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
1. ‘서울공화국’, ‘지방의 위기’의 현상은 그리 새롭지 않은 한국 사회의 가장 대표적인 위기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더 큰 위기는 지방의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위기를 지방의 근본적 변화를 통해 타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보다는 각개약진의 방식으로 탈출하려한다는 점이다. 모든 것이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대한민국에서 대부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행동지향은 모두 서울 쪽으로 향해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초기에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지방은 식민지다』라는 책을 통해 지방의 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했다. 2023년 지방의 위기를 넘어 ‘지방의 소멸’이 언급되는 지금, 당시의 문제의식과 문제해결에 대한 제안을 비판적으로 점검한다.
2. 저자는 종속이론이론에서 파생한 ‘내부식민지론’이라는 사회학적 프레임을 통해 한국 사회의 취약성을 분석한다. 즉 한국 사회는 서울이라는 중심과 지방이라는 변방으로 이분화되었고 변방은 서울에 철저하게 종속적인 구조를 지녔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를 분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이 정치 영역이다. 지방의 정치인들은 ‘지방에는 권한도, 세원도, 인재도 없다’고 자조한다. 그럼에도 지방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중앙의 권력과 연결되기 위한 치열한 경쟁에만 몰두한다. 지방의원들은 각 지역 국회의원의 몸종과 같은 행태를 보이며, 각 지방의 이슈는 중앙의 권력지향에 더 예민한 것이다. 저자가 책을 쓸 시점에 전북도시자를 지낸 사람 중에서 전북에 거주하는 사람은 12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지방의 현실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3. 지방의 거주민들 중 사회적 지위를 지닌 상당수는 모든 관점이 서울로 향해있다. 주택도, 자녀교육도, 노후준비도, 서울을 중심으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것이다. 2008년은 노무현 정부가 서울과 지방의 균형발전을 목표로 추진했던 ‘혁신도시’를 실행하던 시기였다. 하지만 저자는 명문 교육기관을 유치하지 않는다면 ‘혁신도시’는 실패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현재의 지방 문제의 가장 강력한 토대가 ‘교육’이기 때문이다. 서울에 명문대학이 포진하고 있는 이상, 사람들은 서울로 몰려들 것이며, 그러한 행위를 정당화하는 것이다. 교육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위 ‘SKY'의 정원을 획기적으로 감축하고 대학을 지방으로 이전하며 대학의 다양성을 확대하여야 한다는 제안은 찻잔 속에 미풍에 지나지 않았다. 약간의 논란이 있었고, 기득권의 방어논리가 제기됐고 그렇게 현 상황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진보적인 인사라 취급되는 교수들이 서울대 정원 감축과 지방 이전이 제기되었을 때 보여주었던 방어논리는 그들만의 세계에 대한 집착을 확인할 수 있었던 사례였다.
4. 지방의 권한 부여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은 지방자치의 또 다른 장애물이다. 지방의 권한 강화는 자칫 지방 토호세력과 정치권의 야합을 부추기는 방향으로 강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여론은 어쩌면 지방의 현실을 냉정하게 말해주는 발언들 일 것이다. “지방에 보다 많은 자기 결정권과 권한, 자치가 부여될 때 이는 지방 토호의 권력을 강화함으로써 기존의 지방사회의 권력관계를 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권한 위임은 필연적으로 낮은 차원의 조직이 리스크를 감수하도록 만든다.” 또한 지방 자치를 직접 실행하는 인적 자원의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자방공무원 사회는 정말 무풍지대나 다름없다. 중앙과 지방 공무원들의 자질, 교육가 훈련은 하늘과 땅만큼 격차가 벌어지고 있으나 속수무책이다.”
