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요(創作童謠) 이야기
1. 반달
‘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로 시작하는 <반달>은 윤극영(尹克榮·1903~1988)이 1923년에 작사((作詞)·작곡(作曲)한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동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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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극영이 직접 만든 ‘반달’ 족자 악보 | 국민학교 6학년 음악과 교과서 ‘반달’악보(1997) |
내림 마장조, 6/8박자, 두도막 형식, 2절 가사의 곡이다. 요즈음에 발간되는 동요곡집에는 바장조로, 최근의 교과서에는 라장조로 악보가 등재되어 있다. 이 노래는 우리 국민 모두의 사랑을 받는 곡으로, 작곡자가 ‘반달 할아버지’라는 애칭으로 불리운다.
윤극영은 1903년 서울 출생이다. 구한말, 그의 나이 7살 되던 해, 조선은 일제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말았다. 온 가족과 국민 모두가 암담한 삶이었고, 어린 윤극영의 성장 과정은 밝을 수가 없었다. 일제의 악랄한 탄압을 듣고 보고 자라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일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갖고 성장하게 된다. 그 사이에 엄마를 대신할 만큼 따랐던 10살 위의 큰 누나가 시집간 후, 36세의 젊은 나이에 숨을 거두자, 그의 슬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컸다.
누나 집에서 초상을 치루던 그날 밤, "울음이 끊어져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 시냇물 같은 엷은 은하수 너머로 반달이 걸려 있었고, 그 멀리로 샛별이 반짝이고 있었다"고 한다.” 윤극영의 눈에 비친 그 새벽하늘은, 그의 머릿속에서 오선지의 가락이 되어 그윽하고도 슬픈 민족의 멜로디로 옮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멜로디에 노랫말까지 완성하였고, 마침내 '반달'이란 곡명을 붙인 그 날이 기러기가 돌아온다는 1923년 9월 9일 밤이었다. 누나를 잃은 슬픔 속에서 태어난 ‘반달’은, 나라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던 그 당시의 온 겨레의 마음속에 눈물겹도록 파고 들었던 것이다.
‘돛대도 삿대도 없이 정처 없이 흘러가는 하얀 쪽배’는, 곧 조국의 슬픈 모습이었고, 간도나 상해, 만주 등지로 유랑하는 겨례의 외로운 모습이랄까, 그래서 사람들은 ‘반달’ 노래로 빼앗긴 나라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달랬던 것이다.
윤극영은 일본 도쿄음악학교(東京音樂學校)로 진학한 후 성악과 바이올린을 전공했다. 그곳에서 유학하던 문인들을 중심으로 <색동회> 활동을 하며, 방정환(方定煥·1899~1931)을 만났고, 1923년 ‘색동회’ 창립 동인이며, 같은 해 5월 1일 어린이날이 제정되면서 어린이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전 조선 소년지도자 대회’가 ‘색동회’ 주최로 열렸다. 이 자리에서 어린이 창작동요의 필요성이 '윤극영'에 의해 제창되었고, 1924년 윤극영이 주축이 된 최초의 동요단체인 ‘다리아회’가 조직되었다.
그 이듬해 1924년 5월 1일, 한국땅에서 첫 어린이날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 행사가 성공적으로 치러진 핵심은 '방정환'이 직접 지은 동화 <만년 샤쓰>란 이야기와 최초의 우리 동요인 윤극영의 <반달> 노래였다.
특히 이날 모인 어린이들은 순식간에 '반달' 노래를 따라 배웠고, 앞에 나선 두 여선생을 따라 손뼉을 치며 율동하기 시작할 때, 어린이와 어른들의 관심과 흥미는 더욱 더 폭발적이었다. 놀이문화라곤 찾아볼 수 없었던 그 당시에 전국적으로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하면서 국민동요로 큰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날, 처음 가르친 동요 '반달'이 우리 민족과 어린이들의 가슴을 파고들고 심금을 울릴 수 있었던 것은, 나라를 잃은 슴픔과 삶의 희망을 찾던 우리에게 가사 속의 '하얀 쪽배'가 백의민족(白衣民族)인 우리 민족의 처지와 같다는 공감대와 함께, 지금까지 어린이들을 어른들의 '소유물'로만 여기며 하대하던 잘못된 관습 속에서, 어린이들에게 기를 살려주고, 어린이가 이 세상의 미래라는 민족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방정환이 만든 색동회와 윤극영이 만든 다리아회는 동요 창작과 보급의 본산이었다.
윤극영은 1987년 어린이의 심성계발과 순화를 목적으로 ‘동심문화원(童心文化院)’을 설립했다. 동심문화원은 현재 ‘한국반달문화원(www.bandal.org)’으로 개칭하여 운영되고 있으며, 서울미래유산 제1호인 윤극영 가옥도 관리하고 있다.
동요 ‘반달’ 의 가사 중 원래 악보와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악보에서 비교되는 부분이 있다. 원래 악보(족자 악보)에서는 2절의 ‘멀리서 반짝반짝 비추이는 건 샛별 등대란다 길을 찾아라’로 표기되어 있는데, 1990년대 초등학교 음악과 교과서를 비롯하여 최근까지의 동요곡집 대부분이 ‘멀리서 반짝반짝 비치이는 건 샛별이 등대란다’로 표기되어 있다. 작곡자가 생존해 계시면 올바로 확인할 수 있겠고 국어 문법상 논의할 수 있겠으나, 이 글에서 자세한 논의는 생략한다. 다만, 필자의 소견으로는 윤극 영이 만든 족자 악보에 표기된 대로 노래 부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본다.
○비추이는 건 - ×비치이는 건 / ○샛별 등대 - ×샛별이 등대
윤극영 작곡의 동요로, 반달 외에 <고드름·‘고드름 고드름 수정 고드름…’>, <나란히 나란히·‘나란히 나란히 나란히…’>, <따오기·‘보일 듯이 보일 듯이 보이지 않는…’>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어린이날 노래·‘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을 작곡하였다.
윤극영은 300여곡의 동요를 작곡하였다. 그 동안 작곡했던 동요곡을 모아 <반달(1926)>이라는 제목으로 한국 최초의 창작동요곡집을 발간하였다. 이 동요곡집에는 반달을 포함하여 설, 고드름 등 10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고 한다. 그리고 <윤극영 111곡집(1963)> 등 다수가 있다.
1950년대 초 북경(北京)에서 조선족 김정평과 그의 아버지 김철남이 「반달」을 중국어로 번역 편곡, 레코드로 취입해 30년간 애송되다가 1979년 「하얀 쪽배[小白船]」라는 제목으로 중국의 전국 통용 음악교과서에 수록되었다. 북한에서는 반달을 ‘반월가’로 고쳐, 고향의 봄, 오빠 생각과 함께 부른다고 한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김현식 선생님! 어제 2회 음악회에 숨 돌릴 틈도 없이 수고하시고 마지막 주차장 출구 봉사까지 하신 것을 보고 왔는데, 오늘 아침 일찍 어제 제가 드린 자료를 보시고 감사 말씀 주시니 정말 감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