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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동동주로 국제 주류시장 도전, 새로운 100년 그린다 |
‘임하먹걸리’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임하동동주’. 사진출처=임하양조장
[미술여행=김관수 칼럼니스트] 경북 안동의 한 전통주 행사에서 여러 전통주 중 유독 눈에 띄는 막걸리를 집어 들었다. ‘임하 생막걸리’, 요구르트 빛깔 막걸리 위에 입혀진 라벨 위 고전적인 폰트와 감각적인 일러스트가 전통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는 듯했다.
그 스토리가 궁금해 임하면으로 달려가 임하양조장을 찾았다. 뜻밖에도 막걸리를 빚는 이는 30대 열혈청년 윤강호 대표였다.
안동 시내에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고 시내를 빠져나오면 임하면을 만난다. 낙동강이 굽이굽이 흐르는 ‘물의 도시’ 안동에서도 물이 가장 맑다는 길안천과 반변천이 흐르는 임하면.
이 지역 행정의 중심지인 임하면사무소(지금의 행정복지센터)가 소재한 신덕리 마을에서 나고 자란 임하양조장 윤강호 대표는 임하의 의미가 ‘깊고 그윽한 숲’이라고 말한다.
1910년에 지어진 집에서 지금까지 113년 이상 한 자리에서 쉼 없이 술을 빚어온 임하양조장은 그런 숲 바로 아래에서 고즈넉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금은 안전문제 등으로 많이 줄어들었지만, 오래도록 담장 위 수풀의 키 큰 나무들이 임하양조장의 고즈넉한 지붕을 덮어 한여름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던 풍경을 윤 대표는 여전히 기억하고 있다.
윤 대표가 나고 자란 곳. 고향집이자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삶의 터전. 한옥이지만 일본의 가옥 양식이 뒤섞인 1910년대의 시대상을 지금도 간직한 임하양조장은 110여 년 넘도록 임하의 막걸리 역사를 쉬지 않고 이어가는 중이다.
안동 임하의 막걸리는 언제부터 만들어졌을까? 그 역사는 정확하지 않지만 17세기 학식 높은 안동 출신의 한 대유(大儒)의 글귀에서 임하의 막걸리 맛을 짐작할 수 있다.
임하양조장에서 만난 윤강호 대표. 사진=김관수
갈암 이현일(1627~1704년)은 숙종 재위기 남인이 정권을 차지하자 예조참판과 대사헌, 이조참판 등을 연이어 역임했다. 하지만 선생이 68세 되던 해에 일어난 갑술환국으로 다시 서인이 집권하자 유배되었다가 풀려난 뒤 지금의 임하면 금소리로 낙향해서 남은 생을 보냈다.
지금도 금소마을에는 경상북도 기념물 ‘갈암금양강도지(葛菴錦陽講道址)’가 남아있는데, 선생이 말년에 후학들을 가르치던 서당이다.
맛칼럼니스트 황광해 씨에 따르면 이현일이 남긴 총 40권에 이르는 방대한 시문집 <갈암집>의 시 한 수 속에는 산촌에서 빚은 술 산료(山醪)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백발이 성성한 선생이 한참 어린 제자들과 호기롭게 마시던 산촌 막걸리에 대한 이야기다.
“한낮이라 들판엔 안개와 이슬 걷혀
벗들과 천천히 거닐며 한가히 노닌다
산촌 막걸리 기울이매 호기가 일어나
내 삶이 이미 백발인 줄도 몰라라”
<봄날 안국화 명하(命夏)와 시냇가에 노닐며, 갈암집>
갈암 선생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한글 조리서 <음식디미방>의 저자인 안동 장씨 장계향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장계향은 <음식디미방>에서 무려 51종에 이르는 술 제법에 대한 기록을 남겼다.
또한, 갈암 이현일이 아버지 이시명을 대신해 친척들에게 보낸 편지에 술에 관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친족끼리 만나 은근한 정을 나누기 위해서 술자리를 베풀라”며 술과 안주와 함께 즐기는 놀이 등에 대해 조언을 한다.
