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세 가지 하늘의 은혜를 입고 태어났다네. 가난 속에 태어났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하지 않고서는 잘살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다네. 또 약하게 태어난 덕분에 건강이 소중함도 일찍이 깨달아 몸을 아끼고 건강에 힘써 지금 아흔이 넘었어도 30대의 건강으로 겨울철 냉수마찰을 한다네. 또 초등학교 4학년을 중퇴했기 때문에 항상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나의 스승으로 받들어 배우는 데 노력하여 많은 지식과 상식을 얻었다네. 이러한 불행한 환경이 나를 이만큼 성장시켜주기 위해 하늘이 준 시련이라고 생각되어 늘 감사하고 있다네.”
이 말은 일본의 세계적인 부호이자 사업가이며 ‘내셔날’ 상표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아흔넷의 나이로 운명하기 전에 “회장님은 어떻게 하여 이처럼 크게 성공하셨습니까?” 하고 묻는 한 직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저는 이 답변의 글을 읽으며 제 자신의 삶을 곰곰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동안 제 삶에서 가장 결핍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지금 제 영혼이 이렇게 빈곤한 까닭은 그동안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감사할 줄 몰랐기 때문에 항상 부족하고 채워지지 않아 고달팠습니다. 내겐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을까하는 결핍의식은 저를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으로 만들었습니다. ‘감사할 줄 알면 항상 풍요로워지고, 감사할 줄 모르면 항상 빈곤해진다.’는 이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조금 깨닫게 되었으니 저는 참으로 어리석은 인간입니다.
범사(凡事)에 감사하라!
이 말은 어릴 때 어머니의 손을 잡고 교회에 다닐 때부터 늘 듣던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게 된 것은 지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엄마 전, 감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을 하나하나 되짚어 보다가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아 놀라웠습니다. 밥을 먹는 일, 똥을 누는 일, 어금니를 치료하는 일, 시집을 내는 일, 별을 바라보는 일,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가는 일 등 감사하지 않을 일이 없었습니다.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감사의 전부이자 전체였습니다.
국가와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은 국가와 부모한테서 태어날 수 있었던 일이 감사했습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 미군 지프차에 교통사고를 당했지만 눈썹 하나 다치지 않고 살아남은 일이 감사했습니다. 어릴 때 냇가로 미역을 감으로 갔다가 형이 내 머리를 물속에 너무 오랫동안 집어넣고 장난치는 바람에 거의 죽을 뻔하다가 죽지 않고 살아난 일이 감사했습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과 무전여행을 갔다가 경주 토함산에서 휘발유통에 불이 붙어 내 몸에 불이 옮겨 붙었으나 별다른 사고 없이 불을 끌 수 있었던 일이 감사했습니다. 군에서 사격훈련을 받을 때 ‘엎드려 쏴’자세가 나쁘다고 군화발로 내 엉덩이를 걷어 찬 소대장을 향해 그대로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싶었던 충동을 참을 수 있었던 일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청계산에 가서 계곡을 흐르는 물소리로 귀를 씻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아 그 차갑고 맑은 물속에 발을 담갔을 때, 가끔 싸우기도 하는 아내의 발을 처음으로 정성껏 손수건으로 닦아주었을 때, 안개와 물소리와 엷은 햇살과 새소리를 섞어 만든 향기가 숲 속 어디에선가 은은히 번져나와 나를 감쌀 때, 참으로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하루하루 평범한 일상을 지금까지 지치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온 일입니다. 그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일어난 잔잔한 일들에 대한 감사입니다. 뜨거운 여름날 쏟아지던 소나기, 베란다 구석에서 울어대던 귀뚜라미, 펑펑 쏟아지던 첫눈, 새로 문을 연 양념통닭집에서 통닭 한 마리를 사들고 집을 향해 걸어갈 때 나를 내려다보며 웃던 초승달, 그리고 맛있게 통닭을 먹던 가족들
작은 일에서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면 큰일에서도 감사함을 느끼지 못합니다. 감사는 작은 물방울이 모여 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고 바다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자꾸 감사하면 자꾸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 한번 감사하고 말면 더 이상 감사할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볼 때마다 예쁜 구석을 자꾸 찾아낼 수 있듯이 감사 또한 그렇습니다. 내일 짤 소젖을 남겨주면 나중엔 젖이 말라서 나오지 않듯이 감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해야 할 감사를 내일로 미루면, 내일 짜기 위해서 남겨둔 소젖처럼 말라버리고 맙니다.
감사할 일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내 삶이 기쁨으로 충만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삶이 감사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남의 것을 들여다보지 않아야 합니다. 남의 콩이 더 커 보이기 때문에 남의 것을 자꾸 들여다보면 감사하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진정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기 위해서는 내게 주어진 것만으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이제 큰일보다는 작은 일에, 평온한 일보다 고통스러운 일에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제 인생도 물질을 통하여 부유해지는 게 아니라 감사함을 통하여 부유해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2차 대전 중 히틀러 암살계획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종전 직전에 교수형으로 처형된 독일의 신학자 본휘퍼는 ‘감사함을 통하여 부유해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아, 물 한 컵을 놓고도 감사할 줄 아는 그런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내 마음의 꽃밭에 핀 감사의 꽃향기가 사랑하는 당신의 가슴을 어루만지게 하소서.
출처 : 정호승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비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