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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별이 된 선장과 뿌리 깊은 노래 — 세월과 아인슈타인을 만나다
A. 성불사의 선장 — 뚜껑 위의 마지막 한 방울
Home is the sailor, home from sea, / And the hunter home from the hill. 뱃사람은 바다에서 집으로 돌아오고, 사냥꾼은 산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 Robert Louis Stevenson, 《Requiem》
존경하던 선장님이 하선하고 새 선장님이 부임하였다. 사관생도 출신답게 엄격한 분이었다. 북쪽 사람 특유의 근면함이 몸에 배어 있었고, 걸음걸이는 언제나 질서정연하였다. 말수가 적었으며, 웃음도 많지 않았다. 그러나 그분의 시선에는 이상할 만큼 먼 곳을 바라보는 힘이 있었다. 마치 눈동자 속에 아직 돌아가지 못한 어떤 땅이 들어 있는 듯하였다. 황해도에서 불어오는 바람, 그것이 그분의 눈에 머물러 있었다. 어느 날, 달빛이 항구를 은은하게 비추던 밤, 그분은 조용히 천추객을 불렀다. "한잔하지."
그분은 스카치위스키를 좋아하셨다. 잔이 채워졌다. 그러나 이야기는 많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뒤 그분이 나지막하게 말하였다. "고향 생각이 자꾸 나는구먼."
그리고 잔을 들었다. 그 말이 그날 밤 그분이 한 가장 긴 이야기였다. 나중에 생각해보면 그날이 혹시 고향에 계신 어르신들의 제사나 생신 같은 날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묻지 않았다. 그분도 설명하지 않았다. 술기운보다 먼저 고향의 그리움이 목을 타고 올라오는 밤이 있다는 것을, 젊었던 나는 그때 아직 알지 못하였다. 우리는 한 병을 천천히 비웠다. 마지막 잔을 내려놓은 선장님은 빈 병의 뚜껑을 닫더니 의자 뒤에 거꾸로 세워놓았다. 내가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자 그분이 웃었다. "뚜껑에 몇 방울이라도 모이면 그것까지 마셔야지."
농처럼 들렸다. 그러나 그 말에는 이상할 만큼 많은 것이 들어 있었다. 술 한 방울을 아끼는 마음. 자신이 가진 것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생활의 습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미 거의 비워진 병 속에서도 마지막 한 방울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 그날 밤 선장님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노래 한 소절을 흘렸다.
"성불사 깊은 밤에……"
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나는 그때 비로소 알았다. 사람은 때로 한마디의 노래만으로 수십 년 전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황해도의 산, 깊은 밤, 성불사의 종소리, 달빛, 그리고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어느 고향의 바람. 그분에게 고향은 지도 위의 한 지명이 아니었다. 그것은 한 사람의 가슴속에 끝내 남아 있는 시간이었다. 그날 밤 스카치의 향기는 고향의 향기가 되었고, 선장님의 침묵은 시가 되었다. 병은 거꾸로 서 있었지만, 그분의 정신은 곧게 서 있었다. 나는 훗날 그 밤을 생각하며 알게 되었다. 사람의 인생도 어쩌면 저 술병과 같은 것인지 모른다고. 시간이 우리를 조금씩 비워갈수록, 마지막에 남는 것은 오히려 가장 귀한 것인지 모른다고. 그리고 그 마지막 한 방울은 대개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니다. 고향이다. 사랑이다. 사람이다. 그리고 기억이다. 그것이 내게 전해진 첫 번째 항해 철학이었다.
