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은 토착이고 자생”…
‘사치갤러리 완판’ 작가가 말하는 K-미술의 힘
중앙일보 입력 2023.03.15
화폭 한가운데 만개한 크고 붉은 꽃, 힘찬 붓질로 표현된 따뜻한 색채, 분청사기를 연상케 하는 질감….
생명의 소중함과 자연의 아름다움을 40여년 간 화폭에 담아온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겸 가천대 석좌교수(70)가 서울 용산구 갤러리 U.H.M.에서 6년 만에 개인전을 연다. 이번 전시에서는 신작 21점을 포함해 총 48점을 선보인다.
13일 갤러리에서 만난 김 화백은 “새 작품도 생명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화풍은 이전보다 더 역동적이다”며 “낙관적인 생명의 에너지와 삶의 기쁨을 그림으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는 ‘화홍산수’, ‘풍죽’, ‘송화분분’ 등 100호(가로·세로 각 162.2cm·130.3cm)가 넘는 대형 작품이 다수 나왔다. 새로 제작한 작품은 2022년작 10점, 2023년작 11점이다.
'생명을 노래하는 화가'로 알려진 김병종 화백이 13일 오전 서울 후암동 UHM 갤러리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전민규 기자
김 화백은 동서양을 넘나드는 독자적 화풍으로 유명하다. 그의 그림은 해외에서 특히 주목을 받았다. 영국 대영박물관, 캐나다 로열 온타리오 박물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중국 최대 미술관인 베이징 진르(今日) 미술관에서 2015년 전관 전시회를 열었고, 지난해 런던 사치 갤러리가 주관한 스타트 아트 페어에서는 출품작 15점이 완판됐다. 2014년 시진핑 중국 주석이 방한했을 때 선물로 건네진 것도 그의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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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화백은 지난해 사치 갤러리 아트페어에서 현지 컬렉터들이 국내 미술시장 가격보다 훨씬 높게 출품된 그의 작품을 쓸어간 것을 두고 "촌스러운 그림을 그린 덕분"이라며 웃었다. 그는 "내 그림은 14세 이전에 체험했던 유년의 기억 속에서 터져 나온 그림"이라며 "계획해서 그린 것이라기보다 자연 발생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촌스럽다고 표현한 한 이유는 제 그림에 토착적이고 자생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의미"라며 "민화 같다, 동화 같다는 평이 그래서 나온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 말대로 그는 평생 탈중국, 탈서구의 화풍을 찾는 데 몰두해왔다. 닥풀을 짓이겨 종이죽과 함께 뭉친 다음 분청사기 표면처럼 두툼한 느낌을 내는 기법은 그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시골 토담 같기도 하고, 분청사기 같기도 한 이 질감과 미학은 우리만의 것"이라며 "여러 아트페어를 거치며 이 방식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했다.
김병종 화백의 '생명의 노래-화록산수'. 사진 갤러리 U.H.M.
예술가로 살면서 가장 뿌듯했던 경험으로 자신의 이름을 딴 미술관에 작품을 기부한 일을 꼽았다. 남원시가 운영하는 남원시립김병종미술관은 2018년 3월 춘향테마파크 안에 개관했다. 남원에서 나고 자란 김 화백이 자신의 작품 291점과 책·도록 3000권 등을 기증하면서 문을 열었다. 20~30대 젊은 층에서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입소문을 타며 2018년 약 3만명이던 관람객 수는 지난해 8만명 수준으로 뛰었다. 김 화백은 "제 고향에는 미술관이 없어 극장 벽보를 보고 그림을 따라 그리던 것이 유년기의 유일한 창작 활동이었다"며 "그 아이에게 선물을 주는 마음으로 고향에 작품을 기부했다"고 했다.
나이는 고희를 넘겼지만 그는 "오히려 작품은 젊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대부분 작가는 나이가 들수록 작은 그림을 그리지만 저는 대작을 고집하는 편"이라며 "대형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강렬한 미적 체험을 선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또 "과거에는 물질로서의 그림을 내가 부린다고 생각했다면 지금은 그림에 나를 위탁한다는 생각으로 작업을 한다"고 했다. "내가 죽어도 내가 그림에 부어놓은 색채와 형태는 오래 남아 누군가에게 아름답게 와 닿기를 바란다"면서다.
전시는 4월 30일까지 갤러리 U.H.M.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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