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년도 : 2024년
제43회 수상자 : 이경선
수상 작품집 :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
대표 작품 : 저물어 가는 그곳
저물어 가는 그곳
석양이 지는 시간과 마주치면 축적된 공허가 밀려온다. 내재되어 있던 아픔의 무게가 밀물처럼 다가오는 건 막을 수 없다. 운전을 하다 지나치는 간판 속에 요양원이 보이면 울컥한다. 저 건물 안에는 분명 퀭한 눈빛으로 마치 도토리묵이 뭉개져 달라붙은 듯 검버섯 핀 병들어 걷지 못하는 누군가의 부모들이 계실 것이다. 예전엔 깊은 산골에나 있었던 그곳을 요즘은 도심과 아파트 주변에서도 볼 수 있다. 흡사 고려장처럼 다가왔던 선입견이 그나마 오피스텔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로 인식되어 가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엄마에겐 한없이 죄스럽다.
어머니의 허리 협착증은 고령의 연세와 오랜 심혈관 지병으로 수술이 불가능하였다. 지팡이에 의지하다 결국 걷지 못하는 상황까지 계절이 여러 번 포개졌다. 도우미들은 며칠 버티지 못하고 그만 두기를 반복했다. 긴 시간 남동생과 상의를 하였지만 최소한의 양심은 있어 매번 결론을 내지 못했다. 대소변을 받아내고 있는 상태라 어머니의 결정만을 기다렸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아들이 생업을 병행하며 뒤처리를 도맡아 하는 걸 보곤 마음을 굳히신 것 같다. 올케는 결혼 초부터 함께 살았지만 고부간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어머니와 부딪히는 게 싫어 직장을 구해 다녔고 집안 살림은 앉은뱅이로 움직이실 때까지 이어졌다. 새로 사드린 두툼한 외투로 몸을 감싸고 도착지가 아파트 노인정이 아닌 동네 요양원으로 바뀌던 날은 서로의 눈을 피한 채 어둑한 침묵만이 존재했다.
평소 여장부로 담대하시지만 그만큼의 인간적인 나약함과 두려움은 갖고 있음을 알기에 요양원을 가겠노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애증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누워서 지내야 하는 엄마를 돌보지 못하는 현실에서 어쩌면 서로에게 나을 거라 위안했지만, 막상 짐을 챙겨 휠체어가 이끄는 대로 향하는 제대로 빗질조차 안 된 초췌한 모습은 심장을 갈기갈기 찢고 있었다. 그나마 친정 아파트 주변이라 안심이 되었다. 서울을 매일 갈 수도 없어 올케에게 여럿 교차하는 마음으로 송금을 했다. 모시고 사느라 애썼고 퇴근길에 가끔 들려달라는 시누이의 간절함이 담겨있었으나 흡족하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왜 가지 않느냐고 묻지 않았다. 그동안 쌓아놓은 벽을 허물기엔 콘크리트보다 두텁고 엄마와는 밍밍한 곤약 같은 관계로 마무리를 짓고자 작정한 느낌이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궁색한 할머니 소리 듣지 않게 주머니를 채워드리는 것뿐이었다. 남에게 신세 지는 걸 용납 못하는 어머니는 속주머니에 갖고 계시다가 용변을 본 후 씻겨 주는 분에게 사례를 하셨고 새해 첫 날은 개개인 봉투를 만들어 보호사님들에게 전하기도 했다. 이따금 간식을 배달시켜 드리기도 했는데 뭐가 서운하셨는지 내가 준 돈 다 내놓으라며 호통을 치셨다고 한다. 집에 간다고 짐을 싸며 큰소리를 치셨으나 동생도 나도 어머니 편에 서주질 못했다. 이미 엄마의 이동에 가족 모두 익숙해져 어머니가 그곳 규칙을 지키며 적응하시기만을 바랐다. 엄마는 집으로 가고 싶은 자존심 상하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 테고 여기 아니라도 내 자식, 내 집이 있다는 외침이셨을 텐데, 난 매듭을 풀지 못하고 있는 동생 부부를 감안해야 했고, 현실적으로 심신이 편안하고자 엄마를 설득해야만 했던 딸도 아닌 딸이다.
