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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1)
서혜은**2)
【국문초록】
본 논문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경판 <홍길동전>은 17장본을 포함하여 30․
24․23․21장본이 있는데, 17장본은 23장본을 저본으로 간행된 판본으로 경판
30장본이 획득한 대중성에 힘입어 출간되었다. 23장본과 비교했을 때, 17장본에
서는 길동과 지배층과의 대결 범주가 축소되면서 대결 구도가 약화되고 망당산 요
괴 퇴치담과 율도국 정벌 과정에 드러난 길동과 김현충이 대결하는 군담은 삭제되
어 있다. 하지만 서자 길동이 당대 조선의 현실에서는 불가능했던 병조판서를 제수
받음으로써 서자 신분을 탈피하고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여 가부장이 되어 적
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며 율도국을 정벌한 뒤 국왕으로 등극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이로 인해 경판 17장본에서 확인되는 길동의 모습은 마치 <소대성전>이나
<조웅전>과 같은 귀족적 영웅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과 유사하게 형상화되
어 있다. 따라서 경판 17장본은 민중적 영웅소설인 <홍길동전>을 향유했던 대중
독자들의 귀족적 성향이 가장 집약적으로 제시된 판본으로 규정할 수 있다. 또한
경판 17장본의 판권지는 없지만 책의 표지에 <홍길동젼>이라는 제목과 함께 필사
되어 있는‘뎡유(丁酉)’년이라는 기록을 참조한다면 경판 17장본은 1897년 또는
그 이전에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16~18장의 분량으로 간행된 경판본 소설의
간행 연대가 1899~1921년 사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
은 16~18장본 소설이 본격적으로 출간되는 저변을 형성한 판본이라는 소설사적
* 이 논문은 2014학년도 경북대학교 신임교수 정착연구비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논문을 작성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신 열상고전연구회의 여러 선생님들과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박세연 학예연구사님께 감사드립니다.
** 경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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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상을 지닌다.
핵심어: <홍길동전>, 경판 17장본,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서자, 귀족적 성향, 대
중성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15
차례
1. 서론
2.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배경
3.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
4.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소설사적 위상
5. 결론
1. 서론
<홍길동전>은 국문본과 한문본을 비롯하여 필사본․방각본․활자본
등 다양한 자료의 형태로 상당히 많은 이본이 현전하고 있는 작품이다. 그
로 인해 <홍길동전>의 이본 계열을 분류하는 논의도 다양하게 진행되었
지만 크게 경판본․완판본․필사본 계열로 분류하는 데에는 합의에 도달
한 실정이다. 물론 각 계열에 포함되는 이본에는 다소 차이가 있지만 공통
적으로 경판 30장본을 비롯한 경판본 소설을 경판본 계열의 대표 이본으
로, 완판 36장본을 완판본 계열의 대표 이본으로, 김동욱 소장 89장본을
필사본 계열의 대표 이본으로 규정짓고 있다.
이렇게 분류되는 <홍길동전> 세 계열의 이본 가운데 경판본 계열이 가
장 많은 독자층을 확보한 대중적인 성격을 지닌 이본 계열로 생각된다. 필
사본 계열에는 필사본 이본만으로, 완판본 계열에는 완판본 1종과 필사본
이본으로 구성된 반면에 경판본 계열에는 필사본 이본과 함께 경판본 4종
과 안성판 2종 그리고 활자본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 필사본과 달
1) 이윤석, 홍길동전 연구-서지와 해석-, 계명대학교 출판부, 1996, 30-42면; 박일용,
「이본 변이 양상을 통해 본 <홍길동전> 서술시각의 중층성」, 영웅소설의 소설사적
변주, 월인, 2003, 180-235면; 서혜은, 「경판 방각소설의 대중성과 사회의식 연구」,
경북대 박사학위 논문, 2007, 78-7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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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방각본과 활자본은 판매를 목적으로 간행된 상업적인 속성을 지니고
있는데, 특히 완판본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경판본의 경우 장수
를 줄이면서 출간을 반복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주지의 사실이다.
<홍길동전>의 경우 완판본은 단 1종만이 간행되었지만 경판본은 4종이나
간행되었다. 따라서 <홍길동전>의 경판본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
것은 분명하다고 하겠다.
더구나 얼마 전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이 발굴되면서 경판 <홍길동
전>의 대중적인 성격은 더욱 명확해졌다. 경판 <홍길동전>의 축약 과정
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는 과정에서 언급된 적은 있는 경판 17장본 <홍길
동전>은 현재 순천시 뿌리깊은나무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2) 현전하는
4종의 경판본과 비교했을 때 17장본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얼마 전 제출
된 선행 연구에서 언급된 것처럼 길동이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하고
울동에게 납치된 백용과 조철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는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는 점이다.3) 필사본인 김동욱 소장 55장본을 제외하고 방각본과 활자
본으로 현전하는 <홍길동전>의 이본 가운데 이와 관련된 내용이 삭제된
이본은 경판 17장본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4) 심지어 율도국과 관련된 내
2) 이 판본이 안성판본일 가능성도 있겠으나 현전하는 안성판 19장본은 후반부에 율도
국과 관련된 장면이 삭제되어 있다. 또한 안성판 <진대방전> 역시 17장본이 간행되
기는 했지만 현전하는 안성판 17장본은 단 1종에 불과하다. 그러나 경판본의 경우
<전우치전>, <정수정전>, <임경업전>, <소대성전>, <조웅전>이 17장본으로 간
행되어 현전한다. 또한 17장과 비슷한 분량인 16, 18, 19장본으로 간행된 경판본 소
설도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이미 소개된 바와 같이 뿌리 깊은 나무 박물관
에 소장되어 있는 17장본 <홍길동전>은 경판본이 분명한 것으로 판단된다(이윤석,
「경판 <홍길동전> 축약의 양상과 그 의미」, 열상고전연구 40, 열상고전연구회,
2014, 139-169면; 순천시립 뿌리깊은나무 박물관, 뿌리깊은나무 - 한글 고소설 우
리말 이야기 02, 디자인 길, 2013, 98면).
3) 이윤석, 앞의 논문(2014), 155면.
4) 일반적으로 알려진 <홍길동전>의 서사에서 상당히 많은 부분의 변형이 이루어진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17
용이 삭제되어 있는 안성판 19장본에서도 길동이 망당산에서 요괴를 퇴치
하고 납치되었던 여성들을 아내로 맞이하는 내용은 확인된다.
경판 17장본이 상당히 적은 분량으로 간행된 현상은 박리다매를 목적으
로 높은 이윤을 추구하고자 하는 출판업자의 의도가 충분히 반영된 측면이
라 생각된다. 더구나 <홍길동전>의 경판본은 30장본에서 시작하여 24․
23․21․17장본으로 장수를 축약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반복적으로 출간
되었고 경판본의 출간 이후 활자본으로도 여러 차례 반복적으로 출간되었
다. 활자본 또한 경판본 계열로 분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경판 17장본을 제작한 출판업자는 대중 독자층의 취향과 함께
상업성을 고려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경판 17장본에서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된 현상은 경판 <홍길동전>에 대한 대중 독자
층의 취향과 출판업자의 판매 의도가 맞물린 지점에서 드러난 현상의 일면
으로 보인다.5) 17장본에서 망당산 요괴 퇴치담은 삭제되어 있지만 길동이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게다가 선행하는 경
판본과 비교했을 때 17장본에서는 길동이 병조판서를 제수받기 전 지배층
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장면의 일부와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기 전 율
도국 군사들과 대결하는 군담 또한 삭제되어 있다.
