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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산논검 5부 중신통 왕중양편 (전3권)
제1장 나체 미인들의 시장
대송(大宋)은 점점 몰락해 이제 강산의 절반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임금은 부화타락한 생활에 빠진 채 백성들만 고통 속으로 몰아넣고 있었다. 적들을 몰아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강대한 나라에 맞서 싸우기에 역부족인지라 사람들은 그저 침통한 심정을 술로 달랠 수밖에 없었다.
이날도 여전히 임안성은 많은 인파로 북적댔다. 사람들은 마치 세상의 종말을 앞둔 것처럼 행동했다. 환락을 찾아 호주머니 속에 있는 몇 푼 안 남은 은자들을 사루(四樓)에 던지기에 바빴다. 이 사루란 어떤 곳인가? 바로 술집을 말하는 것이다. 술집에는 천 잔 을 마시지 않고는 세상사를 묻지 말라는 말이 풍미하고 있었고, 찻집에서는 고금의 눈물겨운 이야기로 서로 손목을 쥐고 장탄식을 하였다. 또한 청루(靑樓)에서는 품속을 파고드는 미녀들의 교태 어린 웃음에
천금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던져 주곤 했다. 서루(書樓 ; 서가)에서는 이야기꾼들이 침을 튀겨 가며 고금의 영웅들을 들먹이거나 지난날의 득실(得失)들을 짚어 가면서 깨어진 영웅꿈과 이에 휩쓸린 세기의 여인들께 대해 한바탕 떠벌려 댔다.
임안에는 사절(四絶)이라고 불리는 아주 유명한 것이 있었다.
제일절(第一絶)은 청루인데 '회모루(回眸樓)'라고 불린다. 이 청루에는 조대 당명황(唐明皇)의 귀비인 양태진(楊太眞 ; 양귀비)의 이야기가 깃들어 있는데 그녀가 눈동자를 굴리며 한번 웃음지으면 삽시간에 임금의 혼백이 달아났다고 한다. 그렇듯 회모루는 미녀들이 득실거리는 매우 풍류스러운 곳이다.
제이전(第二絶)은 '태백루(太白樓)'라고 불리는 술집이다. 이태백(李太白)이 서경(西京)으로 갈 때 이 술집에 묵은 적이 있는데 술이 독하고 혀끝을 살살 녹이는 술맛에 감탄했다 한다. 그는 취흥이 달아오르자 곧 지필묵을 가져오라고 하여 글을 남겼다. 이태백이 '술이 너무 맑아 밑바닥까지 보이는데(酒太白淸別見底)'라고 쓰자 술이 좋지 않다고 쓴 것으로 이해를 한 주인이 화가 나서 그를 나무랐다. 그런데 이태백이 '취흥이 도도하여 등등 뜬 기분이로다(人大樂 浮
一大白)'라는 구절을 잇자 주인의 태도가 금방 달라졌다. 이때부터 태백루는 다른 술집과 달라지기 시작했다. '태백루(太白樓)'라고 부르면서도 쓰기는 '대백루(大白樓)'라고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간판을 보고 '대백루'라고 부르면 전고(典故)를 모른다고 해서 무식하다는 조롱을 면치 못했다. 하지만 어떤 문인들은 도리어 그것을 비웃듯 끝까지 '대백루'라고 불렀다.
제삼절(第三絶)은 임안의 '작향루(疇香樓)'라는 찻집인데, 어떤 손님이 오차물을 마시다가 찻잎을 씹고 그 향기에 취해 쓰러진 뒤로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작향루라는 이름은 이
일화로 얻어진 것이다.
제사절(第四絶)은 사패방(圖牌埼)의 '설서루(說書樓)'이다. 이 설서루를 '청고루(聽古樓)'라고도 하는데 언제나 구경꾼들로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야기를 듣는 청중이 대단히 많은 이 설서루를 임안의 경성이라 불렀다.
어느 날 작향루에 한 손님이 왔다. 이 사람은 이목구비가 단정하고 아주 영준하게 생겼는데 자리에 앉아서 음미하듯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점심 때가 가까워지자 차를 마시는 사람들이 차츰 늘어났다. 그런데 이 사람은 점심밥은 청하지 않고 찻잔 앞에 장시간 앉아 있었다. 이 사람은 차 마시는 데는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고 다만 주위 사람들의 대화를 유심히 듣는 눈치였다.
임안은 큰 고장으로 송조 때는 가장 번창한 곳이었다. 난세에는 괴이한 사건이 수없이 일어나는 탓에 이 임안은 사람들 사이에 떠도는 이야깃거리가 유독 많은 고장이기도 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글쎄, 이 얼마나 괴이한 일인가? 그 회모루에 어제 십여 명이나 되는 미녀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다고 하더군. 기생어미는 횡재를 하게 되었다며 입이 귀밑까지 쩌억 찢어졌다는군. 그 기생어미는 미녀들에게 위층으로 올라가 몸단장을 하라며 채근했지. 그런데 한 시진(時辰)이 지났는데도 층계가 울리는 소리가 나지 않았어. 그래 또 한참을 기다렸으나 사람이 내려오는 그림자를 볼 수 없었대나. 그래서 기생어미가 위로 올라가 보니 글쎄, 무슨 판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짐작이나 가나?"
그러자 청중들은 잔뜩 흥미를 가지고는 입을 헤벌렸다.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어서 다음 말을 이어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표정들이었다. 그 사람이 킥킥 웃더니 상 위에 있던 차를 단숨에 삼켜 리고 나서 빈잔을 내보이며 말했다.
"바로 이렇게 깜쪽같이 그 십여 명이나 되는 미녀들이 사라져 버렸단 말일세."
곧 귀기울이던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녀들이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이유에 대해 저마다 추리해 보는 눈치였다.
"기생들이 사라진 것을 알고는 기생어미는 마치 제 부모가 죽은 듯 대성통곡을 하더라구. 아무리 봐도 기생어미가 누군가와 짜고 그녀들을 빼돌린 것 같지는 않았어. 임안 구석구석을 뒤졌지만 미녀들을 찾지 못했거든. 그중에서도 인물이 아주 뛰어난 자지라는 계집을 유돌 아까워한다는 말도 있다네."
청중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은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한 사내의 거동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그가 주인을 불러 찻값을 치르고는 천천히 층계를 내려가는데도 눈길을 던지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거리로 나선 그는 자기 쪽으로 톡톡 튀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걸어오는 한 유랑아를 붙잡고 물었다.
"이봐, 회모루로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지?"