돌 지난 손녀가 오면 수시로 기저귀를 보며 갈아주고 응가를 하면 욕실로 데려가 뽀송하게 씻긴다. 그럴 때마다 내 손이 밉다. 엄마도 그렇게 키웠는데 우린 말년에 요양보호사에게 떠맡겼다. 면목동 여사님. 용변을 보면 항상 그 분에게만 씻겨달라고 하셨다. 내가 가면 인터폰으로 호출해 호랑이 등에라도 탄 음성으로 ‘우리 딸’이라고 인사를 시키셨지만 죄인이 따로 없었다. 엄마가 떠나신 후 명절이 되면 여사님께 작은 마음을 전한다. 할머님이 재미있는 말씀도 잘하시고 하나도 힘들지 않았다는 선한 심성에 감동받고 마지막까지 엄마의 몸을 닦아 주신 분이라 애틋한 마음을 나누곤 한다. ‘어머니 생각이 나시는군요.’ 문자 위로 엄마 얼굴이 겹쳐 시야가 흩어진다.
간간이 집에서 모시며 수발하는 분을 보면 또다시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최선의 선택이라 여긴 것이 부끄럽다. 엄마는 왜 집에 간다고 짐을 싸놓으셨을까. 그것만 생각하면 내 아이가 밖에서 맞고 온 것처럼 아프다. 엄마는 당시 의식이 또렷하여 말을 할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아무런 말씀도 비치지 않았다. 스스로 싸놓은 짐을 다시 풀어야 할 때 얼마나 비참하셨을까. 소리 없는 눈물을 훔치셨을 어머니, 이제 다신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라 확신하셨을... 단지 찾아뵙고 눅눅한 봉투를 건네는 일로 합리화 시킨 효라곤 눈곱만큼도 없는 동물들이다.
작은 섬에 고립된 느낌으로 서러웠을 엄마에게서 자주 걸려오던 전화가 뚝 끊겼다. 휴대폰을 보호사님이 받으셨다. 요양원에 가신 지 5개월 동안 수차례 응급실, 중환자실을 반복하며 결국 요양병원으로 옮겨졌다. 코로나 PCR 검사하는 잠깐의 시간도 역겨운데 코로 음식을 공급받아 연명하는 사투까지 얹어드렸다. 생신을 며칠 앞둔 새벽에 구슬프게 울리는 전화 벨소리는 무엇을 말할 건지 직감하게 했다. 강물에 맥없이 떠다니는 빈병처럼 헛헛한 가슴으로 멈춰버린 시계. 뼈를 강하게 치고 가는 충격. 피 한 방울 안 섞인 이들의 매일 발생하는 사무적인 손길에 엄마의 삶은 굳게 닫혔다. 마지막 순간 그래도 자식이라고 나를 한 번쯤은 찾았을 엄마의 바스러지는 독백이 환청처럼 들린다. 엄마에게 그러했듯 내게도 다가올 깊은 응달의 시간이 오면 스스로 요양원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확고해졌다.
수상 소감
생일 달에 큰 선물입니다
이경선
가끔 내가 진정한 글쟁이인가, 수필가라는 명칭이 걸맞은지 객관적으로 판단하면 몹시 부끄럽습니다. 독자에게 버드나무 같은 문체로 정신의 울림을 주지 못 할 거라면 여기서 멈춰야 하지 않나 하는 자책도 들던 중에 너무도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오월은 음력 제 생일이 있는 달입니다. 가정의 달과 맞물려 얹혀 지나기 일쑤지만 대지위에 온갖 생명체들이 고개를 내미는 봄날의 고마움도 세월을 보내며 커져 감을 느낍니다. 어머니를 떠나보낸 후 제 나이 육십이 넘어서까지 손수 생일 음식을 해주시던 숭고한 애정과 손길을 그리워하며 작년 봄, 스스로에게 선물을 주고 싶어 묵은 원고를 정리하고 수필집을 의뢰했습니다.
