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시편一山詩篇
현산峴山을 찾아서 외 9편 / 임채우
현산峴山을 찾아서
일산一山에서 파주坡州간 고봉로 양쪽에
고봉산과 황룡산이 마주보고 서 있다
두 산 아래 현산이 있다는데
아무리 인터넷을 검색하고
지명 사전을 열람하고
『고양군지高陽郡誌』를 샅샅이 뒤져도
현산은 어디에도 없다
현산이 어디냐고 이웃에게 물어도
너나 나나 타관에서 굴러온 뜨내기
마침 일산본동에 40년 남짓 살고 있는 한 고향 친구가 있어
미덥지 못하나마 현산이 어디냐고 물으니
내 사는 곳이 현산이란다
아파트와 주택에 묻힌 야트막한 고개
지금은 고개도 지명도 사라지고 말았다
현산의 ‘峴’자가 고개 현이고 ‘山’은 고개보다 높은 곳이니
고개와 산이 합쳐진 이름
고개이면서 산이고
산도 아니고 고개도 아니다
황룡산 아래 숯 고개 〔炭峴〕가 있어
숯쟁이들이 무거운
숯가마를 지고 현산을 넘어
일산장에 내다 팔았겠다 숯가마니 짊어지고 정상에서 땀을 훔치며 이놈의 고개가 산 같다고 했겠지
일산본동에 한 지주가 있어 가산의 대부분이 탄현 앞뜰이라
남여를 타고 현산을 넘으며 무슨 놈의 산이 고개 같냐고 했겠지
세월에 묻혀버린 현산
이곳은 옛 왕조의 궁성터가 아니다
숯쟁이들이 숯가마니 지고 넘던
양반들이 산천경개 바람 쐬며 나들던
고개를 산처럼 우러르고 산을 고개처럼 낮추라고
현산을 현산에서 찾는다
고봉산高烽山
멋대가리 없는 산
야트막하고 밋밋한 게
길바닥의 쇠똥더미 같은 산
그래도 불 놓던 산
정자나무 아래 들독같이 생긴 산
장사바위처럼
장사가 다시 나야
산천초목 울고 갈 산
머슴 아재 고봉밥 같은 산
저 산이 밥상 위로 어떻게 오르나
밥그릇 위에 밥그릇 엎어
지혜로 다독거려 고봉밥이 된 산
제상에 한 술 떠 물밥을 만들 듯이
수박장수가 삼각으로 따 속을 보여 주듯이
숟갈질도 정성 들여
한 술 한 술 떠야 할 산
멋대가리 하나도 없는 산
에둘러 아파트 숲에 갇힌 산
가까운 이웃사촌 같은 산
순 밥심으로 오르는 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위치한 고봉산은 지역의 최고봉으로 208m의 야트막한 산이다. 정상에는 옛 봉수대의 유적이 남아 있다.
설문동雪門洞✽ · 1
비에 젖은 외곽도로를 벗어나
도시의 진입로 위에 서면
양 언덕배기의 배꽃들이
어둑어둑 다가오는 저물녘에
눈처럼 빛났다 그
문으로 들어가는
비에 젖은 하얀 꽃잎
차창에 달라붙은 입장권 한 장
✽설문동雪門洞 :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에 속한 동이다. 옛날 이곳에 설씨卨氏 문중 사람들이 많이 살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인데, 일제강점기 때 행정지명 개칭에 따라 설 문리雪門里로 바뀌었다.
설문동雪門洞 · 2
눈이 내리지 않는다
겨울이 되기 전에는
그래도 설문이라 부른다
사내를 안 처녀도 처녀라고 하듯이
설문대로雪門大路
고봉산高烽山에 봉화가 오르면
파주로 파발마가 살같이 내달리고
차들이 돌개바람 소리를 내고
손님 없는 식당이 즐비하다
꽃은 어디에 피는가
벌건 속살을 드러낸 언덕빼기
가건물, 비닐하우스, 연화벽돌집들
비탈의 희뿌연 밤느정이
5월 황사 바람에 출렁이고
어디선가 오랜 방황 끝에
막 그 나라에 들어선 고독한 영혼 하나
트럼펫 진혼곡이 울려 퍼진다
어디에 꽃은 피는가
하늘을 나는 새도 문밖을 떠돈다
눈이 내려, 어느 환장할 소식처럼 눈이 내려
찬란히 빛 터 올 그날까지
그림자 없는 사람들
그냥 설문이라 부른다
설문동雪門洞 · 3
한 순례자가 죽었다
그를 최초로 발견한 주민의 말에 의하면
밤새 두드리다 열리지 않는 문 밖에서 웅크린 채 동사한 것 같다고 한다
경찰은 그의 초라한 괴나리에서 놀랍게도
국내외 유수 각지를 떠돌아다닌 듯한 절취된 입장권이며 안내책자를 발견했다
영국의 무어卿이 개발했다는 유토피아는 물론이고
세칭 토피아 순례객이 분명했다
주검은 이내 치워졌는데 역시 지켜본 사람들이 전하는 바는
그가 마치 임사체험에 임하는 자처럼 편안하게 보였다는 것이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그는 드디어 그 나라에 도착한 듯하다
아, 죽어서야 가는 스노토피아!