5. 그밖에도 지방언론의 부패, 연고주의와 지역주의의 만연은 지방의 문제를 악화시킨다. 저자는 지방의 문제가 중앙정부의 무관심과 왜곡에서 시작되었음을 밝히면서도 지방의 역량과 노력의 부족 또한 중용한 요인임을 인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자치의 실질적인 변화와 지방이 살아나기 위해서는 현재 할 수 있는 몇 가지 점을 제안한다. 먼저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역할이 더욱 활성화되어 연고주의라는 지방의 고질점을 최대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연고주의’라는 자연스런 인간관계를 폐기할 수 없다면 ‘공공적 연고주의’를 통해 연고주의가 갖는 부정적 요소를 제거하는 노력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 ‘후진성의 이점’을 이용하여 지방만이 갖는 자연적 장점을 활용한 ‘웰빙 마케팅’이나 문화적 인프라를 강화하여 지방의 독자적인 이점을 강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시민기업의 활성화나 당시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고향기부 마케팅’의 도입을 주장한다.
6. 저자의 제안 중에는 현재 실행되고 있는 것이 많다. 최근 ‘고향기부제’가 실시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지방정부가 지역의 문화적 특징과 자연적 장점을 활용한 문화상품을 개발하여 세원을 확보하려는 노력을 전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의 시민운동 세력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분명 이러한 노력들이 지방의 위기를 축소하는 데에는 약간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이어 터지는 지방정부의 부패(현재 진행 중인 이재명의 사건도 본질은 지방부패인 점은 분명하다)와 선거철에 반복되는 연고주의를 강화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은 지방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사태이면서 지방자치에 대한 국민적인 여론을 부정적 방향으로 이끄는 요소가 아닐 수 없다.
7. 이 책이 발간된 이후 현 시점에서 지방의 문제를 평가할 때 몇 가지 행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지방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서울 집중을 완화하고 ‘중앙-지방’의 균형적 발전을 위한 근본적인 노력은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듯하다. 서울의 교육권력은 더욱 확대되고 있으며, 새로운 사업 개발도 ‘경쟁력’이라는 이유를 들어 역시 수도권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지방의 산모가 찾을 병원이 지방에 없다는 뉴스는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며 삶의 질을 위해 서울에 몰리는 젊은 세대들의 지방탈출을 더욱 가속화시킬 것이다. 그럼에도 지방의 공공 의료지원을 위한 어떤 획기적인 정책도 나타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 중심으로 강고하게 결집된 권력자들의 카르텔이 경쟁력, 효율성, 경제성이라는 명목으로 이익을 탈취하고 있는 상황에서 지방은 문화도, 의료도, 교육도 없는 진공과 같은 침묵이 지배하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의 권력자들도 언제든 서울로 진출하기 위한 ‘서울 예비군’에 지나지 않고 있다.
8. 저자는 책에서 노무현 정부가 진행한 ‘중앙-지방 균형발전’을 위한 혁신도시 정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지방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변화시키려 했던 노력은 분명하다. 현재 ‘세종시’가 행정도시로 정착하고 있으며, ‘혁신도시’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개선되고 있다는 시그널은 쉽지 않은 지방 문제에 대한 출발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문제가 있음에도 올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권은 국가의 장기간의 비전을 포기한 채 현재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시행되는 정책 또한 근본적인 노사협력의 원칙을 포기하고 현재의 ‘법’을 기준으로 압박하고 있다는 점에 지극히 퇴행적인 관점에 불과하다. ‘교육개혁’ 또한 미래의 관점이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정치가들을 선택할 때 이기적이고 단기적인 모습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결국 국가의 균형적인 발전을 포기하는 세력이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될 것이다. 조선 후기 특정 정파의 지배처럼 국가는 누군가에게 ‘사유화’되는 것이다. 이익의 기반을 서울에 두고 있는 세력이 집권하는 한, ‘지방의 문제’는 결코 정치의 중심으로 등장하지 않을 것이며, 지방인들은 현재의 이익에만 집중할 것이고, 그 과정에서 성공한 지방민들은 서울로 떠날 것이다. 그렇게 점차 지방은 노쇠화되고 활력을 잃고 소멸될 것이다. 이 또한 ‘폐허의 응시’의 한 장면이 된다.
첫댓글 - 서울로의 집중 현상은 점점 더 가속화되고 있다. 지방은 유지하기도 힘들고... 누구나 문제는 말할 수 있지만, 서울집중화의 속도를 막기는 어렵다. 부분적인 해결책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서울을 넓혀(?)가는 것 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