 안해도 지옥가지 않아요. 파티마 성모님 몰라도 지옥가지 않아요. 저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그런데 반면에 파티마 성모님께서 이렇게 간곡히 부탁하신 거, 우리들한테 상당히 소중하기 때문에 이대로 한다 할 것 같으면, 성모님 마음 더 기쁘시고, 성모님 기쁘시면 또 누가 기뻐하시겠어요? 성모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예수님이 기뻐하시면 누가 기뻐하시겠어요?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지요.
묵주기도가 왜 중요한지 아세요? 묵주 기도를 하면, 우리 성모님의 생애를 묵상을 해요. 오전에 제가 제 어머님 말씀을 드렸잖아요. 끔찍하게 감사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그러면 예수님도 어머님 잊지 않는 효자였었어요. 그렇죠? 그러니까 우리 묵주기도를 하면 성모님 생애를 훑어보는 것이 묵주기도인데, 성모님 생애를 훑어보면, 성모님의 생애는 누구를 위해서 사신 거예요? 예수님... 이것은 우리 의심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예수님 위해서 사신 거예요. 제가 오전에 예수가 누구냐? 하느님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을 예수님이라고 우리가 그런다, 그랬어요. 그럼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임신하는 순간부터 누구한테 임신하셨어요? 마리아 성모님한테 임신 되셨잖아요. 그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시는 순간, 이게 시발점이죠. 인간 되는 시작점 아니에요? 이 순간부터 예수님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실 때까지 예수님하고 성모님하고 떨어지신 적 없어요. 우리 묵주기도 빛의 신비 할 때, 빛의 신비 2단이 카나에서 술의 기적을 물을 술로 변화시킨 기적을 우리가 묵상하잖아요. 그러면 오전에 제가 말씀드린 기쁨의 신비는 예수님 어린 시절에서부터 해서 청년이 될 때까지 생애예요. 기쁨의 신비 5단은... 빛의 신비는 뭐냐면, 예수님께서 성모님 슬하를 떠나서 공생활 하시는 거예요.
예수님이 나자렛 목숫간을 떠나셨지만, 그 대신에 성모님은 어떻게 했어요? 예수님 가시는 데마다 따라가셨지요. 성모님이 목숫간에 앉아 계셨겠어요? 아이고, 예수가 어떻게 지내시는지, 밥은 제대로 먹는지, 아마 따라다니시면서 머릿속에서 내 아들 바라다보시고, 성모님이 여기저기 다니시면서 같이 예수님 따라다니는 여인들을 있었잖아요. 성모님이 여인들하고 함께 다니신 거예요. 보세요. 십자가 밑에도 누가 있었어요? 마리아 막달레나 있었고, 다른 여성들이 있었고, 성모님 같이 계셨었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나자렛을 떠나셨을 때는 성모님이 예수님 따라다닌 거예요. 나자렛에서는 예수님 성모님하고 요셉 성인 밑에서 같이 사셨지만, 청년이 되고 장년이 되고 집을 떠날 때, 요셉 성인은 그 사이에 돌아가셨죠. 요셉 성인은 예수님 열두 살 때까지는 확실히 살아 계셨었어요. 그런데 요셉 성인은 12살 이후에는 슬그머니 사라지셨어요. 무대에서 소리도 없이 사라지셨어요. 언제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몰라요. 우리 천주교 전통에서는 요셉 성인은 뭐의 주보라고 그래요? 임종하는 이의 주보라 그래요. 그건 왜 그러냐면 요셉성인이 돌아가셨을 때는 십중팔구는 임종하는 거 성모님이 보셨겠고, 예수님이 아직 공생활 시작 안 하셨으니까, 분명히 요셉성이니 돌아가실 때, 예수님 아마 성모님하고 같이 임종을 보셨을 거예요. 그러니까 요셉 성인은 우리의 천주교 전통에서 이것이 복음에는 없어요. 천주교 전통에서는 임종하는 사람의 수호자라고 그러는 거예요.
아주 당연한 거죠.
그러면 다시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생애인데, 거기에는 예수님이 반드시 손바닥과 손등처럼 성모님하고 예수님하고는 불가분의 관계예요.
