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번져오는 감성의 사유들
-박옥수 시 작품론
박철영(시인, 문학평론가)
삶의 기대치가 모든 것을 초과한 사회이고 화폐의 유동에 따라 요동치는 현실을 본다. 삶의 일상이 지수화되는 시대에 우리와 상관없는 지표를 추종하며 살아간다. 그런 풍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승이라는 대세 지표의 추종인 것이다. 그와 달리 지표의 이동과 무관한 삶도 있다. 그것은 나이 들수록 신체 반응이 느슨해지고 완만해져 가는 쇠락의 징후여서 굳이 지표랄 것이 없어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삶의 구성원에 따라 자신이 처한 환경을 살아가는 방식도 각양각색이다. 누구에게나 닥칠 미래의 시간은 아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젠가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이기에 건너야 할 수순으로 다만 앞서거나 늦게 찾아올 뿐이다. 박옥수 시인의 시 다섯 편은 마음을 어떻게 나누며 살아야 하는가를 담담히 설파하고 있다. 그 삶 속 시선으로 일궈낸 시편들의 면면에서 스스로 자신을 내려놓고 인정에 다름 아닌 온정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말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반쪽의 아랫도리를 씻기고 기저귀 갈아대길
십이 년째,
뜨겁게 흐르던 눈물은 그를 씻기고도 남죠
고집불통 대발이 아빠,
마주친 눈에서 애련함이 걸어 나와
두 손을 묶어 달라는 신음
이제야 손을 놓으라네요
무른 은행알처럼 구린내 풍기던 날을 생각하면
그 말을 듣고 싶었지만
정작, 보낼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60년간 수저를 함께든 시간은 처음과 끝을 하나로 만들죠
그 몹쓸 병을 알고, 섬김이 형벌인가 싶어
난 그를 미워했죠
덜컥,
그의 갈무리 시간이 내 밥상인 것을 알았죠
대쪽 같던 사람은 흔적 뿐,
헐렁해져 불상으로 앉아있죠
검은머리 파뿌리로 산 것이 끝사랑일까요
애간장이 얼마나 더 녹여야 북녘이 손안일까요
-<매듭 풀기> 전문
“반쪽의 아랫도리를 씻기고 기저귀 갈아대길/ 십이 년째,” 한결 같이 이어왔다. 이제는 모든 것을 당신의 의도대로 할 수 없는 사람과 함께 하고 있다. 한때는 마음먹은 대로 행하며 주체적으로 살아왔을 당신이었다. 그 사람은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치매로 인해 아내에게 보호를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다. “고집불통 대발이 아빠,”였던 자존심도 내려앉아 불상처럼 요지부동인 시선은 무의미한 지평을 형성하며 사고력의 둔감을 대변하고 있다. 그런 시간이 벌써 “십이 년째,”란다. 무기력한 ‘당신’은 한평생을 함께 해왔던 ‘남편’이었고 “대쪽 같던 사람은 흔적 뿐,/ 헐렁해져 불상으로 앉아있죠/ 검은머리 파뿌리로 산 것이 끝사랑일까요”라고 묻는 마음 한편에선 “애간장이 얼마나 더 녹여야 북녘이 손안일까요”라고 묻는 마음 저 안에 웅크리고 있는 ‘사랑’이란 마음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음을 말해준다. 사실 긴 이별을 바란다면 무의식 깊숙이 자리 잡은 ‘죽음’의 ‘서녘’을 말했을 것이다. 언제든지 깨어나길 간절하게 바라고 있다는 ‘북녘’은 현실로의 복귀를 갈망하는 마음으로 읽고 싶었다. 이 시대 모든 것을 화폐 가치로 환산하여 가름하고 있는 온정이란 것이 실종된 시대임이 분명하다. 그런 이기적인 사회 분위기에 편승하지 않고 인간애에 우선한 부부애의 헌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올봄에 꽃놀이 가자며 엉덩이를 좁혀오는 남자
찻잔 속에 하트를 그려대는 여자
뮬리싹 쑥쑥 올라오듯 몸이 몸을 향해 번져오는 봄
곁눈은 헤어스타일에서 구두굽까지 훑는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환한 노춘기
봄의 무게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궁리하는 사이
뿌리 없는 고백은
시기 이른 핑크뮬리의 고갯짓을 따라 간다
-<핑크뮬리> 전문
외래종인 ‘핑크뮬리’는 국내에 유입된 지 오래지 않아 정원 속에서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하는 데 있어 대단한 인기를 끌고 있다. 그 풍경 속에 다가가 이국적인 정취에 흠뻑 빠져든 사람들의 행복해하는 모습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핑크뮬리의 아름다움은 가을이라야 볼 수 있지만, 그 예후는 이미 봄의 작은 싹으로부터 태동하고 있었다. “올봄에 꽃놀이 가자며 엉덩이를 좁혀오는 남자// 찻잔 속에 하트를 그려대는 여자”가 있다. 그들은 마치 내밀한 봄의 기운을 알아차렸는지 먼저 들떠 있다. 그들은 은밀한 마음들을 궁리하며 아름다운 행동으로 서로를 교감하고 있다. 이 정도라면 상대방 마음을 다 알아버렸기에 눈빛만으로도 원하는 것을 꿰뚫고 있다. 그들의 모습이 아름다운 풍경이 되기까지는 아주 작은 미동에서 시작하였을 것이다. 표현 충동 같은 욕망이 없었다면 훅 달아오른 ‘핑크뮬리’의 아름다운 풍경(사랑)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만의 행동으로 봐서는 지금도 늦지 않았다. 서로를 응시하며 마음으로 공감해 가는 봄 같은 시간은 나이가 장애가 되지 않는다. “엉덩이가 들썩이는 환한 노춘기”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며 자위한다. 한껏 달아오른 꿈같은 욕망은 매번 오는 것이 아니다.
