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애지>겨울호 신인상 당선작] 김용상, 이명자
자리끼 외 4편 / 김용상
맹물이
은하를 들여다보고는
달을 보듬는다
잠꼬대 같은 기도 뒤에
예민한 감성은 택배로 배달된 거라고
간밤에는 싸구려 옷 두벌로
런 어웨이
무중력을 걷는 우주인이
허방 함을 견뎌왔다는 듯이
톡톡 터지는 행동으로
라면 부셔먹던 아내는
지갑 속에 접은 과자를 두고
차르르 차르르
그믐의 눈썹을 적셔
지구로 떠나온 적요가 흔들린다
넘치지도 않는다
먼 승려의 수행을
머리맡에 끌고 들어와서는
해골을 긁는다
쉿, 나뭇잎 담요 같은 거
달빛에 감긴다
투명우산
우산을 들고 가는 우리 모두가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는 거라며
밖에 선 사람들은 누구나 우산을 쓰고
우산 없이 누군가를 기다린다거나
비가 그치길 기대하는 사람들은
속박에 있다며
우산 밑에 있는 사람은
우산 위에 일을 모르고
사방으로 놓인 살 속의 길을 가지
선택된 어느 길 어느 사유에도 물과 만나
움푹 깊어진다지
안될 땐 안 되고 될 때는 바쁘고
그러니까 우산 없이 길 걷는 사람에게 우산을 주고
다른 우산을 사고
비가 와 걱정인 과일장수의 이야기를 듣는다지
우산 밖의 물 떨어짐
혹은 우산 꼭지가 하늘을 깊숙이 찔러 내일은 파란
어쩌면 우리는
보고 싶은 면만 보는 법이지
반면에 쪽을 뒤집어 햇볕에 말리고 싶은
나는 가끔 우산의 살을 만져
막 샤워 마친 여인의 샴푸 냄새가 아니라
그냥 천 냥 마트의 비닐우산
혁명이든 독재든 정물이 되는 우산
헬리콥터 소리를 내며
떠오르는 우산
경칩
처음엔 역설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토록 부드러운 땅콩에 대해
그 명칭은 카페인 함량이 높은 음료와 비유된다
쏟아지는 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밤바람이 싫고 구설이 귀찮아진다
어제의 웃음은 오늘 재미가 없다
사랑에 대한 모욕은 사랑했었다,이다
부패한 김치찌개가 놓인 자취방을
지적할 수 없는 나약함을 써야 한다
얼마나 많은 감성이 배달되고 있는가
나는 무미한 어둠의 살결을 탐닉했고
신문을 남보다 일찍 보았을 뿐이고
공모할 수 없을 뿐이다
다만 경칩에는 단단하고 딱딱한 발성이 공명한다
인생을 간결하게 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좀 더 자두는 게 좋을는지도 모른다
나 – 67호
비 내리는 한때
소복이 담긴 국 한 그릇 뚝딱이고
흡연 통을 비운다
계단을 오르내릴 때 의심의 목소리가 커지는 건
손 때 묻은 지팡이 탓이다
상가의 원형의자는 수맥을 더듬고 찾은 명당이다
나는 관여하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어떤 상이한 결론을 내려도
나는 주어진 평등에 대해 생각하고
사랑니 빼낸 잇몸에 구멍을 생각한다
천장에 석고치고 상자를 짜면서
전생에 관하나 익숙한 나머지 손에 익은 나이를 생각한다
나는 식은땀이 몸에서 떨어질 때까지
죽음을 여행으로 판명하는가
쉼은 찾아오는 것인가
지하로 흐르는 것인가 날아가는 것인가
날리는 톱밥에 질문을 더한다
망치질 소리가 요란한 지하상가 휴대폰 매장
우주선 내부를 모티브 한다
노인들은 매일 같이 찾아와선 지나가는 젊음을 흘려보기도 하고
관심 없는 자식들 자랑을 내게 늘어놓기도 한다
그 노인 중 한 분이 없다는 것은
우주로 향한 송신이 끝났다는 것
빈자리에 승선을 기다리는 찰나의
나 – 67호
박 노인의 지팡이가 하늘을 두드린다
은행 털이범
경기도 외딴길에 멈춘 자동차
펑크 난 덕분에 은행나무 밑
노인의 빗자루 질을 본다
적잖이 고즈넉한 풍경화 한 폭
엎드려 보면 고약한 냄새로
맨손으로 만지면 안 되는 은행
금의환향한 잎들이 금이라면
열매는 환전한 돈의 냄새랄까
도와줄 겸 떨어진 은행 몇 개 줍다가
팔을 걷어붙인다
한국은행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면
소리 소문 없이 은행을 털어 갈 텐데
살림에 보탬을 해보려는 욕심인데
해석과 충돌하는 法이 대순가
노인은 마지막 남은 은행까지
쓰레받기로 싹 쓸어 담아가지고
경운기에 싣고 멋지게 달아난다
졸지에 공범이 된 사람
공개 수배합니다
당선 소감
김 용 상
우산도 없이 퇴근합니다. 전원주택지 공사가 그렇듯 진흙탕을 걸었고 걸었습니다. 퇴근 후 남북회담 결과를 뉴스를 보면서 물에 밥을 말아 먹습니다 휴대폰도 만지작거립니다. 당선 소식을 접했습니다. 이런 기분인가 이질감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가, 이상하리만큼 특별함 없는 하루 - 바람보다 빠르고 바람보다 강하고 바람보다 부드러운 바람에 발 걸며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생각했습니다.
남다른 무엇 때문에 기꺼이 시간을 지불했을까요.