한국수필 문학상은 권위 있는 큰 상으로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는데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자 알려주셨어요. 제 생일에 맞춰 달라 부탁드린 것이 마침 문학상 접수기간과 같아 공모를 위해 책을 출간하는 줄 아셨던 거지요. 갑자기 동요되어 무리한 진행을 했지만 낙방을 맛보았습니다. 제 이름이 ‘경선’이어서인지 그동안은 그나마 경선되는 것에 무리가 없었는데 어머니의 부재에 이름값? 도 모두 소진된 듯했습니다. 올해 마음을 비우고 재도전을 했고 감사하게도 경선되었습니다. 제 틀과 활동반경이 넓지 않은 부족한 글에 같은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고 선정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이 고귀한 영향을 받아 수상자의 명예를 실추시키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삶이 허기지고 축축할 때마다 글을 쓰며 깊은 골에 갇힌 마음들을 헹구어 왔던 것 같습니다. 이번 세 번째 수필집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 은 2013년 두 번째 수필집을 상재하곤 다소 굴절된 논리로 더 이상 내 흔적을 남기지 말자. 라는 심사가 굳혀져 근 10년간 파일에 묶여 지낸 글들입니다. 사장시켜 버리자니 긴 시간들을 저버리는 느낌이라 그때의 감정들에게 숨을 쉬게 해주고 싶었던 건데 이리 큰 선물로 화답해 주시는 (사)한국수필가협회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수필의 대문호님들, 여러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립니다. 수필이 워낙 매력 있는 장르로 더 나이를 먹어도 놓지 않을 다짐을 재삼 하게 되는 계기를 주셨습니다. 정통수필을 지향하는 (사)한국수필가협회의 발전을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아울러 현재의 제가 있기까지 지켜봐 준 가족들과 경기수필, 수원문협 회원님들과도 기쁨을 나누고 싶고 특히 20년 전, 늘어진 산문을 수필 형식에 맞춰 지도해 주신 스승님께 이 영광을 돌립니다. 고맙습니다.
이경선
등단
2006년 [한국문인] 수필 등단
경력
한국수필 부이사장, 한국문협, 국제pen한국본부 회원, 수원문인협회 이사, 경기pen지부 운영위원, 계간 문파 이사, 경기수필회장 역임.
저서
수필집: 『 하얀 비 』 『 겹겹 기억속에 』 『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 』
4인 수필집: 『 틈과 여백의 소리 』
수상
한국수필 올해의 작가상, 경기문학인 대상, 경기도문학상, 수원문학 작품상, 경북일보 문학대전 동상, 수원문학인상, 백봉문학상, 경기수필 대상 外 다수.
심사평
문학적 성취를 축하하며
심사위원 : 장호병 ·최원현(글) · 권남희
제43회 한국수필문학상 최종심에 올라온 작품 중 은종일 수필집 『스케치북 펼치다』와 이경선 수필집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을 심사위원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수상작에 선정했다.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의 이경선 수필들은 다분히 이지적이면서 서정적이다. 수필 한 편 한 편이 저마다의 깊이를 보이며 아프게 사고와 사유를 불러낸다.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다시 돌아가 보게 하며 무엇이 참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시선 끝에 마주친 곡선」에선 결코 쉽지 않을 종갓집 6남매 막내며느리의 자리에서 겪은 아픔과 고통과 절망이 “꽃잎 같은 삼십 대에 가죽만 붙고 뼈가 도드라진 내 물골로 공기의 무게조차 버거”운 상태가 되게 한다. 그렇게 살아온 삼십 년이 물빛으로 다가오는 숙성된 세월이 되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만 이젠 직진을 할 수 있는 삶의 자신감이 시리도록 아프게 스며든다.
「저물어 가는 그곳」에선 이 시대 대부분이 겪어야 하는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과 결단이 하소연하듯 전게 된다. 삶의 마지막이 자존심도 지키지 못하게 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슬픔인가. 하지만 “내게도 다가올 깊은 응달의 시간”으로 면책이 될 순 없으리라. 이경선의 수필들은 이처럼 나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 대답을 시원하게 할 수 없는 너와 나를 만들어 버린다.
은종일과 이경선 두 분의 문학적 성취에 찬사를 보내며 한국수필문학상 수상을 축하한다. 더욱 빛나는 수필의 탑을 더 높이 더 빛나게 세워 주길 바란다. ㅡ 글 최원현 ㅡ
수상식, 심포지엄
한국수필가협회 | 제43회 한국수필 국내 심포지엄 · 제43회 한국수필문학상 시상식 개최 - Daum 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