유랑아는 회모루라는 말에 씨익 웃으며 두 눈을 연신 깜박였다.
"손님이 회모루로 가신다면 제가 안내해 드리지요. 그런데 푼돈 좀 주셔야겠어요."
유랑아는 계속 웃는 낯짝으로 사내의 얼굴을 말끄러미 올려다보았다. 사내가 웃으면서 동전 몇 닢을 쥐여 주었다. 그러자 유랑아가 갑자기 입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겨우 요것뿐인가요? 미녀들 앞에서는 은자를 한줌씩 꺼내 주며 허세를 부리면서 나한테는 겨우 요거뿐이에요?"
유랑아는 머리에 묻은 비듬을 털어내듯 연신 툴툴거리며 앞서 걸어갔다. 사내는 유랑아가 가는 대로 쫓아갔다. 여러 거리를 지나 어느 집 앞에 이르렀다.
집은 생각했던 것보다는 규모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사내는 속으로 그런 일을 하는데 넓고 큰 집은 필요가 없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웃음을 베어 물었다. 힘만 좋으면 되는 일이니까.
사내가 안으로 들어서니 한 여인이 쪼르르 달려 나왔다. 이 여인은 기실 나이는 그다지 많지 않았으나 화류계의 세월에 찌들어 지레 늙어 버린 것 같았다. 그녀가 웃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오늘은 누구의 운수가 펴려나? 여기 공자님 한 분이 오셨다. 아주 미남자서!"
사내가 약간 당황해 하자 그녀가 갑자기 그의 손을 잡았다. 사내가 흠칫 놀라 손을 뿌리쳤다. 깔깔 웃어대는 그녀의 태도를 보니 사내를 얕잡아 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사내를 주물러 은자를 후려내려는 속셈이 역력했다. 기생어미가 더욱 요상한 웃음을 흘리며 사내를 주시했다. 사내가 정색하고 말했다.
"난 놀러 온 게 아니오. 어제 이 집에서 미녀 십여 명이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사실이오? 난 그걸 알고 싶어서 온 거요. 사실을 듣고 싶소이다."
불쑥 내뱉은 사내의 말에 열쩍은 낯빛을 보이던 기생어미가 얼굴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누가 알겠수? 이층에 있는 줄 알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이것들이 온데간데 말도 없이 몽땅 사라지고 말았다우."
"내가 한번 올라가 살펴봐도 괜찮겠소?"
사내의 말에 기생어미가 화들짝 놀라며 가로막아 섰다.
"공자님, 그럴 수는 없어요."
"왜 올라갈 수가 없다는 말이오?"
사내가 단호하게 나오자 기생어미는 다시 교태스런 눈을 꿈벅이며 대꾸했다.
"남이 재미있게 노는 판에 방안을 들여다본다면 공자님은 흥이 나겠나요?"
"걱정 말게. 내가 그 미녀들을 찾아 줄 테니 나를 믿으라고."
기생어미의 깔깔대는 웃음 소리가 뒤를 이었다.
"에구, 공자님이 참말로 그 애들을 찾아낼 수 있단 말이우? 그럼 공자님은 천하에 드문 대협일텐데……. 그렇다면 도대체 공자님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우?"
기생어미의 눈초리가 매우 의미심장하게 빛났다. 그녀는 사내의 행색이며 얼굴 생김새를 찬찬히 훑어보다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에 놀라는 눈치였다.
"내 성은 왕가요."
사내가 대답하자 기생어미가 손을 까닥거렸다.
"왕 공자, 그렇다면 얼른 내 뒤를 따라와요."
왕 공자는 기생어미를 따라 이층으로 올라갔다. 어느 방문 앞에선 그녀가 안에 대고 소리쳤다.
"가릴 건 가리되 휘장은 젖혀 놓아라!"
기생어미가 안으로 먼저 들어섰다. 방안에는 예상대로 두 여인이 한창 땀을 흘리며 기기묘묘한 자태로 서로를 탐닉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들은 난데없는 불청객의 방문에 허겁지겁 이불을 끌어
당겨 얼굴을 감추느라 바빴다. 기생어미가 그들에게 눈살을 찌푸렸다.
"거서 밖으로 나가라. 어서!"
그러자 두 사람은 의복을 대충 걸치고는 밖으로 나가 버렸다.
"왕 공자는 입을 꽉 다물고 방안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한참이나 방안을 둘러보던 그가 밖으로 나가려 하자 기생어미가 웃으며 그를 잡았다.
"왕 공자, 내 보기엔 공자님은 보통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 공자님이 정말로 저를 도와 아이들만 찾아 준다면 내 약속하리다. 공자님이 매일 이곳에 들러 얼마든지 즐길 수 있도록 하겠어요."
그녀는 자신의 말이 너무 지나쳤다고 여겼는지 얼른 얼굴색을 고치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 대신 바쁘지 않을 때 오셔야 해요."
왕 공자가 잠시 미소를 짓다가 몸을 돌렸다.
"난 이만 가야겠소."
기생어미의 속내는 여러 상념으로 분탕질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아무래도 평범한 인물이 아닌 것만은 틀림없다고 판단했다. 그렇다면 왕 공자를 잘 이용만 한다면 자기에게 더없는 이득이 돌아올 게 분명하다고 그녀는 속으로 계산했다. 지금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아이가 몇 있으니 그녀들을 시켜 왕 공자의 마음을 완전히 녹여 버릴 심사였다.
"왕 공자님, 보아하니 공자께선 참말 영웅다운 데가 있수. 우선 공자께선 이곳에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시는 게 좋을 것 같으니 그리 하시우. 만약 그 아이들을 모두 찾게만 해 준다면 공자님의
요구는 무엇이든지 들어드리리다. 그리고 정 모두를 데려올 수 없다면 꼭 한 아이만이라도 내게 넘겨줘야 해요. 자지라는 이름을 쓰는 아인데 얼굴이 백옥처럼 희고 그중 미색이 뛰어나 한눈에도 알아볼 수 있을 게요. 부탁해요."
그리곤 왕 공자가 미처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기생어미가 안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얘들아, 뭣들 하리 빨리 나오너라! 아주 귀한 손님이 오셨다!"
기생어미의 호들갑에 여기저기서 불만스런 목소리가 들려 왔다. 사실 이 기생어미는 손님이 올 때마다 이렇게 장신구를 달듯 말을 꾸민 탓에 모두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눈치였다.
