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자명종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나는 천근만근 같은 몸을 추슬러 부처님과 마주한다. 부산 성암사 주지 응현 스님으로부터 숙제를 받고 난 후, 변화된 하루의 시작 모습이다. 하루에 서너 시간밖에 주무시지 않지만 언제나 두 눈 부릅뜬 스님의 모습이 없었다면 오욕의 하나인 수마를 이겨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응현 스님과의 인연은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힘들어 방황하고 있을 때 성암사를 소개받으면서다. 나는 성암사 경남불교대학을 다니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았고 참다운 불자의 길을 걷게 됐다. 너무나 끔찍해 두 번 다시 생각하기 싫은 기억이지만, 남편의 사업실패로 3년간 소득 없이 지낸 적이 없다. 정말 남 못지않게 열심히 일했고 늘 남편 곁에서 용기를 북돋아 주었으나, 남편의 일은 항상 성취 일보 직전에 이런저런 이유 등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운명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 항상 나의 주변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수차례 겪으면서 빚은 한없이 쌓여만 갔고, 이로 말미암아 원망과 눈물로 밤을 지새우는 날들은 늘어만 갔다. 달리 방도가 없어 무속에 기대보기도 했으나, 어긋난 운명은 피할 수가 없었다. 너무나 힘든 시간이었기에 당시 성암사와 인연을 맺지 않았다면 내 삶이 어떻게 됐을지 지금 생각해 보면 끔찍하다. 그렇다고 불연을 맺고 당장 남편의 일이 뜻한 바대로 성취된 것은 아니다. 다만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을 통해 나를 성찰하는 기회를 갖고, 참회하고 낮추게 되면서 가정에 웃음꽃이 다시 피어나게 됐다. 이로 인해 남편도 처음으로 불교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불교에 입문하게 됐다. 나의 작은 실천이 가정의 변화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그저 놀랍고 신기할 따름이다. 나는 108 참회기도로 하루를 시작한다. 사실 108 참회기도는 매년 봄과 가을 두 차례 봉행되는 성암사 3000배 참회기도를 앞두고 예행연습 삼아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4월 3000배 참회기도를 원만히 회향했으나, 108 참회기도는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실에 향을 피운 뒤 예불을 모시고 나서 참회문을 읽으며 108배를 올린다. 그리고 경전 독송과 관음 정근 등 정진의 시간을 1시간 30분가량 갖는다. 처음 108 참회기도를 시작할 때에는 남편은 물론 아이들도 내가 며칠 후에는 그만 둘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새벽 정진이 한 달, 두 달 계속되자 가족들의 의심은 격려로 바뀌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새벽에 기도를 올리지 못할 때에는 저녁예불 시간에 맞춰 정진을 하는데 이럴 때에는 이제는 도반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남편도 함께한다. 정진으로 하루를 맞이하겠다는 것이 나의 서원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는 않지만, 이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물론 가끔은 졸음이 밀려와 정진을 하다가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전날 겪은 갈등이 불쑥 떠오르기도 한다. 아직은 초보수행자라 절을 하면서도 왜 내가 지금 이러고 있는지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같은 시간 성암사에서 새벽 예불을 올리는 스님과 도반들을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다시 좌복을 펼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들에서 정진을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의지를 다잡는다. 전영숙 보살 (감로원·51·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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