같이 계셨어요. 그러면 오전에 제가 우리들 다 어린이 성인 본받아서 우리들 다 성인이 돼야 되는데, 파티마 성모님을 공경하는 우리들은 파티마 세 어린이들이 우리한테 모범생들이에요. 전부 우리들이 이 세 어린이들처럼 살면, 성인이 되는 거 확실해요. 그런데 성모님께서는 이거보다 더 근본적인 원칙을 우리한테 보여 주셨어요. 매일 열심히 하는 기도, 묵주 기도를 매일 열심히 할 것 같으면, 제가 오전에도 강조한 것이 열심히 하는 것, 묵주 기도를 열심히 하는 사람은 내가 100단 바치겠다, 200단 바치겠다, 은총이 은총이 은총이 이것이 기도가 아니고, 묵상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지금 제가 여기서 강론하면서도 저는 계속해서 예수님 성모님 태중에 잉태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천당으로 초대하신 것까지 저는 계속해서 반복해서 번쩍번쩍 들어와요.
이 강론하면서도...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제가 권장 하는 거, 이대로 하라고 안 해요. 저한테는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요새 젊은이들이 말하는 게 뭐예요? 꿀팁!!! 팁을 드리는 거예요. 그게 뭐냐 하면 묵주기도 우리 성모송 열 번씩 매단 열 번씩 하면, 5단만 하더라도 사람에 따라서 1시간도 걸리고, 30분도 걸리고 이래요. 그런데 너무 시간 걸리고 너무 졸리면, 이런 분들한테 그럼 성모송 빼고, 다섯 장씩 사진을 들여다봐라 이거예요. 기쁨의 신비 1단만 하더라도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와서 인사드리는 거지요.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이래요. 그러면 묵상하는 기도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묵상기도하라고 그러셨어요. 복음에서는 가브리엘 천사가 나자렛이라는 동네에 마리아라는 아가씨한테 와서 인사드렸다 이랬어요. 묵상하는 것이 뭐예요? 생각해 보세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오셨을 때, 마리아가 뭐 하고 계셨는지는 복음에 없습니다. 그렇죠? 그러면 우리가 묵상할 때는 그 질문할 수 있어요.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한테 오셨을 때, 마리아가 어디 있었는가? 부엌에 있었는가? 성당에 있었는가? 주방에 있었나? 그렇지 않으면 산책하고 있었나? 뭐 하고 있었나? 이거 복음에 없어요. 이거 내가 그려야 돼요.
틀릴 수도 있고, 맞을 수도 있는데, 제가 이것을 그리다 보니까 제가 어렸을 때는 저희 집에 고모님들이 있었어요. 저는 누나가 없어요. 그래서 어머님한테 누나 하나 만들어 달라고 그랬더니, 저희 어머님이 막내 고모 있잖아! 막내 고모가 우리 안나의 엄마야. 막내 고모가 우리 형님하고 저하고의 사이에요. 저희 형님보다는 아랫니고, 저보다는 위에요. 그러니까 어머니가 대답하시는 것이 막내 고모 있잖아! 그럼 제가 성모님 묵상할 때는 막내 고모님이 저한테 잘하셨어요. 저를 귀여워 해 주셨어요. 맛있는 것도 주고, 데리고도 다니고 이랬으니까. 그러니까 제가 누나 대신에 고모한테 많이 매달리고, 졸라 대기도 하고, 이랬었지요. 제가 성모님을 묵상할 때 제일 많이 떠올리는 것이 우리 막내 고모예요. 왜냐하면 어렸을 때 막내 고모가 저한테 친절하게 이렇게 해 줬으니까. 그럼 막내 고모가 됐다가, 저희 어머님이 됐다가, 이렇게 돼요. 제가 커가면서는 여성들 만나면 여학생들도 만나고 이러면 내가 좋다고 하는 여학생도 들어오고, 내가 좋다고 하는 여성들은 다 들어가 성모님한테... 그런데 제가 커 가지고 신학 도 공부하고 이렇게 하다 보니까, 성모님은 여성들 중에서 가장 이상적인 여성이에요. 저의 어머님보다도 훌륭한 여성, 제가 어머님을 무지하게 좋아했지만, 성모님은 우리 엄마보다도 더 훌륭한 여성, 이렇게 되는 거지요. 그럼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복음을 읽으면서, 마리아에 대해서 이렇게 나오는 거, 복음에 있는 것은 한 장면인데, 우리 읽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그림이 달라져요. 여성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볼 것 같으면, 성모님도 그렇게 예쁘게 보이지 않을 거예요. 이상하게 보이고 이러니까...
