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거울 속의 형상은 인연으로부터 생겼으니,
얼굴/거울/거울을 쥔 사람/광명이 화합하는 까닭에 형상이 생겨난 것이다.
이 형상을 인하여 기쁨과 근심도 내며,
그것이 다시 원인도 되고 결과도 되거늘 어찌 실로 공하여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 하는가?
[답] 인연으로 생겨나 자재롭지 못하기 때문에 공한 것이다.
만일 법이 실제로 있는 것이라면 이는 또한 인연으로부터 생겨나지도 않아야 한다.
그것은 왜냐하면 만일 인연 가운데 먼저부터 있었다면 인연은 곧 필요가 없게 되며,
인연 가운데 먼저부터 없었다 해도 인연은 역시 필요가 없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하건대 우유 속에 먼저부터 낙(酪)이 있었다면 그 우유는 낙의 원인이 되지 못하니, 먼저부터 낙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먼저부터 낙이 없었다면 물속에 낙이 없듯이 그 우유도 낙의 원인이 되지 못한다.
만일 원인이 없이 낙이 생긴다면 물에서는 어찌하여 낙이 생겨나지 않는가?
만일 우유가 낙의 인연이라면, 우유 역시 저절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곧 우유도 인연에서 생겨난 것으로 우유는 소에서 나왔고 소는 물과 풀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와 같이 끝없이 모두가 인연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인연 가운데 과가 있다고 말할 수 없고,
없다고 할 수도 없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고 말할 수도 없고,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할 수도 없다.
모든 법은 인연으로부터 생겨나 자성이 없음이 마치 거울 속의 형상과 같은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리라.
법이 인연에서 나왔다면
이 법의 성품은 실로 공하니
만일 이 법이 공하지 않다면
인연에 의해 있는 것은 아니다.
비유컨대 거울 속의 형상이
거울이나 얼굴이 지은 것 아니며
거울 잡은 이가 지은 것 아니며
저절로 지어지거나 원인 없이 지어진 것 아니다.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도 아니며
이 말 역시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와 같은 것을 중도라 한다.
이러한 까닭에 모든 법은 ‘거울 속의 그림자 같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