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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소군(王昭君)은 중국의 4대 미인의 한사람으로 그녀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린다.
그녀의 이름은 장(嬙 ·檣 ·牆). 자는 소군. 일설에는 소군이 이름이고 장이 자라고도 한다. 남군(南郡)의 양가집 딸로 한나라 원제의 후궁으로 들어갔으나, 황제의 사랑을 받지 못하여 비관하고 있었다. 당시 흉노(匈奴)의 침입에 고민하던 한나라는 그들과의 우호 수단으로 흔히 중국 여자를 보내어 결혼시키고 있었다. BC 33년 왕소군은 원제의 명으로 한나라를 떠나 흉노의 호한야 선우(呼韓邪單于)에게 시집가 연지(閼氏)가 되었고, 아들 하나를 낳았다. 호한야가 죽은 뒤 호한야의 본처의 아들인 복주루 선우(復株累單于)에게 재가하여 두 딸을 낳았다. 이러한 소군의 설화는 세월이 흘러감에 따라 윤색되고, 흉노와의 화친정책 때문에 희생된 비극적 여주인공으로 전하여 왔으나 대부분은 사실(史實)로 인정할 수 없다.
후한(後漢) 때의 《서경잡기(西京雜記)》에 의하면, 대부분의 후궁들이 화공(畵工)에게 뇌물을 바치고 아름다운 초상화를 그리게 하여 황제의 총애를 구하였다. 그러나 왕소군은 뇌물을 바치지 않았기 때문에 얼굴이 추하게 그려졌고, 그 때문에 오랑캐의 아내로 뽑히게 되어 버렸다. 소군이 말을 타고 떠날 즈음에 원제가 보니 절세의 미인이고 태도가 단아하였으므로 크게 후회하였으나 이미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원제는 크게 노하여 소군을 추하게 그린 화공 모연수(毛延壽)를 참형(斬刑)에 처하였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진(晉)나라 때에는 문제(文帝) 사마 소(司馬昭)의 이름과 글자가 같은 것을 피하기 위하여 왕명군(王明君)이라 하였고, 명비(明妃)라고도 불렸다. 그 뒤 그녀의 슬픈 이야기는 중국문학에 허다한 소재를 제공하였다.
《소군사(昭君辭)》《명군탄(明君歎)》이라는 한나라의 악부(樂府)가 가장 오래 된 것이고, 그녀를 소재로 한 희곡으로는 원(元)나라 때의 마치원(馬致遠)이 지은 《파유몽고안한궁추잡극(破幽夢孤鴈漢宮秋雜劇:漢宮秋)》이 가장 유명하다. 진나라의 석계륜(石季倫)이 지은 《왕명군사병서(王明君辭幷序)》가 있고, 당(唐)나라 이후 이백(李白) ·백거이(白居易) 등 많은 시인들이 그녀를 소재로 시를 읊었다. 또 둔황[敦煌]에서 발굴된 《명비변문(明妃變文)》에 의하여, 당말 오대(五代)경부터 구전문학(口傳文學)의 소재가 되었음이 밝혀졌다.
왕소군과 관련된 중국 시 몇 편과 우리나라 문인들의 시를 찾아 모아 보았다.