B. 뿌리의 노래
세월이 흘렀다. 나도 어느덧 도선사가 되어 있었다. 수많은 배가 항구에 들어오고 나갔다. 한 배가 들어오면 한 배가 나갔고, 한 사람이 올라오면 또 한 사람이 내려갔다. 항구는 언제나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선사 모임에서 나보다 서른 살이나 연배가 많은 대선배님을 만나게 되었다.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분은 바로 그 '성불사의 선장님'과 사관학교 동기동창이었다는 뜻밖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둘 다 북쪽에서 태어났고, 전쟁과 피란의 시대를 지나왔으며, 바다를 삶의 길로 삼았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거꾸로 세워놓은 위스키 병과, 그 병을 바라보며 웃던 선장님의 얼굴과, 낮게 흘러나오던 "성불사 깊은 밤에……" 그 한 소절을 떠올렸다.
나는 그 자리에서 말없이 고개를 숙였다. 인연이란 참으로 이상한 것이었다. 우리는 한 사람을 만났다고 여기지만, 실은 그 사람 뒤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의 삶까지 함께 만나는 것인지 모른다. 한 사람의 손에는 그의 부모가 있고, 그 부모의 손에는 고향이 있고, 그 고향의 뒤에는 전쟁과 역사와 시대가 있다. 사람은 홀로 태어나지 않는다. 내 부모님도 그러하였다. 이불 한 채와 쌀 몇 되를 챙겨 고향을 떠나오신 북쪽 분들은 많은 것을 가지고 오지 못하였으나 한 가지는 가지고 오셨다. 성실하게, 거짓되지 않게 살아야 한다는 마음. 그것이 내가 물려받은 가장 큰 유산이었다.
어느 해 강원도의 고향을 찾아갔을 때, 해군 출신인 사촌 형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도선사 선배님의 이야기가 나왔다. 형이 말하였다. "그 도선사 선배님 말이야…… 내 함장님이셨어."
나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한 사람의 인연이 또 다른 인연을 만나고, 그 인연이 다시 나의 기억과 연결되고 있었다. 세월은 모든 것을 끊어놓는 것 같았지만, 돌아보면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실로 모든 것을 연결하고 있었다. 이제 사촌 형도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성불사의 선장님도, 그 도선사 선배님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나는 그들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거꾸로 세운 병 속에 마지막 한 방울의 술이 남듯, 사람의 생애에도 마지막까지 남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죽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다른 형태로 계속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는 그때 이렇게 적었다.
歸途知鄕在 돌아가는 길에서 비로소 고향이 있음을 알고
根深寄靈中 뿌리 깊은 곳에 영혼이 깃들어 있음을 안다
고향은 사람을 묶어두는 사슬이 아니다. 오히려 다시 떠날 수 있게 하는 뿌리다. 나무는 뿌리가 깊을수록 멀리 가지를 뻗는다. 인간도 그러하다.
그러나 한 가지 물음이 내 마음에 남았다. 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죽는다. 아무리 사랑했던 사람도, 아무리 깊었던 인연도 마지막에는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그렇다면 결국 세월이라는 거대한 강물이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인가. 나는 그 물음을 품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놀라운 곳에 닿았다.
C. 멈추어 선 4차원의 정원
Hold Infinity in the palm of your hand, / And Eternity in an hour. 손바닥 안에 무한을, 한 시간 안에 영원을 담아라. — William Blake, 《Auguries of Innocence》
그곳에는 강물도, 바람도, 파도도 없었다. 그런데도 모든 것이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 젊은 항해사였던 나, 성불사의 선장님과 술잔을 나누던 밤, 도선사 선배님 앞에서 고개를 숙이던 날, 그리고 지금의 나이든 나. 모든 시간이 한꺼번에 펼쳐진 거대한 정원 같았다. 그 한가운데에 누군가 서 있었다. 사람이라기엔 너무 거대했고, 강물이라기엔 너무 고요하였다.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대는 세월인가?"
"그렇다."
"나는 평생 그대를 강물이라 생각했소. 성불사의 선장님도, 도선사 선배님도, 나의 부모님도, 그리고 결국 나 자신도 흘려보낸다고. 그런데 여기에는 모든 것이 있소. 그렇다면 그대는 정말 흘러가는 것이오?"