<홍길동전>은 庶子라는 자신의 신분에 불만을 품은 길동이 가정․사
회․국가적인 차원에서 嫡子보다 월등한 능력을 발휘하여 조선이라는 사
필사본 김동욱 소장 55장본에서도 길동이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하는 내용이
삭제되어 있다. 경판 17장본의 경우 울동이라는 요괴 자치가 등장하지 않지만 김동
욱 소장 55장본에서 길동은 울장이라는 인물과 연대하여 안남국을 정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55장본에서 울장이라는 인물의 비중은 상당히 큰 것으로 논의된 바 있
다(이윤석, 「<홍길동전> 55장본 변이에 대하여」, 열상고전연구 13, 열상고전연구
회, 2000, 79면 참조).
5) 선행 연구에서는 방각본 업자의 제작 솜씨가 미숙했기 때문에 경판 17장본에서 망당
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된 것으로 논의되었다(이윤석, 앞의 논문, 2014, 16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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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에서 결코 불가능했던 꿈을 제도와 율도국이라는 공간에서 실현하는 내
용의 작품이라 생각된다. 길동은 집을 나와 도적의 무리와 합세한 후 지배
층과 대결하여 승리한 결과 병조판서를 제수 받을 수 있었고 망당산의 요
괴와 대결하여 승리한 결과 가부장이 되어 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었으며 율도국의 군사 및 율도국의 왕과 대결하여 승리한 결과 최고의
신분인 국왕으로 등극한 후에 후손에게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6)
그러므로 <홍길동전>의 망당산 요괴 퇴치담은 길동의 조선에서 지배층
과의 대결담 그리고 율도국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확인되는 군담과 함께
길동의 이상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겪는 일종의 통과 의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부분으로 간주할 수 있다고 본다. 특히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
한 후 울동에게 납치된 여성들과 혼인을 하여 가정을 꾸리고 조선에서 가
족들을 데리고 제도에 와서 홍판서를 안장하는 모습은 조선 시대 가정과
사회에서 차별받던 서자 길동이 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상업적인 성격이 명확하게 드
러나는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연구
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은 선행 연구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먼저 출간
된 경판본을 대상으로 축약의 과정을 거쳐 간행된 것은 분명하기에 경판본
계열로 분류할 수 있다. 경판본 계열은 완판본 및 필사본 계열과 변별되는
특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는데, 경판 17장본은 비록 그 분량은 적으나 경
판본 계열의 특징적인 면모와 성격을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판본
으로 보인다. 또한 경판 17장본은 판권지가 없어 정확한 간행 연대를 확인
할 수는 없지만 책의 표지와 표지의 안쪽 여러 부분에 ‘뎡유, 丁酉’라는 연
6) 김일렬, 「<홍길동전>의 구조와 의미」, 국어국문학 99, 국어국문학회, 1988, 92-
107면 참조.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19
대가 <홍길동젼 단>이라는 제목과 함께 필사되어 있다. 정유년을 17장본
이 출간된 시기로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17장본이 출간 및 유통되던 시기
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은 높다고 판단된다. 특히 현전하는 52
종의 경판본 소설 가운데 16~18장의 분량으로 간행된 15종의 작품이 남
아 있으며 이들 작품들이 간행된 연대가 대체로 1899~1921년 사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판 17장본이 지니는 소설사적 위상을 충분히 밝혀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이러한 이유로 본 논문에서는 현전하는 완판 36장본 및 경판 30․24․
23․21장본 <홍길동전>과의 비교를 통해 경판 17장본의 간행 배경과 양
상 그리고 소설사적 위상을 구명하는 것을 연구의 목적으로 삼고자 한다.
연구의 순서 또한 이와 동일하게 진행될 것이다. 본 논문은 가장 후대에
출간된 <홍길동전>의 경판본이자 경판 <홍길동전>의 특징적인 면모를
가장 집약적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경판 17장본 <홍길
동전>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라는 연구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고 본다.
2.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배경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이 간행될 수 있었던 데에는 <홍길동전>의 경
판본이 획득한 대중성으로 인해 가능했다고 생각된다. <홍길동전>의 완판
본과 경판본은 작품의 서사는 동일하게 전개되지만 이미 선행 연구에서
여러 차례 지적된 바와 같이 대조적인 성향을 드러내는데 대체로 완판본은
현실 비판적인 성향이, 경판본은 보수적이고 이상적인 성향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홍길동전>의 독자들은
현실 비판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완판본보다는 보수적이고 이상적인 성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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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드러내는 경판본을 더욱 선호했던 것으로 생각된다.7)
또한 앞서도 언급했지만 <홍길동전>의 완판본은 36장본 단 1종이 간행
된 반면에 경판본은 4종이 간행되었으며 20세기에 이르러 간행된 활자본
역시 경판본과 거의 유사한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는 현전하는 52종의 경판
본 소설 가운데 가장 많은 수인 7종의 판본이 확인되는 <임경업전>, <소대
성전>, <춘향전> 다음으로 많은 수이다.8) <홍길동전>의 경판본은 30․24․
23․21장본이 간행되었는데 17장본이 간행되는 데에는 특히 30장본이 획득
한 대중성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대중성을 확보한 경판본 소설은 선행 판본을 대상으로 장수를 줄이는
축약의 과정을 거치면서 출판을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홍길동
전>의 경판본 또한 30장본으로 출간되어 24․23․21장본으로 축약되었는
데, 23․21장본은 장수만 차이가 날 뿐 내용은 동일하지만 24장본은 23․
21장본과는 변별된다. 24장본은 30․23․21장본과 달리 조선을 떠나기 전
왕에게 정조 일천 석을 요구하고 왕이 길동의 요구를 들어주는 장면은 삭
제되어 있고 길동이 백용을 시켜 조선왕에게 표문을 올리는 장면은 축약되
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30․23․21장본의 결말에 백발 노옹의 출현 이후
에 율도국의 왕이 된 길동 부부가 사라지는 것과 달리 24장본의 결말은
7) <홍길동전>의 완판본과 경판본의 대조적인 성향에 대해서는 이미 선행 연구에서
여러 차례 언급되었는데, 대체로 완판본은 현실 비판적인 성향이 강한 반면 경판본은
보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성향이 강한 것으로 논의된 것으로 보인다(서종문, 「<홍
길동전>에 나타난 현실인식 문제」, 허균 연구, 새문사, 1981, 14-18면; 이강옥,
「<홍길동전>의 諸問題와 그 해결」, 한국고전소설론, 새문사, 1990, 168-169면,
박일용, 앞의 논문, 183-231면).
8) <임경업전>, <소대성전>, <춘향전>은 경판본으로 7종이 간행되었으며 <홍길동
전>은 17장을 포함하여 5종이 간행되었는데, 17장본을 제외하더라도 <홍길동전>
은 <임경업전>, <소대성전>, <춘향전> 다음으로 많은 판본 수를 지닌 작품이다
(서혜은, 앞의 논문, 12면 참조).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21
갑자기 율도왕이 득병하여 죽고 연이어 왕비가 죽는 것으로 되어 있다.9)
이처럼 24장본 역시 30장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지만 동일하게 30장본을
저본으로 간행된 23․21장본과는 변별되며 17장본은 24장본이 아닌 23․
21장본과 유사한 판본으로 보인다. 24장본에 삭제되어 있는 내용들이 17장
본에서는 모두 확인되기 때문이다. 또한 23장본과 21장본은 장수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은 동일하다. 대중성을 확보한 경판본 소설이 장수를 줄이면
서 출판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17장본은 23장본을 대상으로 간
행된 축약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선행 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10
장까지는 23장본과 동일하지만 이후부터는 축약된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
다.10) 따라서 <홍길동전>의 경판 30․24․23․21․17장본의 출간 과정
을 도식화하여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표 1> 경판 <홍길동전>의 출간 과정
경판 24장본
↗
경판 30장본 경판 21장본
↘ ↗
경판 23장본
↘
경판 17장본
위 <표 1>에서 제시한 경판 <홍길동전>의 출간 과정을 고려했을 때,
30장본이 가장 먼저 간행되었고 30장본을 저본으로 한 24장본이 출간되었
9) 또한 30장본과 24장본을 비교했을 때, 24장본에는 길동이 제도섬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하는 장면․인형과 재회하는 장면․율도국을 정벌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군
담과 함께 제도섬에 홍판서 부부를 안장하는 장면은 축약되어 있다.