장달수
왕소군에 대한 시
왕소군(王昭君) 이백(李白)
왕소군 치맛자락 구슬안장 훔치듯/ 소군불옥안 (昭君拂玉鞍)
말위에 올라타니 붉은 빰이 울었네/ 상마제홍협 (上馬啼紅頰)
오늘은 한나라 궁녀이나 / 금일한궁인 (今日漢宮人)
내일은 오랑케 첩이라네 / 명조호지첩 (明朝胡地妾)
왕소군(王昭君) / 이 백
漢家秦地月(한가진지월) 진나라 땅(흉노의 땅을 지칭)에서 보는 한나라의 달
流影照明妃(유영조명비)흐르는 그림자 명비(왕소군)를 비추누나
一上玉關道(일상옥관도)일단 옥문관을 오르면
天涯去不歸(천애거불귀)멀리 떠나 돌아올 수 없다네
漢月還從東海出(한월환종동해출)한나라 달은 돌아와 동해에서 뜨건만
明妃西嫁無來日(명비서가무래일)서쪽으로 시집간 명비는 돌아올 수 없구나
燕支長寒雪作花(연지장한설작화)연지(흉노의 왕비)의 긴 추위에 눈꽃이 생겨나니
蛾眉憔悴沒胡沙(아미초췌몰호사)미인은 초췌해져 오랑캐 땅에 쓰러졌네
生乏黃金枉圖畫(생핍황금왕도화)살아선 돈이 없어 화공이 추하게 그리더니
死留青塚使人嗟(사류청총사인차)죽어선 청총을 남겨 탄식케 하누나
왕소군 (1) 백낙천(白樂天)
얼굴은 오랑케 먼지에 덮혔고, 머리는 바람에 휘말렸으며/ 만면호사만빈풍(滿面胡沙滿鬢風)
눈썹 검정흐리고 볼의 연지 지워 졌네 / 미소잔대검소홍(眉銷殘黛臉銷紅)
마음쓰리고 몸고달퍼 초췌한 모습 / 수고신근초췌진(愁苦辛勤顦顇盡)
이제 바로 초상화 같이 볼품없어라. / 여금각사화고중(如今却似畵圖中)
왕소군 (2) 백낙천
한나라로 돌아가는 사신에게 전할 말을 부탁하노라 / 한사각회빙기어(漢使却廻憑寄語)
황금으로 미인을 다시 사갈 날자는 언제일가요? / 황금하일속아미(黃金何日贖蛾眉)
임금께서 저의 얼굴이 어떻드냐 물으셔도 / 군왕약문첩안색(君王若問妾顔色)
한나라 대궐에 있을 때만 못하다 하지마세요! / 막도불여굴리시(莫道不如宮裏時)
昭君怨(소군원) 왕소군의 한 / 東方虯 동방규(당나라 시인)
胡地無花草(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에는 꽃이 피지 않았으니
春來不似春(춘래불사춘) 봄이 왔어도 봄 같지 않구나
自然衣帶緩(자연의대완) 저절로 허리띠가 느슨해진 것이지
非是爲腰身(비시위요신) 몸매를 날씬하게 하려는 게 아닐세
明妃曲 - 王安石
明妃初出漢宮時(명비초출한궁시) : 명비가 한나라 궁궐을 처음 떠날 때
淚濕春風鬢腳垂(루습춘풍빈각수) : 눈물이 봄바람을 적시고 귀밑머리 늘어졌네
低徊顧影無顏色(저회고영무안색) : 배회하며 그림자 돌아보아 안색이 없었으나
尚得君王不自持(상득군왕불자지) : 오히려 君王은 스스로 心神 유지할 수 없었다오.
歸來卻怪丹青手(귀래각괴단청수) : 임금이 돌아와 화상을 그린 화가를 이상히 여겼는데
入眼平生幾曾有(입안평생기증유) : 눈에 들어온 것 평소 일찍이 없던 미인이었다오.
意態由來畫不成(의태유래화불성) : 마음과 태도는 예부터 그림으로 그릴 수는 없으니
當時枉殺毛延壽(당시왕살모연수) : 당시에 모연수만 잘못 죽였다네.
一去心知更不歸(일거심지경불귀) : 한 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 알고
可憐著盡漢宮衣(가련저진한궁의) : 가련하게도 漢나라 궁중의 옷 모두 입고 갔다네.
寄聲欲問塞南事(기성욕문새남사) : 소식 전하여 변방 남쪽 한나라 일 묻고자 하나
只有年年鴻雁飛(지유년년홍안비) : 다만 해마다 기러기만 날아간다네.
家人萬里傳消息(가인만리전소식) : 만리 밖의 식구들 소식을 전해왔으니
好在氈城莫相憶(호재전성막상억) : 氈城에서 잘 지내니 서로 걱정하지 말라 하였네.
君不見(군불견) :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咫尺長門閉阿嬌(지척장문폐아교) : 그대는 보지 못했나 지척의 長門宮에 阿嬌 유폐한 것
人生失意無南北(인생실의무남북) : 인생에 뜻을 잃음에 동서남북 사는 곳이 따로 없다네
▷ 중국 전한(前漢) 원제(元帝)는 후궁이 많아 항상 볼 수가 없었다. 마침내 화공인 毛延壽로 하여금 후궁들의 얼굴을 그리게 하고 그림을 보고서 불러 총애하니, 궁녀들이 모두 화공에게 뇌물을 주어 많게는 십만금이었고 적어도 오만금에 밑돌지 않았다. 王嬙은 字가 昭君인데 스스로 자신의 빼어난 용모를 믿고 홀로 화공에게 뇌물을 주지 않았다. 흉노가 입조하자 궁녀들을 뽑아 시집보내었는데 소군이 그림에 의거하여 시집가게 되었다. 들어가 황제에게 하직할 적에 용모가 아름다워 광채가 사람들에게 진동하여 좌우를 놀라게 하니, 天子는 외국과의 신의를 중하게 여겨 후회하고 한스러워 하였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일을 끝까지 규명하여 모연수는 마침내 죽음을 당하고 시신이 버려졌다.
