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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對話
-도화꽃 피는 봄날에-
▣ 소답자한 제68호 중에서 /
학정 이재익 시인
[내용 차례]
1. 복사꽃과 사랑
2. 김부식과 정지상
3. 이성계와 최영
4. 왕과 여인(성종과 귀원)
5. 가렴주구苛斂誅求 ; 수령과 아전
6. 영.프 정상의 역사 자존심 싸움
7. 사슴, 토끼, 두꺼비 나이 자랑
8. 두더지의 혼인 이야기
9.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10. 자연과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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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사꽃과 사랑
당나라 때 최호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청년 시절에 과거에 낙방하고, 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청명일에 홀로 교외에 바람 쇠러갔다. 한 시골집 담장 안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목이 마르고, 복사꽃에 끌려서 한참동안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는 듯 인기척이 없다가, 한 아가씨가 나왔다. 물을 얻어 마시고 나서, 이것저것 말을 붙였으나, 웃기만하고 대답이 없었다. 사례를 하고 나올 때, 대문까지 전송을 해주는데, 아가씨는 정념에 애가 타서 간절한 눈빛이었다. 그 후에 최호는 바쁘게 살며 잊고 있다가 이듬해 청명일에 문득 그녀가 생각이 나서 그 집을 다시 찾아갔으나, 대문에는 자물쇠가 굳게 채워져 있었다. 문에 다가 시를 적어 붙이고 왔다.
작년 오늘 이 문안에는
사람 얼굴과 복사꽃이 서로 붉게 비추었네.
그 고운 얼굴은 어디로 떠나갔는지 알 수 없는데
복사꽃만 예전처럼 봄바람 속에 웃고 있네.
수일 후에 다시 찾아갔더니 노부부가 통곡하고 있다가, ‘당신이 최호라는 사람이냐? 16살의 내 딸은 당신 때문에 죽었소. 그 시를 읽어보고 병이 나서 죽었다’고 했다. 얼마 안됐는지, 시신은 방안에 그대로 있었다. 최호는 ‘내가 여기 왔소, 너무 늦었구려’하고 통곡하는데, 그 순간 여인이 갑자기 눈을 뜨며 일어났다. 아마 여인은 가사 상태였고, 총각의 간절한 염원으로 되살아 난듯하다. 연분을 맺고 행복했을 것은 불문가지다. 복사꽃과 관련한 사랑이야기.
2. 김부식과 정지상
삼국사기를 편찬한 김부식(金富軾, 1075~1151)은 서경(평양) 천도를 주장하며 묘청(妙淸)이 난을 일으키자 三軍을 총 지휘하는 원수로서 출정하기 전에 먼저 개경에 있던 서경파 귀족 정지상(鄭知常), 김안(金安), 백수한(白壽翰) 등을 죽였다.
정지상(鄭知常, ?~1135)은 시문에 뛰어난 관리였다. 이미 어린이 때 강물에 노닐고 있는 오리를 보고 ‘누가 신필을 들어 강물에 乙자를 써 놔났는가? ; 何人把神筆 乙字寫江波’ 라고 읊었고 정지상의 대동강 시는 봄과 이별의 정경을 애절하게 잘 나타냈다.
大洞江 (정지상)
雨歇長堤 草色多 비개인 강둑엔 봄이 오고요
送君南浦 動悲歌 임보내는 남포엔 이별곡 울려온다.
大洞江水 何時盡 흐르는 대동강물 언제나 다하리
別淚年年 添綠波 해마다 이별의 눈물로 물결 보태네.
김부식이 묘청의 난을 평정하러 가기 전에, 정지상이 묘청의 무리와 연락하고 있다하여 죽였는데 실상은 그의 문명을 시기한 것일지도 모른다. 정지상은 원통한 죽음을 당했기 때문에 음귀陰鬼가 되어 늘 김부식을 따라다녔다고 하는데, 하루는 김부식이 봄을 두고 시를 짓되
柳枝千絲綠 桃花萬點紅 (유지천사록 도화만점홍)
버들은 천가지나 푸르고, 도화꽃은 만점이나 붉구나!