10) 이윤석, 앞의 논문, 2014, 15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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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만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30장본을 저
본으로 한 23장본이 출간되어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고 그 결과 21
장본과 17장본이 지속적으로 간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17장본과
선행 판본의 차이는 존재하지만 30․23․21장본 사이에 드러나는 명확한
내용 차이는 없다. 따라서 <홍길동전>의 경판 17장본은 30장본이 획득한
대중성으로 인해 간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11) 특히 경판 30장본
을 저본으로 하여 23․21․17장으로 분량을 줄인 것은 박리다매를 목적으
로 하는 출판업자의 의도가 명확하게 드러난 측면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12)
3.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
<홍길동전>의 경판 30․23․21장본의 내용은 동일하게 전개되지만 24장
본은 이들 판본과 변별되는 부분이 존재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17장본
은 30․21장본의 서사와 동일하게 전개되는 23장본을 저본으로 하여 장수
를 줄이는 과정을 거쳐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판본이다. 23장본과 17장
11) <홍길동전>의 활자본 또한 경판 30장본의 대중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
덕흥서림에서 간행된 활자본 <홍길동전>의 경우 1915년에 초판이 발행된 이후
1925년까지 11판이 간행된 것으로 확인되는데, 활자본 <홍길동전>은 경판 30장본
<홍길동전>의 내용과 동일하게 전개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활자본은 17장본보다는
후대에 출간된 것으로 보인다(大正四年 初版發行 大正十四年 二月五日 十一版
印刷 大正十四年 二月五日 十一版 發行 <홍길동젼>, 조동일 소장 국문학연구자
료 23, 박이정, 1999, 251면).
12) 본 논문에서는 안성판본은 제외했지만 <홍길동전>의 안성판 23장본과 19장본 또한
경판 30장본을 저본으로 출간된 판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판 30장본 <홍길동
전>이 획득한 대중성은 더욱 명확해진다고 본다(이윤석, 앞의 논문, 2014, 144-146면,
151-153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23
본을 비교했을 때, 23장본이 17장본으로 장수가 줄어드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이 대폭 축약․삭제․개작된 부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13)
<표 2> <홍길동전>의 경판 23장본과 17장본의 서사 비교
경판 23장본 경판 17장본
① 길동의 출생과 가출
② 길동의 의적 활동과 지배층에 대한 조롱 및 저항 축약․삭제
③ 조선왕의 길동에 대한 병조판서 제수와 길동의 제도섬 이주
④ 길동의 망산당 요괴 퇴치 삭제․개작
⑤ 제도섬에서의 길동 부친의 장례
⑥ 길동과 율도왕의 대결과 율도왕의 자결, 길동의 율도국왕 등극 축약․삭제
⑦ 홍판서 부인 유씨와 길동 모친의 죽음
⑧ 율도왕과 왕비의 인멸과 왕위 계승
<표 2>의 ②, ④, ⑥에 제시된 것처럼 23장본이 17장본으로 축약되는
과정에서 길동이 지배층과 대립하는 장면․망당산의 요괴를 퇴치하는 장
면․율도국 군사와 대적하는 장면은 축약과 함께 삭제와 개작이 동시에
이루어진 부분이다. 이 세 부분은 공통적으로 길동이 서자라는 신분의 한계
를 극복하고 가정과 사회에서 이루지 못했던 이상을 단계적으로 실현하는
과정에 해당한다. 따라서 이 세 부분은 23장본을 저본으로 17장본이 간행되
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면모로 간주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13) 23장본과 비교했을 때, 17장본에서는 임금이 전국을 다니면서 작란을 일삼는 홍길동
을 잡지 못해 형을 불러 길동을 잡게 명하는 장면․형이 길동을 잡기 위해 쓴 방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제시된 장면․길동이 인형에게 잡히는 장면․길동이 임금을 찾
아가 정조 일 천석을 요구하는 장면․길동이 중의 복색을 하고 가족을 만나 형에게
부친의 산지를 보여주는 장면과 부친을 안장하는 장면․길동이 인형과 작별하고 인
형이 고국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축약되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면들이 축약되었다
고 해서 작품 전체의 의미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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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측면을 고려하여 본 장에서는 23장본을 저본으로 17장본이 간행되는
과정에서 축약과 함께 삭제 및 개작이 동시에 이루어진 <표 2>의 ②, ④,
⑥에 제시된 부분을 중심으로 17장본의 간행 양상을 고찰하고자 한다.
3.1. 신분 극복을 위한 지배층과의 대결 범주 축소
<홍길동전>에서 길동은 집을 나와 도적의 괴수가 되어 지배층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면서 자신의 신분과 사회에 대한 불만을 본격적으로 표출하
는 인물이다. <홍길동전>의 경판본에서 길동은 홍판서의 첩 초란이 보낸
자객을 살해하고 집을 나와 조선의 지배층 함경감사․이흡․경상감사를
제수 받은 인형과 본격적인 대결 구도를 형성한다. 그리고 함경감사․이흡
과의 대결에서 둔갑법과 축지법을 행하여 승리한 후 길동은 당당하게 병조
판서 제수를 요구한다. 길동과 반복되는 대결 구도 속에 거듭 패배를 반복
하는 조선의 지배층들은 적자인 길동의 형에게 경상감사를 제수하여 길동
을 잡아들이는데 일시적으로 성공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길동은 경성
으로 호송되어 궐문 밖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묶은 철끈을 끊고 공중으로
솟아올라 사라짐으로써 조선 내 지배층과의 대결에서 완벽하게 승리하고
만다. 그리고 자신의 요구대로 당시의 신분제도로는 절대 불가능한 병조판
서를 제수 받기에 이른다.
그러나 경판 17장본에서는 길동이 경상감사를 제수 받은 인형에게 붙잡
힌 척하다가 도망가 버리는 장면이 삭제되어 있다. 아래의 인용문 , 는
각각 경판 23장본과 17장본을 제시한 것으로 밑줄 친 부분은 17장본에서
삭제된 부분을 제시한 것이다.