이윽고 코를 찌를 듯 진한 향수내를 풍기는 기생 세 명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녀들은 곧 왕 공자에게로 다가가 뱀이라도 되는 양 몸으로 친친 그를 감기 시작했다. 왕 공자는 미간을 잔뜩 오므리면서도 애써 뿌리치지는 않았다. 기생들은 왕 공자를 보자 한눈에 반해 버린 눈치들이었다. 기생들은 왕 공자의 몸을 살짝살짝 스치며 주위를 빙빙 맴돌았다. 그중 한 기생이 왕 공자에게 음탕스런 눈빛을 흘리며 교태를 부렸다.
"왕 공자께선 우리들뿐만 아니라 어머니도 즐겁게 해 주셔야 해요."
옆에서 그녀들의 짓거리를 말없이 지켜 보고 있는 기생어미는 속으로 생각했다.
'당신은 이런 여인들을 만나고 싶어도 어려울 것이오. 이 아이들이 한번 몸을 꿈틀거리면 그댄 아마 몇 날 며칠 동안 오금조차 제대로 펼 수가 없을 거요.'
아닌게아니라 왕 공자는 지금껏 기생집의 참맛을 모르고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기생들의 진한 농지거리와 자태에 몹시 당황하고 있었다.
"바로 이 방인가? 그렇다면 또 어느 방에 처녀들이 들어 있는가?"
갑자기 밖에서 들려 온 말소리에 모두들 시선을 집중했다. 그 목소리는 꽤나 청아했다. 문을 열며 안으로 들어서자 왕 공자가 살며시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그 공자는 미남자였는데 흰 피부에 늘씬한 몸매를 지닌 사내였다. 방안에 들어선 그 공자는 왕 공자를 발견하고는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더니 곧 웃음을 띄우며 시선을 돌렸다. 그는 대차호(大茶壺)를 보고는 물었다.
"이 방이 처녀애들이 실종되었다던 곳인가?"
대차호는 그 공자의 기색이 썩 좋지 않음을 간파하고는 공손히 허리 숙여 대답했다.
"예, 그렇습니다요. 공자님께서 처녀들을 찾아 주시면 그 은혜는 꼭 보답하겠습니다."
그 공자가 다시 왕 공자에게로 알 수 없는 쓴웃음을 보내 왔다. 그 사람은 곧 방안을 낱낱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는 하찮은 것까지도 깊은 눈길을 주며 살폈다. 기생들이 바닥에 흘린 것으로 보이는 난잡한 쓰레기까지 일일이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오래 확인 해 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침대 위에 걸터앉아 있는 왕 공자에게로 시선을 던졌다.
"자리를 좀 비켜 줄 수 있겠소?"
왕 공자의 기분도 유쾌하지는 못했다. 그는 속으로 뇌까렸다.
'보아하니 이 사람도 약자를 동정하는 사람으로 보이는군. 이 사람도 필시 실종되었다는 그 미녀들을 찾고자 온 게 분명해.'
천천히 자리를 비켜 주는 왕 공자는 유심히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그 공자가 혼자말을 하듯 매우 날카로운 눈빛으로 중얼거렸다.
"처녀의 침대와 아편쟁이의 방은 꼭 뒤져 봐야 해. 그리고 소문이 날까 봐 두려워할 필요는 없어."
그러면서 그는 이불을 들치고는 그 속에 무슨 물건이라도 숨겨져 있나 살폈다. 이불 속을 이리저리 들춰보던 공자의 표정이 갑자기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속에는 기생들이 매음을 할 때 쓰는 물건들이 가지런히 놓여져 있었다. 공자는 그것이 어디에 쓰는 물건인지를 모르는 기색으로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잠시 후 그가 기생어미에게 물었다.
"이건 무슨 물건이지?"
기생어미가 돼지 오줌보에 서 바람 새듯 피식 웃었다. 이곳에 있는 두 사내 모두가 전혀 여체를 가까이 해보지 못한 숙맥들이란 생각에 웃음이 나왔던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남의 일을 해결해 주겠다니, 기생어미로서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더군다나 사라진 기생들을 찾아 주겠다는 이들의 말에 더욱 앞뒤가 맞지 않아 웃음이 자꾸만 터져 나왔다. 어찌 고기맛을 알지 못하는 사냥개가 사냥길을 앞장서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생어미가 꾹꾹 터지려는 웃음을 안으로 재어 넣으며 말했다.
"후후, 이건 기생들이 쓰는 도구랍니다. 기생들은 이런 물건을 가지고 기쁨을 얻는다구요. 호호호!"
기생어미는 두 풋내기들을 바라보며 더는 못 참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오호호호!"
때를 기다려 옆에 있던 기생들도 배꼽을 움켜쥐고는 박장대소를 했다. 그 음탕스런 웃음은 좀처럼 그치지를 않았다. 하지만 기생어미는 그 와중에서도 사태를 파악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만약에 이들 두 공자에게 계속 비웃음을 내보이다가는 자신들이 불리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생어미가 웃음을 말끔히 거두며 두 공자에게 공손하게 대했다.
"두 분이 원하신다면 이곳에서 마음껏 즐기시지요."
말을 마친 기생어미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어깨를 들썩거리며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기생들이 새로 온 공자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그녀들은 처음 왕 공자에게 수작을 부리려고 했으나 새로 온 공자가 더욱 미남이란 사실에 마음을 바꾼 것이다. 기생들은 그 공자에게 바싹 몸을 붙이며 아양을 떨어댔다.
"공자님은 성씨를 어떻게 쓰시나요?"
그러자 왕 공자를 슬쩍 곁눈질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난 성이 임(林)가지."
기다렸다는 듯이 한 기생이 그의 성을 부르며 나섰다.
"임 공자님, 당신의 성씨는 참 멋져요. 두 나무가 가지런히 자라는 게 바로 임(林)이 아닌가요?"
그 기생은 이렇게 읊조리더니 곧 임 공자에게 접근해 입을 맞추려고 했다. 그러면서 기생은 속으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되짚어 보았다.
'난 지금껏 이처럼 잘난 젊은이를 보지 못했어. 이런 사내와 정을 맺고 함께 도망가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만…….'
그 기생은 입술을 임 공자의 입술 위에 포개었다. 임 공자는 부끄러운지 얼굴빛이 갑자기 빨개지면서 머리를 뒤로 젖혔다.
"자꾸 이러면 가만 놔두지 않겠어!"