최근에도 카톡에서 봤는데, 메주고리의 성모님한테 누군가가 모독을 했어요. 가슴에 새까만 칠을 했고, 밑바닥 받침대에는 뭐라고 썼냐 하면, 치마 입은 악마라고 썼대요. 이게 뭐냐 하면, 누군가가 성모님 공경하는 것을 무지무지하게 싫어 한 사람이에요. 우리는 성모님이라고 그러는데 악마라고까지 하는 사람이 있어요. 누군지 몰라도 보는 사람에 따라서 이렇게 다르죠. 그러면 우리 교회에서는 묵상기도 하라고 그럴 때, 예수님께 대해서 묵상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해서 묵상하고, 성령께 대해서 묵상하고, 성모님께 대해서 묵상하고, 성인 성녀들에 대해서 묵상하고, 이러는데 우리 제일 중요한 것이 뭐예요? 맨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거, 내가 믿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에요? 하느님은 옛날 요리 문답에서는 전능하시고, 영원하시고, 전지하시고, 전선하시고, 이렇게 나와요. 한자말이니까 어려울 수 있는데, 한마디로 얘기해서 좋은 것들은 다 갖고 계시는 그분이 하느님이에요. 좋은 거, 거룩한 거, 아름다운 거, 이런 거 다 갖고 계신 분이 하느님인데, 여긴 나쁜 것 티끌만큼도 들어가 있지 않은 분이 하느님이에요. 그러면 하느님이 나한테 나쁜 것을 주실 수도 없고, 거짓말을 하실 수도 없고, 이런 것을 내가 믿는 하느님이라고 받아들이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성모님에 대해서 묵상하거나 예수님에 대해서 묵상할 때도 똑같은 거예요. 제가 묵상하면서 어떤 사람한테는 이게 나쁜 여인으로 볼 수도 있고, 거룩한 여인으로도 볼 수 있다 이러는데, 제대로 하느님을 믿는 신자 입장에서 묵상 할 것 같으면, 하느님이 악에 대해서, 나쁜 것에 대해서, 티끌만큼도 섞일 수가 없다 할 것 같으면, 성모님도 그러한 분이어야지요.
성모님도 그러한 분이에요. 우리 지금 쎌기도에서는 성모님이 어떤 분이에요? 티 없으신 분이에요. 그러니까 티 없이 결백하신 분, 깨끗하신 분, 성모님의 마음, 성모님의 성심을 이야기할 때,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이라고 그래요. 그래서 여기 성당에 계신 수녀님들도, 수녀님들 수도회의 이름이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예요.
왜냐하면 안토니오 몬시뇰께서 이 수녀회를 창설할 때, 파티마 성모님의 영성으로 수도회를 세우셨기 때문에,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 수녀회라고 하신 거예요. 그럼 우리 신자들 수도회에 수도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파티마 성모님을 생각할 때는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우리가 묵상할 때, 묵주 기도를 할 때, 성모님을 생각할 때, 우리가 악의 그림자, 이거는 우리가 거기에 포함시킬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 묵주 기도를 하면서 마리아의 생애하고 예수님의 생애를 쭉 훑어볼 것 같으면, 참 사람이신 예수님하고, 참 사람이신 성모님이 두 분이 살아가신 인생이 내 인생하고 겹치게 되는 거예요. 내가 묵주기도를 할 것 같으면, 그러니까 내가 묵주기도를 요한 바오로 2세께서 권장하신 것처럼 묵상을 하면서 묵주기도를 할 것 같으면, 내가 묵주기도 더 열심히 하면 할수록, 내가 성모님 하고 닮아지고, 예수님하고 닮아지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지금 이 자리에서도 매주 목요일 날 여기 와서 저하고 하루를 보내시는 분들. 오늘 같이 첫 토요일 날 오시는 분들, 첫 토요일 날 오시는 분들보다는 목요일마다 오시는 분들이 이한택 주교에 대해서 더 잘 알아요. 왜냐하면 목요일마다 오시는 분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이한택 주교가 잘 나지 않았어도 마주 보게 돼요. 그럼 이한택 주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목요일마다 오시는 분들은 이한택 주교의 흉내도 낼 수 있어요. 호호... 첫 토요일 날마다 오시는 분들은 이한택 주교가 이런 이야기 하더라, 이한택 주교는 키는 짝달막하고, 걸을 때도 절뚝절뚝 하는 것 같고, 그리고 아흔 살박이로는 괜찮더라, 이 정도는 아실 거예요. 그런데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은 이한택 주교 말 만들었지 오늘 처음 봤어. 이런 분들도 계실 수 있어요. 그런데 묵주기도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어떻게 돼요?
