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殞命(운명)죽음
時來天地皆同力(시래천지개동력)
運去英雄不自謀(운거영웅부자모)
愛民正義我無失(애민정의아무실)
愛國丹心誰有知(애국단심수유지)
전봉준(全琫準)
때를 만나서는 세상 모두가 힘을 합쳤으되
운이 다하니 영웅인들 어쩔 도리가 없구나!
백성을 사랑하고 정의뿐인 내게 허물이 없건만
나라 위한 일편단심 그 누가 알아줄까?
이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 평기식(平起式) 전봉준(全琫準)의 시(詩)다. 시제(詩)는 殞命(운명)이고 압운(押韻)은 우통(尤統) 운족(韻族) 모(謀), 지통(支統) 운족(韻族) 지(知), 두 운통(韻統)으로 작시(作詩)했다. 죽음을 앞에 두고 지은 시(詩)라 시어(詩語)가 동학혁명(東學革命)이 성공하지 못하고 죽은 것을 한탄(恨歎) 탄식(歎息)으로 읊고 있다. 동학혁명(東學革命)을 시작할 때는 때가 온 듯, 하였는데, 실패하자. 운이 다한 영웅호걸도 어쩔 수가 없다고 민중봉기(民衆蜂起) 혁명(革命)의 대의명분(大義名分)인 애민(愛民)도 정의(正義)도 어쩔 도리가 없다고 울부 짖고 있다. 전봉준(全琫準)은 동학교도(東學敎徒)다. 생애(生涯) 활동(活動) 사항을 보면 가난한 몰락(沒落) 양반가(兩班家) 집안에 태어나 사회개혁(社會改革)의 큰 뜻을 품고 산다. 35세 전후로 동학(東學)에 입교(立敎)하고 고부지방 동학접주(東學接主)가 된다. 입교(入敎) 동기(動機)는 동학(東學)은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 경천수심(敬天守心)의 도(道)로, 충효(忠孝)를 근본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보국안민(輔國安民)하기 위하여서였다고 한다. 동학사상(東學思想)은 1860년에 최제우(崔濟愚)가 창도(唱導)한다. 신앙(信仰)의 기초(基礎)는 시천주(侍天主)다. 사람 섬기기를 하늘같이 한다<事人如天>이다.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다. 조선의 반상(班常) 제도(制度) 틀 속에 갇힌 나라에서 혁명적(革命的)인 사상(思想)이 동학사상(東學思想)이다. 사람 사람마다 모두가 한울님으로 섬기라는 사상이다. 썪고 곪고 낡은 시대를 개혁(改革)할 민중 사상이 일어난 것이다. 전봉준(全琫準)은 동학사상(東學思想)이 사회(社會) 개혁의지(改革意志)로 원리(原理)로 인식(認識)하고 농민(農民)의 입장(立場)에서 동학교도(東學敎徒)와 농민을 결합(結合) 시킴으로써 농민운동을 지도해 나갈 수 있었던것이다. 농민 봉기의 불씨가 된 것은 고부 군수 조병갑의 탐학(貪虐)에서 비롯되었다. 조병갑은 영의정 조두순(趙斗淳)의 서질(庶姪: 형제의 조카)로서 여러 주·군을 돌아다니며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아 농민들의 원성(怨聲)을 사고 있었다. 1892년 고부 군수로 부임한 이래 농민들에게서 여러 가지 명목(名目)으로 과중(過重)한 세금(稅金)과 재물을 빼앗는 등 탐학과 비행(非行)을 자행하였다. 동학혁명(東學革命)은 처음엔 탐관오리(貪官汚吏)의 학정(虐政)과 부정부패(不正腐敗)에 반발(反撥)하여 발생했으나 점차로 조선 봉건제도(封建制度) 개혁(改革)과 일본(日本) 제국주의(帝國主義)에 항거(抗拒)하는 항쟁(抗爭)으로 발전하였다. 체포(逮捕)되어 서울로 압송(押送)되는 남아 있는 사진을 보면 당당(堂堂)하고 눈매가 살아있다. 별호(別號) 녹두(綠豆)는 체구가 작아서 불린 이름이라고 한다. 어릴 때 몰락한 양반가 아버지 밑에서 다섯 살 때부터 한문(漢文)을 익혀서 13세 때는 백구시(白鷗詩)도 작시(作詩)했다고 전한다.
청년기에는 서당(書堂) 훈장(訓長)도 하고 묘(墓)자리를 봐주는 풍수지관(風水地官)으로 활동을 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의 식객(食客)으로도 있었으나 끝까지 고문 추궁에도 흥선대원군과 연관은 발설하지 않았고 한다. 전봉준(全琫準)의 백구시(白鷗詩)는 열세 살 때 지었다고 하는데 자료를 찾아도 좀, 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어렵게 찾아낸 것은, 칠언율시(七言律詩)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압운(押韻)은 하평성(下平聲) 우통(尤統) 운족(韻族) 중에서 유(游), 추(秋), 구(邱), 두(頭), 수(愁)로 정확한 한 운통(韻統)으로 작시(作詩)했다. 시어(詩語)를 보면 이런 시다. 스스로 하얀 모래밭에 마음껏 노닐 적에 흰 날개 가는 다리로 맑은 가을 홀로 섰네, 부슬부슬 찬비는 꿈속 같은데, 고기잡이 돌아가면 언덕에 오르네, 허다한 수석은 처음 보는 낯설지 아니하고, 얼마나 많은 풍상을 겪었는지 머리는 허옇게 되었구나! 마시고 쪼는 것이 비록 번거로우나 분수를 아노니, 강호의 고기 떼들아! 너무 근심치 말지어다.<白鷗詩, 自在沙鄕得意游 雪翔瘦脚獨淸秋 蕭蕭寒雨來時夢 往往漁人去後邱 許多水石非生面 閱畿風霜已白頭 飮啄雖煩無過分 江湖魚簇莫心愁> 물가 모레 벌에 유유히 노니는 백구와 자신을 동일시(同一視)하는 감정이입(感情移入)이 13세 직관(直觀) 통찰력(通察力) 시정(詩情)이 경이롭다. 시(詩) 가운데 그림 격이 있다.<詩中有畵> 칠언율시작법(七言律詩作法)이 근체시(近體詩)에 부합(符合)한 명시(名詩)다. 유작(遺作)이 더 있을까? 찾아보아도 이 두 편 시(詩) 말고는 자료가 없다. 인물별(人物別) 시세계(詩世界) 탐방(探訪)이라 사상적(思想的)인 측면(側面)은 생략(省略)한다. 오늘은 대동사회(大同社會)를 꿈꾸고 동학농민전쟁(東學農民戰爭)을 주도(主導)했던 전봉준(全琫準)의 시(詩)세계를 탐구해 보았다,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