세월이 대답하였다. "그대들이 그렇게 느끼는 것일 뿐이지. 그대들의 의식은 시간을 한 방향으로 경험하지만, 물리학은 그보다 더 이상한 세계를 보여주었네. 그대들이 아인슈타인이라 부르는 사람이 그 문을 열었지." 세월이 손을 들자 정원 전체가 빛으로 변하며, 어린 천추객과 나이든 천추객이 동시에 나타났다. 그 사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이 있었다.
"보게. 젊은 그대는 나이든 그대가 되기 위해 사라진 것이 아니다. 젊은 그대는 영원히 젊은 그대이고, 그때의 그대는 그때의 자리에서 완전하다. 성불사의 선장님도 그러하다. 그 밤의 선장님은 영원히 그 밤의 선장님이다. 그대가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과, 그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이지. 시간은 그대가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강물이 아니라, 그대가 살아낸 모든 순간을 우주 속에 남겨놓는 방식일 수도 있네."
"그렇다면 죽음도 사라짐이 아니오?"
세월은 대답 대신 한 사람을 가리켰다. 백발, 헝클어진 머리, 낡은 스웨터, 입에는 파이프, 그리고 깊은 눈. "그에게 물어보게."
D. 프린스턴의 서재 — 베소에게 보낸 편지
People like us, who believe in physics, know that the distinction between past, present and future is only a stubbornly persistent illusion.
물리학을 믿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이 그저 끈질기게 지속되는 하나의 환상일 뿐임을 안다.
— Albert Einstein, 미켈레 베소 가족에게 보낸 편지 (1955)
프린스턴의 어느 조용한 서재였다. 창밖으로 저녁이 내려오고 있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었다. "세월이 나를 찾아가 보라고 했는가? 그렇다면 이미 중한 물음 하나를 품고 왔군."
"선생님. 성불사의 선장님도, 도선사 선배님도, 제가 사랑했던 사람들도 모두 이미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세월은 그분들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어도 되는 것입니까?"
아인슈타인은 잠시 침묵하다가 책상 위의 편지 한 통을 집어 들었다. "나는 가까운 벗 미켈레 베소를 잃었을 때 이런 편지를 썼네. 베소는 이 이상한 세계를 나보다 조금 먼저 떠났지만, 물리학을 믿는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구분은 완고하게 지속되는 하나의 환상일 뿐이니까."
"그렇다면 시간을 믿지 않으셨습니까?"
아인슈타인이 웃었다. "시간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진지하게 생각했기에 그것이 무엇인지 다시 묻게 된 것이지." 그는 칠판에 선 하나를 그었다. "그대는 시간이 하나의 강이라 생각하지. 과거가 뒤에, 현재가 발밑에, 미래가 앞에 있다고. 그러나 상대성이론에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네. 절대적인 '지금'이 없기 때문이지. 멀리 떨어진 두 사건이, 어떤 관찰자에게는 동시에 일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운동 상태의 관찰자에게는 한 사건이 먼저이고 다른 사건이 나중일 수 있네. 누가 틀린 것인가?"
나는 대답하지 못하였다.
"아무도 틀리지 않았네. 자연이 그렇게 생겼기 때문이지. 우주에는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하나의 거대한 '지금'이 있다고 여겼지만, 실제로는 관찰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시간과 공간의 측정이 달라지네."
"그렇다면 과거와 미래가 모두 존재한다는 말씀입니까?"
아인슈타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순하게 말해서는 안 되네. 상대성이론이 직접 말하는 것은 절대적인 동시성이 없다는 것뿐일세. 그로부터 어떤 이들은 우주를 4차원 블록 우주로 이해했지만, 그것은 상대성이론 자체와 완전히 같은 말은 아니야. 물리학은 문을 열어주었지만, 그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는 아직 철학이 계속 묻고 있지."
"그러면 선생님께서 베소의 죽음을 두고 말씀하신 '환상'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벗이 죽었다는 슬픔을 환상이라 한 것이 아니네. 그 슬픔은 너무나 실제적이지. 내가 말한 것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절대적으로 잘라놓을 수 있다고 믿는 인간의 시간관이라네."