그러나 기생은 웃는 얼굴로 더욱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나의 침대를 어느 귀신에게 내주는지 아시나요? 옛사람도 아니고 지금 사람도 아니지요. 멀리로는 편지에다 애끓는 사연을 써넣을 줄 아는 설도(薛濤) 같은 사람과, 가까이로는 몸 바쳐 한공자 (韓公子)를 따른 양홍옥(梁紅玉) 같은 사람한테 내주는 거예요. 당신은 저의 이런 심정을 이해하시겠어요?"
임 공자는 묘한 말로 자신의 마음을 전하려는 기생의 의도를 알아차리고는 얼른 물러앉았다.
"재가 이곳에 온 것은 여인들이 사라진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이지 그대와 정담을 나누기 위해서는 아니오."
그러나 기생이 다시 공자를 껴안으며 꿈을 꾸듯 입을 놀렸다.
"공자님들은 다 아리따운 여인들을 사랑한다던데 당신은 왜 나의 심정을 이토록 몰라주시나요?"
정색을 한 임 공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대는 왜 유독 나에게만 지나친 관심을 두려는가? 이곳엔 나 말고도 또 사내가 있지 않은가?"
잠시 기생이 불만스러운 눈길로 주위를 살폈다. 임 공자가 화제를 얼른 다른 곳으로 돌리듯 기생들을 향해 물었다.
"그 몇몇 여인들이 실종되었을 때 이상한 점을 본 사람은 없는가?"
그러자 서로 다투어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말하려고 나섰다. 한 기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두 사람이 사랑하는 소리를 듣기까지 했어요."
임 공자의 눈이 커졌다. 무슨 영문인지 몰라 눈을 꿈벅이며 물었다.
"여인들끼리 어떻게 사랑을 한단 말이냐?"
그 기생이 다른 두 기생에게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너희들 둘이 임 공자님에게 여인들끼리 노는 걸 보여 드려라. 임 공자님의 견식을 넓혀 드려야겠다."
그녀들은 그런 일에 이골이 났는지 자연스럽게 천천히 한쪽으로 걸어가더니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요상한 자태를 취했다. 임 공자는 그녀들의 음탕하고도 괴이한 동작을 슬쩍 피하며 왕 공자를 살폈다. 그가 눈길을 빼앗기고 있는 것을 발견한 입 공자는 저도 모르게 얼굴이 확확 달아올랐다. 임 공자가 손을 내저으며 제지했다.
"됐어. 그래 또 다른 소리는 들은 것이 없는가?"
그 기생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 애들은 한식경이나 그 장난을 하더니만 곧 잠잠해졌어요."
"됐어. 그렇다면 난 이쯤에서 돌아가겠어."
그러나 기생들이 임 공자를 놓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녀들은 임 공자를 강제로 잡아당기기도 하고 매달리기도 했다. 임 공자가 끝내 그녀들을 뿌리치고는 나가 버렸다.
그러자 이번엔 아쉬운 김에 모두들 왕 공자에게로 몰려들었다.
왕 공자는 돌아서 가는 임 공자의 뒷모습을 보며 잠시 상념에 빠졌다.
'보아하니 저 공자도 강호 사람이 분명한데 공정치 못한 일에 정의를 앞세우는 것은 역시 같구나. 그런데 저 공자가 없어진 기생들을 무슨 수로 찾아낸다는 말인가? 이 사건은 보아하니 실마리를 쉽게 잡아낼 수가 없는 듯한데. 여염집 규수가 아닌 사라진 기생들을 찾아낸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기생들을 어렵게 물리친 왕 공자는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는 무작정 다시 그 '대백루'술집으로 가 술을 마시기로 했다.
갑자기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 온 것은 그가 몇 잔의 술을 마시고 거나하게 기분을 돋우고 있을 무렵이었다.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한 무리의 강호 사람들이 안으로 몰려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구 척이나 될 성싶은 큰 키에 흥하게 생겨 먹은 자들이었다.
그들은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큰 탁자 주위에 둘러 앉더니 주인을 소리쳐 불렀다. 주인이 허리를 숙이며 달려왔다. 그들은 다시 벽력같은 큰소리로 술과 안주를 가져오라고 했다.
그중 한 사람의 말소리가 들려 왔다.
"오늘 꽃구경 하는데 그대들은 찍소리도 내지 말라구. 큰형님의 분부를 들어야 해."
다른 이들이 그대로 따르겠노라며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한 사람이 킬킬 웃으며 반기를 들고 나섰다.
"아마 큰형님도 정작 그런 일에 봉착하기만 하면 꽃에 반해서 찍소리도 못하게 될걸. 그땐 우린 또 뭘 기다려야 하나?"
큰형님이라 불리는 자가 일침을 놓듯 인상을 쓰며 받아쳤다.
"허튼소리! 내가 언제 꽃에 반한 적이 있었냐?"
모두들 큰형님이란 자가 화를 내는 것을 보고는 좋은 말로 눙치기에 바빴다. 그런데 반기를 들었던 자가 다시 덧붙였다.
"큰형님, 이번엔 정말로 무시해 버릴 게 아닙니다요. 형님께선 그때 가서 잘 보십시오. 형님의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우린 그 명화(名花)를 얻어 마음껏 즐기렵니다."
곧 이들의 왁자지껄한 술판이 벌어졌다. 그들은 술잔을 높이 치켜 들고 요란하게 서로 권하기도 하고 잔을 부딪치며 마시기도 했다. 한창 술판이 무르익어 갔다.
얼마 후 왕 공자는 그들이 술에 어지간히 취하여 비틀거리며 술집을 빠져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연히 그는 무리 중 한 사람이 대상 없이 혼자 흘리는 말을 엿들었다.
"주홍이 도도할 때 꽃구경을 하게 되었군 그래."
왕 공자는 이 사람들이 도대체 무슨 꽃구경을 하려는가 궁금했다. 또한 주홍이 날 때 꽃구경을 한다는 말에 더욱 호기심이 동했고 의심마저 들었다. 왕 공자는 이들을 뒤쫓아가기로 마음먹었다.
이 무리들은 밖으로 나가자 곧 한 사람씩 잰 동작으로 말에 올라탔다. 말들도 주인을 닮아 어디선가 술이라도 퍼마셨는지 비틀비틀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왕 공자도 말을 타고 천천히 이들을 따라 임안성 밖으로 나왔다.
날은 벌써 어두워 오고 있었다. 이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들은 말에 채찍질을 가하며 달리기 시작했는데 술이 다 깼는지 그 속돈가 차츰 빨라졌다.