성모님하고 친해지고 성모님을 내가 느낄 수가 있어요. 내가 무엇을 하면서도 아! 그럴 수도 있어요. 아이고 성모님 아! 이거 너무 예쁘네요. 성모님 오늘 점심 때 그 김치가 참 맛있대요.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요. 이런 분들은 묵주기도 정말로 열심히 하신 분들이에요. 그런데 이 묵주기도가 왜 중요하냐 하면, 묵주기도 열심히 한 사람은 예수님하고 친해지고, 성모님하고 친해지고, 그러니까 누구하고 또 친해져요? 하느님 아버지 하고도 친해져요. 예수님께서 왜 인간으로 이 세상에 오셨는가? 하느님 아버지께서 생각을 하시니까 수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수천 년 전에도, 아브라함 할아버지도 보내시고, 모세도 보내시고, 예언자들도 보내 보시고, 이랬는데도 인간들이 제대로 따라갔어요? 안 따라갔어요. 제대로 안 따라갔어요. 보세요. 노아 홍수가 있었고, 밤에 유황 불이 떨어지고, 이랬어도 이놈의 인간들이 제대로 안 따라갔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하신 거예요?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아이고 내가 이 인간들을 끔찍하게 사랑하는데도, 이놈의 인간들이 내 모상으로 만들어서, 내가 자유의 의지를 줬더니, 이 의지를 갖다가 엉터리로 썼고, 그러니까 내가 모범생을 보내야 되겠다. 이 모범생이 다른 누구도 안 되고 내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겠다. 그래서 우리 인간들이 잘난 체하면서 어떻게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겁니까? 인생이 뭡니까? 사람이 뭡니까? 많이 이렇게 잘난 척을 막 쏟아 부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이 사람을 보아라, 이러고 보내신 게 당신의 외아들을 인간으로 보내신 거예요. 그러니까 이분이 이 세상에 오셔 가지고, 보세요. 어떤 인간의 지도자들도 이렇게 말을 한 적이 없는데, 우리 오전에 성가 부른 것처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공자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신 적 없어요. 나훈아가 이야기한 것처럼 테스요, 이런 말을 안 했어요. 인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나는 길이요 진리어 생명이다, 나를 따라와라. 그리고 또 예수님 요한복음 15장에서 무슨 말씀하셨어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로다. 이러면서 또 뭐라고 그러셨어요?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길거리에 버려져 가지고 사람들이 주어서 불태워 버린다고 했어요. 그런데 나한테 매달려 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이런 분이 예수님이에요. 예수님 싫어하는 사람들한테 너무 건방지다고 그러는 게 인간인데, 어떻게 네가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느냐? 이때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까지도 그러셨어요. 나를 따라 오너라. 그리고 예수님이 성체에 대해서 말씀하실 때, 뭐라 그러셨어요?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살아서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어느 인간이 이런 말을 했습니까? 예수님 밖에 이런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나한테 말씀하신 것이 복음에 있지요. 성모님이 예수님을 당신의 아들로 받아들이셨지만, 이 내 아들이 가브리엘 천사가 뭐라 그랬어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성모님께서 이것은 신학자들이 얘기한 거예요. 학자들이 뭐라고 그랬냐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신 동시에 예수님의 으뜸가는 제자라고 그러셨어요. 우리 마태복음에서도 이런 게 있죠.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강론 열심히 하고 계시는데, 성모님하고 다른 식구들이 몇 사람이 와서 예수님 강론 끝날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그러니까 조급한 제자들이 자꾸 성모님을 내다보기도 하고, 예수님한테 자꾸 손짓하니까, 예수님이 모른 척하고 강론하고 계시니까, 성모님 기다리고 계신다고 앉았다 일어났다, 안절부절 못 하니까, 예수님이 뭐라 그러셨어요?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제자들이냐? 형제들이냐? 이러면서 마태복음에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이다. 이러셔요.
루카성서는 좀 달리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다. 이러셨어요.
개신교에서 이것을 따 가지고 뭐라고 그러냐면, 봐라, 마리아가 예수의 엄마가 아니라고 그런다, 이러죠. 천주교에서는 뭐라 그래요?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뜻을 따라간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 그래요. 마리아만큼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한 사람 있으면, 손들고 나와라. 마리아만한 사람이 없지요. 예수님께서 그 말씀하신 것은 우리 엄마는 내 마음을 제일 잘 알기 때문에 어머님은 내가 지금 이 시간에 말하는 거, 방해놓지 않고 기다리시는 거예요. 나도 그 엄마의 마음을 알아요. 그러니까 지금 너희들 방해 놓는 거야, 이렇게 말씀하신 거예요.
예수님은, 사실은...