▷ 歸來卻怪丹青手 : 군왕이 왕소군을 본 뒤에 화가인 모연수가 곱고 미운 것을 마음대로 조작한 것에 노하였다. 이에 임금의 마음이 놀라고 탄식하여 평소 눈에 들어온 미인이 많았지만 일찍이 이와 같은 사람은 없었음을 이른 것이다.
▷ 氈城 : 毛氈을 쳐서 城처럼 만든 것으로 곧 匈奴가 머무는 곳을 이른다.
▷ 阿嬌 : 한 무제(漢武帝)의 진 황후(陳皇后) 이름. 진황후는 小字가 阿嬌인데 후에 총애를 잃고 쓸쓸하게 장문궁에 거처하다가 司馬相如를 통해 문장으로 武帝를 깨우쳐 다시 총애를 받았다. 이후로 총애를 잃고 쓸쓸하게 거처하는 여자를 비유하는 말로 쓰인다.
<구영(仇英) - 한궁춘효도(漢宮春曉圖)>
明妃曲 2 - 王安石
明妃初嫁與胡兒(명비초가여호아) : 왕소군이 처음 오랑캐 녀석에게 시집갈 때
氈車百輛皆胡姬(전차백량개호희) : 오랑캐 마차 백량에는 다 오랑캐 계집들만 있었다
含情欲語獨無處(함정욕어독무처) : 마음에 품은 감정 말하려도 홀로 말 할 곳 없어
傳與琵琶心自知(전여비파심자지) : 비파로서 전하지 마음 속으로만 안다네
黃金桿撥春風手(황금간발춘풍수) : 봄바람처럼 부드러운 손으로 황금 간발 잡고서
彈看飛鴻勸胡酒(탄간비홍권호주) : 비파타면서 나는 기러기 보며 오랑캐에게 술 권하니
漢宮侍女暗垂淚(한궁시녀암수루) : 한나라 궁녀의 시녀들은 몰래 눈물 흘리고
沙上行人卻回首(사상행인각회수) : 사막의 길 가는 사람들도 고개 돌렸다오.
漢恩自淺胡恩深(한은자천호은심) : 한나라 은혜는 얕고 오랑캐 은혜는 깊어질 것이니
人生樂在相知心(인생락재상지심) : 인생의 즐거움이란 마음을 서로 알아주는 데 있다네.
可憐青冢已蕪沒(가련청총이무몰) : 가련하게도 왕소군 푸른 무덤은 이미 황폐하였으나
尚有哀弦留至今(상유애현류지금) : 아직도 애처로운 거문고가락 지금까지 남아 있네.
▷ 漢 元帝가 王昭君을 흉노에 시집보내니, 寧胡閼氏(영호연씨)라 칭하였다. 왕소군이 漢나라의 은혜를 그리워하여 마침내 비파를 타 그 恨을 노래하니, 이것을〈昭君怨〉이라 부른다. 이후로 시인들이 이를 소재로 시를 지어 애처로워했다.
▷靑冢 : 單于死에 子達이 立이어늘 昭君이 謂達曰 將爲漢고 將爲胡오한대 曰爲胡니이다 昭君이 服毒而死하니 擧國葬之하다 胡中多白草어늘 而此冢草獨靑이라 故曰靑冢이라
선우가 죽자 아들 達이 즉위하였는데, 昭君이 달에게 이르기를 “너는 장차 漢나라를 위할 것인가? 장차 오랑캐를 위할 것인가?” 하니, “오랑캐를 위하겠습니다.” 하였다. 이에 소군이 독약을 먹고 죽으니, 온나라가 슬퍼하고 장례하였다. 오랑캐 지방에는 흰 풀이 많았는데 소군의 무덤의 풀만이 홀로 푸르렀으므로 청총이라 하였다.