라고 읊었더니 뒤에서 누군가가 김부식의 빰을 갈겼는데, 정지상의 귀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자식아 네가 무슨 재주로 버들가지와 복숭아 꽃잎을 자세히도 세어 보았는냐? 시는 이렇게 쓰는거야’ 하며 수정해 주었다 한다.
柳枝絲絲綠 桃花點點紅 (유지사사록 도화 점점홍)
버들 가지는 실실이 푸르고 도화는 점점이 붉네
이 이야기는 정지상 시의 경지가 김부식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말해주는 야화野話다.
그러나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저술함으로써 우리나라 역사기록 문화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묘청은 서경천도, 칭제건원론稱帝建元論, 금국정벌론金國征伐論은 자주정신에 입각한 민족적 기상의 표출이다. 신채호는 <조선 역사 1천년래 제1대 사건>이라는 글에서 비록 실패했지만, <묘청의 난>의 의의를 높이 평가하며 안타까워 했다.
복사꽃 개령종 만첩홍도화
복사꽃 개령종 만첩홍도화,백도화
3. 이성계와 최영
어느 땐가 이성계와 최영이 어떤 대화에서 서로 한 구절씩 지어 시 한 수를 완성했다.
李 : 三尺劍頭 安社稷 (삼척검두 안사직 ; 석자 칼끝에 국가의 안위가 달렸고)
崔 : 一條鞭末 定乾坤 (일조편말 정건곤 ; 한개의 말채찍 끝으로 세상을 평정하노라)
두 장군은 나라를 위해 많은 공로를 세웠고, 무인으로서 웅혼한 기상이 잘 나타난다.
이 시를 함석헌 선생의 <<뜻으로 본 한국사>>에서 봤는데, 원 출전을 나는 아직 알지 못한다.
뒷날 최영은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으로 제거되고 말았다. 나는 역사의 이면에 가려진 본질을 이렇게 파악한다. ‘실은 최영이 이성계를 제거하기 위해서 무모한 명나라 정벌을 명한 것이며, 이성계가 오히려 이를 역이용하여 권세를 잡는 계기가 된 것이다.’
정몽주도 실은 이성계를 먼저 제거하려고 손을 쓰다가 실패하여 이성계 아들 이방원에게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4. 왕과 여인
조선시대 成宗 임금에게는 貴元이라는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다. 봄날 궁궐 뜰을 거닐며 함께 화답한 시가 있다.
▲ 성종 :
綠羅로 剪作 三春柳하고 ; 푸른 비단 오려서 봄버들 만들고
(녹라/ 전작/ 삼춘류)
紅錦을 裁成二月花라 ; 붉은 비단 말아서 이월꽃이 되었네
(홍금/ 재성2월화) 라고 읊으니
▲ 귀원 :
若使公侯로 爭此色이면 ; 만일 고관대작을 시켜 봄빛을 다투게 할양이면
(약사공후/ 쟁차색)
韶光(=春光)이 不到野人家로다 ; 저 평민의 집에는 봄이 채 가지도 못할게다.
(소광이 부도야인가)
아마도 至極公道는 하늘인가 하노라 ; 아마도 지극공도는 하늘인가 하노라
라고 읊었다. 시 한 절로 貴元은 성종으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았다.
5. 가렴주구苛斂誅求 수령과 아전
당나라 두보杜甫의 시 <팔진도>라는 오언절구에 ‘명성팔진도 강류석부전’(名成八陳道 江流石不轉)이라는 구절이 있다. 제갈량의 명성은 이 팔진도 때문에 널리 알려졌고, 강물(수령)은 흘러가도 강바닥의 돌(아전)은 굴러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개 탐욕스런 수령은 고을의 토착 세력인 아전(향리)과 짜고 부정이 심했다. 성현의 <<용재총화>>에 나오는 수령과 아전의 대화 한토막........수령이 눈병을 앓는 호방을 골려주려다가 당한 이야기이다.
