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躁勝寒(조승한) : 조급함(躁)이 추위를 이기고
靜勝熱(정승열) : 고요함(靜)이 열기를 이길지나,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 맑고 고요함(淸靜)이 천하를 바르게(正) 하리라.
-------
크게 이룬 것(大成)은 결함이 있는 듯하나,
쓰임에 있어 모자람이 없으며,
가득 찬 것(大盈)은 비어 있는 듯하나,
그 쓸모(用)에 있어 다함이 없다.
아주 곧은 것(大直)은 굽은 듯,
훌륭한 솜씨(大巧)는 서투른 듯,
훌륭한 언변(大辯)은 어눌하고 더듬는 듯하다.
조급함(躁)이 추위를 이기고
고요함(靜)이 열기를 이길지나,
맑고 고요함(淸靜)이 천하를 바르게(正) 하리라.
---------
<오 강남 역>
大成若缺(대성약결) :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조금 모자란 듯하나
其用不弊(기용불폐) :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大盈若沖(대영약충) : 가득 찬 것은 조금 빈 듯하나
其用不窮(기용불궁) : 그 쓰임에는 끝이 없다
大直若屈(대직약굴) : 크게 곧은 것은 조금 굽은 듯하고
大巧若拙(대교약졸) : 큰 솜씨는 조금 서툴러 보이고
大辯若訥(대변약눌) : 큰 말은 조금 어눌해 보인다.
躁勝寒(조승한) : 조급함은 추위를 이기고
靜勝熱(정승열) : 고요함은 더위를 이긴다.
淸靜爲天下正(청정위천하정) : 맑고 고요함 이것이 세상의 표준이다.
-------------------
크게 이루어진 것은 흠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크게 채워진 것은 마치 빈 듯하다
하지만 그 쓰임은 궁색하지 않다.
큰 곧음은 마치 구부러진 듯하고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듯하고
큰 여유는 마치 부족한 듯하다.
몸을 급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안정하면 더위를 이길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盅, 其用不窘. 大直如詘, 大巧如拙, 大辯如訥. 趮勝寒, 靜勝熱, 淸靜可以爲天下正.
[大成若缺, 其用不弊]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
<노바당 역>
완전히 이루어진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러나 그 쓰임에는 다함이 없다.
완전히 가득 찬 것은 빈 듯하나
그러나 그 쓰임에는 끝이 없다.
완전히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다
완전한 솜씨는 서툴게 보이는 것이고,
완전한 웅변은 눌변으로 보인다.
조급함은 추위을 이기고
고요함은 더움을 이긴다.
맑고 고요함 이것이 세상의 표준이다.
<임채우 역>
45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완전한 것은 모자란 듯하나
그 쓰임은 닳지 않고,
가득 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나
아무리 써도 끝이 없고,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며,
잘하는 말은 더듬는 듯하다.
몸을 움직여서 추위를 이기지만
조용히 있는 것이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니,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
<James Legge 역>
1. Who thinks his great achievements poor Shall find his vigour long endure. Of greatest fulness, deemed a void, Exhaustion ne'er shall stem the tide. Do thou what's straight still crooked deem; Thy greatest art still stupid seem, And eloquence a stammering scream.
2. Constant action overcomes cold; being still overcomes heat. Purity and stillness give the correct law to all under heaven.
<Lin Derek 역>
Great perfection seems flawed
Its function is without failure
Great fullness seems empty
Its function is without exhaustion
Great straightness seems bent
Great skill seems unrefined
Great eloquence seems inarticulate
Movement overcomes cold
Stillness overcomes heat
Clear quietness is the standard of the world
<장도연 역>
제45장 맑고 고요한 것은 천하를 바르게 한다
크게 이룬 것은
어딘가 모자라는 듯하나
그의 쓰임은 고갈되지 않는다.
가득 차 있는 것은
어딘가 비어 있는 것 같으나
그의 쓰임은 무궁무진하다.
크고 곧은 것은
어딘가 굽은 것 같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어딘가 서투른 것 같으며
가장 뛰어난 웅변가는
어딘가 어눌해 보인다.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있으면 더위를 이길 수 있다.