건넌방은 동묘 좌판대가 쫙 깔렸다
먼지처럼 널브러진 물건들,
한 사람에겐 눈에 가시
한 사람에게는 보물창고다
청소를 하다가 공공칠가방을 발로 툭 차도 가만히 있다
물건도 이순이 되면 순해지는 걸까
나의 증오를 저장하고 있는 걸까
불을 켜자, 좌판에 나온 물건들이 명함을 내 민다
궤짝만한 일제 트렁크가방
60년대 월남전 군복, 미제 전기다리미
럭키금성 선풍기......
보는 이의 쓰임새에 따라
한 시대를 품고 있는 골동품이라지만
쓰레기 집합소가 될 수도 있다
입에 거품을 물면서 버렸지만 다시 갖다 놓는다
깊은 밤,
귀 한쪽에서 총소리가 들리다가
야자수에서도 아오자이의 노래가
드문드문 들린다
포화 속에 꽃핀 인연이라고 울화통을 삭이려는데
마지막 귀중품이라며
군용장갑 한 켤레를 또 꺼내 놓는다
잠잠하던 홧병이 낚시 대에 걸린 물고기마냥 팔딱 거린다
-<저장강박증> 전문
사람이나 동물이나 소유에 대한 강박은 대단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사람은 식량뿐만이 아니라 직접적인 생존에 관계가 없어도 소유를 통한 장기 보유를 꿈꾼다. 사람에 따라 기호성 수집 욕구는 시대에 관계없이 다양한 품목으로 나타난다. 그 수집된 물품은 한번 손에 들어오면 일 년 내내 또는 십수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더라도 가치에 상관없이 집착을 보이곤 한다. 이런 소유욕은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골동품에 관심이 있지만, 현재 선호하는 신상의 출현을 기다렸다는 듯이 고가의 화려한 브랜드를 갈망한다. 여기에서 문제는 케케묵어 남들이 쳐다보지도 않는 골동품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그것들을 하나둘씩 모아 가족이 생활하는 공간을 버젓이 차지하여 불편을 초래하는 데 있다. “궤짝만한 일제 트렁크가방/ 60년대 월남전 군복, 미제 전기다리미/ 럭키금성 선풍기....../ 보는 이의 쓰임새에 따라/ 한 시대를 품고 있는 골동품이라지만/ 쓰레기 집합소가 될 수도 있”다면 그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다. 언제든지 기회만 되면 버려질 물건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매번 버려져야 할 목록으로 내놓았다가 또 다른 이유를 들어 다시 거둬들이는 ‘당신’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그런 당신은 우리의 사랑에 대한 애틋함도 그에 못지않은가를 묻고 싶었을 것이다.
