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意識)은 어떤 모습일까
육신이 죽으면 의식은 어디로 갈까
의식의 성품은 무엇일까
의식에게도 빛깔이 있을까
《대승현식경 大乘顯識經 상권》
이와 같이 나는 간경하였나니
어느 때 세존께서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
현호동진(賢護勝上 童眞; 재가불자 巨商이었음)이 세존께 여쭈었다.
<1>
세존이시여,
중생이 비록 의식意識이 있음을 알지만,
나타내어 보이지 않으면 알지 못하나이다
식識은 어떤 모습을 한 성품은 오니까
육신이 죽으면 식은 어느 곳으로 가나이까
성품은 무엇이고 어떤 색깔, 모양이오니까
식識이란 바람과 같아 빛깔도 형체도 없어, 나타나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을 통하여, 만물을 기르는 것처럼,
의식 또한 그러하여 인연으로 다름을 나타내나니
바람이 꽃에 닿으면 꽃은 그대로 있어도
향기는 흘러 먼 곳에 이르게 하지,
바람 자체가 꽃의 향기를 취한 것 아니지만,
바람의 힘이 아니면, 향기는 멀리 퍼져 가지 못하나니.
사람이 죽으면 의식 또한 이와 같아, 다른 생生으로 전전하는데
인연으로 식을 따름도 이와 같나니
바람의 인연으로 꽃 향이 이르는 것처럼
의식으로부터 법法이 있어, 선악을 분별하여 아느니라
<2>
화공의 의식과 지혜도 형상과 빛깔이 없지만
온갖 얼굴과 이상한 모양을 그리는 것 처럼
의식과 지혜는 형상이 없되,
6색色을 냄도, 모든 경계 또한 형색이 없음이라
의식이 몸을 버리고 다른 생을 받을 때는
업장에게 얽힌 바가 되거니와, 업보가 다하고 목숨을 마치면,
죽은 자의 의식은 몸과 계界를 버리고, 생각하는 힘을 타고 짓게나니,
평생에 지은바 일과 업이 죽을 때에, 다다라서 모두 나타나고,
기억과 생각이 분명하여 몸과 마음의
두 감수受로써 고통이 핍박하는 것이니라.
의식이 몸에서 옮김은, 얼굴 모양이 거울에 나타남과 같고
도장 무늬가 진흙에 나타남과 같나니,
해가 뜨면 어둠이 사라지고, 해가 지면 어둠은 나타나지만
어둠은 형체가 없는 가운데 그곳을 얻나니
의식 또한 형체가 없지만, 수受와 상想으로 인하여 나타나니라
<3>
의식이 몸에 있는 것은, 어둠의 체성과 같아 보아도 보이지 않고
잡아 볼 수도 없는 것과 같아, 행동으로 의식의 모양이 나타나지만,
의식이 있는 바는 알지 못하느니라.
식의 자성은 모든 곳에 두루 들어가나
모든 곳에 물들고 더럽힌 바가 되지 않나니,
이로 말미암아 식의 작용을 나타내느니라.
현호여,
식은 손과 발이 없고 지절(支節; 마디)과 언어도 없건만,
법계 가운데에 생각하는 힘이 강대함으로 말미암아,
중생이 죽을 때에 식(識)이 이 몸을 버리고
식이 생각하는 힘과 함께 내생의 종자(8식)가 된다.
박인환(1926~1956)의 「목마와 숙녀」(1950년 발표) 30세 요절 등대(울프의 작품「燈臺로」의 등대를 말함)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염세·비관)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 (인간이 물질세계에서 겪는 가장 큰 고통) 그저 가슴(육신)에 남은 희미한 의식(정신)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
즉 식을 떠나서는 법계를 얻을 수 없고,
법계를 떠나서는 또한 식을 얻을 수 없다.
식은 바람과 미묘한 염계(念界)와 수계(受界)와 법계(法界)와 함께 화합하여 옮기느니라.” 賢護!識無手足,無支節言語,由法界中念力强大,衆生死時識棄此身,識與念力爲來生種,卽離於識不得法界,離於法界亦不得識。識與風大微妙念界、受界、法界和合而遷。”
부처님께서는 현호에게 말씀하셨다.
“이 식은 쌓음도 모음도 없고, 또한 생장함도 없나니, 비유컨대 싹이 날 때에 종자가 변치 아니하고 생긴 것이 아니며, 또한 종자가 무너져서 생긴 것도 아니다. 그러나 싹이 생길 때엔 종자는 곧 변하고 허물어지느니라. 佛言賢護:“此識無積無聚亦無生長,譬如牙生,非種不變而生,亦非種壞而生,然牙生時種則變毀。
현호여. 식이 몸에 있어서 그치는 곳이 없나니, 눈도 아니며, 귀와 혀와 몸 등이 아니다. 종자가 싹이 날 때는 식이 조금 지각함 같으며, 나아가 꽃이 결합할 때에 식의 감수[受]가 함축함과 같으며, 꽃이 필 때와 열매를 맺을 때에 이르러서는 식이 몸이 있는 것 같다.