나는 바람입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이 그 찝찔하고도 물기 머금은 바람 안에 얼마나 많이 날아다니는지 결국에는 말이나 다짐 약속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어서 끈적끈적한 느낌입니다. 꼭 떨어짐을 예감하며 날리는 것이 종이비행기일까요 술로 달래 보기도 합니다만 바람이 된다는 건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되지 않는 자연스러움에 있었습니다.
살갗에 스미는 바람 심장을 쿵쿵 오가는 바람 빛깔과 모양이 잔혹하고도 이 아름다운 바람으로 길 굽이굽이 놓인 위태로움을 견디게 하고 싶습니다. 잔잔한 바람에도 쓰러질 것 같은 나무를 보며 바람과 포옹한다 말하고 싶습니다. 꼬리치고 헤엄치는 바람이 물고기자리별에 아른거립니다. 어둑어둑 내린 별빛이 감아버린 눈 속에서 바람입니다. 바람.
기라성을 빛나는 별로 고쳐놓은 하심에서 낚싯대 던져놓은 그 광경은 울음을 토해내는 긴박함 속에 있었습니다. 바람입니다. 바람.
나는 바람을 잊지 않도록 오늘 풍경을 처마 밑에 매달아두었습니다.
- 집을 나설 때 전등을 켜두는 것은 불나방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전할 고마움도 많습니다. 굳이 호명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믿습니다. 시를 몸소 보여주시는 어머니 기회를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누가 되지 않는 좋은 시로 보답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섬진강 외 4편 / 이명자
섬진강 모래가 빠져나가면서부터
파킨슨이라는 외래 병을 얻은 어머니
산길이 뚫리고 외지에서 온 트럭은
날마다 모래를 내다 팔았다
따뜻한 모래 언덕이 사라지고
하류로 흘러가는 강물을 따라
어머니의 미소도 하류로 흘러갔다
강의 수면이 낮아질수록
어머니의 척추가 기울어지지 시작했다
가파르게 굽어가는 어머니의 등은
모래톱을 드나드는 강물을 닮아갔다
하소연을 담은 강물은 돌아오지 않았고
어머니가 질펀하게 눈 오줌만이
기수에 갇혀 소용돌이쳐댔다
모래를 잃은 섬진강의 물결이
어둑한 병실까지 좇아와
어머니의 오줌을 받아내는지
잠자리가 밤새도록 찰방거렸다.
어머니의 주름
비가와도 젖지 않는 길
미로 같은 길
대낮에도 어두운 길
한 주먹씩 약을 먹어도
가까스로 돌아서 나오는
암호가 새겨진 복잡한 길
숨 쉬게 하는 길
사랑이 그을린 뒤란
가슴에서 새어나오는 작은 빛
인적 없어 억새밭이 되어버린
그 길
깊어진 한숨들
기억을 잃지 말라고
신이
얼굴에 만들어 준 길
비가와도 젖지 않는
여전히 성업 중인 비탈진 길
주름 길
온몸으로 투신한 어머니의 생애
불두화
이사람 누고
사람이 와이리 됐노
무장 얼굴이 못데간다 야야
흔한 인사말에도
부들부들 떨기만 하는
엄마,
불두화 군락지
연중 꽃이 지지 않는 병동
똥 냄새 풀풀 풍기며
신분도 잊고
구부러져 잠이 든다
표정을 잃고
점점 부풀어 오르는 얼굴
휘청휘청
자꾸만 고개를 숙인다
방문을 다시 걸어놓는다
남수자
이름을 불러주는 곳은 여기뿐이다
반찬통마다 남수자가 적혀있고 속옷에도 물통에도 남수자가 있다 남수자가 아니면 아무도 손을 댈 수가 없다 남수자는 일생동안 이렇게 한가로운 적이 없다 생각도 할 수 없게
한주먹씩 약을 먹는다 오줌을 싸도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야 한다
때마다 밥 주고 약주고 기저귀도 갈아 준다 새벽마다 간병인에게 밥하라고 소리 지른다
정신이 맑은 날 남수자는 돋보기를 쓰고 천수경도 읽는다 아이를 그린다
남수자는 고향을 세주고 기장 요양병원에 산다
방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고 자존심이 가장 세다
리모컨을 쥔 방장이다
장사도
쓸쓸한
날들은
언제나 바람이 불었어요
그대가 불러도
멈추지 못하고
흔들렸지요
바다 건너
장사도에 닿아
알았지요
내 안에
동백이 있는 줄
쓸쓸함 바람 눈물 어둠 그것들이 내부의 풍경이라는 걸
당선소감
뒷산에는 돌무덤이 많았다
뱀이 드나들었고 좁은 구멍 사이로
새끼를 품은 새들이 살았다
어둠 속에 길이 수없이 많았다
도깨비불이 춤을 추었다
참꽃도 칡꽃도 피어올랐다
야생을 살아가는 걸인들의
따뜻한 처마가 되었다
비밀은 그곳에서 피어났다
떠나간 사람들 그 돌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돌무덤 별 밭을 두고
나는 고향을 떠나왔다
* * *
오래 전에 시를 만났다.
시가 아직도 나를 붙들고 산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처음엔 내가 시를 붙들었는데 지금은 시가 나를 보살피고 있다.
그러다 정말 안됐어 보였는지 시가 나의 손목을 잡아끌고 여기까지 데려다주었다. 어떻게 신세를 갚을지 눈앞이 캄캄하다.
무엇보다 처음 문학을 알게 해준 창원 여백동인들, 십 오년을 함께 해 온 평택 시원동인들이 가장 기뻐해줄 것 같다.
졸작을 어여삐 봐주신 선생님들께 염치불구하고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부끄럽지 않은 시를 쓰겠습니다.
경남 하동 출생
경희사이버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졸업
시원문학동인회 회원
경북 구미시 고아읍 문성리 경남아너스빌a 103 405
lmja8@hanmail.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