-수령의 수작 “호방의 눈이 비록 축축하나 물꼬를 파서 물을 끌어 들일 수 있겠느냐? 옷소매에는 액(더러워짐)이 되겠으나 파리에게는 잔치 음식이 되겠도다”
- 이번에는 숨을 죽이고 있던 호방이 용기를 내어 되받았다.
“어르신께서 배가 비록 크나 구실(뇌물)로 바친 쌀이야 어찌 싣겠습니까? 마바리(수레 끄는 말)에게는 액(무겁다고 끙끙)이 되겠으나, 사나운 범의 잔치 음식이 되겠나이다.”
수령이 호방의 말 펀치에 한방 먹었다.
6. 영.프 정상의 역사 자존심 싸움
☞ 1989. 7. 22 / 이규태 코너 (제10권)
이웃나라끼리는 서로가 앙숙이게 마련이다. 터키 사람은 살을 에는 듯한 모진 바람을 ‘러시아 바람’ 이라고 하고, 러시아 사람들은 들어맞지 않는 엉터리 계산을 ‘터키셈’ 이라고 한다.
좁다란 도버해협을 가운데 두고 이웃하고 있는 프랑스와 영국도 상대 나라 이름을 앞세운 말은 나쁜 말이게 마련이다. 이를테면 프랑스 말에서영국 요리하면 맛없는 요리를 뜻하고, 영국 말에서 프랑스 휴가하면 무단결석을 뜻한다.
프랑스 혁명 2백주년을 맞아 파리에서 열렸던 7개 선진국 수뇌회담 때도 영불간의 보이지 않는 앙숙싸움이 잦았다. 이를테면 회담이 끝나던 날
영국의 정상 대처 수상은 프랑스의 정상 미테랑 대통령에게 붉은 종이로 싼 조그만 소포를 건넸다. 회담책상에서 풀어보니 책 한권이 들어 있었다. 19세기 영국 작가 디킨스의 소설 <두도시 이야기>였다.
미테랑은 잠시 눈을 감고 이 책선물의 상징적 저의를 헤아려보았다. 이 소설에서 두 도시는 파리와 런던을 뜻한다. 그리고 이 소설의 무대는 프랑스혁명 직후 사람 죽이던 공포정치 시대요 주인공은 영국의 변호사 시드니 카튼이다. 그가 사랑하는 여주인공 루시는 프랑스 귀족 다이네의 부인이 된다. ' 프랑스 혁명 후 다이네가 신분상 옥에 갇히자, 영국 카튼은 감옥에 침입, 이 연적을 탈옥시키고 대신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다는 이야기다.
프랑스혁명의 비인도적 치부恥部를 환기시키면서 숙원宿怨을 초월한 영국인의 숭고한 정신을 부각하는 이 소설책으로 상징적 도전을 한 것이다.
당하고만 있을 미테랑이 아니다.
이튿날 대처에게 전달된 소포는 실리토의 <장거리 주자走者의 고독>이란 소설이었다. 파업이 확대되며 국민의 지지율이 떨어져가고 있는 대처를 장거리 주자로 빗댄 내용이라 한다. 장군에 멍군이야기다.
이 두 정상 사이의 소설 티격태격은 제2라운드의 싸움이다. 이미 회담중에 제1라운의 싸움이 있었던 것이다. 인권사상은 프랑스 혁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이미 1215년에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에서 비롯됐다고 대처가 공격하자 하지만 인권사상이 보편적 의미를 갖기 시작한 것은 프랑스혁명부터다. 하고 미테랑이 응수했던 것이다.
대국 정상들이 우리 집에 금송아지가 있다는 식의 티격태격을 2라운드씩이나 하고 있는 것이 어린애들 같기도 하여 흥미롭다.