맑고 고요함(淸靜無爲)은
천하를 바르게 한다.
<왕필 노자주 / 임채우 역>
크게 이룬 것은 결함이 있는 듯하나 써도 닳지 않고,
大成若缺, 其用不弊;
사물에 따라서 이루며, 하나의 형상으로 한정되지 않으므로 모자란 게 있는 듯하다.
隨物而成, 不爲一象, 故若缺也.
크게 찬 것은 비어 있는 듯하나 써도 끝이 없고,
大盈若沖, 其用不窮,
크게 채운다는 것은 사물에 맞춰서 채워주면서도, (주는 것을) 아끼거나 자랑하지 않으므로 빈 듯하다.
大盈[充]足, 隨物而與, 無所愛矜, 故若沖也.
아주 곧은 것은 굽은 듯하고,
大直若屈,
사물에 따라서 곧으니, 곧음이 일정하지(즉 자로 잰 듯 곧지) 않으므로 굽은 듯하다.
隨物而直, 直不在一, 故若屈也.
뛰어난 솜씨는 서툰 듯하며,
大巧若拙,
뛰어난 솜씨는 스스로 그러한 모습대로 그릇을 만들며, 기이한 것들을 지어내지 않으므로 서툰 듯하다.
大巧因自然以成器, 不造爲異端, 故若拙也.
잘하는 말은 더듬는 듯하다.
大辯若訥.
잘하는 말은 사물에 따라 말할 뿐 자기가 지어내는 것이 없으므로 더듬는 듯하다.
大辯因物而言, 己無所造, 故若訥也.
(몸을) 움직여서 추위를 이기지만 고요함으로 더위를 이기니, 맑고 고요함으로 천하를 바르게 한다(혹은 청정함이 천하의 바른 모범이 된다).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주석>
이 구절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해석이 분분하다. 장석창은 뜻이 잘 통하지 않으니 “靜勝躁, 勝寒熱”로 바꿔보아야 순통하다고 했다. 마서륜(馬敍倫)은 노자 경문에 잘못이 있으며, 문의(文義)에 근거하여 미루어볼 때 ‘조승한’(躁勝寒)은 ‘한승조’(寒勝躁)라고 해야 한다고 보았고, 진고응은 장석창과 엄영봉의 설에 근거하여 ‘躁勝寒, 靜勝熱’를 ‘靜勝躁, 寒勝熱’로 고쳐서 해석했다.
활발히 움직인 뒤에야 추위를 이기고 고요히 무위함으로써 더위를 이긴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맑고 고요함이 천하의 바름이 된다. 고요하면 사물의 참모습을 온전히 하게 되고 조급하면 사물의 본성을 해치게 되므로, 오직 맑고 고요해야 위에서 말한 여러 큰 것들을 얻을 수 있다.
躁罷然後勝寒, 靜無爲以勝熱. 以此推之, 則淸靜爲天下正也. 靜則全物之眞, 躁則犯物之性, 故惟淸靜, 乃得如上諸大也.
<주석>
루우열은 “‘躁罷然後勝寒’은 원문의 ‘躁勝寒’을 해석한 것으로, 노자와 왕필의 사상은 모두 춥고 고요한 것이 조급하고 뜨거운 것에 비해 근본적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경문에서 이미 ‘조승한’(躁勝寒)이라고 했으므로, 왕필은 이리저리 틀어서 해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급함이 그치기를 기다린 후에야 추위를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고 했다.
<Stefan Stenudd 역>
The most complete seems lacking.
Yet in use it is not exhausted.
The most abundant seems empty.
Yet in use it is not drained.
The most straight seems curved.
The most able seems clumsy.
The most eloquent seems to stutter.
Movement overcomes cold.
Stillness overcomes heat.
Peace and quiet govern the world.
Appearances
Things aren’t what they seem. We should not trust our perception, because it’s rooted in our own mind’s preconceptions. We often only see what we want to see, or what we expect to see. That may make life seem more agreeable to us, but it certainly flaws our judgment. Therefore, our actions easily go astray.