셜 길동이 초인을 업시 고 두루다니더니 문의 방을 붓쳐스되
요신 홍길동은 아모리 여도 잡지못 리니 병조판서 교지를 리시면 잡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25
히리이다엿 거 상이 그 방을 보시고 조신을 모와 의논하시니 졔신왈
이졔 그 도젹을 잡으려 읍다가 잡지 못 옵고 도로혀 병판을 졔슈 시
문 불가 여이다 샹이 올히 녀기 경샹감 의게 길동 잡기를 촉 시더
라 이 경샹감 엄지를 보고 황공송를 여 엿지 헐쥴 모르더니 일〃은
길동이 공즁으로 려와 졀 고 왈 소졔 지금은 졍작 길동이오니 념여마르
시고 결박하여 경 로 보 소셔 감 이 말을 듯고 집슈 유비왈 이 무지
아야 너도 날과 동긔여 부형의 교훈을 듯지 안코 일국을 소동케니
엇지 달지 아니리요 네 이졔 졍작 몸이 와 를 보고 잡혀가기 원 니
도로혀 그특하도다 고 즉시 길동의 좌편 리를 보니 과연 홍졈이 잇거
지를 결박 여 함긔의 너허 쟝교 슈십을 가려 쳘통잣치 고 풍우갓치
모라가되 길동이 안을 조곰도 변치 아니더 라 여러날만의 경셩의 다〃
라 궐문밧긔 이르러 길동이 번 몸을 운동 쳘이 어 지고 함거
여져 공즁의 올으며 표연이 운문의 여 가니 쟝교 등이 어이 업셔 공즁
만 라보고 다만 넉슬 일흜 름이라 헐길업셔 이 연유로 샹달 온 샹이
드리시고 왈 쳔고의 이런 일이 어 잇스리요 시고 근심 시니 졔씬 즁
일인이 쥬왈 길동의 소원이 병조판셔를 한번 지 면 조션을 난다 오니
번 졔원을 풀면 졔스로 모 오 리니 이을 타 잡으미 조흘가 이
다 샹이 올히 녀기 즉시 홍길동으로 병조판셔를 졔슈 시고 문의 방을
붓치니라14)
셜 길동이 초인을 업시 고 문에 방을 붓치되 요신 길동을 병죠
판셔 교지를 나리시면 잡히리이다 엿더라 상이 보시고 죠신으로 더부러
의논이 분〃 시다가 홍길동으로 병죠판셔를 졔슈 시는 방을 문의 붓
치니라15)
위 인용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 바와 같이 23장본과 비교했을 때 17장본
14) 경판 23장본 <홍길동젼 권지단>, 고소설판각본전집 3, 연세대학교, 1973, 429면.
15) 경판 17장본 <홍길동젼 단>, 11b-12a면.
626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에서는 경성으로 호송되던 길동이 자신을 묶은 철끈을 끊고 공중에 올라
도망가 버리자 어쩔 수 없이 조선의 지배층들이 길동을 조선 밖으로 쫓아
보내기 위해 병조판서를 제수하기로 결정하는 장면이 삭제되어 있다. 그로
인해 17장본에서는 길동이 함경감사와 이흡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병조
판서 제수를 요구하자 조선의 지배층은 곧바로 길동에게 병조판서를 제수
하는 내용으로 전개된다.
이처럼 17장본에서 삭제된 내용은 길동이 경상감사를 제수 받은 적자
인형 및 조선의 지배층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는 부분이다. 더구나 함경감사
나 이흡과의 대결과 달리 경상감사를 제수 받은 인형과의 대결은 지배층과
의 대결이자 적자와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이중적인 대결 구도를 취하고
있다. 또한 길동이 인형의 명령에 쉽게 잡히는 것처럼 보였다가 경성의 궐문
밖에 다다랐을 때 자신의 몸을 묶었던 철끈을 끊고 공중으로 도망가 버리는
대결 구도는 함경감사나 이흡과의 대결 구도 보다 더욱 밀도 있고 박진감
있게 전개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내용이 17장본에서는 삭제되
어 23장본에서 확인되는 길동과 지배층의 대결 범주가 축소되면서 대결
구도 및 대결 강도 또한 약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17장본에서는 삭제된 경상감사 인형․지배층과 길동과의 대결
구도는 서자 길동이 병조판서를 제수 받는 결정적인 계기가 됨과 동시에
가정에서는 서자이나 사회에서는 도적의 괴수에 불구한 길동이 가정 내의
적자와 조선의 지배층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제시한다. 게
다가 길동이 이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당대의 신분 제도로는 결코 불가
능했던 병조판서를 제수 받았다는 점은 길동이 조선의 신분제도 및 자신의
신분을 극복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다.16)
16) 조선시대는 庶孽禁錮法이 행해졌지만 서얼이라고 해서 무조건 벼슬을 할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단 한직제․한품제 등으로 서얼에게 주는 품계를 3품 이하로 한정하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27
이처럼 23장본을 저본으로 하여 17장본이 간행되는 과정에서 길동과 지
배층과의 대결 범주는 축소되고 대결 구도는 약화되어 있다. 하지만 길동
이 조선의 지배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자신의 요구대로 병조판서를 제
수 받는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므로 23장본을 저본으로 17장본이 간
행되는 과정에서 길동과 지배층과의 대결 범주는 축소되고 대결 구도가
약화되면서 길동이 병조판서를 제수 받기까지의 과정은 더욱 단축된다.17)
길동은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후에는 조선을 떠나기 때문에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현상은 명분에 불과하다. 하지만 <홍길동전>에서 드러나는 길동
과 지배층의 반복되는 대결 구도를 통해 병조판서를 제수 받는 장면은 궁극
적으로 길동이 조선의 신분제를 넘어 서자 신분의 한계를 극복해 내는 현상
을 제시함으로써 조선 시대 가정과 사회에서 차별받던 서자의 잠재된 능력
을 드러낸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23장본을 저본으로 간행된 17장본
은 길동이 조선의 신분제도를 극복하고 서자 신분을 벗어나기 위한 지배층
과의 대결 범주가 축소되고 대결 구도가 약화되는 양상으로 간행된 것으로
보인다.
3.2. 제도 공간의 축소 : 요괴 퇴치 장면의 삭제와 家權의 획득
<홍길동전>에서 조선을 떠난 길동은 제도에 머물던 중 망당산에 가서
요괴 울동을 살해하고 울동에게 납치된 여성들과 혼인한 후 다시 제도로
고 그 부여하는 관직을 잡직에 한정하면서 서얼은 현관이 될 수 없다는 벼슬의 제한
과 정치적 규제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서자의 신분으로 병조판서는 제수 받을 수
없었던 것이 현실이었다. 하지만 길동이 병조판서를 제수 받은 것은 결국 길동이
지배층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고 조선의 신분제와 자신의 신분을 극복하여 서자 신분
을 벗어난 현상으로 보인다(최이돈, 「조선 초기 서얼의 차대와 신분」, 역사학보
204, 역사학회, 2009, 145-159면).
17) 그렇기 때문에 23장본에서보다 17장본에서 문제의식은 다소 약화된 것으로 보이지
만 오히려 길동의 영웅적인 능력은 더욱 부각된 것으로 생각된다.
628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돌아온다. 그리고 승려의 복색을 하고 조선으로 돌아가 위독한 홍판서를
제도로 모시고 와서 장례를 치른다. 이처럼 <홍길동전>에서 제도는 길동
이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살해하고 울동에게 납치된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여 가정을 꾸리고 난 후 홍판서를 안장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17장
본에서 제도 공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상당히 축소되어 있다.18)
현전하는 <홍길동전>의 여러 이본과 달리 경판 17장본에서는 울동이라
는 요괴 자체가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판 17장본에서는 길동
이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하고 울동에게 납치된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는 내용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17장본에서는 길동이 백용의 집에
머물던 중 길동의 비범한 용모를 보고 백용과 조철이 동시에 자신의 딸과
길동을 혼인시키는 것으로 개작되어 있다.
아래의 인용문은 17장본에서 길동이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는 장면
을 제시한 것이다.
