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진회숙의 음악으로 읽는 세상
체르니는 죄가 없다
중앙일보
입력 2024.05.20 08:24
진회숙 음악평론가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은 누구나 체르니 연습곡을 쳐보았을 것이다. 체르니 연습곡은 바이엘을 마치면 들어가는 피아노 연습의 정규 코스다. 제일 먼저 체르니 100번, 그 다음에 체르니 30번, 체르니 40번, 체르니 50번의 순서로 나가는데, 대개는 체르니 30번이나 40번쯤에서 피아노 배우기를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재미없고 지루한 체르니 연습곡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연습하면서 피아노에 질려 버리기 때문이다. 아마도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이 음악은 재미없고 지겨운 것이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드는 데 체르니의 공(?)이 지대했으리라고 본다.
음악으로 읽는 세상
하지만 체르니는 연습곡 말고도 아름다운 곡을 많이 작곡했다. 그런데 그 연습곡 때문에 체르니는 작곡가로서 제대로 된 대접도 받지 못한 채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작곡가로만 기억되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체르니를 미워했다. 하지만 그가 작곡한 ‘비엔나 행진곡’을 알게 되면서 체르니를 다시 보게 됐다.
체르니
아직도 선생님과 함께 ‘비엔나 행진곡’을 치던 날이 생각난다. 선생님은 저음부를 담당하고, 나는 고음부를 담당했다. 그렇게 연주를 시작했는데, 세상에! 혼자 연주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소리가 나는 것이 아닌가. 서로 호흡을 공유하며 같이 음악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비엔나 행진곡’을 통해 나는 비로소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됐다. 반복적이고 지겨운 연습곡에 질린 나에게 처음으로 음악의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 준 ‘비엔나 행진곡’. 음악을 싫어하게 만든 사람도, 음악을 좋아하게 만든 사람도 모두 체르니라는 사실이 흥미롭다. 피아노를 배우는 아이들 중에 아직도 체르니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실 체르니는 죄가 없다. ‘비엔나 행진곡’을 비롯해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해 주는 작품을 많이 작곡했기 때문이다.
진회숙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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