What is complete is whole, whereas we have a tendency to break things apart in order to find a quantity that overwhelms us. The whole is just one. We want many, and we don’t see how anything less can be sufficient. But when parts are separated from the whole, they stop to function and deteriorate. Only the complexity of the whole is enough for all and forever.
Vast abundance is not perceivable, so we experience it as diluted and desolate. What is everywhere is invisible to us, like the air around us. Our perception is focused on anomalies, on things that deviate from the mean.
That might be practical for our survival, but it also confuses our understanding of the world. We tend to make exceptions the rule, and miss the fundamental order of things.
The Fragile Environment
Also, sadly, we underestimate the importance of the fundamental components of our world. It took us far too long to realize our dependence on the environment we live in, because we have taken it for granted.
Lao Tzu’s philosophy is firmly environmentalist, although his text precedes the invention of the word with more than two thousand years. He urges mankind to avoid interfering with the natural processes, or we do harm to them.
That’s because we don’t observe their importance, since we can’t see their greatness. We cease to be aware of what we take for granted.
So, we have thoughtlessly polluted the very air that we breathe, because we can’t see it. We also poison the water that we drink and the soil on which we grow what we eat. We treat our whole world as if it’s dispensable.
Only now, on the verge collapse, have we been forced to realize the delicacy and importance of balance.
Skill
As for human perfection, we find it so rarely that we don’t know what to make of it.
Those who really choose their words with care seem hesitant, even unsure. Something very similar is seen with those who really master some craft. They go about it with a calm that can be mistaken for incompetence, but the result is flawless and it’s accomplished with amazing swiftness.
Refined movements look slow, because we perceive them clearly. The one who seems to move the slowest in a race is often the winner of it. When the foremost athletes excel in their sports, it looks so easy that we imagine we can do the same. That’s the sign of perfection.
Balance
When Lao Tzu points out that movement overcomes cold and stillness overcomes heat, he points out the importance of balance. We know it to be quite true. Movement raises the temperature, and stillness decreases it. When we are cold we should get going and when we are hot we should calm down.
That is also true for situations where the temperature is symbolic. In a heated argument, silence is called for. When relations get chilled and indifference grows, we should spring into action.
The world benefits the most from peace and quiet, a state of balance and harmony. We can contribute to this if we remain sensitive to what is needed, and what is not.
----------------------------------------------------------------------------------------------------------------------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16장)
靜에 대한 도덕경 비교
(15장) 孰能濁以靜之徐淸, 孰能安以久動之徐生
(16장) 致虛極, 守靜篤, 萬物竝作, 吾以觀復, 夫物芸芸, 各復歸其根, 歸根曰靜, 是謂復命
(26장) 重爲輕根, 靜爲躁君
(37장) 吾將鎭之以無名之樸,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45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57장)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61장)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故大國以下小國, 則取小國, 小國以下大國, 則取大國
이 章에서 인상적인 자구
大成若缺, 大盈若沖,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淸靜
沖(虛) 도덕경 비교
(3장) 虛其心, 實其腹, 弱其志, 强其骨
(4장) 道, 沖而用之, 或不盈
(5장) 天地之間, 其猶橐龠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11장) 三十輻共一轂, 當其無, 有車之用(유차지용)
(16장) 致虛極, 守靜篤
(22장)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42장)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45장) 大盈若沖, 其用不窮
(53장) 朝甚除, 田甚蕪, 倉甚虛,
用 도덕경 비교
(4장) 道沖而用之 或不盈
(6장) 用之不勤
(11장) 故有之以爲利 無之以爲用
(28장) 樸散則爲器 聖人用之 則爲官長 故大制不割
(35장) 視之不足見, 聽之不足聞, 用之不足旣
(40장) 反者道之動 弱者道之用
(45장)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68장) 善用人者爲之下 是謂用人之力
靜 도덕경 비교
(16장) 致虛極 守靜篤 / 歸根曰靜 是謂復命 復命曰常 知常曰明
(26장) 重爲輕根 靜爲躁君
(37장) 無名之樸 夫亦將無欲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45장)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不欲以靜 天下將自定
(57장) 我無爲而民自化 我好靜而民自正 我無事而民自富 我無欲而民自樸
(61장) 大國者下流 天下之交 牝常以靜勝牡 以靜爲下
----------------------------------------------------------------------------------------------------------------------
<인용> 이명권 http://cafe.daum.net/koreanashram/8IoM/50
제 45장. 도의 진면목과 맑고 고요한(淸靜) 평화의 혁명
가장 원만하고 좋은 것은 어딘지 결함이 있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쇠하지 않는다.
