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유산관계자 다뤄보지도 않았고 모른다. 제48차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 오시는 분 호기심에서라도 둘러보지 않을까?
1m크기 암석 우뚝 서거나 비스듬히 암시하려는듯, 둘레돌은 환상형이다. 탁본해도 풍화정도 심해 암각 해독하기 쉽지않을것이다.
장대석으로 경계 만들고 병풍처럼 둘러친 호신용 선돌들 무덤인지 움집인지 구분 힘들지만 수혈지로 또 무덤으로 역할한듯 하다.
3kg전후의 수많은 덮게돌을 선돌앞에 깔아놓았고, 이음돌들의 계단도 길게 연결 되어있다. 열석은 총3,000기가 넘을것 같다.
나무에 가려져서 보기 쉽지 않아 이렇게 나무베기를 했다. 앞으로 일주일 더 베기작업하여 범위를 결정하려한다.
8년동안 탐사한 결과물이니 피라미드는 아니더라도 석붕들 연결해보면 고대인의 문화상을 그려낼수있다.
[부산역사문화대전에서 비정한 행정 구역상의 장산국 위치]
『삼국사기』거도(居道) 열전(列傳)에 전하는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은 각각 지금의 울산과 동래 지역에 비정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두 지명 모두 고유의 소리 또는 뜻을 취해 이두로 표기한 것이다. 『대동지지』에는 장산국의 옛터가 “동래 도호부의 동쪽 10리에 있다”라고 하였는데, 이에 따르면 장산국은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주변으로 비정되며, 황령산 아래 배산에 치소가 있던 거칠산국과는 별개의 나라가 된다.
그런데 문제는 장산(萇山) 부근에는 삼한 시대 ‘소국’의 존재를 상정할 만한 고분군 등 유적이 존재하지 않고, 삼국시대 이 지역을 대표하는 부산 복천동 고분군과 연산동 고분군도 동일 시기가 아니라 순차적으로 조영되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장산국[=내산국]을 거칠산국과 별개의 나라로 보는 데는 주저되는 바가 있으며, 현재로서는 장산국은 거칠산국의 별칭이거나 ‘해운대구’에 대한 미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즉 장산국이 통일 신라 시대 이후에 사용된 명칭이므로, 그 이전에 존재한 나라로 보기보다 부산 지역 가운데 일부 지역, 즉 최치원(崔致遠)이 찬탄한 해운대 지역에 대한 명칭을 이 일대의 명산인 장산의 이름을 따서 불렀던 것으로 생각한다. 이 지역을 바다로 보면 ‘해운(海雲)’이지만, 산으로 보면 ‘장산’이었던 것이다. → 이렇게 수정되어야 한다고 본다. "대동지지에는 동래도호부의 동쪽 10리에 있다. 고 표기하고 있으며, 장서각의 영남도 동래부지에는 장산국기(萇山國基)를 15리에, 고읍성기(古邑城基)가 12리에 있다."고 표기되어 있어 지도상 거리를 계산 이곳을 장산국의 위치로 보는것은 어떨까 해서이다.
※ 【삼국사기】 14년(209) 가을 7월 : 석우로와 이음을 보내 가야를 공격하는 포상 8국을 물리치다.
14년(209) 가을 7월에 포상8국(浦上八國)이 가라(加羅)를 공격할 것을 모의하자, 가라 왕자가 〔신라에〕 와서 도와줄 것을 요청하였다. 왕이 태자 석우로(昔于老)와 이벌찬(伊伐湌) 이음(利音)에게 6부(部)의 병사들을 거느리고 가서 가라를 구해주라고 명령하였다. 〔석우로와 이음은〕 포상8국의 장군들을 죽이고, 〔포상8국에〕 포로로 잡혀갔던 〔가라인〕 6,000명을 빼앗아 돌려주었다.
첫댓글 1번 사진 속 바위에 뭔가가 새겨진 건 확실히 드러납니다.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상당히 호기심을 자극하네요. 전문가의 관심으로 장산의 옛역사가 제대로 밝혀지길 기원합니다.
장산과 상산의 명칭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혼용되어 불리워 졌지만, 장산국은 원삼국시대부터 사용된 명칭입니다. 부산시 문화국 근무자의 부산문화역사대전 기록에 보다 신경쓰시기를 부탁합니다.
빨리 탁본하여 비밀 풀어냈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 저같은 사람은 무심하게 지나는 사물에 역사와 접목시키는 위원장님의 장산 사랑이 매우 깊다는 것이 느껴집니다.관심을 갖고 보살피는 장산 사랑.응원합니다. 으쌰으쌰.
청동기시대 유적중 인간의 돌다루는 솜씨하나로 마연흔이라는직선을 아주 중요한 유적 근거로 삼는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