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조화설
Pre-established Harmony 前定和谐
예정조화설은 신이 실체이자 세상을 구성하는 모나드들이 서로 조화하도록 미리 정해놓았다는 라이프니츠(G.W. Leibniz, 1646~1716)의 견해다. 독립적이고 인과도 없는 단자(monad)들이 조화하는 이유는 신이 자신의 목적에 따라 세상을 설계했기 때문이다. 신은 단자들의 원리를 고려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예견하여 세상을 설계했다. 그 방법은 단자들의 결합을 우주의 모습과 대응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정조화설에 의하면 어떤 일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 충분한 이유[충분근거율]가 있고 다르게 되지 않아야 하는 필연이 있다. 모든 것은 최선, 최적, 최고의 상태이며 상호 인과관계는 분명하다.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받은 볼테르의 소설 [캉티드(Candide)]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어떤 일이 이렇게 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왜냐하면 모든 것은 목적에 맞도록 창조되었기에 그것은 필연적으로 최선의 결과다.’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였던 라이프니츠는 다른 철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실체(substance)에 대하여 고구했다. 그는 (물질을 현상으로 간주하면서) 현상 내면의 실체를 단자라고 명명했다. 아울러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실체 개념을 발전시켜서, (원자와 같은 물질이 아닌) 본질적 실체를 단자라고 규정했다. 그가 말하는 단자는 독립적이고 능동적이며 더 이상 분할이 불가능한 단일 실체다. 이 단자가 모여 세상을 이루는데 이때 단자의 조합을 최상이자 최선으로 만드는 존재가 바로 신이다. 인간은 이성을 가진 단자의 영혼이므로 우등한 존재이며, 동물은 이성을 가지지 않은 단자이므로 열등한 존재다. 이처럼 단자에 조합의 원리를 부여하면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신은 세상의 설계도를 가지고 있는 최초의 그리고 최후의 원인이다. 이것을 라이프니츠는 신 존재 증명에 적용하며 세상은 신이 최선, 최고의 상태로 설계한 기계와 같다.
라이프니츠에 의하면 세상과 인간이 바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존재하는 것이고 신의 설계 때문에 모든 것은 예정되어 있는 것이다. 결정론과 유사한 예정조화설은 세상을 구성하는 단자들이 (신에 의해서) 상호작용하는 것처럼 작동된다는 관점이다. 세상의 모든 시계가 동시에 정오를 알리는 것은 시계들의 관계 때문이 아니라 모든 것을 창조하고 관장하는 신의 조화 때문이다. 무한한 실체인 신이 유한한 실체인 단자를 미리 설계할 뿐 아니라 단자를 조정한다. 여기서 모든 것은 그렇게 되어야 하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는 충분근거율이 정립된다. 그러니까 세상을 구성하는 단자가 다른 단자들과 조화하여 무엇의 결과가 되는 것은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그런 이유가 있기 때문에 ‘나폴레옹은 나폴레옹과 같은 존재(x=x)’가 되는 자기 동일성 또는 정체성(identity)을 가지고 있다.
단자가 조합된 인간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존재다. 그것은 신이 인간을 창조할 때 조화로운 이성적 단자들을 인간에 부여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독립적이면서 자족적이고 생명체와도 같은 단일 실체인 단자들은 예정조화에 의해서 움직인다. 이성적 진리는 필연적으로 인식되지만 경험에 의한 사실적 진리는 충족하는 이유를 필요로 한다. 또한 인간에게 부여된 정신에는 정신의 법칙이 있고 신체에는 신체의 법칙이 있다. 그런데 정신과 신체가 일치하는 것은 예정조화 때문이다. 이 조화가 가능한 것은 단자가 우주의 거울이자 우주의 표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라이프니츠의 견해는 정신과 신체의 이원론을 주장한 데카르트 그리고 자연신 또는 범신론의 단일 실체를 주장한 스피노자의 견해와 다르다. 이처럼 라이프니츠는 단자론, 충분근거율, 예정조화설을 바탕으로 ‘신은 확실히 존재한다’라고 주장했다.
합리주의에 근거한 라이프니츠의 낙관주의(Optimism)는 악을 필요한 것으로 전제하는 변신론(變神論)에서 극적으로 전개된다. 세상이 최선으로 설계되었다면 어떻게 악이 횡행할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인 셈인 변신론에서는 ‘악은 선을 위해서 필요한 전제’로 간주된다. 이처럼 형이상학의 관점에서 존재를 설명하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은 당시의 시대정신 속에서 해석될 필요가 있다. 개신교와 가톨릭을 통합하고자 했던 그는 신과 자연, 목적론과 기계론, 선과 악을 예정조화의 관점에서 통합하고자 노력했다. 나아가 그는 중세의 봉건제도와 근대의 자본주의까지도 통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말년에는 예정조화설의 절대성에 신마저 종속된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이성의 신 즉, 이신론자(理神論者)로 낙인찍혔다. 이런 그의 사유는 볼테르의 풍자에서 보듯이 지나치게 초월적이고 근거 없이 낙관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김승환)
*참고문헌 Gottfried Wilhelm Leibniz, The Monadology: An Edition for Students(1714), (University of Pittsburg Press, 1991).
*참조 <결정론>, <계몽주의/계몽의 시대>, <단자 모나드>, <데카르트의 악마>, <동굴의 비유>, <리얼리즘/실재론[철학]>, <범신론[스피노자]>, <본질>, <이성>, <이성론/합리주의>, <존재론>, <충분근거율>, <형이상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