가장 충실한 것은 어딘지 비어 있는 듯하지만
그 작용은 모자람이 없다.
가장 곧은 것은 어딘지 굽은 듯하고
가장 뛰어난 기교는 어딘지 서툰듯하며
가장 웅변적인 말씨는 어딘지 어눌한 듯하다.
부지런히 움직여 추위를 이기고
안정을 취함으로써 더위를 극복 할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함은 천하의 바른 규범이 된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窮.
大直若屈, 大巧若拙, 大辯若訥.
躁勝寒, 靜勝熱, 淸靜爲天下正.
본 장에서 말하는 것은 도의 법칙과 작용에 관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람의 인품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다. 따라서 인품이 도의 작용과 같이 수양되어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이른바 수신(修身)의 도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도의 법칙을 여러 가지로 비유하여 말하면서, '대성(大成)', '대영(大盈)', '대직(大直)', '대교(大巧)', '대변(大辯)'을 말하고 있다. 모두가 크게 이루고, 크게 가득차고, 크게 곧고, 크게 교묘하고, 크게 웅변하는 도의 모습을 겉으로 얼핏 볼 때는 각각 모자란(缺) 듯하고, 비어있는(沖) 듯하고, 굽은(屈) 듯하고, 졸렬한(拙) 듯하고, 어눌한(訥) 듯 하다는 것이다. 도의 본 모습과 겉모습에 대한 외양의 차이를 말해 주는 것인데, 실상은 도의 겸허한 자세를 말하고 있다.
‘대성(大成)'을 직역하면 크게 이룬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룬다는 뜻의 '성(成)'을 '선(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렇게 보면 '대성'은 크고 원만하여 좋은 것을 뜻한다. 그런데 원만하고 좋아 보이는 것도 어찌 보면 어딘지 결함이 있어 보이는 듯 하다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원만함으로 인해, 쉽게 부러지거나 고갈되지 않고 다함이 없다. 도의 본질적 측면에서는 결함이 없는 것이지만, 외관상 바라 볼 때 그렇게 보인다는 것으로 이는 보는 자의 관점에서 사실 결함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도의 세계는 완전무결하지만 어리석은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결함이 있어 보인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가득차서 충실한 것도 외견상 비어 있는 듯하다"는 것도, 도의 실재 세계는 충만하고 충실한 것이지만 어리석은 자의 관점에서 볼 때는 그러한 세계가 공허(空虛)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절대적 진리를 어리석은 상대적 가치에서 논할 때, 곧은 것도 굽어보이고(大直若屈), 훌륭한 솜씨도 졸렬해 보이며(大巧若拙), 훌륭한 말씨도 어눌해 보이는(大辯若訥) 법이다. 진리에 입각한 예수의 강직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는 '굽은 것'이었고, 그의 하늘나라에 관한 웅변도 '졸렬하고 무가치한 헛 수작' 정도로 보였을 것이다.
추위를 운동으로 극복하듯이(躁勝寒), 냉엄함 현실도 부단한 노력으로 그 위난을 극복할 수 있으며, 아무리 더운 날에도 한가한 그늘에 앉아 있으면 더위를 극복 할 수 있듯이(靜勝熱), 격렬한 고난의 현실도 안정을 되찾음으로써 열병 같은 재난도 끝내 이길 수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모순 속에서 좌충우돌할지라도 샘물처럼 맑은 정신이 살아 있으면 결국은 바르고 안정된 세계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맑고 고요함(淸靜)이야말로 끝내 천하를 평화롭게 하는 규범(天下正)이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과 같은 치열한 경쟁시대에, 정직한 사람이 어리석어 보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이 무능해 보이는 어지러운 세상에서, 진정 숨어있는 진실한 가치를 발견하고,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줌으로써, 냉엄한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맑고 고요한 사랑의 따뜻한 혁명이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기를 충심으로 기원해 본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일부 사람들은 예수를 비꼬며 말했지만, 그는 갈릴리 작은 마을들을 고루 다니며,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들과 함께 밥상을 나누며, 평화의 세상이 오기를 하느님에게 기원했다. 그의 맑고 고요한 기도는 하늘을 감동시켰고, 끝내 평화의 세상을 이루는 모범이 되었듯이 말이다.
