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택시청관할구역 법정동과 행정동
세교동 관내 옛마을 이름
조선조 진위현 성남면에 속한 잔다리였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때 세교리가 되었으며 평택읍때에는 세교 1리(벌잔다리)세교 2리(안잔다리) 세교 3리(은실)로 분리되었고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세교동(細橋洞)을 행정동으로 하여 동삭동(1,2,3통)일부 지제동(10,11,12통) 신대동(13통)일부가 편입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음.
비전1동 관내 옛마을 이름
비전동(碑前洞) : 이곡 산직촌 하신작로 재랭이 당골
동삭동(東朔洞) : 상서재 하서재 모산골
죽백동(竹柏洞) : 방아다리(침교) 안말 원죽백
청룡동(靑龍洞) : 청용말 무안사
월곡동(月谷洞) : 달골 관동(귀골) 옥터골 향교동
비전동(碑前洞)
비전(碑前)은 진위현 읍지(1843)를 보면 부도(附圖)에 진위현 병파면(丙坡面)에 속한 마을이었다. 비전(碑前)은 평택의 삼봉(紫蘭 德洞 罵峰山 )중의 하나인 덕동산(德東山) 산록(山麓)을 부처지골이라 불렸다는 고증이 있었다. 하나 언제 마을 이름을 지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마을이 생기면서 부처지골에 비석이 있어 비전(碑前)이라 지어진 것으로 전하여 내려오고 있다. 「비(碑)는 종교 지명(宗敎地名)으로서 불교 지명(佛敎地名)이다. 사찰(寺刹) 승려(僧侶) 탑파(塔婆) 비석(碑石)이 있는 곳의 마을 이름에 비자(碑字)를 쓰며 전(前)은 앞을 뜻하는 접미사(接尾辭)이다.」
비전2동 관내 옛마을 이름
비전2동은 비전동 소사동 용이동등 3개 법정동의 행정을 담당하는 동장 관할구역 명칭으로써 문화촌 상신작로 하신작로 어인남 소사 소죽골 솔밭말 창말 소사원 소사장 용이마을 구룡마을 현촌 신흥동 등 13개의 자연부락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전2동은 비전동 일부지역과 소사동이 조선조에 양성현 영통면(令通面)이었고 용이동은 양성현 구룡면(九龍面)에 속해져 있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양성현이 없어지면서 안성군 원곡면으로 편입된 후 1983년 2월 11일 평택군 평택읍 관할로 되었으며 이후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비전2동의 관할구역이 되었다
통복동 유래
통복동은 조선시대 진위현 병파면에 속한 갯가였다. 그래서 유래된 지명이 “통복개”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통복리가 되었다.
평택읍때는 통복1리(落村-->낭떠러지기) 통복2리(京三巨里) 통복3리(西三巨里)로 불렀으며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1.2.6.7통(낙촌) 3.8.9.10.11통(동삼거리) 4.5.9통(서삼거리) 12통(동아국화) 13통(신명보람)으로 되었다. 2008년 1월1일부터 평택시 통리반 설치조례 개정에 의해서 일부통이 통합되어 현재 11개통으로 변경되었다.
신평동 유래
신평동은 평택동 합정동 유천동 3개의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이다.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에는 합정(蛤井) 통미(通味) 야미(夜味) 버드내 양성 버드내 황룡등의 고유명칭으로 불리우는 자연마을이었으나
1914년 일제에 의해 실시된 행정구역 통합시 합정리 유천리로 명칭이 변경되었으며 1905년 경부선철도가 개통되며 역이 만들어지면서 평택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1938. 10. 1일 평택군 평택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어 평택리 합정리 유천리가 평택동 합정동 유천동이라는 법정동 명칭을 사용하고 이를 관할하는 행정기관 이름을 신평동이라 명하게 되었다.
원평동 유래
평택의 발상지인 원평동은 조선조에는 진위현 병파면 통복개에 속하였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 진위군 병남면 평택리. 이후 1938년 7월 27일 평택군 평택읍으로 개칭되면서 군청사를 두어 주변 상거래가 성행했던 곳이었으나 6.25사변으로 시가지가 파괴되면서 그 기능을 잃고 철도 동쪽지역으로 신시가지(지금의 신평동)가 조성되면서 주거중심지역으로 바뀌게 되었다.
1974년 7월 평택군 평택읍 서부출장소가 설치되어 12개 리(里)를 관장해오다 1986년 1월 1일 평택시로 승격되면서 평택동과 통복동 신대동 군문동을 관할하면서 이곳을 서부동이라 했으나 옛 전통과 유래를 되찾고 평택의 발상지라는 자긍심을 찾기 위한 대다수 주민의 여망을 수렴해 1992년 6월부터 원평동으로 개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