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기부양정
“미사일이나 재래식 장사정포를 사용한 북한의 육상 공격은 우리 군에서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어요. 오물폭탄도 추정일 뿐이지 북한이 실제로 보유하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진중 사령관이 다소 침통해진 분위기를 완화시키며 안심을 시켰다.
“전쟁은 적국을 황폐화시킬 목적도 있겠지만 결국은 점령해서 자국 영토로 삼는 게 궁극의 목표 아니겠어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북한이 우리를 황폐화시키려 든다면 미사일이나 장사포 공격보다는 현재 보유한 3천톤급 SLBM을 장착한 핵추진 잠수함으로 들어와서 부산을 공격하는 것이 확실한 수단이겠지요.”
그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젠 다 죽었다 싶은 표정을 지었다.
거제도 장목항에서 부산 영도까지 직선거리로 불과 35Km밖에 안 된다.
“그런데 북한이 우리 남한을 황폐화시키려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점령해서 한반도 전체를 차지하려고 하겠습니까?”
유진중이 참석자에게 질문을 던지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얘기를 들은 모든 사람들의 생각은, 왜 그러는지는 몰라도 점령 쪽으로 기울었다.
“황폐화를 생각하는 분이 있나요?”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모두들 도리질을 했다.
“그렇다면, 북한은 미사일이나 장사정포로 군사기지를 공격하면서 혼란을 틈타 점령을 위한 상륙부대를 보내올 게 분명합니다. 6.25때처럼 휴전선을 넘어서 육로로 진격해올 거라 생각하는 분은 물론 없겠지요?”
“아, 그럼요! 육로를 통해서는 내려올 길이 없으니까, 분명히 해상을 통해서 침투할 겁니다.”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북한군이 어떤 방법으로 해상침투를 해올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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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상침투로 육상을 점령한다고 하면, 한국전쟁 때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이나 2차대전 때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떠올릴 것이다.
멀리 해상에 떠있는 군함에서 육지를 향해 수 없는 함포를 쏴대면서 해병대 상륙부대를 실은 ‘상륙정’이 해안에 접근하여 상륙하는 장면이다.
어떤 ‘상륙정’은 지프나 야포, 전차 같은 차량도 싣고 와서 모래밭에 구멍 난 철판을 깔고 육지로 올라오는 모습도 연상될 것이다.
현대에는 바다에서 원거리 항해가 가능하면서도 해안가에 바로 접안 할 수 있는 ‘상륙함’을 사용한다. 병력뿐만 아니라 전차를 싣고 바로 상륙할 수 있는 ‘전차 상륙함(LST: Landing Ship Tank)’이 대부분이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최신 전차 상륙함은 2017년 8월에 인도된 ‘천자봉함’이다.
천자봉함은 길이 120m, 폭 19m, 배수량 4500톤 규모로 최대 23노트(시속 43Km)로 기동한다.
해병대 상륙군 300명 이상이 탑승하고 상륙주정 3척, 전차 2대, 상륙돌격 장갑차 8대에 상륙 기동헬기 2대도 탑재 가능하다.
또한 40mm 포 1문과 대유도탄 기만체계로 무장되어있다.
우리 해군이 보유한 전차 상륙함 LST는 모두 6척이다.
구형인 LST-1은 국산 기술로 처음 만들어 1994년에 실전 배치된 배수량 2600톤급 ‘고준봉함’을 필두로 비로봉, 향로봉, 성인봉함 등 4척이 있고, 신형 LST-2의 첫 함정은 ‘천왕봉함’이다.
이 LST와는 별도로 아시아 최대규모의 상륙함인 강습상륙함 ‘독도함’이 있다.
2007년에 취역한 독도함은 1만4500톤급으로 길이 199m, 폭 31m로 갑판은 항공모함처럼 편편하게 생겨 헬리콥터 7대, 전차 6대, 상륙돌격장갑차 7대, 트럭 10대, 야포 3문, 고속상륙정 2척과 승조원 300명, 상륙군 700여명을 동시에 수송할 수 있다.
해군은 2020년까지 LST-2를 2척 더 확보하고 독도함급 강습상륙함도 2척을 더 실전배치할 예정이다.
그런데, 북한은 2016년 국방백서에 따르면 상륙함을 무려 250여척이나 보유하고 있다.