<澹拙 姜熙彦 - 소군출색(昭君出塞)>
明妃曲 - 歐陽修
漢宮有佳人(한궁유가인) : 한나라 궁궐에 예쁜 여인 있어
天子初未識(천자초미식) : 천자도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네
一朝隨漢使(일조수한사) : 어느날 아침 한나라 사신을 따라
遠嫁單于國(원가선우국) : 멀리 선우의 나라로 시집갔다네
絶色天下無(절색천하무) : 빼어난 미색 세상에는 다시 없어
一失難再得(일실난재득) : 한번 잃으면 다시 얻기 어려워라
雖能殺畵工(수능살화공) : 비록 화공을 벌을 주어 죽일 수 있다 해고
於事竟何益(어사경하익) : 일에 마침내 무슨 도움되겠는가.
耳目所及尙如此(이목소급상여차) : 여러 사람이 보고 있는 곳에서도 이러한데
萬里安能制夷狄(만리안능제이적) : 먼 리 먼 곳 오랑캐를 어찌 막을 수 있을까
漢計誠已拙(한계성이졸) : 한나라 대책 참으로 졸렬하여
女色難自誇(여색난자과) : 여색을 스스로 자랑하기 어렵다네
明妃去時淚(명비거시루) : 명비 떠날 때 눈물이 흘려내려
灑向枝上花(쇄향지상화) : 가지 위의 꽃에 뿌렸다네
狂風日暮起(광풍일모기) : 사나운 바람 해 저물 때 일어나니
飄泊落誰家(표박락수가) : 흩날려 누구의 집에 떨어졌는가
紅顔勝人多薄命(홍안승인다박명) : 紅顔이 남보다 뛰어난 자 薄命한 이 많으니
莫怨春風當自嗟(막원춘풍당자차) : 봄바람 원망 말고 스스로 탄식해야 하리.
▷이 시는 歐陽修가 王安石의〈明妃曲〉에 화답한 것으로 왕안석의〈명비곡>이 王昭君 한 개인의 슬픔을 읊은 것임에 비해 이 시는 漢나라 왕조의 정치적인 실책을 비판하고 있다.
明妃曲和王介甫 - 歐陽修
- 明妃曲을 지어 王介甫에게 화답하다
<胡人以鞍馬爲家(호인이안마위가) : 호인(胡人)은 안장 얹은 말을 집으로 삼고,
射獵爲俗(사렵위속) : 활로 사냥하는 것을 풍속으로 삼으니
泉甘草美無常處(천감초미무상처) : 일정한 거처 없이 단 샘물 좋은 풀 찾아
鳥驚獸駭爭馳逐(조경수해쟁치축) : 다투어 말 몰고 다니니 새와 짐승 놀란다.
誰將漢女嫁胡兒(수장한녀가호아) : 누가 한(漢)의 여인을 오랑캐 사내에게 시집보냈는가?
風沙無情貌如玉(풍사무정모여옥) : 옥 같은 그녀에게 무정한 모래바람 부니
身行不遇中國人(신행불우중국인) : 자신이 가면 中國 사람 만나지 못하니
馬上自作思歸曲(마상자작사귀곡) : 말 위에서 스스로 돌아가고픈 노래지었다오.
推手爲琵却手琶(추수위비각수파) : 손을 밀면 琵가 되고 손을 당기면 琶가 되니
胡人共聽亦咨嗟(호인공청역자차) : 호인들도 함께 들으며 슬퍼하였다네.
玉顔流落死天涯(옥안류락사천애) : 白玉같은 얼굴로 天涯 멀리 流落하다 죽었으나,
琵琶却傳來漢家(비파각전래한가) : 그녀의 비파곡은 한나라에 전해졌다네.
漢宮爭按新聲譜(한궁쟁안신성보) : 한궁의 여인들 다투어 그 신곡을 연주하니,
遺恨己深聲更苦(유한기심성갱고) : 남긴 한 이미 깊어 소리 더욱 애닯도다.
纖纖女手生洞房(섬섬녀수생동방) : 깊숙한 궁실에 사는 여인들 가냘픈 손으로,
學得琵琶不下堂(학득비파불하당) : 비파곡 배우느라 堂에서 내려오지 않았네.
不識黃雲出塞路(불식황운출색로) : 누런 먼지 자욱한 변방 길을 모르는데,
豈知此聲能斷腸(기지차성능단장) : 이 소리 애 끊을 수 있음을 어찌 알리오!