7. 사슴, 토끼, 두꺼비의 나이 자랑
-사슴 : "천지가 개벽할 때 내가 그 일을 거들어 주었다"
-토끼 : "그 때 사용한 사닥다리를 만든 나무를 내 손으로 심었다"
-두꺼비 : 두꺼비는 눈물을 흘리며,
"내가 자식을 셋 두었는데, 세 아들이 각각 나무를 한그루씩 심었다. 큰아들은 하늘의 별을 박을 때 쓴 망치 자루를 만들고, 둘째는 제가 심은 나무로 은하수를 팔 때에 쓴 삽자루를 만들고, 셋째는 제 나무로 해와 달을 박을 때 쓴 망치자루를 만들어 일을 했다, 아들 셋이 모두 그 큰 일들 때문에 과로하여 죽었는데, 지금 사슴과 토끼 이야기를 들으니 죽은 자식들 생각이 나서 운다" 했다.
* 두꺼비가 제일 연장자로 판정되어 상좌에 올랐다. 이 민담은 고려대장경 권 34 십송률에도 실려 있는데, 동물이 코끼리, 원숭이, 사막새로 되어 있다. 따라서 불전에 영향을 받은 설화이다.
8. 두더지의 혼인 이야기
한 두더지가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배우자를 구하려고 했다. 먼저 하느님께 가서 청했다.
하느님이 사양하자, 차례로 해, 구름, 바람, 돌부처에게 가서 배우자가 되어 달라고 부탁을 해 봤지만 모두 사양하였고, 결국 같은 두더지 동족과 혼인했다는 민담이다. 해, 구름, 바람, 돌부처는 어떤 말을 하며 사양했을까?
-하느님 : "내가 비록 만물을 다스리고 있으나, 해와 달이 없으면 내 덕을 드러낼 수가 없다"
-해 : "비록 만물을 비추나, 나를 가리는 구름은 어찌 할 수가 없다"
-구름 : "내 비록 해와 달을 가릴 수는 있으나, 바람이 불면 흩어질 수밖에 없다"
-바람 : 내가 구름을 흩어지게 할 수는 있으나, 저 밭가운데 돌부처는 움직일 수가 없다. 돌부처가 나보다 훌륭하다"
-돌부처 : "비록 바람은 꺾을 수는 있다하나, 두더지가 내 발아래를 파헤치면 나는 넘어 질 수밖에 없다"
두더지는 비로소 자신들의 종족이 천하에서 제일 훌륭한 존재임을 깨닫고, 결국 두더지 동족과 혼인을 정하였다.(홍만종 순오지)
9.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래를
“白頭如新 傾蓋如故 (백두여신 경개여고) ; 백두白頭도 새 친구 일 수 있고 경개傾蓋도 오랜 친구일 수 있다.” ;
‘추양’ 이란 사람이 옥중에서 양왕에게 올린 글 중의 구절이다. 백발이 될 때 까지 사귀고 있어도 마음이 합심되지 않으면 처음 안 사이와 다를 바 없고, 경개 즉 ‘수레의 지붕을 기울이다’ 라는 의미는 길가에서 수레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연히 만나 서로 얘기하려고 수레지붕을 잠시 기울였는데, 그 짧은 찰라에 마음이 맞아서, 오래 사귄 친구처럼 느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심어린 대화로 마음들을 나누자.
10. 자연과 대화
“성긴(빽빽하지 않고 듬성듬성한) 대숲에 바람이 불어오매(요란한 소리가 난다) 바람이 지나가면 대가 소리를 지니지 않고, 기러기가 차가운 못을 지나매(정확히 그림자가 비친다) 기러기 가고 난 다음에 못이 그림자를 남기지않나니, 그러므로 군자는 일이 생기면 비로소 마음에 나타나고 일이 지나고 나면 마음도 따라 비느니라.”
風來疏竹 風過而 竹不留聲 (풍래소죽 풍과이 죽불류성)
雁度寒潭 雁去而 潭不留影 (안도한담 안거이 담불류영)
故君子 事來而心始現 事去而心隧空 (고군자 사래이심시현 사거이심수공)
채근담(菜根譚) ; 명나라 洪自誠)의 자연편에 나오는 이 구절만이라도 마음에 제대로 새기면 세상이 아무리 혼탁하고 시끄러워도 고요하고 안정된 마음을 지닐 수 있을 것이다.
사람과 자연하고 대화를 나누자 가급적~ .
제발 스마트 폰이나 애완견은 좀 자제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