E. 프린스턴의 서재 — 별빛과 기억
The stars awaken a certain reverence, because though always present, they are inaccessible.
별은 어떤 경외심을 일깨운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으면서도 결코 손닿지 않기에. — Ralph Waldo Emerson, 《Nature》
"그렇다면 제가 사랑했던 사람과 함께했던 시간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인슈타인은 미소 지었다. "그 물음에는 물리학만으로 답할 수 없네." 그는 파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러나 이것만은 말할 수 있지. 그대가 성불사의 선장님과 술잔을 나누었던 사건은 한때 실제로 일어났고, 그 사실은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네. 그분의 목소리를 들었고, 그분이 병을 거꾸로 세웠고, '성불사 깊은 밤에'라고 노래했네. 그 순간은 존재했네.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시간이 그 순간을 현재에서 밀어냈다고 해서, 그 순간이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 되는 것은 아니네." 아인슈타인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별을 보게. 저 별빛은 오랜 시간을 여행해 지금 그대의 눈에 들어오고 있네. 그대가 지금 보는 것은 별의 '현재'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 빛은 실제로 그 별에서 출발했네. 우리는 우주를 볼 때 이미 과거를 보고 있지." 그가 웃었다. "인간의 기억도 조금 비슷하지 않은가? 기억은 지나간 것을 다시 현재로 가져오는 것이 아닐세. 이미 존재했던 한 순간이 지금의 의식 속에서 다시 빛나는 것이지."
"선생님, 그렇다면 상대성이론이 시간을 그토록 다르게 보여준다면, 어찌하여 제 몸은 여전히 늙고, 병들고, 결국은 죽어가는 것입니까?"
아인슈타인이 파이프를 만지작거리며 웃었다. "그것은 상대성이론의 질문이 아니라, 그대 자신의 세포의 질문이지. 내가 말한 것은 관찰자에 따라 시간의 측정이 달라진다는 것이지, 그대 자신에게 흐르는 시간까지 없애주지는 않네. 아주 빠른 우주선을 타고 다녀온 사람은 지구에 남아 있던 사람보다 덜 늙을 수 있지. 흔히 시간 지연이라 부르네. 그러나 그 우주선 안에서도 심장은 여느 때처럼 뛰고, 몸은 조금씩 늙어가네. 물리학자들은 그것을 고유시간이라 부르지. 우주의 시간은 상대적이지만, 그대에게 주어진 생명의 시간은 그대의 몸을 따라 흐르는 그대만의 시간이라네. 나는 그 강물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문을 하나 열었을 뿐, 강물 자체를 멈추지는 못했네."
"그렇다면 저는 어찌하여 늙어야 합니까?"
아인슈타인이 고개를 저었다. "그것은 내 방을 나서야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일세." 그가 창밖을 가리켰다. "저 문 너머, 세포의 방으로 가보게."
F. 몸이라는 이름의 시간
Since brass, nor stone, nor earth, nor boundless sea, / But sad mortality o'er-sways their power.
청동도 돌도 대지도 끝없는 바다도, 슬픈 필멸 앞에서는 그 힘을 억누르지 못한다. — William Shakespeare, 《Sonnet 65》
인간은 시계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세포로 살아가는 존재다. 우리 몸의 수십조 개 세포는 끊임없이 만들어지고, 단백질을 만들고, DNA를 복제하고, 손상을 수리하며, 때가 되면 스스로 물러난다. 젊을 때는 이 모든 과정이 대체로 균형을 이룬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균형은 조금씩 무너진다. 손상은 누적되고, 복구하는 힘은 무디어진다.