그곳의 만셕군 부 잇스니 셩명은 용 이라 일직 한 을 두어시되 인
물과 질 이 미하 고 겸여 시셔를 통며 검술이 쵸등니 그 부뫼 극
히 랑 여 쳔하 영웅 곳 아니면 회 를 지 아니려여 두로 구더 라
이 길동이 낙쳔 용 의 집의 슉쇼더 니 용 의 부〃길동의 용뫼 비
범 믈보고 그 동니 죠쳘과 의논 고 즉시 친쳑을 모흐고 연을 셜
고 홍을 마 회 를 삼으니 쳣는 쇼 져요 기는 됴소져라 길동이
나히 이십이 넘도록 원앙의 자미를 모로더니 일죠의 양쳐를 두 양가로
낙을 보니 그 견젼지졍이 비헐 업더라19)
18) 본 논문에서는 길동이 제도에 들어와 망당산으로 가서 울동을 살해하고 다시 제도로
돌아왔다가 조선으로 가서 홍판서를 모시고 제도에서 안장하는 서사가 전개되는 부
분을 ‘제도 공간’으로 통칭하고자 한다.
19) 경판 17장본 <홍길동젼 단>, 13a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29
<홍길동전>에서 확인되는 망당산 요괴 퇴치담은 서자 길동이 배우자를
맞이하여 가부장이 되기 위해 겪는 통과 의례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조선 시대 양반 및 향리층들은 서얼과의 혼인을 상당히 기피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20) <소대성전>, <조웅전>, <장경전>, <장풍운
전>과 같은 귀족적 영웅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배우자를 맞이하는 과정에서
겪는 갈등과 수난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홍길동전>의 경우와 같이 인간
이 아닌 요괴와 대결 구도를 형성하지는 않는다. <홍길동전>에서 길동이
서자로 등장하고 길동 스스로의 신분에 대한 불만이 일관되게 드러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망당산 요괴 퇴치담은 서자 길동에게 家權을 부여하여
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설정된 문학적 장치로 생각된다. 더구나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민중의 저력이 드러난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의 변
용된 형태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서자 길동이 제도 공간에서 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홍판서를
안장하고 삼년상을 지내는 데서 확인된다. 망당산에서 울동에게 납치된 여
성들과 혼인한 길동은 조선으로 돌아가 부친 홍판서를 제도로 모시고 와서
안장한 뒤 삼년상을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 양반 사대부들은
부모가 돌아가시면 삼년상을 지냈으며 상주는 돌아가신 이의 장자로 정하
는 것이 원칙이었다.21) 그러므로 서자 길동이 제도에서 홍판서의 삼년상을
치르는 것은 인형 대신 적자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
생각된다.22) 따라서 <홍길동전>에서 제도 공간은 조선의 가정 내에서 서
20) 최이돈, 앞의 논문, 152면; 신동근․김용만, 「조선시대 서얼의 신분적 지위와 재산소
유」, 논문집 18, 영남이공대학, 1989, 186면.
21) 한국고문서학회, 조선시대 생활사2, 역사비평사, 2000, 47-49면.
22) 경판본에서 길동은 율도국 정벌 이후에 홍판서의 부인이 죽자 부인의 시신을 홍판서
의 무덤에 합장하지만 완판본에서는 적자 길현이 삼년상을 지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조션 홍승상 부 인이 말년의 졸시 니 장 길현이 예졀을 극진이 여 션여 록
630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자였던 길동이 적자 대신 홍씨 집안의 가권을 획득하는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다고 본다.23)
경국대전에도 명시되어 있었듯이 조선 시대 가권은 적처에게서 태어
난 장자만이 계승할 수 있는 적장자 승계가 원칙이었다.24) 그러나 작품에
서는 길동의 신분은 협의의 양반 또는 향리조차 혼인하기를 꺼리는 서자로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홍길동전>에서는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을 차
용하여 서자 길동이 망당산에서 요괴를 퇴치하고 요괴에게 납치되었던 만
석군 부자인 백용의 딸을 구해주는 과정을 거친 후에 그 딸과 혼인하여
독립된 가정을 형성함으로써 가권을 획득한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17장본에서는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되어 있어 작품 전체에
서 차지하는 제도 공간은 축소되어 있다. 그러나 제도에서 서자 길동이 가
권을 획득하고 적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내용에는 변화가 없다. 따라서 23
장본을 비롯한 여타의 <홍길동전> 이본과 달리 17장본에서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되면서 서자 길동은 특별한 갈등 없이 가권을 획득하고 적자
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면모를 드러내는 양상으로 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의 장예고 연 초토을 지 후 조졍의 집권여 초입의 림 학 간 을 겸고
연속 승 여 병죠졍냥의셔 홍문관 교리 슈을 겸고 연여 승직야 승상을
지 니라(완판 36장본 <홍길동젼>, 경인고소설판각본전집 3, 474면).
23) <홍길동전>의 경판본에서 제도에서 가부장이 된 길동은 승려의 복색을 하고 다시
조선으로 돌아가 홍판서의 상구를 제도로 모셔온다. 하지만 선행 연구에서 지적된
바와 같이 17장본에서 길동은 승려의 복색을 하지 않는다. 길동이 승려의 복색을
한 것은 형과 홍판서 부인을 설득하여 홍판서의 상구를 제도로 모셔오기 위한 전략
으로 생각된다(이윤석, 앞의 논문, 2014, 155면).
24) 은기수, 「가계 계승의 다양성과 종족전략」, 조선양반의 생활세계, 백산서당, 2004,
104-106면; 정긍식, 「조선시대의 가계계승법제」, 서울대학교 법학 51권 2호, 서울
대학교 법학연구소, 2010, 70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31
3.3. 율도국 정벌 과정 속 군담의 삭제와 왕권 획득
안성판 19장본을 제외한 대부분의 <홍길동전> 이본에서 길동은 율도국
을 정벌하고 국왕으로 등극하는 내용은 공통된다. 하지만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는 과정은 이본에 따라 상이한데 특히 완판본과 경판본의 차이는
확연하다. 완판본과 경판본 모두 율도왕이 자결함으로써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는데 성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완판본에서는 길동이 율도왕에게 격서를 전한 후 장수들과 함께
대적하는 군담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는 반면 경판본에서는 길동과 율도왕
의 직접적인 대결은 없다. 다만 경판본에서 길동은 율도국의 철봉산하에서
김현충과 대적하여 승리한 뒤에 율도왕에게 격서를 보내고 격서를 받은
율도왕은 길동이 보낸 격서를 받자마자 자결한다. 따라서 완판본에서보다
경판본에서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는 과정은 더욱 수월하게 진행되는 것
으로 보인다. 그런데 경판 17장본에서는 현충과 길동의 군담마저 삭제되어
있다.