다시 묵주기도로 돌아와서, 우리 묵주기도 묵상하는 것이 그거예요. 아까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에게 권장하는 것이 뭐냐면, 혼자 묵주기도 할 때는 성모송 빼고, 지금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생각을 해 봐요. 아까 가브리엘 천사가 오셨을 때, 성모님이 뭐 하고 계셨나? 어디 계셨나? 기도를 하셨나? 이거 복음에는 없어요. 그러니까 정답은 없어요. 그 대신에 내가 마리아하고 어떻게 가까우냐에 따라서 그림이 실제와 가까워질 수가 있어요. 보세요. 2단 엘리사벳 방문하는 것도 똑같아요. 엘리사벳 방문하는 것도 우선 복음에는 마리아가 어떻게 갔는지 하는 것은 없어요. 그냥 바쁘게 유다 산골을 갔다고만 나와 있어요. 저는 이거 제가 생각을 할 때, 저는 시골 출신이니까 시골길을 그려요. 저는 포장도로도 아니고, 아스팔트도 아니고, 더 더군다나 자동차 길도 아니에요. 저 나름대로 경기도 안성 골짜기를 거기를 바쁘게 제 막내 고모가 걸어갈 생각을 해 봐요. 또 저의 어머님이 충청도예요. 그럼 어머님 처녀 때 걸어 다니면서 일하신 거, 논두렁인지 밭인지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나자렛에서 엘리사벳 집까지 달려간 성모님을 그려 보는 거예요. 루카성서에서 힌트를 줬는데 뭐예요? 가브리엘 천사가 떠나가자마자 즉시 갔다고 그랬어요. 그리고 또 우리 천주교에서 성경에서는 서둘러서 갔다 그래요. 그러니까 마리아가 무지하게 달려간 거예요. 이것을 볼 때, 뭘 바라고 이렇게 달려갔을까? 묵주기도 옛날 기도 치기는 어떻게 나오는지 아세요? 환희의 신비 2단에서 기도할 때,
애주애인(愛主愛人) 하는 덕을 주소서. 이렇게 기도를 해요. 하느님 사랑하고 인간 사랑하는 덕을 나에게 주십시오 하는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찾아갔는데, 이것을 묵상을 하면서 하느님 사랑하고, 인간사랑 은 무엇인가? 이것을 생각하게 돼요. 우리 천주교 전통기도문에서는 애주 애인하는 덕을 빌어요. 이게 무슨 뜻이에요? 저 같은 사람이 묵상할 때 그래요.
우리들이 어떻게 보면 두 아름다운 여인이 만나는 장면을 볼 수가 있어요. 마리아하고 엘리사벳하고... 그런데 루카 복음에서는 힌트를 우리한테 줘요. 마리아가 왜 서둘러서 갔는가?
루카성서가 마리아가 엘리사벳 찾아갈 때, 나자렛에서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말씀하신 게 뭐였어요? 네가 임신할거다. 이러니까 마리아가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가브리엘 천사한테 질문했잖아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내가 임신을 할 수 있습니까? 이럴 때,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한테는 불가능이 없다고 그러시면서 너의 친척 엘리사벳을 보아라, 너는 처녀이기 때문에 임신을 못하지만, 엘리사벳은 역시 임신을 못 하기 때문에 할머니니까 임신을 못 하는데, 잘 생각해 봐, 엘리사벳이 임신한 지 6개월이야. 그러니까 마리아가 깜짝 놀라지요. 맞다. 가브리엘 천사가 간 다음에 서둘러서 갔어요. 그런데 루카 서는 루카복음 2장 끝 때쯤 뭐라고 그랬냐면, 마리아가 엘리사벳한테서 머무른 게 석 달이라고 그랬어요. 그럼 저 같은 남자도 이거 계산할 수 있어요. 6개월 플러스 3개월 뭐예요? 엄마들이 대답해 보세요. 해산달 아니에요? 이거 상당히 중요한 거지요. 그러니까 마리아가 엘리사벳한테 달려간 것은 자랑하러 간 것이 아니에요. 난 하느님의 엄마가 된다, 이거 아니에요. 호들갑을 떨어 간 거 아니에요. 마리아가 서둘러서 간 것은 어! 그렇지, 이 양반이 홀몸이 아닌데, 어떻게 지내지? 힘들겠다. 그러니까 내가 가서 도와 드려야 되겠다. 요것이 애주애인하는 덕이에요. 한쪽으론 내가 임신한 것을 하느님의 뜻이니까 받아들여야 되고, 엘리사벳을 내가 도와주겠다는 것은 홀몸이 아니니까, 이 언니가 얼마나 힘들까? 내가 가서 조금이라도 도와드려야 되겠다.