늙는다는 것은 살아온 햇수가 늘어나는 일이 아니라, 생명이 스스로의 질서를 지켜내던 힘이 서서히 옅어져가는 과정이었다. 세포가 나뉠 때마다 그 끝동을 지켜주는 텔로미어라는 마디는 거듭 나뉠수록 짧아지다가, 어느 순간을 넘으면 세포는 더 이상 나뉘지 못하고 소리 없이 사라진다. 유전자의 손상, 낡아가는 단백질, 힘을 잃어가는 미토콘드리아, 무디어진 줄기세포, 몸 안에 남는 염증, 이 모든 것이 서로 얽혀 있었다. 인간의 늙음에는 하나의 시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작은 시계들이 저마다 조금씩 늦어지고 있는 셈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더 근본적인 물음이 남는다. 생명은 어찌하여 스스로를 완벽하게 고쳐내지 못하는가. 살아 있다는 것은 에너지를 얻는 일이며, 그 과정에는 반드시 부산물과 상처가 함께 생겨난다. 몸은 그 무너짐에 맞서 다시 세우는 데에 또 다른 에너지를 써야 한다. 끊임없이 무너지는 것을 끊임없이 다시 세우는 일, 이것이 생명이 짊어진 오래된 역설이었다.
물리학의 엔트로피는, 세상의 모든 것은 내버려두면 흩어지고 무너지는 쪽으로 기운다고 말한다. 생명은 언뜻 그 흐름을 거스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외는 아니다. 다만 바깥에서 에너지를 받아들여 안의 질서를 지키는 대신, 그보다 더 많은 흩어짐을 주변으로 밀어내는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생명이란 질서를 짓는 동시에, 그 질서를 지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태우는 일이며, 언젠가는 그 힘이 다하는 날이 온다. 그것이 늙음의 가장 깊은 물리적 뿌리였다.
그렇다면 죽음이란 무엇인가. 어느 한순간 스위치가 꺼지듯 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하나의 전체로 지탱하던 여러 질서가 더 이상 서로를 지켜주지 못하게 되는 과정에 가까웠다. 심장과 숨이 멎고 뇌가 돌아오지 못하면 한 개체로서의 생명은 끝나지만, 그 순간에도 몸 안의 모든 세포가 한꺼번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죽음은 문이 닫히는 소리라기보다, 오랫동안 하나로 지켜지던 질서가 조용히 흩어지는 일에 가까웠다.
천추객은 그제야 아인슈타인의 말을 다시 이해할 수 있었다. 상대성이론은 인간의 늙음을 없애주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각자의 몸을 따라 흐르는 고유한 시간이라는 것을 더 정교하게 보여줄 뿐이었다. 그러나 거기서 끝나지 않는 것이 있었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몸은 흩어지지만, 그가 남긴 몸짓과 말과 사랑과 가르침은 다른 사람의 몸짓과 말과 손끝 속으로 옮겨간다. 세포는 사라져도, 그 세포가 평생 지어온 습관과 눈빛은 다른 사람 안에서 다시 태어난다. 물리학이 증명해줄 수 있는 일은 아니었으나, 천추객은 그것이 물리학 못지않게 확실한 일이라고 느꼈다.
G. 시간은 정말 흐르는가
Time is what prevents everything from happening at once. 시간이란, 모든 것이 한꺼번에 일어나지 않도록 막아주는 것이다. — John Archibald Wheeler (attributed)
아인슈타인의 말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우리가 평생 당연하게 여겨온 '지금'이라는 개념이었다. 우리는 우주 전체에 하나의 거대한 시계가 있어, 서울도 런던도 달도 먼 은하도 모두 같은 '지금'을 가리킨다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상대성이론은 그것이 옳지 않음을 보여주었다.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동시성의 상대성이 핵심이다. 아주 빠르게 달리는 열차의 앞뒤에 번개가 동시에 떨어졌다고 하자. 철길 옆의 관찰자는 두 번개가 동시에 발생했다고 판단하지만, 열차 안에서 움직이는 관찰자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빛의 속도가 모든 관성계에서 같기 때문이다. 그 결과, 누구에게나 똑같은 하나의 우주적 '지금'을 설정할 수 없게 된다.
