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영이 돌아왔다. 지난해 말 비디오 사건 파문으로 가수활동을 접었던 그가 3집 앨범 ‘추락’을 발표하며 가수활동 재개를 공식화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그의 복귀에 대한 일부 부정적인 의견들을 고려해서인지 공중파 방송 등에서의 본격적인 활동은 미루고 있는 상태다. 컴백 무대를 하루 앞둔 지난 12일 오후 압구정동의 중식당 ‘온더 락’에서 그녀를 만났다.
정식 인터뷰를 갖기 며칠 전 경기도 광주의 모 세트장에서 진행된 뮤직비디오 촬영 현장에서 잠깐 백지영을 만날 수 있었다. 막 촬영을 끝내고 저녁 식사를 하기 위해 백댄서들과 함께 나오다 마주친 백지영은 비디오 사건 전 모습 그대로 밝은 표정이었다. 안무를 맡고 있는 홍영주 씨와 춤동작에 관해 이야기를 하면서 때때로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기자와 정식으로 인터뷰를 한 12일에도 백지영은 간혹 웃음을 터트리는 등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기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비디오 사건이나 부모와 관련된 질문이 나오자 눈가에 눈물이 맺히는 등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습도 보였다.
지난해 말 사건이 터진 후 8개월 정도 지났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잘 지냈다. 가수활동을 시작하면서 제대로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푹 쉬었다. 신앙심도 깊어져 교회에도 열심히 다녔다. 코디네이터 언니와 함께 베트남으로 1주일 동안 여행도 갔다왔다. 그곳에서 여행 온 한국 분들을 만났는데 아무렇지 않은 듯 대해 주셨다. 고맙게 김치까지 나누어 주셨다. 많은 분들이 격려를 아끼지 않아 고맙게 생각한다.”
몸 상태가 좋지 않다는 보도가 있었다.
“특별히 심하게 아픈 곳은 없었다. 급하게 앨범을 준비하면서 이곳 저곳 조금씩 상태가 좋지 않았다. 눈의 각막 이상과 위경련 때문에 병원에 다녔다. 귀가 아파 이비인후과에도 다녔다. 앨범을 내기 전에는 항상 병치레를 하는 것 같다.”
매니저는 잔병이 많은 백지영을 두고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라고 표현했다. 그에 따르면 백지영은 한동안 대인기피증에 걸릴 정도로 사람 만나기를 꺼렸다고 한다. 쏟아지는 인터뷰 공세 때문에 백지영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상당히 많은 고통을 겪었다고 한다. 매니저는 비디오 사건이 터진 직후부터 스포츠 신문에서만 17일 연속해서 백지영 관련 기사를 보도했다고 한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
앨범 발표가 아직은 이른 것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다.
“급하게 결정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내 욕심대로라면 벌써 음반을 냈어야 했다. 그 사건이 터지기 전부터 음반 준비를 시작했다가 중단했다. 7 : 3 정도가 긍정적인 여론인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지금도 아직 이르다는 생각과 이왕 하려고 마음먹었다면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는 이중적인 생각이 교차한다.”
백지영의 이번 앨범은 그의 세 번째 음반이다. 음반이 발매되기도 전에 선주문만 30만 장이라고 한다. 타이틀 곡은 ‘추락’. 라틴댄스의 여왕이라는 별칭답게 ‘추락’ 역시 강렬하고 세련된 라틴댄스 곡이다. 떠나가는 사랑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애처로운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뮤직비디오도 불, 물, 별이라는 3가지 주제로 35mm 영화 필림을 쓰는 등 공을 많이 들였다. 백지영의 매니지먼트사는 뮤직비디오는 공중파 TV에서도 볼 수 있지만 직접 TV 무대에 서는 것은 아직 이르다고 판단하고 있다. 언제 공중파 방송에 나설지는 팬들이 결정할 몫이라고 한다.
컴백 소감은?
“무대에 섰을 때의 표정이 어떻게 나타날지 걱정이다. 두렵기도 하다. 적어도 무대에서만큼은 즐겁고 신나는 표정이어야 할텐데 혹 나도 모르게 아픈 상처가 얼굴 표정에 나타날지 걱정이다. ‘백지영이 옛날보다 별로야’ 하는 말을 듣지 않아야 할텐데…. 그래도 난 단순한 성격이라 주어진 상황에만 전념한다. 무대를 내려오면 허탈해할지 몰라도 무대에서는 예전의 백지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가수로의 복귀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었나?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아! 이렇게 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이해가 됐다. 그러나 당시에도 가수를 하기 싫다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과 매니저들, 그리고 팬클럽 회원들의 성원이 큰 힘이 되어 다시 가수활동을 결심했다. 특히 인터넷에서 저를 위로해준 네티즌들의 글들을 보고 자신감을 얻었다. 처음에는 겁이 나서 인터넷에 들어가지도 못했지만 한참 뒤에 나에 대한 글들을 꼼꼼히 읽어봤다. 팬클럽 ‘루즈클럽’ 회원들에게도 감사한다. 지난 3월 25일이 내 생일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준비를 해다가 안무실에서 깜짝 파티를 열어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분들이다. 지난번 기자회견에서도 밝혔듯이 내 노래를 듣고 싶은 팬들이 단 한 분이라도 남아 있다면 나는 그 분을 위해 노래를 부를 것이다.”