지금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때, 정답이라고 말씀 드릴 수는 없는데, 틀린 거라고도 말씀드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루카성서가 힌트를 주니까... 3개월을 지난 다음에 돌아갔다고 그랬어요. 이것은 뭐냐면 해산바라지 끝난 다음에는 돌아온 거예요. 루카성서가 주는 힌트거든요. 그렇다면 내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을 임신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임신 6개월이 된 언니를 도와주러 간 거, 이거는 봉사하러 간 거예요. 그럼 이 생각한 것은 뭐냐면 옛날에는 시계가 없을 때, 내가 이거 몇 분 동안 묵상을 해야 되나? 얼마나 오랫동안 묵상을 해야 되나? 이럴 때 쉽게 되시네. 성모송 열 번 하는 동안에 생각해 봐라, 이거예요. 시간 재는 거예요.
사진 한 장을 펼쳐 놓고, 성모송 열 번 하는 것이 이것저것 생각해 보는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옛날 동창들 생각할 때 어떻게 해요?
색 바란 앨범 꺼내 놓고, 옛날 사진 지적지적하면서 시간 많이 보내잖아요. 아이고, 얘는 지금 어디서 뭐 하고 있을까? 이러면서 또 어떤 사진은 넣고 아유, 얘는 벌써 갔지. 참 아까워. 사진을 보면서 이렇게 느낄 수 있어요. 우리 관상하는 것이 사진 보는 거예요. 성모님 사진, 예수님 사진을 보는 거예요. 이게 관상 기도예요. 그럼 사진을 보면서 내가 느낄 수가 있어요. 보는 게 있고, 사진을 보면서도 그때 얘기 했던 거, 그때 노래 불렀던 거, 그때 소리 질렀던 거, 다 기억이나요. 우리 소풍을 가서 즐거웠던 거, 어떤 땐 더울 때 개울가에 가서 물에 발 담그고 속삭였던 거, 이런 거 생각하는 게, 우리가 오관을 갖고서 옛날 사진을 보면서 추억을 되살리고 이러면서 행복감을 느끼는 거, 우정을 느끼는 거, 사랑을 느끼는 거, 이게 관상 기도예요.
오전에 제가 12살 때부터 30살 때까지, 그 사이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참 사람으로 사셨던 모습을 우리들의 일생 생활과 똑같이 하셨다는 거, 이것을 제가 언급을 했어요. 다시 제가 반복해서 말씀드리는 것은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정말로 성인이 되고 싶다는 거, 우리 두 어린이들한테 배울 것을 보면, 열심히 하는 것, 매일 하는 것, 이거 우리 이 성당에 모신 두 성인들한테 우리가 본받아야 돼요. 반면에 내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은 내 의지에 따라서 내가 희생으로 주님께 바칠 것 같으면, 내가 오늘 하루 동안 살았던 것 중에 공로가 되지 않는 것 하나도 없어요. 지금 이 자리에서 성당에 와서 앉아서 하루 피정을 하시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오늘 하시는 모든 생각과 말과 셋째가 뭐예요? 행동! 이 세 가지를 다 주님께 바치면, 이게 공로가 되는 거예요. 우리 미사를 시작할 때, 무슨 기도부터 시작하죠? 고백의 기도부터 시작을 해요. 거기서 뭐라 그래요?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지었습니다, 이러죠? 성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요? 생각과 말과 행동을 하느님께 바치면, 이게 죄가 아니고, 하느님 기뻐하시는 선물이 되요. 이것이 세 어린이들이 바친 거예요. 우리들도 이거 바칠 수 있어요. 생각과 말과 행동, 이걸 내가 바치기로 하면, 여기 또 하느님이 나한테 보너스로 주시는 게 있어요. 내가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님께 선물로 바치면 어떻게 돼요? 내가 내 친구들하고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홀짝 마시면서도 내가 아침에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 바친다고 했으니까, 내가 커피를 마시면서 뒷담화 하겠어요? 안 하겠어요? 진짜 말이 돼요? 뒷담화하면서 내가 생각한 말과 행동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게 말이 돼요? 거짓말이 되지. 그렇죠? 녜!!!