이윽고 산모퉁이를 따라 돌아서니 커다란 산장이 나타났다. 멀리서 바라보니 산장은 아주 야릇했다. 등불들이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수림 속으로 웬 사람들이 오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가 여인들이었다. 여인들은 마치 활짝 펼쳐진 꽃나무를 연상케 하는 야릇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왕 공자는 숨을 죽인 채 뒤에서 동정을 살폈다. 무리들이 수림 안으로 들어서자 누군가 다가와 팔을 끼고 따라 걷는 게 보였다. 그들 역시 모두 여인들이었다. 그것도 꽃처럼 아름답고 애교가 철철 흘러넘칠 것 같은 여인들이었다. 왕 공자는 더욱 발소리를 죽이고 그 뒤를 쫓았다.
그들이 수림 한복판에 이르자 집은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들마다에는 초롱불이 매달려 있었다. 또한 모인 사람들을 살펴보니 온통 강호객들이었다.
주위를 넋을 잃고 둘러보는데 갑자기 누군가 자신의 양쪽 팔을 잡는 것을 느꼈다. 여인들이었다. 앞의 무리들처럼 왕 공자도 여인들에 이끌려 더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한결같이 미색을 겸 비한 백옥 같은 살결을 지닌 미인들이었다. 그녀들은 왕 공자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며 매우 정답게 굴었다. 왕 공자는 자리를 잡고 앉아 꽃구경이 시작되기만을 조용히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잠시 후 뭇처녀들이 수림 속에서 하나 둘씩 걸어 나왔다. 하나같이 눈이 부실 정도로 기막힌 미인이었다. 더군다나 등불 밑에 드러난 여인들의 자태는 감히 선녀와 비하고도 남았다. 그 여인들은 조용히 사람들 앞으로 다가섰다.
강호객들이 앞다투어 지껄여대기 시작했다. 그중 어느 한 사람이 약간 목청을 높였다.
"모두들 조용히 해 주시오. 내가 할말이 있수다!"
모두들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귀를 기울였다. 말을 꺼낸 사람은 키가 매우 작은 난쟁이였으나 얼굴을 보니 서른 살은 족히 돼 보였다. 그는 뭇사람들을 향해 웃음을 띄웠다. 그러나 그 모습이 소름이 돋을 정도로 음탕하고 음험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강호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무림의 인물들이 아니었다면 그 웃음에 벌써 몇몇은 자리를 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다시 그 사람이 예의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우린 북방 유운장(留雲莊) 사람들이오. 우리가 이곳에 머물면서 임안 지방을 살펴보니 실로 좋은 곳이란 것을 깨달았소. 그래서 우린 이곳에서 한바탕 놀아 보기로 했소. 여러분들도 함께 놀아 보는 것이 어떻겠소? 유운장이 나의 사형인 신독행(愼獨行)의 손에 넘어갔다는 걸 아는 사람도 있을 거요. 그분은 적지 않은 강호의 큰 사건들을 일으킨 사람이오. 그래서 난 오늘 이 임안에서 큰 사건 하나를 일으키려고 하오. 이 사건은 지난날에도 없었거니와 앞으로
도 찾아보기 힘든 아주 큰일이 될 거요."
그러자 주위가 웅성웅성 슬렁이기 시작했다. 그 난쟁이가 사람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이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아무리 천하에서 이름난 화초라 하더라도 모두 한철이 전부인 거요. 모두 세 계절의 고비를 넘기기가 어렵거든. 여러분은 모두 강호객들이니만큼 무릇 미녀들이라고 하더라도 다 이러저러한 흠이 있기 마련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을 거요. 말하자면 거리에서 만난 여인 앞에선 가슴이 요동을 치지만 가까이서 보면 이게 아닌데 하고 고개를 내저었던 기억을 누구나 갖고 있다는 말이오. 그러니 천하엔 흠잡을 데가 없는 여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법이오."
모두들 난쟁이의 말이 맞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난쟁이의 말이 계속되었다.
"밤에 미인들을 보게 되면 때로는 동시(東施)를 왕장(王薔)으로 보게 되고 무염(無墮)을 포사(褻 )로 착각하는 수가 있지요. 이유는 밤에는 흔히 사람을 잘못 알아보기 때문인 거요. 하지만 삼경(三境)하에 사람을 보게 된다면 결코 어긋나는 법이 없지요."
그 말에 모두들 영문을 몰라 고개를 길게 뽑거나 옆사람과 수군거렸다. 그들을 바라보던 난쟁이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은 곧 그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될 것이오."
곧이어 손을 대면 그대로 가슴을 타고 허리 밑까지 스르르 흘러 내릴 듯 몸매가 잘 빠진 여인들 몇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나무 그림자 사이를 걸어오는 그녀들은 신비스럽기까지 했다. 나무의 그림자가 그녀들의 온몸에 묘한 무늬를 남기고 있어 보는 이들을 더욱 황홀경 속에 몰아넣었다. 어두워 얼굴을 똑똑히 분간할 수는 없었으나 그 몸매만큼은 절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녀들은 강호객들 사이로 걸어와서는 천천히 몸에 걸치고 있던 얇은 천을 아래로 내려뜨렸다.
여인들은 곧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돼 버렸다. 그녀들 중 하나가 알몸인 채로 원을 그리듯 빙 둘러앉은 강호객들 가운데로 걸어 나왔다. 여인의 알몸을 그것도 하나가 아닌 여럿을 가까이서 바라본 강호객들의 혼백은 이미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없었다.
여인들은 모두 일곱이었다. 그녀들의 길게 풀어헤친 머리칼은 불빛을 받아 윤기를 머금은 듯했다. 또한 날씬한 다리며 매끄럽게 엉덩이로 흘러내린 허리선과 아랫배는 뭇사내들의 시선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난쟁이가 바로 유운장의 사숙(師叔) 사자우(査自雨)였다. 그가 한참 만에 다시 입을 때었다.
"이게 바로 미인인 거야. 미인이 한번 시선을 주면 마음이 설레고 미인이 한번 교태를 부리면 목숨이 심연 속에 빠져들어 가는 법이라구. 이 미인들이 어떤가?"
왕 공자의 가슴도 후득후득 우박을 맞은 듯 심하게 떨렸다. 바로 한가운데 나와 섰던 미녀가 곧장 자기 앞으로 걸어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이리 와!"
그 미녀는 별반응 없이 소리가 난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미녀를 부른 사람은 아주 장대한 체구를 가진 인물이었는데 시커먼 큰 손으로 미녀의 젖가슴을 덥석 움켜잡았다. 그녀의 젖가슴을 떡주무르듯이 하며 그가 감탄을 했다.
"훌륭하군, 훌륭해! 살결이 정말 부드러워!"
