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용[借用]과 인용[引用]/김문억
차용은 본디 금융 거래에서 나온 말로 남의 돈을 빌려 쓴 데서 비롯된 말 같지만 사전적 문학 용어로는 다른 나라 언어에서 단어, 문자, 개별적 표현 따위를 빌려다 쓰는 일로 돼 있으며 인용은 남의 말이나 글을 자신의 말이나 글 속에 넣어 쓰는 것으로 되어 있으니 본문 작가의 허락 없이도 행할 수 있는 것으로 빌려다 쓰는 것이나 끌어다 쓰는 것이나 비슷한 입장이다 이것은 표절과는 사뭇 다른 말이다 표절이라고 한다면 적어도 남의 글을 몇 줄 그대로 옮겨다가 내 글 속에 끼워 넣어 시치미 뚝 떼고 내 것처럼 만드는 도둑 놈 얘기고 인용이나 차용은 그렇지는 않고 시어 한 어절만 얻어다가 내 작품을 살리는 행위다. 그러니까 표절은 공부도 하지 않는 게으름뱅이의 도둑질이고 차용이나 인용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부지런한 사람의 이삭줍기다 엄밀히 얘기해서 문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이삭줍기란 내 비유가 합당한 표현이라면 기왕이면 내가 손수 농사지어서 얻은 알곡만은 못한 느낌이다 표현의 기법이란 것이 그렇다 낱말 하나하나가 연결되어서 한 행이 되고 한 단락이 되면서 한 편의 작품을 낳는 것인데 시어 하나마다 문장의 기초가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특출 나고 돌출 되는 시어만 가지고 작품을 살리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작가의 취향이겠지만 딴에는 낯설기의 일환인가 보다 우리말 사전이나 찾아보아야 알듯 한 말이 제목에서부터 시작된다 글쎄! 읽으면서 말이 자꾸 끊기는, 숨어있는 우리말 발굴이 시 창작에서 어떤 위치를 갖는 것일까 작품 전체적으로 낯설기에 성공 했다면 그런 숨은 말 찾기도 같이 성공했다고 할 수있겠다 그렇지 못하고 작품 전체가 갖고 있는 비유의 카테고리나 주제의 전개를 표출하는데 힘쓰기보다 말의 성찬에 신경을 쓰다가 보면 언어의 인용이 더욱 심하게 나타난다 예삿말이라도 꼭 필요한 위치에 갔다 놓는 작업이 시 쓰기라고 한다면 작가가 의도한 표현이 충분할 때 화려한 수사가 아니더라도 독자는 얼마든지 감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말의 깊이에서 울려오는 진실 된 울림으로 감동을 받을 때 시의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큰 상을 받았다는 작품 속에서도 읽어 내려가는 동안 뜨끔뜨끔 가시가 걸리듯이 짚여 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한 편의 작품에 ‘직립’이란 단어가 두 곳에서 나오는 경우도 있다. 빼어나고 멋있는 용어이면서도 이미 다른 작품에서 간간이 보아왔던 상습 용어가 된 것들이어서 신선미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있다 ‘달’ 하면 이태백이요 ‘윤사월’ 하면 목월 이다 시를 쓰다가 보면 꼭 그 부분에서 필요한 시어가 있다 그것이 누구의 전유물이 아닌 바에야 인용해서 쓰고 싶다 하지만 창작을 목숨으로 알고 사는 작가 정신이라면 당장의 목마름을 참고 넘길 수 있는 자존심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인용은 발굴 보다는 못한 것이고 집짓기는 물론 재료도 좋아야 하겠지만 도편수의 설계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집을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표절시비와 차용의 한계/김문억 하늘의 옷감 / W.B. 예이츠
내게 금빛 은빛으로 수놓아진 하늘의 옷감이 있다면 밤의 어두움과 낮의 밝음과 어스름한 빛으로 된 푸르고 희미하고 어두운 색의 옷감이 있다면 그 옷감을 그대 발밑에 깔아드리련만. 나는 가난하여 가진 것은 꿈밖에 없으니 그대 발밑에 내 꿈을 깔아드리오니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그대가 밟는 것은 내 꿈이기에.
ㅡ김억 번역시집,『오뇌의 무도 』중에서.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 없이 고이고이 보내드리오리다
영변엔 약산 그 진달래꽃을 한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발걸음마다 뿌려놓은 그 꽃을 고이나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ㅡ1922년 『개벽 』판.
진달래꽃 / 김소월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ㅡ1925년 첫시집 『진달래꽃』판.