--------------
크게 이루어진 것은 흠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 쓰임은 다함이 없다. 크게 채워진 것은 마치 빈 듯하다. 하지만 그 쓰임은 궁색하지 않다
大成若缺, 其用不弊. 大盈若沖, 其用不窘
마서륜에 따르면 여기에서 '성(成)'은 '성(盛)'의 약자다. 그 기본적인 의미는 제사 그릇에 음식을 가득 담아놓은 것인데(『설문』) 나중에 그 뜻이 확대되어 제사 그릇 자체를 가리키게 되었다. 그렇다면 첫 구절은 "큰 그릇은 마치 흠이 있는 듯하다"고 옮겨야 한다. 이 해석은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 이 점은 초간문을 이야기하면서 다시 언급하겠다. 그렇지만 백서는 초간문과 좀 다르기 때문에 백서를 저본으로 하는 한 본문처럼 해석해야 할 것이다. '충(盅)'은 비었다는 뜻이다.
부혁·범응원본 등에서는 '영(盈)' 대신 '만(滿)'을 사용했다. 고형(1974)은 이것이 한 혜제(惠帝)의 이름(劉盈)을 휘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영'을 그대로 적고 있는 갑·을본은 모두 한 혜제가 칭제하기 이전에 필사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증거는 통행본의 '상(常)'과 백서의 '항(恒)'을 비교하는 것만큼 강력하지 않다. 통행본에서도 이곳에서만 '영' 대신 '만'을 썼지 다른 곳에서는 그대로 '영'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백서 갑본의 '방(邦)'과 을본 및 통행본의 '국(國)'을 비교하여 갑본의 연대를 한 고조 유방이 칭제하기 이전으로 보는 것이 예외가 없기 때문에 가장 강력하고, 백서의 '항'과 통행본의 '상'을 비교하는 것도 유력하기는 하지만 약간의 예외가 있으므로 주의해야 하고, '영'과 '만'을 비교하는 것은 뚜렷한 증거가 되기 힘들다.
이 글도 '정언약반'의 수법을 여실히 보여준다. 소철은 "천하는 흠이 없어야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하기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에 반드시 폐단이 있고, 비지 않아야 가득 찼다고 하기 때문에 가득 찬 것에 반드시 궁함이 있다. 오직 성인은 크게 이루고자 하여 그 자잘한 흠에 신경쓰지 않으며, 크게 채우는 것을 도모하여 빈 것을 싫어하지 않기 때문에 이루는 것에 폐단이 없고, 채우는 것에 궁함이 없다"고 했다. '정언약반'이 사회의 편견을 비판하는 수법이며, 그 편견에 가려진 사실을 드러내는 수법임을 잘 보여준다.
큰 곧음은 마치 구부러진 듯하고,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듯하고, 큰 여유는 마치 부족한 듯하다
大直如詘, 大巧如拙, 大赢如絀
이 문장의 마지막 구절은 통행본에 "큰 웅변은 어눌하다〔大辯若訥〕"고 되어 있다. 역순정은 엄준본에 근거하여 이 구절을 교정했는데, 그 교정이 백서와 거의 일치한다.2) '출(絀)'은 '영(赢: 여유있다, 이롭다)'과 대립하는 말로 부족하다는 뜻이다(왕성).