이 생각을 밀고 나가면 하나의 철학적 그림이 등장한다. 4차원 시공간이다. 세 공간 차원에 시간을 하나의 차원으로 더하면, 우주는 4차원 시공간으로 표현된다. 영화 필름을 떠올려보자. 영화가 상영될 때 우리는 장면이 차례로 나타나는 것을 보지만, 필름 자체를 손에 들고 있다면 어린 시절도 청년도 노년도 죽음도 이미 그 위에 함께 존재한다. 이것이 블록 우주를 이해하는 하나의 비유다. 다만 중요한 것은 여기서 멈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대성이론이 '우주가 반드시 블록 우주다'라고 증명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다. 어떤 사람들은 블록 우주 해석을 받아들이고, 어떤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더 근본적인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우리가 평생 믿어온 절대적 시간의 개념을 무너뜨렸다. 그것만으로도 인간에게 충분히 거대한 겸손을 요구한다.
H. 시간을 실제로 늦추는 우주
Any sufficiently advanced technology is indistinguishable from magic. 충분히 발달한 기술은 마법과 구별할 수 없다. — Arthur C. Clarke, 《Profiles of the Future》
더 놀라운 것은 이것이 한낱 철학적 사유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GPS가 좋은 예다. GPS 위성은 지구 주위를 빠르게 움직이며, 지표면과 다른 중력 환경에 놓여 있다.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빠르게 움직이는 시계는 느리게 가고,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중력이 강한 곳의 시계는 더 느리게 간다. 두 효과를 모두 보정해야 위성과 지상의 시각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 이 보정 없이는 GPS의 위치 계산에 시간이 지나며 상당한 오차가 누적된다. 스마트폰으로 길을 찾고, 배가 바다에서 위치를 확인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발견한 시간의 이상한 성질을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시간은 장소와 운동에 따라 다르게 측정된다. 우리는 시간을 살아가지만, 동시에 시간의 구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I. 다시 성불사의 밤으로
To live in hearts we leave behind is not to die. 우리가 남긴 마음 속에 계속 산다면, 그것은 죽음이 아니다. — Thomas Campbell, 《Hallowed Ground》
나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러자 그 밤이 나타났다. 젊은 선장님, 스카치 한 병, 잔, 달빛, 그리고 거꾸로 세워진 빈 병.
"뚜껑에 몇 방울이라도 모이면 그것까지 마셔야지."
그분의 얼굴은 조금도 늙지 않았다. 그때의 그분이었다. 나는 문득 깨달았다. 내가 잃어버린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나의 시간이었다. 그분은 이미 그날 밤의 그분으로 완성되어 있었다. 그분이 떠난 것은 사실이나, 그분이 나에게 남긴 밤까지 떠난 것은 아니다. 그분의 목소리는 내 기억 속에서 아직 울리고 있다.
나는 아인슈타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선생님.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시간이 모든 것을 빼앗는 것이 아니라면, 저는 무엇을 두려워해야 합니까?"
아인슈타인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조용히 말하였다. "시간을 붙잡으려 하지 말게."
"그럼 무엇을 해야 합니까?"
"살게. 지금의 순간을 완전하게 살게. 다시 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그것이 아무 뜻이 없다는 말은 아니네. 오히려 그 반대라네. 한 번뿐이기에 소중한 것이지." 그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사랑한다고 말하게. 고맙다고 말하게. 떠나야 할 곳에서는 제대로 작별하게. 그리고 아직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대의 시간을 낭비하지 말게. 과거가 영원히 존재한다는 생각은 미래를 포기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미래를 더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지. 그대가 지금 만드는 모든 순간도 언젠가는 그대의 생애라는 거대한 정원에 하나의 좌표로 남을 테니까."
그 말이 끝나자 서재의 창밖에서 별 하나가 빛났다. 나는 그 별을 오래 바라보았다.
