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에 지리산 반달곰에 관한 글이 있어 댓글을 달려고 쓰다보니 분량이 많아져 따로 올립니다.
지리산 반달가슴곰(천연기념물 제329호)은 개체수 유지에 필요한 최소규모인 50마리까지 증식하는 걸 목표로 추진하는 복원사업입니다. 여기서 50마리는 고립된 생태계에서 야생동물이 존속하는데 필요한 최소규모를 가리키는 생태학의 기본개념입니다.
일본은 우리나라와 달리 야생 곰(반달가슴곰과 불곰)을 아주 잘 보존하고 있어 일본 전체에 총 2만 마리 이상의 야생곰이 살고 있는데 특히 북해도에 대략 7천 마리의 야생곰(대부분은 반달곰)이 서식합니다.
그래서 야생 반달곰의 생태습성이나 서식환경 등에 관한 노하우가 일본쪽에 상당히 쌓여있어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 초창기에 일본의 반달가슴곰 생태전문가를 우리나라에 초빙해 자문을 얻기도 했습니다.
지리산 실태조사를 마친 일본의 반달곰 생태전문가 의견은 놀랍게도 현재의 지리산에 400마리 정도의 반달곰이 서식 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야생반달곰 한마리의 서식범위는 보통 1~10㎦인데, 이 수치를 1억 3천만평 넓이의 지리산 (440㎢)에 단순대입할 경우 지리산국립공원에는 반달곰이 최소 44마리에서 최대 440마리까지 살 수 있습니다.
반달곰이 살려면 넉넉한 서식공간도 중요하고 무엇보다 도토리 등의 주요먹이감이 얼마나 풍부하냐 하는 게 결정적인 관건이기때문에 대체적으로 현재로서는 지리산에 대략 2백 마리 정도의 반달곰이 살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습니다.
지리산 반달곰이 절멸의 위기에 놓인 건 서식환경 훼손보다는 밀렵때문입니다. 그래서 밀렵만 막을 수 있다면 지리산에 상당수(50~200마리)의 반달곰이 살 수 있고, 그래서 지금의 반달곰 복원사업은 절대 전시행정이 아닙니다.
설사 정부에서 반달곰복원사업을 생색내기용,전시행정용으로 추진하는 거라 하더라도 그 시행결과가 지리산생태복원에 구체적으로,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거라면 생색내는 게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일본만 해도 야생곰이 원체 많다보니 깊은 산중에서 등산객이 곰과 조우하는 일이 종종 생기고, 그래서 등산객들이 산에서 좀더 조심스럽게 다닙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리즐리와 북극곰의 천국인 알래스카나 불곰의 왕국인 캄챠카, 반달곰의 천국인 일본 북해도의 등산객들에 비해 우리나라 등산객들은 산에서 너무 겁 없이 '나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산에 맹수가 없으니 겁 날 게 없어 산을,자연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만연해 있는 겁니다.
산에 산불이 나거나, 혹 나무를 누군가가 함부로 베거나 하면 그 피해가 시각적으로 바로 느껴지기때문에 사람들은 다들 산불이나 도벌,남벌,산사태 등에 대해 바로 정서적인 거부감을 표출합니다.
그런데 지리산에 반달가슴곰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다른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건 반달곰은 원래부터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야생동물이다 보니 반달곰이 사라지더라도, 사라지기 전과 비교해 별다른 차이점이 '시각적으로' 와닿지 않기 때문입니다.
지리산에서 천년을 산 아름드리 주목을 누가 밤에 몰래 베어내면 다들 분노를 할 겁니다. 평창 동계올림픽 스키활강경기를 사흘 열기 위해 5백년 이상 된 가리왕산 원시림을 다 망가뜨리는 훼손행위에 대해 다들 분노를 합니다. 그런데 지리산의 반달가슴곰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왜 분노를 하지 않는 걸까요?
지리산의 반달곰은 그곳의 구상나무나 주목 못지 않게 중요한 '지리산의 일부'입니다. 지리산의 주인이 바로 그 반달곰이고, 우리는 가끔 그곳을 방문하는 '객'에 지나지 않는 겁니다.
지리산의 주목이나 구상나무같은 야생'식물'은 사람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지 않지만, 반달곰은 야생'동물'이라서 사람에게 해를 끼칠 수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게 원래의 건강한 지리산 본연의 모습이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국립공원은 자연생태계를 잘 보존하는 게 첫번째 존재이유이며, 탐방객의 등산,레져는 부차적인 존재이유입니다. 그래서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은 남벌과 산사태로 훼손된 숲을 복원하는 일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는 생태'복원'사업입니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많아지면 지리산을 찾는 탐방객들은 전과 달리 좀더 조심해야겠지요. 전처럼 함부로 '나대지' 않고 겸손해야 사고를 당하지 않을테니 말입니다.
그런 점에서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은 단순히 생태복원사업 수준을 넘어 우리가 잊고 지내던 것들, 그리고 우리가 오래전에 잃어버렸던 것들,,, 즉 산을 대할 때 겸손한 자세를 유지하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좋은 계기가 될 거라 생각됩니다.
지리산에 반달곰이 돌아온다면 우리는 더이상 산에서 함부로 '나대지' 못하고, 산에서 매사 좀더 조심해야 하는데, 그게 불편하고 번거롭다고 지리산 반달곰 복원사업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그런 관점이,,, 전망대에서 천왕봉을 바라보려는 관광객의 시야를 가린다는 이유로 전망대 앞의 천년 묵은 주목을 전기톱으로 베어버리는 행위와 무엇이 다른지 곰곰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시야를 가린다고 귀한 나무를 함부로 전기톱으로 베어냈던 겁니다. 그러다가 뒤늦게나마 그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깨닫고, 우리의 잘못으로 사라진 것을 되돌리려고 반달곰 복원사업을 하는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