그러자 누군가 큰소리로 웃었다.
"하하하! 제노삼(齋老三)은 이전에는 여색을 가까이 하지도 않더니 오늘 밤엔 어찌 되어 살결이 부드럽다는 말까지 다 하는가?"
그 말에 모두들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왕 공자가 보기에 미인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이자들은 늘 이따위 짓을 즐기는 모양이군. 그런데 이 여인들이 회모루에 있던 그 십여 명의 기생들인지 아닌지 알아낼 방법이 없구나. 그녀들이 분명하다면 어딘가에 자지라는 여인이 끼여 있을텐데…….'
그때 사자우의 목소리가 깔깔대는 웃음에 실려 들려 왔다.
"부드러우니 안 부드러우니 말들은 해도 정말로 알자면 손안에 넣어 봐야 하지."
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런데 웃음이 사그라들 무렵 누군가 이렇게 외쳤다.
"칠백 냥!"
돌아보니 왕 공자 옆에 있던 처음 보는 낯선 사내였다. 그는 지금 그 여인의 몸값을 흥정하려고 하는 중이었다. 때를 같이하여 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 왔다.
"허튼소리 말어! 이 좋은 밤에 모두들 기분도 즐거운데 그대가 처음부터 칠백 냥을 부르다니?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려는 수작이야?"
불만의 소리가 터지자 처음 칠백 냥을 외쳤던 사내가 받아쳤다.
"제 형은 큰 인물이니까 값을 더 높이 부를 것 같은데, 그래 얼마를 생각하고 계시우?"
제노삼이 뒤질세라 맞섰다.
"천 냥!"
그러나 이들이 흥정하고자 하는 여인은 그다지 경국지색은 아니었다. 그러니 천 냥은 결코 적은 액수가 아니었다.
"은자 삼천 냥이오!"
불쑥 날아든 또 다른 소리에 모두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곳에 는 작은 수레가 하나 덩그러니 놓여져 있었다. 그 수레는 얼마나 작은지 사람이 겨우 앉을까말까 할 정도였다. 그런데 수레 위에는 바로 그 목소리의 임자가 앉은 채로 세 손가락을 곧추 펴들고 있지 않은가.
모두들 그자의 몰골과 여인을 사겠다고 그 많은 돈을 내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지 눈을 둥그렇게 뜨고 그자를 쳐다보았다.
삼천 냥과 대적할 액수가 나오지 않자 곧 그자는 여인을 불렀다.
"이리로 와. 어디 자세히 봐야겠다."
여인은 별수없이 그에게로 갈 수밖에 없었다. 여인은 가급적이면 사뿐사뿐 걸으려고 했으나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을 감추질 못했다. 수레 위에 있는 사람이 책망하는 낯빛을 지었다.
"미인이란 걸음걸이가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걸 너는 모르나?"
그러자 여인은 못마땅하다는 표정이 어렸다. 그러나 억지로 자신의 심정을 숨긴 채 그에게로 가까이 가서는 허리를 굽혔다.
"공자님, 무슨 분부가 계신지요? 전 공자님의 분부대로 따르겠나이다."
'그는 매우 가늘고 약해 보이는 다리를 지니고 있었다. 그가 자신의 다리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내 이 두 다리가 보기 좋은가 그렇지 않은가를 말해 보거라?"
수레 밑으로 축 드리워져 있는 그의 두 다리는 전혀 움직일 것 같지가 않았다. 여인은 매우 난처한 지경에 빠지고 말았다. 여인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공자님의 두 다리는…… 두 다리는 보기가 좋아요."
그가 고개를 서너 번 좌우로 흔들며 말했다.
"보기 좋다고 하면서 왜 시선을 피하는 게지?"
여인이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길은 매의 눈빛처럼 사납고 날카로운 빛을 뿜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여인은 그의 두 다리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때 그가 느닷없이 여인의 머리칼을 움켜쥐었다.
"아악!"
버둥대는 여인의 머리채를 한 손으로 틀어쥔 그가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
"봐! 보란 말이다!"
다리는 보잘것없었지만 반대로 손힘은 대단했다. 여인은 머리채를 빼앗긴 채 곧 허공으로 들어올려졌다. 그가 손에 힘을 주어 여인의 머리채를 홱 비틀었다.
"헉!"
여인은 곧바로 목이 부러져 죽고 말았다. 정말 대단한 힘이었다. 왕 공자가 그녀를 구해 주려고 막 몸을 일으키려는 순간이었다.
"듣거라!"
사자우가 주위를 일깨울 듯 목청을 높였다.
"천하에 아무리 사악한 자도 유운장에 대면 어림도 없다는 것을 알아 두어라! 너희들이 감히 함부로 손발을 놀렸다가는 우리 유운장 사람들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뭇사람들은 사자우의 뒤에 산맥처럼 버티고 있는 자들이 유운장의 호수(好手)들이라는 것을 익히 알고 있는 처지였다. 그러나 모두들 그다지 그들을 두려워하고 있지는 않는 눈치였다.
한 사람이 개탄을 하며 나섰다.
"유운장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한다는 것은 이미 알려진 바 우리도 건드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제형께서 꽃을 짓밟는 건 결코 환영할 만한 일이 못 된다구."
그러자 수레 위에 앉아 있는 사람이 냉소를 머금었다. 그 대신 대답한 것은 사자우였다.
"그 계집애를 산 이상 죽이고 살리는 것 역시 이분의 손에 달린거야. 누구도 관여할 수 없지."
모두들 무언가에 눌리듯 침묵하고 있는데 다시 사자우가 입을 놀렸다.
"보란 말이야. 또 오네, 또 와!"
또 한 여인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수심에 가득 찬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녀의 걸음은 매우 특이해서 마치 스르르 땅 위를 미끄러지는 듯했다. 여인 역시 한가운데로 와 섰다. 누군가 그녀의 걸음걸이를 보고는 최고라고 소리쳤다. 여인의 몸매는 방금 전 죽은 그녀보다 훨씬 우아하고 매력적이었다.
"삼천 냥이오!"
다시 여인의 값이 매겨지기 시작했다. 삼천 장이란 소리를 비웃기라고 하듯 누군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돈을 아끼시는구려. 당신은 오천 냥이라도 내놓을 수 있잖소?"
다른 또 한 사람이 웃으며 그 말을 비꼬았다.
"오천 냥을 내놓고 싶으면 그렇게 하시구려. 그렇지만 쌀독에 거미줄 치지 않도록 살펴보는 게 좋을 거요."