길동이 졔을 불너 의논왈 당쵸의 방 으로 단닐졔 률도국을 유
의고 이곳의 머무더니〃졔 마이 연 발 니 운 녈니믈 가히 알
지라 그 등은 를 위 여 일군을 죠발 면 족히 를 도모 리라 고
길동이 스 로 션봉이 되고 마숙으로 후군쟝을 감아 졍병 오만을 거 리
고 일출 니 〃 갑츄 구월이라 군 을 휘동여 률도국 철봉산
의 다〃르니 쳥봉슈 김현츙이 업는 군니 르믈 보고 경 여
일변 왕의게 보 고 일군을 거 려 홀 길동의 용 을 아지 못 고 달
여드러 슈합이 못여 여 본진으로 도라와 견벽불출거 길동이
졔장을 모흐고 의논왈 우리 이곳의 드려와 양최부족 니 만일 날이 오
면 를 일우지 못 리니 계교로 쳘봉 슈를 잡고 그 양쵸를 아셔
도셩을 치면 엇지 계교아니리요 고 쟝슈를 쳐의 복 고 마숙으로
632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졍병 오쳔을 거 려 여 〃〃 라 이 마숙이 홈을 도〃니 현츙니
다라 호더니 미급슈합의 마숙이 거즛 여 본진으로 도라오니 현츙
이 뒤흘 로 지 라 길동이 공즁을 향여 진언을 염니 〃윽고 오방신
쟝이 군을 거 려 일시의 에워 니 동은 쳥뎨쟝군이요 남은 뎍뎨쟝군이
요 셔 뎨 쟝군이요 북은 후뎨쟝군이요 즁앙은 길동이 황금투고의 도
를 들고 즛쳐드러가니 반합이 못 여 현츙의 탄 말을 질너 업지르고 즐
왈 네 쥭기늘 앗기거든 니 항복라 현츙이 걸 왈 쇼쟝이 임의 잡히엿
스니 잔명을 졔하소셔 길동이 항복물 보고 그거 슬 글느고 위로며 인
여 쳘봉을 직히게 고 군 를 모라 도셩을 칠 격셔를 률도왕의게
젼 니 일너쓰되25)
길동이 계교로쎠 현츙을 항복밧고 인 여 현츙으로 쳘봉을 직키게
고 군 를 모라 도셩을 칠 격셔를 쎠 률도왕에게 젼 니 일녀쓰되26)
인용문 , 는 각각 경판 23장본과 17장본을 제시한 것으로 밑줄 친
부분은 17장본에서 삭제된 부분이다. 따라서 위 인용문에 제시된 바와 같
이 17장본에서는 길동이 현충과 대결하지 않고 계교를 써 현충에게 항복을
받고 율도왕에게 격서를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
하는 과정에서 행해지는 군담은 길동이 병조판서를 제수받기 전 지배층과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망당산의 요괴를 퇴치하고 배우자를 맞이하여 가권
을 획득하는 장면과 함께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고 율도국의 왕이 되기
위해 겪는 일종의 통과 의례와도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17장본에서는 여타의 이본과 달리 길동이 율도국을 정벌하는 과
정에서 확인되는 율도국 군사와 대적하는 군담은 없다. 길동은 단지 군사
를 몰아 도성을 친 후 율도왕에게 격서를 전하고 길동의 격서를 받은 율도
25) 경판 23장본 <홍길동젼 권지단>, 고소설판각본전집 5, 432면.
26) 경판 17장본 <홍길동젼 단>, 14b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33
왕은 그 자리에서 바로 자결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따라서 여타의 이본과
달리 17장본에서 이루어진 길동의 율도왕 등극 과정에서 드러나는 특별한
갈등은 형성되어 있지 않다.
대체로 영웅소설에서 군담은 주인공의 영웅적인 능력을 부각시키는 역
할을 하지만 오히려 17장본에서 길동이 현충과 대결하는 군담이 삭제됨으
로써 서자 길동의 잠재된 능력은 더욱 부각되어 보인다. <홍길동전>의 완
판본에서 길동은 율도국의 왕과 치열하게 대결하고 경판본에서 길동은 율
도국의 왕을 만나기 전 율도국의 군사인 현충과의 대결 과정을 거친다. 하
지만 17장본에서는 이러한 대결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길동은 왕권을 획득
하며 죽고 난 이후 길동의 후손들이 왕위를 계승한다. 이처럼 23장본을 저
본으로 17장본을 간행하는 과정에서 길동의 왕권을 획득 과정에 드러나는
장애 및 갈등 요인이 제거됨으로써 서자 길동의 잠재된 영웅적인 능력은
더욱 부각된 것으로 생각된다.
4.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소설사적 위상
지금까지 <홍길동전>의 경판본은 30․24․23․21장의 4종만이 알려져
있었지만 17장본이 발굴됨으로써 <홍길동전>의 경판본은 5종이 되었다.
특히 17장본은 현전하는 <홍길동전>의 경판본 가운데 가장 적은 분량을
지니고 있으며 길동이 망당산에서 요괴 울동을 퇴치하는 내용이 등장하지
않는 <홍길동전>의 유일한 이본이어서 경판 <홍길동전>의 특성이 집약된
판본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또한 17장본의 판권지는 없지만 책의 앞뒤
표지에 ‘뎡유 납월’이라는 필사 연대가 <홍길동젼 단>이라는 제목과 함께
적혀 있다. 16~18장의 분량을 지닌 경판본 소설이 1899~1921년 사이 출간
634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된 점을 감안한다면 17장본의 책 표지에 필사된 정유년은 경판 17장본 <홍
길동전>의 소설사적 위상을 밝혀 줄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면서 본 장에서는 경판 17장본 <홍길동
전>의 소설사적 위상에 대한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4.1. 경판 <홍길동전> 귀족적 취향의 집약적 제시
<홍길동전>은 조선의 신분제도와 자신의 신분에 불만을 품은 서자 길
동이 조선의 지배층과 망당산의 요괴 그리고 율도국의 왕과 대결하여 승리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민중적 영웅소설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 작품이
라 생각된다.27) 이러한 <홍길동전>의 성격은 이미 선행 연구에서 여러 차
례 지적된 바와 같이 완판본에서 가장 명확하게 부각되어 있다. 하지만 민
중적 영웅소설로서의 성격이 부각된 완판본은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성
공하지 못했고 귀족적인 성향이 가미된 경판본이 대중성을 확보하는 데는
성공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완판본은 36장본 1종만
이 간행되었지만 경판본은 30․24․23․21장본과 함께 17장본을 포함하
여 5종이 간행되었고 활자본 역시 경판본의 내용과 거의 동일하게 전개되
기 때문이다.28)
27) <홍길동전>에 드러나는 서사 전략과 현실 인식을 토대로 홍길동을 명확하게 민중적
영웅으로 규정지은 논의는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이상구, 「<홍길동전>의 서사 전략
과 작가의 현실 인식」, 국어교육연구 52, 국어교육학회, 2013, 309-352면 참조).
28) <홍길동전>은 민중적 영웅소설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는 작품이지만 귀족적 성향
을 드러내는 경판 <홍길동전>이 대중성을 확보할 수 있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귀족
적 영웅소설이 획득한 대중성에 기인한 것이라 생각된다. 현전하는 52종의 경판본
소설 가운데 <소대성전>, <조웅전>, <현수문전>, <장경전>, <장풍운전>과 같은
귀족적 영웅소설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또한 <소대성전>의 경판본은
<임경업전>, <춘향전>의 경판본과 함께 가장 많은 7종이 현전한다는 점을 감안한
다면 귀족적 영웅소설이 대중성을 확보한 유형이었음은 분명하다.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35
경판본과 완판본은 동일한 서사로 전개되는 작품이지만 두 작품에서 확
인되는 길동의 행동 방식은 변별된다. 완판본에서 길동은 도적의 무리에
들어가고자 했지만 거부당하고 초부석을 들어 자신의 능력을 입증한 후
도적의 괴수가 되지만 경판본에서는 도적들이 먼저 길동을 알아보고 자신들
의 괴수가 되기를 요청한다. 그리고 완판본에서는 길동이 화살 맞은 요괴
울동을 직접 찾아가 퇴치하지만 경판본에서는 요괴들이 길동에게 울동을
살려달라고 요청한다. 또한 완판본에서 길동은 율도국의 왕에게 격서를 보
내고 김인수․맹춘과 치열한 대결 과정을 거친 후 율도국을 정벌하는 데
성공하지만 경판본에서 길동이 격서를 보내자마자 율도국의 왕은 자결한다.