뒷담화가 나와도 내가 브레이크를 걸을 거예요. 그리고서 아이고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택이 한테도 좋은 점이 있어, 야! 뭐가 좋아? 그러면 내가 보니까, 한택이가 밥 먹을 때 수박 한 쪽을 나한테 주던데, 우리 인간들은 한택이 한테서 먼지를 털려고 그러면 계속해서 나와요. 끝없이 나와요. 그런데 또 한택이한테 칭찬을 하려고 그러면 어떻게 돼요? 코 고는 소리까지도 멋져요. 근데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에 따라서 미울 수도 있고, 이쁠 수도 있어요. 제 친구 중에도 누가 어떻게 하다 장가를 드는데, 우리들이 이렇게 볼 때는 저 여자 코가 좀 삐뚤어진 것 같은데, 어떻게 너는 그런 여자를 선택하니? 그러니까 대답이 뭔 줄 알아요? 그게 멋지거든. 거기에 반해서 나 결혼한다고 그래요. 할 말이 없잖아요. 이쁘게 보는 사람한테는 삐뚤어진 것도 이쁜 거예요. 그게 매력이에요.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마음먹느냐가 중요해요.
오늘 하루 내가 아침서부터 저녁때까지 생각하는 거 많고, 말하는 거 많고, 행동하는 거 많아요. 그런데 아침에 이것을 내가 주님께 바치면, 다 선물이 돼요. 그런데 아침에 이것을 바치지 않으면, 다 나한테 귀찮은 것이 돼요. 눈에 거스르는 거, 귀에 거스르는 것이 있게 돼요. 이런 거 보면은 나와서 이쁜 사람들 하나도 없어. 다 보기 싫은 사람들이에요. 이거 얼마나 불행해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만들어 내실 때 보시니 뭐라 그러셨죠? 좋더라 예요. 그러니까 우리 한 사람도 하느님이 만들어 내시고 보시니 흉하다 하는 사람 한 사람도 없어요. 내가 보기에는 보기 싫어도 이 사람을 만들어내신 하느님께서는 이 사람을 어떻게 봐요? 좋게 보시는 거예요. 그럼 내가 내 생각을 하느님께 바친다 할 것 같으면, 내가 미운 사람을 볼 때, 하느님이 보시니 좋다 그러는 것을 나도 봐야 돼요. 내가 그것을 외면할 때, 미운 사람이 생겨요. 내 생각과 말과 행동 이거, 참 중요한 거예요. 우리 정상적인 사람이면 생각하는 거 있어요. 말은 어디서 나와요? 생각에서 나와요. 행동은 뭐예요? 말하는 대로 행동을 해야 돼요. 생각과 말과 행동, 이런 점에 있어서, 보세요. 오후에 우리 시작 성가 우리 교회 전통적인 성가잖아요? 241번에 바다의 별이신 성모인데, 여기서 특별히 후렴이 뭐라 그랬어요?
영생 얻는 길을 우리게 가르쳐 주님을 뵈옵고 즐기게 하소서. 보세요. 우리 기도할 때마다, 우리들이 바라는 게 뭐냐면, 즐겁게 하는 거예요. 영원한 행복이 뭡니까? 영원한 행복은 영혼의 즐거움이에요. 우리 이 세상에서도 행복하잖아요. 이 세상의 행복, 우리들 바라는 건, 나쁜 거 아니죠? 당연히 행복해야죠. 그런데 이 세상은 우리들 성가도 부르고 이러면 대데레사 말씀이 있잖아요. 모든 것은 지나가 버려요. 다 지나가요. 그러니까 이 세상에 행복은 끝이 있어요. 그런데 이 성가에서는 영원히 영원히 즐기게 하소서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영생 얻는 길을 가르쳐 달라고 그러잖아요. 이 성가에서는 영생을 얻는다는 것은 뭐예요? 즐거운 영생을 보내는 것을 기도하는 거예요. 우리 지옥 가는 것도 영원한 삶이에요. 천당 가는 것도 영원한 삶이고, 그런데 천당 지옥 우리가 교리 배울 때 사말(四末)이라는 것, 교리를 배워요. 말(末)이 뭐냐면, 끝이라는 뜻으로 4가지 끝이예요. 우리 죽음. 죽음이 인생의 끝이죠. 그럼 죽은 다음에 천주교에서 가르쳐 주는 게 뭐예요? 누구한테서 심판 받아요? 예수님 앞에 나 혼자 가서 심판 받는데, 거기는 변호사도 없어요. 내가 혼자 심판 받아야 돼요. 예수님께서는 내 생명의 책을 펼쳐 놓으시고, 내 인생을 평가해 주시는 거예요. 이것이 둘째 끝이고, 이 결과가 천당 아니면 지옥이에요. 그리고 이 세상살이가 뭐예요? 이 세상살이는 내가 영원한 행복을 선택하는 거냐? 영원한 저주를 선택할 거냐? 이거 내가 선택하는 거예요. 이거 참 무서운 거예요.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래요. 그렇죠? 우리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는데, 내가 하느님의 피부색이 같은 겁니까? 하느님처럼 코가 뾰족한 건지, 납작한 건지, 결정되는 겁니까? 하느님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코도 없고 피부색도 없어요. 그럼 내가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뭐예요? 하느님처럼 자유 의지가 있고, 하느님처럼 아는 게 있고, 이런 것들이 하느님 닮은 거예요. 그러니까 보세요. 아담하고 하와하고 낙원에서 죄를 범할 때도 이거 사용한 거예요. 그러니까 아담하고 하와가 아주 행복하게 지냈는데, 사탄이 와서 유혹을 할 때, 너 이거 먹으면 하느님만큼 안다고 그랬어요. 