▷ 이 시는 왕안석(王安石)이 지은 明妃曲 2수에 대하여 구양수가 화작(和作)한 것이다. 작가는 여기서 명비(王昭君)의 불행 했던 운명에 대한 서술을 통해, 송조(宋朝)의 무능에 대한 자신의 감개를 기탁하였다. "아름다운 한의 궁녀를 삭막한 변방의 호아(胡兒)에게 시집보낸" 한(漢) 왕조의 나약함을 풍자한 것이고, "깊숙한 궁실에서만 지내는" 한궁의 여인들이 "누런 먼지 자욱한 변방으로 나가는 것이 어떤 일인지 모르면서 그저 황제의 사랑을 얻기 위해 명비가 남긴 비파곡<昭君怨>을 배우느라 방 안에서 나오지도 않는" 모습은 궁궐 안에서 황제의 총애나 얻고자하는 송조(宋朝)의 신하들을 풍자한 것이라고 하겠다.
塞上曲 - 黃庭堅
十月北風燕草黃(십월북풍연초황) : 시월에 북풍 불어 연나라 땅 풀은 누렇게 시들고
燕人馬肥弓力强(연인마비궁력강) : 연나라 사람의 말은 살찌고 활의 힘은 강해지기만 했네.
虎皮裁鞍鵰羽箭(호피재안조우전) : 호랑이 가죽 잘라 안장 만들고 독수리 깃 화살로
射殺山陰雙白狼(사살산음쌍백랑) : 산 북쪽 기슭의 두 마리 흰털 이리를 잡았다네.
靑氈帳高雪不濕(청전장고설불습) : 푸른 담요로 짠 높은 장막은 눈에도 젖지 않아
擊鼓傳觴令行急(격고전상령행급) : 북을 치며 술잔 전하니 명령은 급히 시행되었다네.
戎王半醉擁貂裘(융왕반취옹초구) : 오랑캐 왕은 반쯤 취하여 담비 갖옷 안고 있는데
昭君猶抱琵琶泣(소군유포비파읍) : 왕소군은 여전히 비파 끼고 울고만 있었다네.
烏棲曲 - 李白
- 까마귀 깃드는 노래
姑蘇臺上烏棲時(고소대상오서시) : 고소대 위로 까마귀 깃드는 때
吳王宮裡醉西施(오왕궁리취서시) : 吳王은 궁중에서 西施와 함께 취해 있었네.
吳歌楚舞歡未畢(오가초무환미필) : 오나라 노래와 초나라 춤의 환락이 끝나지 않았는데
靑山欲銜半邊日(청산욕함반변일) : 청산은 반쪽 해를 입에 물려 하는구나.
銀箭金壺漏水多(은전금호루수다) : 은 바늘 달린 금 물시계 물 많이 떨어져 밤은 깊어가는데
起看秋月墜江波(기간추월추강파) : 일어나 바라보니, 가을달이 강물에 떨어진다.
東方漸高奈樂何(동방점고내락하) : 東方에 해 점점 솟아오르니 즐거움 어찌하나
▷吳王宮裡醉西施 : 吳王은 夫差를 가리키며 西施는 춘추시대 越나라의 美人이다. 越王 句踐이 會稽(회계)에서 敗하자 范蠡(범려)는 자신이 기르던 미인 西施를 吳王 夫差에게 바쳐 吳나라의 政事를 어지럽게 하여 마침내 吳나라를 멸망시켰다.