이처럼 완판본에서는 길동의 진취적인 행동과 민중적 영웅으로서의 면
모가 부각되지만 경판본에서는 <소대성전>이나 <조웅전><유충렬전>에
등장하는 주인공과 같이 수동적이며 보수적인 성향의 귀족적 영웅과 유사
한 면모를 드러내는 것으로 보인다.29) 17장본의 경우에는 이러한 면모가
가장 집약적으로 드러나 있다. 17장본에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배
층과의 대결 범주가 축소되면서 대결 구도가 약화되고 망당산의 요괴는
등장하지 조차 않기에 길동은 요괴와 대결 구도를 형성하지 않는다. 그리
고 길동이 율도국의 왕에게 격서를 전하기 전에 전개되는 율도국 군사 김
현충과의 군담은 삭제되어 있다.
따라서 17장본은 경판 <홍길동전>에 가미된 귀족적 성향이 가장 극명
29) 서혜은, 앞의 논문, 116-122면.
필사본인 김동욱 소장 55장본의 경우 이러한 특징적인 면모는 더욱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김동욱 소장 55장본에서 길동은 울장과 연대하여 안남국을 정벌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길동이 안남국을 정벌하기 전 용종말․벽력검․일월갑을 획득하는
장면은 <소대성전>, <조웅전>, <유충렬전>과 같은 귀족적 영웅소설에서 주인공이
말․검․갑주를 획득한 후에 영웅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내용과 상당히 유사하게
전개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636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하게 드러나는 판본이라 생각된다. 특히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에는 망
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고 본다. 망당
산 요괴 퇴치담은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이 변용된 형태로 민담 자체가
민중 의식을 대변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하지만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의 경우 주인공 장수가 아귀와 부하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한 후 공주와
결혼한다는 점에서 세계와의 대결 구도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하는 민중의
저력과 욕망이 성취되는 모습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민중의 저력과 욕망이 성취되는 모습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지하국 대적 퇴치담의 변용된 형태인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경판 17장본에
는 삭제되어 있다. 대신 뛰어난 능력을 지닌 길동은 백용에게 그 능력을
인정받아 아무런 갈등이나 수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한꺼번에 백용과
조철의 두 딸과 혼인하는 내용으로 서사는 전개된다. <소대성전>이나 <조
웅전>과 같은 귀족적 영웅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배우자를 맞이하는 과정에
서의 갈등은 존재한다.
하지만 경판 17장본에서 길동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배우자를 맞이하고
율도국의 왕이 되며 지배층과의 대결 범주와 구도는 상당히 축소되어 있
다. 이러한 측면은 궁극적으로 완판본과 대조되는 경판본 <홍길동전>에
드러난 보수적이고 이상적인 성향과 그 맥락을 같이 하는 것으로 생각한
다. 보수적이고 이상적인 성향은 민중이 드러내는 성향이라기보다는 신분
제 사회의 특권층인 귀족들의 성향이다. 그러므로 17장본은 <홍길동전>
의 경판본 가운데 귀족적 성향이 가장 집약적으로 제시된 판본으로 규정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30)
30) <홍길동전>뿐만 아니라 경판본과 완판본이 모두 현전하는 판소리계 소설인 <춘향
전>, <심청전>, <토끼전>에서도 경판본은 양반 문화를 지향하는 보수적인 성향이
드러나는 것으로 논의된 바 있다(김현주, 「경판과 완판의 거리-판소리계 소설을 대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37
4.2. 경판 16~18장본 소설 출간의 저변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판권지는 없지만 책의 앞뒤와 속표지에 공
통적으로 정유년이라고 적혀 있다. 아래의 사진은 왼쪽부터 차례대로 정유
년이라는 연대가 적혀져 있는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앞표지와 그 안
쪽 그리고 맨 뒷장과 그 안쪽을 제시한 것이다.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에는 판권지가 없어 정확한 출간 연대를 확인
상으로 한 사회문화적 해석」, 국어국문학 116, 국어국문학회, 1996, 166-183면).
638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위 사진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책의 표지와 그
안면에 공통적으로 적혀진 정유년이라는 연대를 통해서 경판 17장본의 대
략적인 출간 연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정유년이라는 연대는 <홍길동
젼 단>이라는 제목과 함께 적혀 있으며 책의 표지는 경판 17장본 <홍길동
전>이 출간된 이후 책이 유통되는 과정에서 필사되었을 가능성이 높기 때
문이다. 그렇다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은 정유년 또는 그 이전에 간행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17장본에 적혀 있는 정유년은 1827년일 가능성
도 있지만 1897년일 가능성이 더욱 농후하다고 판단된다.
경판본 소설은 대체로 49장으로 출간된 <임경업전>을 포함하여 30~37․
20~29․16~18장 분량으로 출간되었다. 완판본 소설이 점차 장수를 늘여
갔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경판본 소설은 장수를 줄여가면
서 출간을 반복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16~18장의 분량으로
출간된 소설들은 현전하는 경판본 소설 가운데 가장 후대에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김동욱 소장 16장본 <정수정전>은 大韓光武九年,
국립중앙 도서관 소장 16장본 <금방울전>, <정수정전>, <숙영낭자전>은
大正九年, 경북대․서울대 소장 16장본 <금방울전>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16장본 <숙영낭자전>은 大正十年에 간행된 것으로 확인된다.31) 또한
18장본 <장화홍련전>의 경우 표지에 明治三十二年이라는 기록을 통해
1899년 이전에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6장본 <토생전>의
경우 작품의 말미에 ‘定價金新貨五錢 戊申十一月 日由洞新刊 무신 십일
월 일유동신간 定價韓貨十箋’이라는 기록을 통해 1905~1908년 사이에 출
31) <뎡슈졍젼 권지단>, 고소설판각본전집3, 연세대학교, 1973, 53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장본 <금방울젼 권지단>, 33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장본 <뎡슈졍젼 권
지단>, 35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16장본 <슉영낭 젼 단>, 34면; 경북대 소장 16
장본 <금방울젼 권지단> 판권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소장 16장본 <슉영낭 젼 단>
왕실도서관 장서각 디지털 아카이브 참조.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39
간된 작품으로 규정하고 있다.32) 따라서 16~18장의 분량으로 간행된 경판
본 소설들은 대체로 늦어도 1899~1921년 사이에 간행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33)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에 적혀 있는
정유년은 1899~1921년과 가까운 시기인 1897년으로 간주하는 것이 비교
적 타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은 1897년 또는 그 전에 간행되었을
가능성이 높은 판본으로 추정할 수 있다. 현전하는 52종의 경판본 소설 가
운데 16~18장의 분량으로 간행된 작품은 <홍길동전>을 포함하여 <금방
울전>, <당태종전>, <쌍주기연>, <소대성전>, <숙영낭자전>, <임경업
전>, <장경전>, <장화홍련전>, <전우치전>, <정수정전>, <조웅전>,
<진대방전>, <춘향전>, <토생전>의 15종이다. 이 가운데 간행 연대가 밝
혀진 작품은 <홍길동전>을 포함하여 <금방울전>, <숙영낭자전>, <소대
성전>, <장화홍련전>, <정수정전>, <토생전>의 7작품이다.
이들 작품의 간행 연대가 1899~1921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경판 17
장본 <홍길동전>은 간행 연대가 밝혀진 경판 16~18장본 소설 가운데 가
장 이른 시기에 간행된 판본이라는 소설사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다. 따라
서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이 간행된 이후에 최소한 경판 16~18장본 소
설이 6종 이상 간행된 것은 분명하다. 그러므로 경판 17장본 <홍길동전>
은 경판 16~18장본 소설이 간행되는 저변을 형성한 판본이라는 소설사적
위상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32) 전성탁, 「<장화홍련전> 이본고」, 한국고전문학의 원전비평, 새문사, 1990, 316면;
이창헌, 경판 방각소설 판본 연구, 태학사, 2000, 116면; 이진오, 「경판 <토젼 >
의 형성과 소설사적 의미」, 고려대 석사학위 논문, 2006, 7면.