J. 별이 된 선장
Do not stand at my grave and weep; I am not there, I do not sleep. 내 무덤 앞에 서서 울지 마오. 나는 그곳에 없으며, 잠들어 있지 않소. — Mary Elizabeth Frye
나는 이제 안다. 별이 된다는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마음속에서 빛의 방식으로 존재하기 시작한다. 몸은 사라지지만, 한 사람이 세상에 남긴 사건들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시간 속으로 옮겨간다. 성불사의 선장님은 이제 배를 지휘하지 않는다. 도선사 선배님도 더 이상 항구의 뱃길을 안내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배를 몰 때마다 그분들의 손길을 느낀다. 침로를 잡을 때면 "정확히 보게."라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고, 고향 이야기를 들으면 "성불사 깊은 밤에……" 그 노래가 다시 들린다. 가끔 술병을 다 비운 뒤에는 그 병을 거꾸로 세워놓고, 마지막 한 방울이 모이는 것을 바라본다. 그것은 이제 술이 아니다. 한 사람의 생애다. 그리움이다. 고향이다. 그리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건네준 삶의 태도다. 인생이라는 병은 결국 비워지지만, 마지막까지 남는 한 방울이 있다. 그 한 방울의 이름은 사랑일지도 모른다.
K. 빛은 계속 온다
To strive, to seek, to find, and not to yield. 애써 나아가고, 찾고, 발견하며, 결코 굴복하지 않는 것. — Alfred, Lord Tennyson, 《Ulysses》
아득한 곳에서 별 하나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 빛이 이미 내 눈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사랑하는 사람도 별과 같다.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남긴 빛은 계속 도착한다. 때로는 십 년 뒤에, 때로는 한평생이 지난 뒤에야. 우리는 그것을 그리움이라 부르지만, 어쩌면 그것은 더 정확한 이름을 지니고 있는지도 모른다. 도착. 한 사람이 떠난 뒤에도 그 사람이 남긴 빛이 아직 우리에게 도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더 이상 별이 된 사람들을 향해 "돌아오십시오."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와 있기 때문이다. 내 기억 속에, 내 말투 속에, 내 삶의 태도 속에, 그리고 내가 오늘도 바다 위에서 정직하게 침로를 잡는 그 손끝에.
바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북쪽 하늘에 별 하나가 오래도록 빛나고 있었다. 나는 그 별을 바라보며 침로를 다시 확인했다. 배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 순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미래란 아직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 내가 만들어 우주에 새겨 넣고 있는 한 장면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살아 있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 아니라, 시간 속에 자신의 한 장면을 새기는 일이다. 언젠가 내가 별이 되는 날, 누군가가 먼 바다 위에서 그 별을 바라본다면,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빛날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성불사의 깊은 밤, 거꾸로 세운 술병의 마지막 한 방울과, 프린스턴의 서재에서 아인슈타인이 남긴 편지와, 그 사이를 이어주던 세포의 방이 실은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음을 우리는 이제 안다. 사랑했던 것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 속에 다른 형태로 남는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항해는, 사라진 것을 되찾으러 가는 항해가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도착해 있는 빛을 발견하러 가는 항해인지도 모른다. 그날 새벽, 화성호는 다시 바다를 향해 나아갔다. 항해는 끝나지 않는다. 사람이 떠난 뒤에도, 시간이 지나간 뒤에도, 별이 사라진 뒤에도.
빛은 계속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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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다녀가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월과 아인슈타인을 만나다.'를
공부하고 갑니다.
오늘도 잘 지내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늘 다녀가시고 흔적을 남겨주시니 감사합니다.
잘 읽고 갑니다^^
다녀가심에 깊은 감사드립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졸필을 읽으시고 흔적을 남겨주시니 영광입니다.
성불사의 밤.
제가 참 좋아하는 곡입니다........
최고의 계절이 다시 왔습니다.
올 가을도 멀리 오랜동안 여행 다녀오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