식이 몸에서 나와서 몸과 사지에 하나 식의 그치는 바를 찾아보면, 그 처소를 얻을 수 없고, 만일 식을 제외하고는 몸이 곧 나지 못하리니, 나무에 과일이 익으면, 능히 장래 나무의 종자가 되어 익지 않은 것 아님과 같으니라. “如是,賢護!識之在身止無處所,非眼非耳鼻舌身等,種生牙時,如識微覺,乃至花結合時,如識有受,含開花發時至結果,如識有身。識之生身遍身支體,求識所止莫得其所。若除於識身則不生,如樹果熟,堪爲將來樹之種子,非不熟者。
이와 같이 과보가 성숙되고 몸이 죽으면 식의 종자가 문득 나타나며, 식으로 인하여 수(受)가 있고, 수로 인하여 애(愛)가 있고, 애에 얽매여 문득 생각을 내며, 식이 생각을 섭취하여 선악의 업을 따르고, 풍대(風大)와 아울러 부모 생각할 줄을 알며, 인연이 합하여 대하매 如是報熟身死,識種便現,因識有受,因受有愛,繫著於愛便生於念,識攝取念隨善惡業,與風大幷知念父母,因緣合對,
식이 문득 의탁하나니, 마치 사람의 얼굴 그림자가 거울에 나타남과 같다. 깨끗하지 않고 밝지 않으면 얼굴 모양이 나타나지 않고, 거울이 밝은데 얼굴을 대하면 그림자 모양이 이에 나타나니,
거울 속의 모양은 수(受)도 생각도 없건만, 사람의 몸을 따라 구부리고 펴고 숙이고 우러르며, 입을 열고 농담하며 가고 오고 행동하며, 가지가지로 운동하느니라. 識便託之,如人面影現之於鏡,非淨非明面像不現,鏡明面對影像乃現,鏡中之像無受無念,而隨人身屈申俯仰,開口談謔,行來進止,種種運動。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얼굴은 그림자의 원인[因]이 되고, 거울은 그림자의 인연[緣]이 되나니, 원인과 인연이 화합하므로 그림자가 나타남이 있다. 식의 원인으로 말미암아 수(受)ㆍ상(想)ㆍ행(行) 및 심소(心所)가 있고, 부모가 인연이 되어 인연이 화합하므로 몸이 나타남 있나니, 佛言:“面爲影因,鏡爲影緣,因緣和合故有影現。由識因故,有受想行及諸心所,父母爲緣,因緣和合而有身現。
저 몸과 거울과 같다. 거울 속의 그림자는 몸이 가면 그림자도 없어지고, 몸이 있으면 그림자 모양이 나타나며, 혹은 달리 물 등의 속에도 나타나니, 식이 이 몸을 버리고 선악(善惡)의 업을 가지고 옮겨서 다른 과보를 받는 것도 또한 다시 이와 같으니라. 如彼身鏡,鏡中之影身去影滅,身持影像,或別現於水等、之中;識棄此身,持善惡業遷受餘報,亦復如是。
================
《대승현식경 하권》
이와 같이 나는 간경하였나니
어느 때 세존께서 왕사성 죽림정사에 계실 때,
대약왕자가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식識의 모양相은 어떠하나이까?
사람의 그림자 모양이 물에 나타남과 같나니,
그림자를 잡아 만질 수 없고, 있다, 없다, 분별 못할 것이
신령의 형상과 같고, 갈애渴愛의 모양과 같으니,
밝은 거울에는 얼굴 모양이 보이거니와,
거울을 버리면 얼굴 모양이 보이지 않나니,
식의 옮겨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선악업의 형체와 식의 모양을 모두 볼 수 없느니라.
달고 쓰고 맵고 시고 짜고 떫은 맛은 분별하고
혀와 음식물은 함께 형색形色은 있으나, 맛은 형식이 없는 것 처럼
육체를 통해 모든 감수受는 느껴, 육신은 형색이 있으나
감수는 형색이 없는 것처럼 그러하나니
부처님께서는 큰 약왕자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그림자 모양이 물에 나타남과 같나니, 이 모양은 잡아 만질 수 없고, 있다, 없다, 분별 못할 것이 추락가(芻洛迦) 형상과 같고, 갈애(渴愛)의 모양과 같으니라.” 佛告大藥:“如人影像現之於水,此像不可執持,非有無辨,如芻洛迦形,如渴愛像。”
큰 약왕자는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갈애(渴愛)이옵니까?” 大藥王子白佛言:“世尊!云何渴愛?”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일 사람이 뜻에 맞는 색(色)을 대하면 눈 감관[眼根]이 그곳으로 가나니, 갈애가 된다 이름한다.
마치 밝은 거울을 가지고 자기의 얼굴에 비추면 얼굴 모양이 보이거니와, 만일 거울을 버리면 얼굴 모양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나니, 식의 옮겨짐도 또한 다시 이와 같아서 선악업의 형체와 식의 모양을 모두 볼 수 없느니라. 佛言:“如人對可意色,眼根趣之,名爲渴愛。猶持明鏡視己面像,若去於鏡,面像不見;識之遷運亦復如是,善惡業形與識色像皆不可見。
첫댓글 윤 이사님!
열정적으로 여러 경전들을 수고롭게 나열하고 계신데,
대단히 죄송하지만, 불교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방해가 될 듯합니다.
한자로 ‘경(經)’이나 ‘부처님(佛)’이라 하면 모두 진짜 부처님
말씀으로 받아들일지 모르니까요.
그래도 명색이 ‘문학’을 하는 도반들에게는 불교의 진수를
알 수 있는 ‘임제록’ 정도는 설해야 격에 맞는 게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