33) 그렇기 때문에 16~18장의 분량으로 간행된 경판본 소설이 1910~20년대에 활발하
게 간행되었던 활자본 소설과 경쟁했을 가능성에 대해 논의된 바 있다(이창헌, 앞의
책, 547면).
640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5. 결론
본 논문에서 아직 학계에 공개되지 않은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을 대
상으로 하여 경판 30․24․23․21장본과 완판 36장본과 비교하는 방식을
통해 경판 17장본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에 대해 고찰했다. 이상의
논의를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은 30장본이 획득한 대중성에 힘입어 박
리다매를 목적으로 간행된 상업적 출판물로 30장본의 축약본인 23장본을
저본으로 간행되었다. 둘째, 23장본과 비교했을 때 경판 17장본에서는 길
동과 지배층과의 대결 범주가 축소되었고 망당산 요괴 퇴치담과 길동과
율도국의 군사 김현충과의 군담은 삭제되었다. 하지만 가정과 사회에서 서
자라는 신분으로 차별받던 길동이 조선의 신분제도를 극복하여 병조판서
를 제수 받고 제도에서 백용과 조철의 딸과 혼인하여 가권을 획득한 후
적자의 역할을 수행하며 최고의 신분인 율도국의 왕으로 등극하는 서사에
는 변함이 없었다. 셋째, 완판본 및 현전하는 경판본 소설과 비교했을 때
17장본은 <홍길동전> 경판본에서 확인되는 귀족적 성향이 집약적으로 제
시된 판본이자 경판 16~18장본 소설이 간행될 수 있었던 저변을 형성한
판본이라는 소설사적 위상을 지니고 있었다.
<홍길동전>의 이본은 수십 종에 이르지만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
되어 있는 이본은 필사본인 김동욱 소장 55장본을 제외하고는 경판 17장본
이 유일한 것으로 보인다.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의
변용된 형태를 취하고 있기 때문에 선행 연구에서는 <홍길동전>을 초기
영웅소설의 한계를 드러내는 작품으로 논의되기도 했다. 하지만 본 논문에
서는 경판 17장본에 삭제되어 있는 망당산 요괴 퇴치담을 전반부의 지배층
과의 대결과 후반부의 길동과 김현충의 군담과 함께 길동이 서자라는 신분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41
의 한계를 극복하여 당시 서자 신분으로 불가능했던 가권과 왕권을 획득하
기 위해 설정된 통과 의례와 같은 기능을 하는 문학적 장치로 간주했다.
그렇기 때문에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삭제된 경판 17장본을 귀족적 취향이
가장 집약된 판본으로 규정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경판 17장본이 대중성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17장본은 박리다매를 목적으로 간행된 상업적 성격이 아주 강한
출판물이며 <홍길동전>의 여러 이본 계열 가운데 경판본 계열이 대중성
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근거가 되는 판본임은 분명하
다. 하지만 경판본 계열로 분류되며 경판 17장본이 간행된 이후인 1915년
부터 1925년까지 11번이나 간행된 흔적이 남아 있는 활자본 <홍길동전>
에는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측면을 감안한다면 당
대의 소설 독자층들은 경판 17장본보다는 망당산 요괴 퇴치담이 포함되어
있는 <홍길동전>을 더욱 선호했던 것 같다.34)
<홍길동전> 뿐만 아니라 <김원전>, <금방울전>, <최고운전>, <김진
옥전>, <설인귀전>과 같은 고전소설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변용된 지하국
대적 퇴치담은 확인된다.35) 따라서 지하국 대적 퇴치담은 상당히 오랜 기
간 동안 민중들의 지지를 받으면서 전승되어 오다가 소설 속으로 수용되면
서 그 형태는 변용된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소설 속에 수용된 지하국 대적
퇴치담의 범주와 양상이 다양하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더욱 그러하다고 본
다. 더구나 <홍길동전>은 지하국 대적 퇴치담의 변용된 형태인 망당산 요
34) 그러나 <홍길동전>의 개괄적인 서사는 알고 있으면서도 <홍길동전>의 원본을 직접
읽어보지 못한 현대인들의 대부분은 <홍길동전>에 포함된 망당산 요괴 퇴치담은
모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현상의 저변에는 경판 17장본의 영향력이 작용했
을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된다.
35) 송진한, 「한국설화의 소설화 연구-<지하국대적퇴치설화>와 고전소설의 구조분석을
중심으로」, 전남대학교 석사학위 논문, 1984, 1-72면.
642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괴 퇴치담이 수용된 이본과 그렇지 않은 경판 17장본이 모두 현전하고 있
어 소설에 수용된 지하국 대적 퇴치담의 기능을 확연하게 고찰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고전소설 속에 수용된 지하국 대적 퇴치 민담의
범주․양상․기능에 대한 논의는 본 논문의 여러 한계점에 대한 보완과
함께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미루고자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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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투고일 : 2014. 10. 31. 심사완료일 : 2014. 12. 5. 게재확정일 : 2014. 12. 11.
644 洌上古典硏究 제42집 (2014. 12)
Abstract
A Study on the Publication Aspects and Status of Novel History in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
36)
Seo, Hye-eun**
37)
This paper is a study on the publication aspects and status of novel history in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There is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at deep rooted tree
museum in Sun-Cheon.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was published from popularity of 30 sheets version. There are 5 kinds of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30․24․23․21․17 sheets version.
But there is only one Jeon-Ju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36 sheets
version. The narrative of 30․23․21․17 sheets version is similar. Yet 24 sheets
version is distinctive the others. And the narrative of 23․21 is same. Therefore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30 sheets version is popular block book.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is contraction
of 23 sheets version. The Hong-Gil-Dong and Cho-Seon ruling class's duel
category is got narrow and their confrontation is weaken in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After Hong-Gil-Dong disappearance
from home, he went Je-Do and beat monster at Mt. Mang-Dang. But this narration
is eliminated in 17 sheets version. Beside Hong-Gil-Dong and Gim-Hyun-Chung's
war narration is also eliminated in 17 sheets version. Gim-Hyun-Chung is soldier
of Yul-Do. But the narration is changeless that Gil-Dong became Byeong-Jo-
Pan-Seo and marry Baeg Lyung and Jo-Cheol's daughters and he became the king
of Yul-Do. Therefore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intensively reveals Aristocratic inclination.
There is not copyright records in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 This research was supported by Kyungpook National University Research Fund,
2014.
** Kyungpook National Univ.
경판 17장본 <홍길동전>의 간행 양상과 소설사적 위상 645
of 17 sheets version. But chronicle with title <Hong-Gil-Dong-Jeon> is recorded
in covers of 17 sheets version. The chronicle is Jeong-Yu(丁酉). Seoul block printed
novel of 16~18 sheets version were published from 1899 to 1921. Therefore I
estimate Jeong-Yu(丁酉) is 1897. In that 17 sheets version was published in 1897
or before. Seoul block printed novel of 16~18 sheets version are 15 works. Hence
Seoul block printed <Hong-Gil-Dong-Jeon> of 17 sheets version is publication base
of 16~18 sheets version.
key words <Hong-Gil-Dong-Jeon>, Seoul block printed novel of 17 sheets
version, deep rooted tree museum, Aristocratic inclination, a child by a
concubine, popular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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