처음 삼천 냥을 부른 사람은 마화산장(魔花山莊)의 장주 마성(魔晟)이었다. 마성의 부인은 무서운 여인으로 알려져 있었다. 마성이 색을 즐기기는 했지만 일단 여인을 데려가면 부인에게 먼저 빼앗겨 자기가 품에 안을 수가 없었다. 이런 마성의 형편을 익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 한바탕 웃어댔다.
한사람이 그를 돌아보며 충고했다.
"마 형, 당신이 여인을 얻었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오? 필시 당신의 그 잘난 여편네가 여전에서 생선 훔치는 고양이처럼 잽싸게 가로챌 게 분명한데. 당신이 미인을 수십 명을 사들인다면 종국엔 부인 좋은 일만 시키는 꼴이 아니겠소?"
그 말에 다시 한 번 폭소가 이어졌다. 마성이 뜨뜻미지근한 어조로 답했다.
"꼭 그렇지는 않아. 여편네가 가로챌 때마다 하나 더 사면 되지 뭐. 여편네도 끝에 가서는 지쳐 포기할지 모르거든."
마성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그 미녀를 한 번 더 훑어보았다. 그리곤 한쪽 손을 활짝 펼쳤다.
"좋아, 내가 오천 냥을 내지!"
여인의 운명이 결정되려는 찰나였다. 어쩌면 마성의 부인 손에 넘어가는 게 이곳에 있는 악한들에게 시달림을 받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마성이 여인을 향해 눈을 가늘게 뜨며 손짓을 했다.
"이리 오너라, 어서 이리 오라구."
여인이 천천히 마성 앞으로 걸어갔다. 마성이 여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손이 곱구나. 너에 비하면 우리 여편네의 손은 진흙뭉치를 짓밟아 놓은 것 같다구. 넌 얼굴도 고우니 아마 얻어맞지는 않을 것이다. 그 년은 사람을 때려도 꼭 뺨만 골라 후려치거든. 그럴 때면 옆에 있는 내게 몇 번이나 후려치는가 세라고 시키지. 하지만 넌 절대 그런 일이 없을 거야. 내가 어찌 너처럼 고운 계집이 얻어맞는 것을 바라볼 수 있으며 또 몇 대나 맞는지 옆에서 셈을 할 수
있단 말이냐?"
그러나 그 원녀(怨女)는 마치 무슨 괴물을 대하듯 눈을 치켜 뜨고는 마성을 노려보았다. 마성이 히히덕거렸다.
"일전에도 내가 한 계집을 사 갔는데 어느 날 그 여편네가 버릇이 도졌던 거야. 내게 몇 대를 치는지 옆에서 세라고 하더군. 여편네는 정확히 열한 대를 후려쳤는데 내가 일곱 대를 때렸을 때 열한 대라고 했지. 그런데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었어. 급기야 그 계집은 나머지 네 대를 더 맞고는 죽어 버렸지."
"마 형, 사정이 그러한데 어째서 여인을 산다고 하는 거요? 괜한 고생 시키지 말고 어서 물러요!"
한 사람이 꾸짖듯 일침을 놓자 마성이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
"마음 같아서야 그러고 싶지만 여인이 알몸으로 눈앞을 어지럽히는데 도저히 참을 수가 있어야지."
원녀는 결국 마성의 손에 들어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여인의 운명에 대해서는 누구도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치였다.
한쪽에서 팔짱를 낀 채 잠시 이들이 노닥거리는 것을 구경하고 있던 사자우가 말했다.
"쇠뿔도 각각이요 염불도 몫몫이라 했소. 그러니 미녀의 용모 역시 원래 각기 다른 법, 당신들이 또 다른 미녀를 보게 되면 아마도 더욱 마음에 들 것이오."
이번에는 미녀들이 줄을 지어 한꺼번에 사람들 앞으로 나왔다. 여인들은 제각기 개성이 달랐고 그 자태 역시 각양각색을 이루었다.
왕 공자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 미녀들 중에 아마도 회모루 사람이 있을 거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찾아내지? 직접 한번 물어 보는 수밖에 없겠군.'
왕 공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앞으로 나섰다.
"내가 듣기에는 강호 사람들이 회모루에서 새로 십여 명의 미녀들을 데리고 왔다는데 어떤 여인들이오?"
그러자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득달같이 날아와 꽂혔다. 그중 사자우가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왕 공자를 노려보았다.
"그댄 누구냐? 누군데 감히 회모루의 처녀들을 찾지?"
왕 공자가 가슴을 펴고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난 종남산(終南山) 사람인데 왕중양(王重陽)이라 하오. 회모루의 처녀들이 천하의 절색이라고는 하지만 난 그저 그녀들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오."
"좋아. 그렇다면 알려 주지."
사자우가 손을 내젓자 뒤로부터 한 여인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강호객들은 더는 앉아 있지 못하겠다는 듯 모두 일어섰다.
이윽고 여인이 모두가 한눈에 볼 수 있는 옷까지 이르렀다. 매우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알몸인 그녀는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한 채자리에 붙박인 듯 서 있었다.
왕중양까지도 그 여인의 미모에 넋을 잃을 정도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나이는 스무 살 미만인 듯싶었으나 여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아름다움은 최고의 경지에 이른 상태였다. 혹시 기생어미가 입이 마르도록 떠벌리던 그 여인이 아닌가 싶었다.
사자우가 그 여인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이 다인 오늘 밤의 황후야. 하지만 아랑(阿郎)이 누가 되겠는지는 알 수 없지. 원래 내가 유운장에 남겨 두어 사형 신독행에게 드리려고 했었지.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사형에게는 미녀들 이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단 말이야. 그래서 이 처녀를 팔려고 하는 것이지. 뜻이 있는 사람은 값을 부르라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한 사람이 큰소리로 외쳐 댔다.
"칠천 냥이오!"
이번엔 다른 사람이 만 냥을 불렀다. 그러자 모두들 놀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 정도는 치러야 할 거라는 생각들이었다. 그런데 다시 뒤쪽에서 목소리가 날아왔다.
"저 옥 같은 살결을 보면 만 냥도 아깝지가 않지. 난 일만 오천 냥을 내겠어!"
사람들은 서로 간을 올리고 상대방을 헐뜯고 하면서 일대의 혼잡 을 이루었다. 왕중양은 이 사람들이 모두 강호에서 이름난 색마들 인 것은 알지 못했다. 한데 그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곳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사태가 심각하지 않으면 결코 좌우나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유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얼굴을 쉽게 알아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오로지 나쁜 짓만을 일삼는 흑도(黑道)의 인물들만이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큰소리로 떠들거나 상대를 향해 으르렁대는 꼴이었다. 그들은 마치 행여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처럼 비쳤다.