이 문장은 초간문과 백서 사이에도 차이가 있다. 위계붕은 초간문의 해당 문장을 "큰 재주는 마치 졸렬한 듯하고, 큰 음악〔大成〕은 마치 끊어지는 듯하며, 큰 나무〔大植〕는 마치 구부러진 듯하다"고 해석한다. 이렇게 되면 모든 구절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묘사가 되므로 일관된 느낌이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글의 제일 처음 구절도 마서륜처럼 해석하는 것이 좋다. 『노자』는 지나치게 현학화되었기 때문에 때때로 좀더 구체적이고 알기 쉬운 해석이 참신해 보인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런 해석은 초간문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기록만 해두도록 한다.
몸을 급히 움직이면 추위를 이길 수 있고, 고요히 안정하면 더위를 이길 수 있으니 맑고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
趮勝寒, 靜勝熱, 淸靜可以爲天下正
앞의 두 구절에 대한 해석에는 크게 보면 두 가지, 더 나누면 세 가지의 방법이 있다. 첫 번째는 하상공식으로 "조급히 움직이는 것이 극에 달하면〔勝〕 추워지고, 고요한 것이 극에 달하면 더워진다"고 해석하는 경우다(성현영·임희일·범응원). 이것은 조급히 움직이는 것에 대한 경계이며, 동시에 고요함을 유지하라는 권고다. 추위는 죽음의 표징이고, 더위는 따듯함의 표징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본문처럼 해석하는 경우다(엄준·육희성·오징). 이때는 앞의 두 구절이 고요함을 유지하여 천하의 주인이 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암시한다. 가령 엄준은 추울 때는 몸을 움직여서 추위를 이기고, 더울 때는 마음을 평온히 하고 기운을 조화롭게 하여 더위를 이기는 것처럼 옛날의 훌륭한 임금은 상황과 변화에 따라 베풀고 거두어들이는 것을 조절했으므로 무위의 덕화를 이룰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셋째는 "몸을 급히 움직이면 겨우 추위만을 이길 수 있고, 몸을 고요히 하면 겨우 더위만을 이길 수 있으니……"라고 해석하는 경우다(소철·동사정). 이때는 앞의 두 구절이 한쪽에 치우친 잘못된 태도를 보여준다. 하상공은 글자를 너무 확대 해석한 느낌이 있고, 소철은 두 번째 구절의 '고요함'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기 때문에 내키지 않는다. 여기에서는 엄준 등에 따른다.
초간문은 백서와 글자가 좀 다르다. 팽호는 앞의 두 구절을 "뜨거운 것은 차가운 것을 이기고, 차가운 것은 뜨거운 것을 이긴다〔燥勝滄, 凊勝燃〕"고 해석했다. 이렇게 되면 뜨거운 것이 차가운 것을, 차가운 것이 뜨거운 것을 이기듯이 고요함을 간직해야 시끄러운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 된다. 참고할 수 있겠다.
고요함〔靜〕의 미덕에 대한 찬사는 『노자』에서도 볼 수 있지만 다른 제자서에서도 종종 보인다. 우선 『노자』에는 여기말고도 "고요함은 조급함의 주인(26)"이라는 말이 있다. 『관자』에도 "움직이면 자기 자리〔位〕를 잃을 것이니 고요해야만 자득한다"는 말이 있으며, 『회남자』에서도 "임금이 고요히 하여 조급히 움직이지 않으면 백관이 잘 닦여진다(「주술훈」)"는 말을 발견할 수 있다.
이때 고요함은 무위 정치의 상징이다. 후대에는 명상적·존재론적 고요함이 거론되겠고, 『노자』의 고요함도 역시 그런 방향으로 발전되겠지만 처음에는 언제나 정치적 함의를 지니지 않았나 싶다. 가령 「심술상」의 고요함은 그 자체로 명상적 고요함에 가까이 가 있지만 그 배경에는 "말을 대신해 달려 그 힘을 다 써버리지 말 것이며, 새를 대신해 날아 그 날개를 못쓰게 만들지 말 것이니, 사물보다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서 그 법칙을 살핀다"는 명백한 무위의 통치술이 있다. "고요해야만 천하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말 자체가 왕천하(王天下)의 방법론 아닌가.
움직이면 자기 자리를 잃을 것이니
고요해야만 자득한다
―『관자』 「심술상」
[大成若缺, 其用不弊]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