커피에 빠진 장풍이
사내는 장풍이에 빠졌다
반짝이는 커피색 외투에 빠졌다
장풍이는 커피에 빠져 허우적대고
커피는 그의 아내가 솜씨를 발휘해
하루에도 수십 잔씩 뽑는다
사내는 방주를 짓고 있다
이 세상 모든 곤충 암수 한 쌍씩 받아들일 계획이다
헤라클레스하늘소, 골리앗대왕꽃무지, 디디우스몰포나비,
옥시피탈레스사슴벌레, 붉은목도리왕비단나비, 바이올린먼지벌레,
애기뿔소똥구리, 방아개비, 커피에 빠진 장수풍뎅이…
세상은 거대한 물구덩이다
방주에 들어갈 곤충들과 자기 가족을 제외하곤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익사체다 사내가 자신이 믿는 신에게 어떤 계시를 받았는지는 알 수 없다
어느 날 잘 나가던 직장 때려치고
카페를 차려 아내를 바리스타로 앉혔다
사내는 곤충들과 함께 산다
사람들은 방만한 물구덩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애기뿔소똥구리처럼 부지런히 손발을 나댄다 장풍이의 빛나는 흑요빛 날개
장수하늘소의 갸름한 더듬이
사슴벌레의 톱니 달린 집게
가녀린 올리브 이파리에
겨우 몸을 실은
장풍이가 되어버린 사내
한뫼공원
장맛비 며칠 개점휴업이더니
모처럼 햇볕 쨍하고 땅 굳어
한뫼공원 정자나무 그늘 아래
장기판 다섯에 노인네 여남은
날 궂으면 코빼기도 뵈질 않다가
볕 나면 부르지 않아도 모여드는 노친네들
어디 사는지 몰라도 그저 동네 친구
가다가 영영 비치지 않은 치도 있지만
뭐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지, 곧 만날 테니
아무리 시간 때우기 심심풀이 장기라 하지만
내리 다섯 판에 네 판을 지고
김 노인 애꿎은 빈 담배갑만 만지작거린다
판판이 이기는 맞상대 최가보다도
옆에서 남의 담배 솔솔 빼 피우며 훈수나 두는
박가놈 상판대기가 밉상스러워 장기판이 빠개지도록
장이야! 부르지만 오늘은 왠지 일진이 안 좋다
까짓것 쇠털 같은 날에 모래가 싹 트랴
남아도는 게 시간인데
최가야, 금일 전투는 그대가 승장이다
패배는 병가상사라 했거늘
내일 결전을 위하여 오늘은 작전상 후퇴다
중남미문화원
분명 우리와 친연관계가 있는 듯한
인디오들의 유물과 미술품을 접하며
우리 조상들 못지않게 그들도
태양을 숭배하고 고운 마음과 사랑을 기리며
찬란한 문화의 꽃을 피웠음을 본다
이렇듯 찬란한 금속공예와 토기와 아름다운 직물이
저 유럽의 야만에 짓밟혀
금광에서 노예로 죽어갔다
300년 수탈이 그들의 삶을 얼마나 갈가리 찢었을까
약탈당한 우리의 유물들
아직도 낯선 땅을 방황하고 있다
인디오들의 영혼의 노래와 아리랑은 하나다
벽초지문화수목원
파주시 광탄에 가면 벽초지문화수목원이 있다
이 명소를 찾는 이에게 한꺼번에 셋을 보여 주겠다
어느 야심가의 발상인지 모르겠으나
벽초지와 문화와 수목원이 어떻게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는 것인지
관계가 아리송한 셋은
푸른 하늘 아래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벽초지는 가시연꽃과 무성한 연잎과 개구리밥으로 뒤덮인 조그마한 소류지이고 문화는 유럽식 정원에 즐비한 그리스 로마 조각상과 중앙 분수대가 있고
수목원은 기린 목을 하고 있는 소나무 몇 그루와 아름드리 수양버들, 포플러가 눈에 띈다
나는 이들을 무지하게 더운 날 보러 갔는데
하늘의 양떼들이 멍석만 한
가시연꽃 방패 사이로
쪽거울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허유재虛留齋
비우기 위해 머무는 곳
어디 고즈넉한 수도원이나 명상 센터가 아니다
배불뚝이들이 애를 낳기 위해, 홀쭉이들이
달을 품기 위해, 그늘진 얼굴로 드나드는
