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버지의 800만 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한 달쯤 됐을때 였다.
장례를 마치고 유언 내용을 정리하던 날,
변호사는 가족들 앞에서 아버지가 남긴
재산을 읽어 줬다.
오빠에게는 도심에 있는
방 세 개짜리 아파트가 돌아 갔다.
시세로 3억 원은 훌쩍 넘는 집이 었다.
내게는 예금계좌 하나가 남았다.
잔액은 800만 원. 오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케가 옆에서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12년 동안 아버님 모셨으니까,
800만 원이면 고생한 값은 받는 거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통장과관련서류를 가방에넣었다.
내가 아버지를 모신 12년을 돈으로
계산해본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계산할 생각은 없었다.
내가 서른 살이던 해, 아버지는
큰 병을 앓은 뒤 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됐다.
처음 몇 년은 휠체어에 앉아 말을 할수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길어졌다.
마지막 몇 년은 혼자 몸을 뒤집는
것조차 어려웠다.
엄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다.
오빠는 직장에 다녔고, 올케는 아이를
돌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결혼하지 않았고, 당시에는 일을
그만둘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내가 아버지 곁에 남았다.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내가 할 수
있으면 하면 되는 일이라고.
12년 동안 나는 아버지의 몸을 닦아드리고,
밥을 떠먹이고, 약 시간을 맞췄다.
기저귀를 갈고, 밤마다 다리가 저리다며
신음 하면 주물러 드렸다.
아버지가 정신이 흐린 날에는 나를 엄마로
착각했다.내 손을 붙잡고 말했다.
“여보, 가지 마.”그럴 때마다
나는 손을 꼭 잡고 대답했다.
“안 가요. 여기 있어요.”
정신이 또렷한 날에는 아버지가 내 얼굴을
오래 바라봤다.
그리고 늘 비슷한 말만 했다.
“딸아, 미안하다.”
“고생 많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고생 아니에요.”
“아버지가 살아 계시면 됐죠.”
하지만 결국 아버지도 떠났다.
800만 원은 바로 쓰지않았다.
그 돈으로 무언가를 사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아버지 묘 옆에 심을 작은
향나무 묘목을 사려고 은행에 갔다.
50만 원 정도만 찾을 생각이었다.
창구 직원은
내 카드를 받고 전산을 확인했다.
그런데 화면을 보던 직원이 잠시 멈췄다.
나를 한 번 보고, 다시 화면을봤다.
그러더니 조용히 말했다.
“고객님, 모바일뱅킹으로 잔액을 한번 직접
확인해 보시 겠어요?”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어 휴대폰을 꺼냈다.
앱을 열고 잔액을 확인했다.
처음에는 숫자를 잘못 본 줄 알았다.
다시 봤다.한 번 더 봤다. 8억 7,200만 원.
800만 원이 아니었다. 8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나는 휴대폰을 든 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직원이 조심스럽 게 말했다.
“아버님께서 생전에 따로 정리해두신 예금이있었어요.”
“외래 진료나 재활치료를 받으러 오실때마다,
꼭 은행에 들르시곤 하셨다 고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 말이 들리는 순간, 지난 몇 년의 장면들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병원에 가는 날이면 가끔 내게 말했다.
“오늘은 은행도 잠깐 들르자.”
나는 연금이나 공과금 정리 때문이라고 생각 했다.
휠체어를 택시에 싣고, 아버지를 천천히 은행 안으로 모셨다.
그가 창구 앞에서 오래 앉아 있으면 나는 밖에서
약을 사거나 커피를 사왔다.
그때마다 아버지 는 늘 말했다.
“너 먼저 가 있어.”
“금방 끝난다.”
나는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직원은 서랍에서 낡은 우편 봉투 하나를 꺼냈다.
“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오셨을 때 맡기고 가신 겁니다.”
“혹시라도 따님이 계좌를 확인하러 오시면 꼭
전달해 달라고 하셨어 요.”
봉투 안에는 오래된 예금 내역 사본과 편지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손이 떨리기 시작한 뒤로는 글자가 유난히
크고 힘이없었다.
나는 은행 의자에 앉아 편지를 읽었다.
“딸아.