우리나라 시인
왕소군(王昭君) 안축(安軸)
군왕의 황금각을 새벽에 여니 / 君王曉開黃金闕
전거가 덜커덕덜커덕 북쪽 사자 떠난다 / 氈車轔轔北使發
명비가 눈물을 머금고 초방에서 나오니 / 明妃含淚出椒房
봄바람은 뜻이 있어 귀밑머리에 분다 / 有意春風吹鬢髮
한산과 진새가 점점 멀어가나니 / 漢山秦塞漸茫茫
들리는 슬픈 피리 소리에 가을밤이 길어라 / 逆耳悲笳秋夜長
애닲아라 저 궁려(흉노(匈奴)가 살던 집)의 한 조각 달은 / 可憐穹廬一眉月
일찍이 대 앞의 궁중 모양의 단장을 비추었거니 / 曾照臺前宮樣粧
이 몸을 바쳐 오랑캐와 함께 살아가려니 / 將身已與胡兒老
다만 고운 얼굴이 빨리 시들지 않을까 걱정한다 / 唯恐紅顔凋不早
비파줄 속의 다하지 못한 정은 / 琵琶絃中不盡情
해마다 무덤에 나는 푸른 풀에서 보리로다 / 塜上年年見靑草
명비의 무덤[明妃塚] 진퇴격(進退格) 김종직
한제가 본래부터 경국지색을 구했는데 / 漢帝本求傾國色
명비가 어찌하여 오랑캐 문정에 떨어졌나 / 明妃何事落氈庭
스스로 박명한 탓으로 쌍궐을 하직한 것이요 / 自緣薄命辭雙闕
돈이 없어서 일생을 그르친 것은 아니라오/ 不爲無金誤一生
달빛어린 변새에는 넋이 맥맥이 이어지고 / 夜月龍沙魂脈脈
봄바람 부는 무덤에는 봄풀이 푸르러라 / 春風馬鬣草靑靑
무례한 되놈들도 오히려 막배를 하는데 / 胡雛縱牧猶膜拜
더구나 중국 천하 나그네의 마음이랴 / 何況中華過客情
명비원(明妃怨) 5수 서거정
북풍이 눈을 불고 흑산은 깊기만 하여라 / 朔風吹雪黑山深
조국 떠난 만리 밖 명비의 마음을 어이할꼬 / 萬里明妃去國心
한 곡조 비파 소리를 그 누가 알아들을꼬 / 一曲琵琶誰解聽
저문 구름 남북에 애간장 끊는 소리로다 / 暮雲南北斷腸音
음산 만 리에 한의 넋이 갈 곳을 몰라라 / 陰山萬里漢魂迷
청총엔 사람 없고 달만 나직이 떠 있구나 / 靑塚無人月欲低
유황이 만일 지하에서 왕소군을 만난다면 / 泉下劉皇如邂逅
응당 흉노 정벌 그만둔 걸 부끄러워하리 / 也應慙愧畜征西
한 나라는 되놈 다스리는 데에 실책하였고 / 漢家失策御胡戎
재차 화공의 손에서 미인을 또 그르쳤도다 / 再誤蛾眉畫手中
가련도 해라 궁비가 처음 변새를 나갈 적에 / 可惜宮妃初出塞
춘풍에 젖은 시름겨운 귀밑을 차마 봤으랴 / 忍看愁鬢濕春風
변새의 모래 바람에 눈발 어지러이 날릴 제 / 塞上風沙雪亂飛
가련하여라 아직도 한궁의 의복을 입은 채 / 可憐猶著漢宮衣
시름겨울 땐 억지로 비파 타며 눈물 흘리고 / 愁時强撥琵琶泣
다시 융왕께 사냥 마치고 돌아가길 고했네 / 復噵戎王罷獵歸
겹겹의 담요 장막 밖엔 눈이 아직 안 갰는데 / 氈幕重重雪不晴
선우는 싸우러 나가서 삼경의 밤이 되었네 / 單于出戰夜三更
호한의 은혜 깊고 얕은 걸랑 말하지 말고 / 莫噵胡漢恩深淺
시름 속의 악부 소리나 시험 삼아 들어보자 / 試聽愁中樂府聲
명비곡(明妃曲) 양촌 권근
명비의 고운 맵시 경국의 절색인데 / 明妃嬋娟傾國色
한 나라 천자는 미처 알지 못했다오 / 漢家天子曾未識
처음에 상을 그려 후궁에 드렸더니 / 初憑繪素試後宮
후궁에선 뽑아서 곁에 둠직하다 했네 / 後宮謂選堪置側
황금 뇌물 써가며 화공에게 빌붙으니 / 競用黃金媚畫工
붓끝에서 질 바뀌어 미운 얼굴 고와지네 / 豪端換質極容飾
명비의 품성은 착하고도 순진하니 / 明妃禀質淑且眞
분단장 얼굴 꾸며 미혹을 사겠는가 / 豈肯冶容激蔽惑
수줍어 아미 거두고 고개 숙이며 / 低頭羞澁斂雙蛾
멍하니 앉았으니 그림인들 되리 / 扼腕睢盱描不得
그림으로 밉고 고움 결정을 하니 / 臨軒按圖定姸媸