7회 말 2루에서 타자는 뒤를 돌아본다
초록 잎 무성 할 땐 한 방을 노리며
애먼 방망이에 불꽃을 튀기곤 했다
끽해야 볼넷, 밀어내기 인생이 아니었던가
비빌 언덕 없이 혼자 일어 설 때
희망이 더 영롱해지듯,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올리며
나는 마지막 기회를 잡으려 한다
삶이 주자를 아웃시키려 해도
바닥 맛을 본 사람은 선구안이 열리는 걸까
칠부 능선을 오르는 나,
우뚝 선 굴참나무 열매는 단단해서
손이 경계를 넘어 심장을 데우고
벽안에서 꽃구름을 번식 한다
인생은 한 방이 아니라 하늘 정원을 향해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일이다
매의 눈으로 광속구와 마주 하며
간절한 곡선을 그린다
투아웃, 9회 말
홈런이 비행운을 그리며
가슴에 포물선으로 떨어진다
에러 없이
완벽한 타이밍으로
9회 말에서 나는 죽음을 얻는다
-<인필드 플라이(infield fly)> 전문
인생과 비슷하다 하여 야구의 시간을 빗대곤 한다. 야구 용어부터 알아야 시를 이해할 수 있다. ‘인필드 플라이’란 야구에서, 무사(無死) 또는 원 아웃에 주자(走者)가 1루나 2루 또는 만루인 경우, 타자가 친 공이 내야수가 쉽게 잡을 수 있게 뜨는 일. 심판이 이를 선언하면 타자는 아웃이 된다는 야구 게임의 규칙이다. 이 시는 자신이 살아온 삶을 야구 게임에 빗대 되돌아보고 있다. 지금껏 고단한 삶에서도 행운처럼 볼넷으로 현재까지 무사 진출을 할 수 있었음을 말한다. 가끔은 불안과 고통이 따르기도 했지만, “삶이 주자를 아웃시키려 해도/ 바닥 맛을 본 사람은 선구안이 열리는 걸까/ 칠부 능선을 오르는 나,”에게 행운의 스릴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마냥 좋기만 했던 날들도 어느 순간 포물선을 그으며 나락으로 추락하듯 가망 없던 때도 있더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 순간을 잘 극복했지만, 언젠가는 죽음이라는 종점에서 맞닥뜨릴 예후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다. 나이 지긋하도록 잘 살아온 시간은 “투아웃, 9회 말”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지금껏 큰 실책 없이 잘 살아왔다는 것을 빗대어 말하고 있다. 야구 게임처럼 엄격한 룰을 따라 9회 말까지 잘 살아온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그러나 아쉽게도 자신이 홈런을 연상하며 휘두른 방망이에 맞은 공이 공중에 너무 높게 뜬 바람에 손쉽게 반대편 외야수의 손안에 파고들었다. 그런 때가 분명히 살아오는 동안 있었을 것이다. 아쉽기도 하지만, 한순간을 멋지게 휘둘러 보았으니 그것만도 크나큰 행운은 아닐까?
오픈 전 백화점 안,
볼륨 있고 허리 잘록한 여인이 어둠을 입고 있다
이른 아침이 그녀에겐 한밤 중
가슴을 다 내놓아도 피어나지 않는 봄이다
봉긋한 젖가슴 사이로 그늘이 번지고
시린 빛이 환한 몸이 70% 세일을 달고
한곳만을 바라본다
휘황한 불빛에 굴절된 헐값의 몸
바닥을 치면 오를 때도 되었는데
달리고 달려도 마냥 그 자리,
플러그에 끼어 봐도 헐거워진 나와 닮았다
실크로 휘감아도 주름골은 캄캄하고,
가슴에 시심이 가득해도
잉잉거리는 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인조인간과 무엇이 다를까
반토막 난 두 몸이 마주 보고 웃는다
지금까지 무엇을 향하고
무엇을 얻으려 수많은 날을 아웅다웅 살았는지
거리에 나를 내 놓아도
아무도 안 쳐다보는 기우뚱한 봄 오후
빈손,
-<환한 여인> 전문
무심한 대상을 향해 긴 시간 열망의 손길이 있었다. 마네킹은 위치나 방향 그리고 은근한 조명에부터 진열대를 찾아올 손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을까? 그는 온갖 마케팅 전략을 통해 최상의 이미지를 연출하려 했을 것이다. “오픈 전 백화점 안,/ 볼륨 있고 허리 잘록한 여인이 어둠을 입고 있다/ 이른 아침이 그녀에겐 한밤 중”이지만, 그 안에 깃든 생각들은 신념화된 욕망이다. 그 욕망은 더 많은 욕망을 낳되 설령 성공한다 해도 자신의 것이 아니란 것을 사람들은 모른다. 그 까닭은 타인(사회)의 눈높이로 가치화된 것이기 때문이다. 마네킹에 입힌 옷값을 70%나 할인해 판다 해도 요지부동, 기어이 다시 재고 박스에 담겨야 할 판이다. 황금비율로 잘 다듬어진 마네킹의 몸매가 문제가 아니듯 단지 걸친 옷이 계절의 시기나 수요자의 시선에 들지 못한 탓이다. “실크로 휘감아도 주름골은 캄캄하고,/ 가슴에 시심이 가득해도/ 잉잉거리는 벌 하나 날아들지 않는다/ 인조인간과 무엇이 다를까”라며 아름다운 것을 갖추고 있는 마네킹과 흡사한 자신을 바라본다. 아무리 낭만 가득한 시어로 충만한 삶이지만 몰려오는 쓸쓸함을 추스른다는 것은 싶지 않다. 마네킹에서 환기된 선택적인 사유가 잊고 있던 무의식으로 전환되면서 ‘나’를 냉정하게 재발견하고 있다. 시의 시간도 삶 속에서 번져온 마음의 실체란 것을 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