이 도시 팔 층짜리 산부인과 병원
둘째가 둘째를 낳을 때가 되어
친정부모 차를 타고, 5분 간격 진통 중에
동굴로 들어간다, 30% 자궁이 열렸다는 진단받고
바로 입원실로 올라가고, 사위가 직장에서 달려오고
분만실 밖에는 초조와 불안이 서성댄다
동굴 안으로 불려 들어가는 세상 남편들이여
오늘의 주역은 그대들이 아니다
더욱 몸을 낮춰 조연에 충실하라
자칫 남성이라는 것이 원망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하물며 친정애비쯤이야 감히 들이밀지도 못하고
대기실 의자에 앉아 태어날 손자놈 이름자나 조합해 볼 수밖에
딸아이는 비우기 위해 진통 중이고
긴 순간,
요란한 침묵,
오후 두 시
■ 시작노트 --------------------
나의 네 번째 시집 『소아과에서 차례 기다리기』에서 아홉 편과 《우리 詩》 6월호에 발표한 「허유재虛留齋」를 묶어 <일산시편一山詩篇>이라 제 하에 발표한다. 일산一山은 알다시피 경기도 고양시 내의 한 지명이다. 서울과 파주 사이, 북한산에서 한강 사이의 너른 들판에 야트막한 고봉 산高烽山이 솟아 있어, 이 일대를 일산이라 부른다.
생각해 보면, 나의 시들은 지역적인 연고로 써진 것들이 많다. 첫째와 둘째는 삼십여 년 살았던 서울 강동구 명일동 일대에서 시의 제재를 직 간접적으로 취했다. 셋째는 퇴직 후 잠시 기거했던 서울 은평구 불광동 북한산 아래에서 쓴 것이다. 넷째는 일산에서 두 해 남짓 살면서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쓴 것이다.
나의 성향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일단 새로운 곳으로 거주를 옮기면 그 일대를 어느 정도 파악하지 않고선 마음이 놓이지 않는 편이다. 전인미답의 공간은 누구에게나 공포심을 자아낸다. 적어도 주거 안팎 30리 는 손바닥처럼 꿰고 있어야 적이 안심된다. 지난번 북한산 아래로 이사 간 당일 이삿짐을 부려두고 북한산 둘레길이며 불광사, 진관사를 답습 했다. 두 해 전 일산으로 이사 와서도 근 달여 새로운 길과 장소를 찾아 배회하다시피 떠돌았다.
아마 내 핏속엔 농업혁명이 일어난 1만 년 전까지 동아시아를 떠돌던 호모사피엔스의 피가 흐르고 있는 모양이다. 노마드라는 것이 별 것 아 니다. 역마살이 낀 떠돌이 의식을 말함이 아닌가. 이와 반대로 정주민 의식이라 하면 나는 내 고향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내 고향 사람들은 앞 에는 섬진강, 뒤에는 지리산이 에워싸고 있어, 평생 30리 안팎에서 살다 죽어 그곳에 묻힌 사람이 태반이다.
이 떠돌이와 붙박이 의식은 창세기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에서 그 씨앗을 찾아볼 수 있다. 가인은 농부였고 아벨은 양치기였는데, 여호와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고 가인의 제물을 거부하자 질투심에 자기 동생을 살해하지 않았는가. 그러나 상반된 두 의식은 적대적인 인간 삶의 모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개는 정주하기 위해서 떠도는 것이고, 떠돌기 위해 잠시 정주하는 것이리라.
아내는 벌써 걱정이다. 일산에서 두세 해 겨우 안정이 되었는가 싶은데, 미덥지 못한 남편이란 자가 불쑥 어디로 이사 가자는 말을 요즘 부쩍 입에 달고 산다. 어느 생면부지의 낯선 곳이 나를 부르고 있는지도 모른다.
ㅡ『우리詩』2018년 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