그 여인이 머리를 들어 달을 유심히 올려다보았다. 등불빛과 달 그림자 그리고 사람들의 그림자가 한데 어울려 기이한 풍경을 자아냈다. 그녀의 표정은 아주 우울해 보였다.
"내가 삼만 냥을 내겠소!"
다시 누군가 찬물을 쫘악 끼얹은 듯한 말을 했다. 역시 나서기 좋아하는 강남(江南)의 흑도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흑도의 총두 목인 해불개(奚不改)라는 인물이었다. 주위는 삽시간에 조용해졌 다. 해불개는 자신이 내뱉은 말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꼭 행동에 옮기는 인물이었다.
언젠가 그에게 누군가 이렇게 물어 온 적이 있었는데 결과는 참변을 부르는 꼴이 되고 말았다.
"당신네 부(府)엔 도대체 사람이 얼마나 있소?"
그는 별생각 없이 내키는 대로 대답을 해 버렸다.
"서른아홉이오."
그런데 그의 친구가 실제로 수를 세어 보니 마흔한 명이었다. 해불개가 탄식을 섞어 가며 말했다.
"해불개라 해불개, 내 이름이 해불개인데 왜 불개라 하였겠느냐!"
그는 곧바로 검을 들어 자기 주변에 있던 두 사람의 목을 잘라 버렸다. 그 이후로 그의 부에는 오로지 서른아홉 사람만이 있게 되었다.
이러한 인물이고 보니 그가 이미 입으로 말을 내뱉은 이상 누가 사족을 달 수가 있단 말인가, 만약 누군가 그의 말을 걸고 넘어진 다면 또다시 해불개의 진면목을 보여 준답시고 검을 들 게 분명했다. 모두들 입을 다문 채 그의 눈치만을 살피고 있는데 누군가 불 쑥 말을 던졌다.
"내가 삼만 일천 냥을 내겠소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날아갔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며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그 돈을 내고 저 계집을 사다가 어머니 몸종으로 삼게 하리다."
모두들 놀란 것은 둘째치고 앞으로 일어날 사태에 대한 두려움으로 몸을 사리기에 바빴다. 일대의 혼란을 예고하며 나선 자는 바로 강남 모용씨 가문의 방탕한 귀공자로 알려진 모용준이었다.
이 모용 공자의 방탕함을 말하자면 사흘 밤낮도 모자랄 정도였다. 강남 모용씨 가문의 귀공자들은 저마다 무공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점잖고 풍류스러웠다. 그런데 그런 가문에 반기를 들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유일한 사람이 모용준이었다. 그의 키는 남의 허리 춤밖에는 닿지 않았으며 얼굴도 두번 다시 보기 싫을 정도로 추물에 속했다. 비록 소문에 의하면 모용씨의 가문에서 가장 유능하고 백년이 지나도 이런 인재는 찾아볼 수 없다고들 하지만 못난이라는 소리를 면
하기는 힘들었다. 이젠 점잖고 풍류스러운 모용세가(募容世家)의 공자는 다시는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해불개가 모용준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모용 공자는 내 성미를 잘 알고 있을텐데?"
그러자 모용준 역시 해불개를 쏘아보며 받아쳤다.
"당신이 살 수 있는 걸 내가 왜 못 사겠는가?"
해불개가 흐흐 웃으며 말을 뱉었다.
"난 한번 내뱉은 말대로 행동하는 사람이야. 그래서 이름도 무엇 때문에 고치겠냐는 의미로 해불개가 아니겠어."
갑자기 말을 끝낸 해불개가 검을 뽑아 들고는 모용준을 향해 일곱 번을 찔러댔다. 첫번째로 찌른 것은 '천흉착두(穿陶破 )' 초식이었고 두 번째는 '고사수장(苦思,愁腸)'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는 '도단고량(桃斷膏梁)' 초식이며 네 번째가 '쌍용탈주( 龍奪珠)', 또한 다섯 번째는 '일지월광(一地月光)'이었다. 이어서 '차도제초(借道齋楚)'와 '몽침황량(夢枕黃梁)'초식이 각각 여섯 번째와 일곱 번째에 해당되었다.
해불개는 이 일곱 가지 초식을 번개같이 부리며 모용준을 검으로 공격했다. 그는 모용준이 일찍이 가문으로부터 절기의 기공을 전수받아 천하의 모든 병장기들을 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습적인 공격을 택했던 것이다. 그러나 모용준은 몇 차례 몸을 움직여 해불개의 일곱 차례나 되는 검공격을 쉽게 피해 버렸다.
모용준이 가소롭다는 듯이 한쪽으로 물러서며 외쳤다.
"허허, 천하의 우리 가문에 도전하는 자가 있는 줄 내 미처 몰랐구나. 네 놈이 죽고 싶어 몸살이 나는 모양이로구나!"
그리곤 모용준이 몸을 가볍게 날리며 바닥에서부터 통통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정말 볼품딸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용을 써도 해불개의 허리춤밖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얕잡아 볼 수만은 없는 실력이었다. 곧 해불개도 자세를 가다듬으며 그와 맞서기 시작했다.
"난 저 처녀가 마음에 들었단 말이다. 우리 어머니가 지금의 처녀애들은 모두가 소용이 없는 가짜들이라고 하셨지. 마치 너희들 강호의 가짜 협객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난 다행히도 진정한 처녀애를 찾은 것이다. 어머니를 위해 저 처녀를 사겠다는 게 잘못이라도 된다는 것이냐?"
모용준의 말에 해불개가 씩씩거렸다.
"남이 그 계집을 아주 귀중하게 다루겠다고 하는데 너는 어째서 늙은 어미의 몸종으로 삼겠다는 말이더냐? 그렇게 계집을 헛되이 쓰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다."
사람들이 해불개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한마디씩 했다. 그러자 모용준이 다시 목에 힘을 주었다.
"네 놈이 해불개지만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해불개는 여전히 얼굴 가득 비웃음을 담은 채 모용준을 노려볼 뿐이었다.
"어서 고쳐 먹지 못하겠느냐!"
모용준이 다시 해불개에게 다짐하듯 소리치고는 몸을 날려 세 번이나 초식을 바꿔 가며 공격을 가했다.
"음!"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용준의 발에 채인 해불개가 공중에서 한바퀴 돌더니 뒤로 나가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