예이츠의 '하늘의 옷감' 과 김소월의 '진달래꽃'을 나란히 놓아 보았다. 먼저 나온 개벽판과 뒤에 나온 진달래꽃판을 같이 올린 것을 보면 개정판의 작품이 훨씬 율조가 좋다
개벽판에서 1연의 리듬이 불안전한 '고이고이'를 '고이' 로 다듬었고, 군더더기 같은 ‘그’와 ‘을’은 지웠다. 3행에 ‘한’을 삭제하여 율을 살렸다. 3연은 '발걸음마다'를 '걸음걸음'으로 '뿌려놓은'을 '놓인' 으로 어감이 어색한 '고이나'는 리듬이 같으며 보다 뜻의 전달이 잘 되는 '사뿐히' 로 고쳤다.. 그리고 마지막 결구에 있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의 아니와 눈물 사이의 쉼표를 삭제하여 이별에 대한 안타까운 심사를 자연스럽게 읽도록 했다
내용의 근간은 유지하면서 부분부분 말 놓은 솜씨만으로도 작품의 품위와함께 낭송의 맛을 살릴 수 있는 문학이 시문학이다
* 김소월이 '진달래꽃'을 발표한 것은 1922년이고 김억이 예이츠의 시를 번역한 것이 1921년. '사뿐히, 즈려밟고' 로 옮긴 것은 김억만의 독창적인 표현법이라고 하는데 김억은 소월의 스승이다. '하늘의 옷감' 끝행에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는 김소월이 스승이 번역해 놓은 것을 차용한 것이라 하겠다. 이미 널리 알려진 것을 또 인용을 해 본다 -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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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물에 대한 직감이라든가 사실적 형용을 시라고 하는 그릇으로 옮기는 작업을 시 쓰기라고 한다면 어차피 문학은 사물을 뽑아 올리는 모방의 범주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면서도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며 창작이란 고통을 스스로 즐기고 감내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종종 표절 이라고 하는 딱지에 시달리는 경우도 있다. 위에 인용된 작품들은 인용이란 말로 소개되고 있지만 그래도 독자 입장에서는 안 듣느니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 詩語란 것이 우리가 예사롭게 쓸 수 있는 말이면서도 그러할진대 작품에 잘 보이지 않던 작가만의 독특한 용어를 다른 작가가 차용 했다고 할 때는 찝찝한 느낌이 더 크게 오기도 한다
몇 년전 부터 우리 시조단에서도 시조를 잘 쓴다고 하는 모 시인의 작품에 나오는 시어가 다른 작가의 작품에 뻔질나게 인용되는 경우를 흔하게 보아왔던 나로서는 그런 기분이 더욱 찝찝하다 . 그 시인이 <청동> 이란 말을 쓴 후로 청동이 곳곳에서 진열 되는가 하면 <직립> 이란 시어는 요즈음까지 유행을 하고 있다. 지금은 또<삽>이 유행을 하고 있으며 바닷가에서 울어대는 <개개비>는 너무 시끄럽다. 한동안 유행하던 <귀밑머리>는 사실 정지용의 작품에 오래 전에 나오기도 했었다. 한술 더 떠서 수상 작품에 이런 시어들이 난무한다면 어디선가 읽은 듯한 느낌이 들어서 개운치 않다. 물론 시어 하나하나마다 누구의 전유물이 아닐진대 얼마든지 차용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예삿말이 아닌 어떤 상징이나 비유로 이미 다른 사람 작품에 발표된 특출한 시어가 유행으로 번진다면 창작을 생명으로 하는 문학 작품에서는 더욱 고민을 하지 않은 게으름의 산물이라고 하겠다.
1)보리고개 /이영도
사흘 안 끊여도 솥이 하마 녹 슬었나
보리 누름 철은 해도 어이 이리 긴고
감꽃만 줍던 아이가 몰래 솥을 열어 보네
2) 눈길 /송수권
삼동(三冬)은 누군가 자주 솥뚜껑을 열고 갔다
그래도 노파는 부엌 빗장을 치지 않았다
또 고라니 가족이 다녀간 모양이다
1)의 작품 보리고개는 麥嶺(맥령)이란 제목으로도 알려진 이영도의 초기 작품이고 2)의 작품은 유심 2008 년 겨울호에 수록된 송수권의 작품이다 두 작품을 한 장에 펼쳐 놓고 보니 닮았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게 온다 위의 작품은 시조요 아래 작품은 자유시다 그러면서도 작품이 안고 있는 텍스트가 비슷하다 시조는 3장으로 표기 되어 있고 자유시 역시 3행으로 표기되어 있다 화자의 대상이 사람과 짐승이라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작품의 주인공이 모두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는 부분에서 같은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으며 더 깊이 들어가 보면 부엌이라고 하는 환경에서 솥을 인용한 것이 같고 사흘과 三冬이 흡사하다 배고픔의 고통을 같이 느끼면서 모르는 체 하고 있는 깊은 애정이 배어 있는 것도 같다 이 쯤 밝히고 보면 인용의 한계란 매우 모호한 것이며 창작이라고 하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독자의 마음은 늘 개운치가 않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