이 돈은 내가 몰래 모아둔 돈이다.
옛날에 받은 보상금 일부랑, 연금에서 남긴 돈이랑
, 내가 아껴둔 걸 조금씩 넣었다.
네 오빠는 집도 있고, 차도 있고, 직장도 있다.
그런데 너는 아무것도 없이
나 때문에 제일 좋은 12년을 보냈다.
나는 글은 잘 모르지만,
사람 마음은 안다.
네가 내 곁을 지킨게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도 안다.
이 돈으로 네 집 하나 마련하고, 남는 건 네
이름으로 꼭 챙겨라.
오빠한테 굳이 말하지 마라.
내가 살아서 너에게 해준 건 별로 없는데, 가고
나서라도 네가 혼자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딸아
나는 네가
나 때문에 인생을 잃었다고 생각 하지 않았으면 한다.
너는 나를 버리지 않았고,
나는 그걸 평생 잊지 못했다.
아버지가.”
편지를 다 읽고도 나는 바로 울지 못했다.
한동안 종이만 내려다봤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눈물이 떨어져 글씨 위에번졌다.
은행 직원이 휴지를 건넸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님 마지막 방문 때 많이 힘들어 보이셨 어요.”
“벽을 짚고 천천히 걸어 오셨는데,
창구 앞에 앉아서도 숨을 오래 고르셨 어요.”
“그래도 꼭 본인 이 직접 정리해야 한다고하셨어요.”
나는 휴지를
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가 그런 몸으로 은행에 와서,
내가 모르게 돈을 넣고,
돌아가는 길에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 생각 했다.
아마 내가 어릴 때, 내 가방 안에 몰래 용돈을
넣어 두던 날처럼 뿌듯했을지도 몰랐다.
은행을 나왔을 때 햇빛이 너무 강했다.
눈이 시릴 정도 였다.
계단 앞에 서서 휴대폰을 보는데, 오빠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아버지 집은 정리해서 팔려고 한다.”
“시간 되면 와서 네 물건이나 아버지 물건 좀 챙겨.”
나는 한참 메시지 를 바라봤다.
쓰다가 지운 말도 많았다.
‘내가 아버지 12년 모신 건
왜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
‘왜 나는 항상 정리하는 사람 이어야 하지.’
하지만 결국 한 글자만 보냈다.
“알겠어.”
그날 나는 시장에 들러 작은 향나무 묘목을
샀다.그리고 아버지
묘 옆에 조심스럽 게 심었다.
흙을 덮으며 아버지에게말했다.
“아버지, 돈 확인했어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 미안해 해도 돼요.”
“아버지가 날 끌어내린게 아니라,
나를 키워준 거였어요.”
“내가 아버지 곁에 있었던 건, 내가 해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거예요.”
바람이 불었다.
향나무 잎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나는 손에 묻은 흙을 털며웃었다.
“그래도 몰래
돈 모으는 건 너무 아버지 답네요.”
“어릴 때도
내 책가방에 용돈 넣어두고, 모르는 척했잖아요.”
며칠 뒤, 나는 오빠 집에 가서 아버지 물건을 정리했다.
나는 아버지가 읽던 책 몇 권과 오래된 사진첩만 챙겼다.
나머지 가구와 물건은 오빠가 정리하겠다고 했다.
나는 말리지 않았다.
문을 나서려는데 올케가 웃으며 말했다.
“아버님이 준 800만 원이면 좀 쓸 만해?”
“모자라면 우리도 조금 보태줄까?”
나는 올케를 보고 웃었다.
“괜찮아요.”
“충분해요.”
그 말은 돈이 충분하다는 뜻만은 아니었다.
나는 그날 처음으로 알았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것은 8억 7,200만 원만이 아니었다.
그는 죽기전까지, 내가 12년 동안 단순히
희생한 사람이 아니었다 는 사실을
남겨두고 싶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간병인 이 되어 살았던 내 시간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내게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나는 다 알고 있었다.”
“네가 나를 살게 해준 날들을.”
그 사실 하나가,
내가 묘지 옆에서 심은 작은 나무 처럼
내 안에 오래 남을 것 같았다.
ㅡ퍼온 글 ㅡ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