갈암 이현일은 이렇듯 술을 좋아하고 잘 빚은 부모의 영향으로 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술의 깊이를 이해하고 즐기는 입맛 까다로운 전문가가 아니었을까? 그런 애주가의 말년에 회춘의 마법을 선사해준 이야기 속의 산촌에서 빚은 명주가 바로 ‘임하막걸리’였을 것 같다.
‘임하먹걸리’가 세계시장을 겨냥해 출시한 ‘임하동동주’. 사진출처=임하양조장
처음 임하막걸리를 대면했을 때 눈이 선명해진 깔끔함, 그 막걸리를 사와 한 모금 입안에 털어 넣었을 때 기분 좋은 청량함이 선사하는 깔끔함. 윤 대표에게 그 비결에 관해 물었다.
집안의 가업을 잇기로 하고 본격적으로 양조에 뛰어든 윤 대표는 그동안 유지해오던 막걸리병 라벨을 과감하게 변경했다.
“대한민국에 수없이 많은 막걸리 제품이 있지만, 저희 라벨처럼 지역의 이미지를 형상화하고 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는 일러스트 형태의 막걸리 라벨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실 부담도 됐지만, 차별화된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과감하게 시도해봤습니다.”
반응은 좋았다. 안동의 지인들에게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많이 받았고 특히, MZ세대를 비롯한 젊은 층의 이목을 끌면서 안동을 찾아온 여행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며 마트와 식당에서 임하막걸리를 구매하는 이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막걸리를 동이 트는 이른 새벽에 만드는 점에서 착안했어요. 새벽의 신선함과 더불어 깔끔한 맛의 임하막걸리를 시각적으로 전달하고 싶었죠. 그 이미지를 안동여행의 핫플레이스 월영교를 모티프로 삼고 라벨을 디자인했습니다.”
이른 새벽 붉은 해가 고개를 내민 시간의 핑크빛 기운과 뽀얀 막걸리 특유의 빛깔이 어우러진 모습은 복숭아 맛 음료를 연상시키게 한다.
“생막걸리의 특징을 명확하게 다 가지고 있어요. 탄산을 사용하지 않지만 1~2주 정도 지나면 발효 과정에서 발생된 탄산 때문에 청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저희 막걸리는 이양주로 약 한 달 동안 발효를 두 번 하는데,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조금씩 변동이 있지만, 온도를 적당히 잘 유지하면서 첫 발효는 대략 1주일, 두 번째 발효는 2~3주 정도 진행합니다. 그렇게 약 30일의 발효를 마친 막걸리는 숙성된 깊은 맛을 내는데 그럼에도 텁텁하거나 무겁지 않은 깔끔한 맛을 냅니다. 희석하기 전의 찐땡이(원주)도 꾸덕한 느낌이 아닌 가벼운 바디감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전 과정을 마친 막걸리는 신맛과 단맛이 섞여서 복숭아향이 느껴진다고 많이들 얘기해주세요. 막걸리 라벨의 느낌과 마침 잘 맞아 떨어진다고도 하세요.”
윤 대표는 요즘 또 하나의 도전을 결정했다. 바로 동동주의 출시다. 2023년 12월 중 공식 출시를 목표로 한창 준비 중이다.
임하동동주의 특징은 안동의 주요 특산물 중 하나인 생강을 가미한 점이다. 막걸리에다가 쌀을 더 쪄서 넣고, 생강을 짜고 채에 걸러 얻은 생강즙을 첨가했다.
과거에도 윤 대표의 어머니가 인삼, 생강 등 여러 작물을 첨가해서 막걸리를 만드는 실험을 다양하게 했었는데, 윤 대표는 탄산감이 보다 풍부해지고 향이 은은하게 배어 나와 깔끔함에 건강함까지 느끼게 해주는 생강을 사용하기로 했다. 곧 출시를 앞둔 임하동동주는 윤 대표가 이끄는 임하양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지금까지 이어온 100년 이상의 역사에 폐를 끼치지 않고, 앞으로 또 다른 100년을 이어갈 수 있는 정말 좋은 전통주를 만들어 보자고 하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본격적인 겨울 추위의 계절 12월, 임하동동주와 함께 보낼 달콤한 연말이 벌써 기대된다.
글=김관수 | 여행칼럼니스트, ‘길과마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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