잃은 것 이상으로 가족의 사랑 얻어
동료 연예인들도 많은 위로를 해 주었을텐데?
“처음에는 내가 일부러 연락을 끊었다. 혹 그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을까 하는 이유에서였다. 주위 사람들로부터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걱정을 한다는 것을 들었다. 정말 너무 많다. 그중에는 평소 친분이 없던 분들도 많았다. 나중에 내가 기회가 되면 그분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이 있었으면 좋겠다. 특히 김선아 언니에게 미안하다. 설이 얼마 지나지 않아 오기가 생겨 일부러 모자도 쓰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대형 할인점으로 쇼핑을 나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우연히 모자를 눌러 쓴 선아 언니를 만났다. 데뷔 전부터 알고 있던 선아 언니가 그렇게 하고 다니면 안 된다고 충고를 했는데 내가 오히려 ‘왜 내가 죄지었냐?’고 심통을 부렸다. 연예인이니까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한다는 충고였는데… 아직까지 선아 언니에게 미안하다.”
부모님은 컴백에 대해 걱정이 많으실 것 같은데?
“처음에는 격려보다 걱정을 많이 하셨다. 어제 처음으로 새 앨범을 아버지에게 들려주었는데 너무 좋아하신다. 좀처럼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아버지가 이번 일로 마음 고생을 너무 많이 하셨다. 내가 괌에서 귀국한 날 공항으로 마중 나온 아버지가 나를 꼬옥 안으시며 ‘힘들었지’ 하며 격려해주셨을 때를 잊지 못한다. 아버지에게 안겨본 게 정말 오랫만이었다. 꿋꿋이 이겨내는 내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는 ‘장하다’며 격려해 주셨다. 작년 12월말 콘서트 때도 무대 위에서 가장 정면으로 시야가 보이는 곳에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아버지와 눈인사를 나누며 내 마음을 다스렸다. 그 무대는 지금까지 어떤 장소나 시간보다 가장 솔직했던 표정과 마음을 담았다. 그 사건이 오히려 가족의 사랑을 확인해준 시간이었다.”
사표를 썼다고 알려진 백지영의 아버지는 현재 직장에 복귀한 상태다. 가족들은 그녀에 대해 상당한 배려를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그런 모습이 부담(?)이 되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비디오 사건’으로 잃은 것이 있는 만큼 그 이상으로 가족의 소중한 사랑을 얻었다고 한다.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
“한번 마음을 다져 먹으니 그 일은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나보다 가족들이 내 마음 상할까봐 눈치를 볼 때 가장 힘들다. 한번은 오빠 차를 타고 엄마랑 한의원에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오빠가 주차 문제로 다른 사람과 시비가 벌어졌다. 오빠가 짜증을 좀 냈는데 엄마가 상당히 심하게 오빠를 나무랐다. 내가 그런 아픔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짜증을 내야겠냐는 것이었다. 그 일이 알게 모르게 가족들의 생활에 영향을 미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괴로웠다.”
공중파 TV 출연 여부는 팬들의 판단에 맡겨
대만 진출 계획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일단 이번 앨범 발표와 함께 보름 정도 국내에서 활동하다 6월 29일에 대만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대만 활동 공식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다. 국내에서는 음악전문 케이블TV에만 출연할 예정이다. 아직 공중파 방송 출연 여부는 결정하지 못했다. 그건 팬들의 의사에 달렸다.”
백지영은 당분간 한국과 대만을 오가며 활동할 예정이라고 한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가을 경에는 이번 앨범 수록곡을 바탕으로 콘서트나 라이브 무대를 열 생각도 하고 있다고 한다.
쉬는 동안 앞으로 인생 계획도 생각해 보았을텐데?
“내 꿈은 예전과 변함이 없다. 아담한 집에 예쁜 레코드 숍을 운영하며 가족들과 오순도순 살아가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가장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꿈인 셈이다. 또 한가지 덧붙이자면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모아 기념 앨범을 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