옥 같은 그 체질 버림을 받네 / 玉質却見遭棄斥
궁적에서 제거되어 초방을 나와 / 乃除宮籍出椒房
하루아침에 되 나라로 시집을 가네 / 一朝遠嫁凶奴國
되 나라는 만 리라 눈 서리 내리 쌓여 / 胡天萬里霜雪繁
가고가는 날마다 향토와는 멀어지네 / 行行日與鄕土隔
유 다르고 말 다르니 친하잔들 친해지리 / 殊音異類不可親
한 번 죽어 제 몸 청산 아까울 게 없지마는 / 一死自潔非所惜
십 년이라 긴 세월 궁중에서 보낼 적에 / 憶在深宮十載餘
한 나라 옷을 입고 한 나라 밥을 먹고 / 衣是漢衣食漢食
재물마저 후히 싸서 나를 출가시켰으니 / 且厚資粧嫁我行
한의 은혜 하도 깊어 하늘도 망극하이 / 漢恩自深天罔極
임의 마음 어찌 나를 밉게 보아 그랬겠나 / 宸心豈是私妾身
되놈과 화친하여 난리를 막자는 것 / 爲欲和戎息兵革
소신(小信)을 굳히자고 경솔히 죽는다면 / 苟堅小諒輕自裁
화 맺히고 틈 벌어져 어찌 앞 일을 헤아리리 / 禍結釁生將不測
변방에 싸움 터져 용호가 다툰다면 / 邊庭塵起龍虎爭
억조창생 가엾게도 칼날에 쓰러지니 / 億萬蒼生陷鋒鏑
일부러 죽지 않고 한의 은혜 보답하자고 / 故將不死報漢恩
갖은 능욕 다 받으며 모진 목숨 살아가네 / 隱忍偸生受凌辱
얼굴 펴고 한 번 웃음 되놈 위해 아니로세 / 花顔一笑非爲胡
그에게 호감 주어 한의 적을 없애자는 것 / 務悅胡心除漢敵
밝고밝은 이내 마음 뉘라서 알아주리 / 明明此心誰得知
비파를 당기어라 한 가락 타자꾸나 / 惟把琵琶彈一曲
비파곡 다 마쳐도 한만은 가이없어 / 琵琶曲盡恨無涯
외론 무덤 가을 풀은 이제껏 푸르르네 / 孤憤秋草今猶綠
춘명일사(春明逸史) 에
무덤의 이름
예전에
* 청총(靑塚)이 있었는데 이는 왕소군(王昭君)의 무덤이고,
* 현총(玄塚)은 양자운(揚子雲)의 무덤이고, 자운은 전한(前漢)의 학자 양웅(揚雄)의 자(字)
* 수총(羞塚: 부끄러운 무덤)은 주매신(朱買臣)의 아내의 무덤이고,
한나라 주매신이 만년에 영달하여 회계 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할 때 누더기 차림에 인수 (印綬)를 허리에 차고 군저(郡邸)에 가자 아전이 인수를 발견하고는 경악하여 상관에게 보 고하였으며, 마침내 그를 영접하기 위해 백성들을 동원하여 길을 치우게 하였는데, 그중 에는 주매신을 경멸하며 버렸던 옛날의 아내와 그 남편도 끼어 있었다는 고사가 전한다. 《漢書 卷64上 朱買臣傳》
* 예총(穢塚:더러운 무덤)은 진회(秦檜)의 무덤이다.
진회(秦檜) : 남송(南宋) 고종(高宗) 때의 재상으로, 금(金) 나라와의 화의(和議)를 주장하 며 당시의 충신(忠臣)과 양장(良將)들을 거의 모두 죽이고 축출하였다.
진회(秦檜)의 증손 거(鉅)는 송(宋) 나라 말기에 기주 통판(蘄州通判)으로 있었는데, 금 (金) 나라 사람들이 쳐들어와 성이 무너지자 두 아들 준(浚), 혼(渾)과 함께 목숨을 바쳤 다. 이에 조정에서 관직을 추증(追贈)하고 의열후(義烈侯)에 봉하는 동시에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이 일은 심경(沈勁)의 고사와 대략 비슷한 점이 있다. 사람의 선 악(善惡)이 출신 가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 이와 같다.
* 적총(赤塚)이 있는데 최영(崔瑩)의 무덤이고, 예총(穢塚)이 있는데 서선(徐選)의 무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