물론 대부분 구형이겠지만, 한 척에 상륙군을 100명씩만 싣고 와도 한꺼번에 2만5천명이나 되지 않는가?
과거 삼척과 울진에 북한군 수 십 명만 침투해도 소탕하는데 며칠씩 걸렸던 사실을 상기하면 끔찍한 생각이 들 정도다.
우리 해병대는 2016년에 신속기동부대인 ‘제승부대’를 새로 창설했다.
한반도 유사시 적 지휘부와 핵심시설을 타격하는 것은 물론이고, 24시간 내에 한반도 전역 어디든 급파할 수 있는 부대를 만든 것이다.
즉, 북한으로 침투하는 것은 물론이고, 남한에 침투한 적도 그 침투한 지역에 상륙해서 괴멸시키겠다는 것이다.
제승부대는 해군과 해병대 합동 지휘체계를 갖춘 부대로, 기동전력이 상시 준비돼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적의 위협이 고조되거나 위기 상황이 발생하면, 적 도발을 억제하고 위기확산을 조기에 종결하는 임무를 수행하자는 취지에서 창설한 것이다.
현재는 신속기동부대의 상륙작전이 연대 급 규모인데, 2020년에는 여단 급으로 확대 편성할 예정이다.
그런데 이 모든 임무의 전제는 ‘기동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군장 메고 전투화 신고, 소총까지 든 상태로 바로 상륙할 채비를 마쳤는데, 이 병력이 타고 갈 이동수단이 있어야 신속기동도 가능한 얘기 아닌가?
어느 군 관계자는 이런 얘기를 한다.
“현재 연대 급 규모의 상륙작전도 전력을 10%도 발휘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금도 운송수단이 부족해서 유사시에 민간 선박을 동원해서 이동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향후에 신속기동부대가 여단 급으로 확대되면 기동력도 없으면서 신속을 외치는, 그야말로 유명무실한 부대가 아니겠습니까?”
애들 전쟁놀이도 아니고,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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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상륙부대가 상륙함을 타고 대규모로 침투한다면 우리의 해안 초소 레이더나 일본의 조기경보기에 포착돼서 금세 대처할 수 있겠지요. 그보다 더 위협적인 것은 공기부양정을 타고 침투하는 겁니다.”
유진중 사령관이 오히려 간과하기 쉬운 공기부양정을 지적했다.
공기부양정은 35~55명의 상륙군을 태우고 최고속도 50노트(92Km)로 수면 위를 스치듯 달린다.
“북한 공기부양정은 우리 신형 고속정 참수리호가 격침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황일관 대령이 고개를 갸웃했다.
서해 북방한계선 NLL을 포함한 최전방에 배치된 고속정인 참수리호는 신형 참수리-211인 경우 길이 44m, 폭 7m, 무게 210톤으로 최대 속력은 40노트(시속 74Km)이다.
130mm 유도로켓, 76mm 함포 1문, 12.7mm 원격사격 통제체계 2문, 그리고 레이더와 연동해서 자동추적이 가능한 K-6 중기관총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또한 고압분출식인 워터제트 추진체계를 갖추고 있어 어망이 있는 얕은 해역에서도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참수리 고속정은 현재까지 100여척이 건조되었지만 2016년 기준으로 전기형은 모두 퇴역하고 50~60대 정도가 운영 중에 있다.
“참수리호는 최신형인 참수리-211호가 최고속도 40노트로 시속 74km 수준입니다. 그에 반해 북한의 공기부양정은 50노트, 시속 92Km로 참수리보다 훨씬 빨라요! 참수리호로 추격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합니다.”
유진중 사령관이 황대령이 무안하지 않을 만큼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거기다 북한은 공기부양정을 서해에 70척, 동해에 60척을 배치하고 있어서 도합 130척이나 되는 데 우리 참수리호는 현재 오륙 십 척 정도가 운용되고 있어요.”
“아이구, 수적으로도 하프게임이군요.”
황일관이 얼쑤, 장단을 맞추며 무안함을 희석시켰다.
“공기부양정 한 척에 최소 35명이 승선할 수 있으니까, 130척이 총 동원되어 침투한다면 한꺼번에 5천여명이 쳐들어올 수 있어요. 서해와 동해로 흩어져 구석구석 쳐들어오면, 솔직히 무슨 수로 상륙한 적군을 소탕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