그 전에는 그 선악과 앞을 왔다 갔다 이래도 아무 상관이 없었어요. 그런데 하느님만큼 안다고 그러니까, 어! 나도 그만큼 알고 싶었어요. 이때 그 과일이 탐나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까지도 일은 생기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문제가 언제예요? 따먹은 거예요. 그런데 따먹은 것이 왜 잘못이 됐어요? 하느님께서 요것만큼은 따먹지 말아라 이러셨는데, 하와는 뭐요? 나는 따먹을 수 있어. 이러고서 따먹은 거죠. 이게 자유의지를 쓴 거예요.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예요. 여러 가지 우리가 성서를 통해서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 이러면 안 된다, 이러면 안 된다는 것들이 알아요. 우리들의 양심이 그것을 이야기해 줘요. 거기 가면 안 돼, 그렇게 하면 안 돼, 이렇게 해야 돼, 이것을 꼭 해야 돼, 네가 주교니까 이렇게 해야 돼, 네가 주교니까 이런 말을 하면 안 돼, 이런 것이 있어요, 저한테...
이게 양심이에요. 그런데 양심의 소리가 있어도 그래도 나는 할 수 있어, 내가 보여 줄게, 그게 자유의지를 내가 쓰는 거예요. 근데 내가 그것을 이래서는 안 되는데 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해. 이게 뭐예요? 이게 고백성사거리가 되는 거예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뭐냐면, 이래서는 안 된다고 그러는데, 내 자유의지는 나는 그래도 해!, 하고서 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이 세상사는 동안에 참으로 인간이 되어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도 이 유혹을 당하셨어요. 예수님 세례 받고, 나오셔서 제일 먼저 하신 게,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성부께서 말씀하시는 그 자리에서 기도를 하신 다음에, 제일 먼저 하신 것이 광야에 나가서 유혹을 받으신 거고, 또 올리브 동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전에도 유혹을 받으셨어요. 우리 이것을 통해서 우리들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예수님 가신 것처럼 우리들도 여러 가지 유혹을 아주 어려울 때마다 겪고 있어요. 그런데 이때마다 하느님은 나한테 자유의지를 주셔 가지고, 내가 결정하도록 나한테 맡기셨어요. 자유의지는 하느님께서 나한테 한번 주신 다음에는 하느님도 건드리지 않으셔요. 내가 결정해요.
(성녀히야친타, 성프란치스코 찾아보세요)
다시 한번 끝으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우리 이 성당에 오신 모든 분들은 다 성인이 되시기를 원하시는 분들이고, 또 성인이 될 수 있는 분들이에요. 제가 오전에 강조한 것은 이 성당에 우리가 모신 어린이 두 성인 들처럼 이만큼 우리도 누구든지 다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 중에는 성인이 되지 못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내가 원하기만 하면 적어도 두 어린이 성인만큼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성인 될 수 없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제가 오후에 말씀드리는 것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하는 것을 성모님께서 매일 열심히 하라고 그러시는 이 부탁의 말씀하고 연결해서 우리들이 매일매일, 매일매일 다른 말로 뭐라 그랬어요? 제가 오전에, 날마다. 날마다 열심히 내 결심을 하루하루 열심히 할 것 같으면 성인 안 되실 분, 그렇지 않으면 못 되실 분이 한 사람도 없어요. 아멘.
그러니까 여러 형제자매님들 반드시 성인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짝짝짝...
♦2026년 8월 1일 첫토요일 성모신심미사
♦입당성가
♦독서: 이사9,1-6
♦복음: 루카2,15ㄴ-19
♦강론:
찬미예수님,
(강론 전문을 들어보세요.)
♦강론전문 녹음
♦성찬전례
♦티없으신 마리아성심께 바치는 봉헌기도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
♦미사후 이한택 요셉주교님 안수
핸드폰으로 보시는 분들은 확대해서 보세요.
시원한 파도에 더위좀 잊으시길....
ann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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