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란더와 코리돈의 전설을 들어보셨나요?
이 전설은 시, 시의 뮤즈 그리고 그 뮤즈를 사랑한 시인 이야기입니다.
먼저 알아야 할 사람은 멜란더에요. 그녀는 시의 뮤즈지요. 그녀 덕에 시인들은 시의 영감을 끊임없이 떠올릴 수 있었어요. 그런 날들이 이어지자 시인들은 자신의 재주를 당연히 여기며 멜란더에 대해 잊어버립니다. 화가 난 멜란더는 시인들에게 넘쳐나던 시의 영감을 사라지게 했어요. 시인들은 더 이상 시의 영감이 떠오르지 않게 되었고, 궁정의 귀부인들이 자기네보다 기사들과 어울리기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는 걸 깨달았죠. 그제서야 다급해진 시인들은 멜란더에게 달려갑니다. 그녀는 그들이 영감의 근원을 잊었기에 그것을 거두어갔다고 말합니다. 시인들은 자기네가 항상 그녀를 잊지 않고 있었다고 뻔뻔하게 거짓말을 하며 항변하지요. 하지만 그녀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그녀는 그들에게 힘을 되돌려 받고 싶으면 그들 중 하나가 그녀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포기하라고 말합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어요. 그런데 시인들 중에 능력을 잃지 않은 젊은 시인, 코리돈이 있었어요. 그는 여신을 사랑해서 유일하게 능력을 잃지 않았던 것이였지요. 그런 그가 다른 시인들을 위해 자신의 목숨을 끊습니다. 그렇게 시인들은 다시 시를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시대를 넘어, 어느 시점의 버밀리언샌즈의 이야기가 시작하겠습니다.
아방가르드 시 평론지인 <<웨이브 IX>>의 편집을 맡고 있는 폴 랜섬은 스타스가에 살고 있습니다. 그가 살고 있는 스타스 가에는 많은 스튜디오가 있습니다. 그 입주자 대부분은 거의 화가와 시인들인데요, 그들 대부분은 다양한 정도의 해변 무력증을 앓고 있습니다. 해변 무력증은 ‘끝없이 일광욕과 선글라스와 오후 테라스의 구렁텅이에 빠져들게 하는 만성질환’으로 ‘감각을 지독하게 마비시키며, 절망과 희망을 무디게 해서 결국 서로 비슷하게 만들어 버리는 증세’라고 폴은 말합니다.
어느날 오로라 데이라는 여인이 스타스 가, 5번 스튜디오로 입주해 옵니다. 그리고 폴 랜섬은 3피트 정도 길이의 조각으로, 장미 꽃잎 같은 촉감에 너무 얇아서 그의 손가락이 닿은 곳부터 부서지고 녹아내리기 시작하는 리본을 받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후의 일들을 폴 랜섬은 버밀리언샌즈가 미쳐 돌아간 계절이라고 표현합니다만.. 해변 무력증을 앓고 있어 감각이 마비되고, 절망과 희망이 서로 비슷하게 느껴지는 그들에게, 심상표현에 ‘오류’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시는 쓰는 것이 아니라 VT를 통해 만들어 내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던 그들에게 무슨 일이 생겼을까요...
여름 내내 버밀리언샌즈에 저녁이 내리덮일 때마다, 내 아름다운 이웃 여인의 정신 나간 시구절이 스타스 가 5번 스튜디오에서 흩날리며 날아와, 사막을 가로질러서 내게 도착했다. 시구절은 부서진 색색의 리본 타래가 되어, 분해되어 모래 위에 놓은 거미줄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밤새 테라스 아래 지지대 주변을 팔락거리면서 맴돌다가, 발코니 난간을 휘감으며 뒤엉키고는, 아침이 되어 내가 직접 흩트리기 전까지는 선명한 선홍색 부겐빌레아처럼 저택의 남쪽 측면을 뒤덮고 있고 했다.
사흘 동안 레드비체에 머물다 돌아왔더니 테라스 전체가 구름처럼 일어난 색색의 부드러운 조직으로 가득 차 있기도 했다. 내가 유리문을 열자 그대로 거실로 밀려들어서는, 거대하고 부드러운 식물의 섬세한 촉수처럼 가구와 책꽂이 위로 퍼져 나갔다. 이후 며칠 동안 곳곳에서 시의 파편들이 계속 발견되었다.
폴 랜섬은 오로라 데이의 시를 우습게 여기면서도 그도 어쩔 수 없는 끌림에 이끌려 오로라에게 다가갑니다. 폴의 시대에는 VT라는 기계를 통해 시를 만들어냅니다. 손으로 쓰는 시는 심상표현의 오류가 가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에 VT를 사용해서 심상을 표현할 때의 오류를 없애버리는 시대인 것이지요. 그렇게 시를 손으로 쓰는 것이 아닌 기계를 통해서 찍어내는 시대에 그들은 살고 있었습니다. 초대를 받아 오로라의 집에 방문한 폴은 오로라가 내민 시를 받습니다. 그녀가 보여준 시들은 그가 생각하는 오류투성이의, 고리타분한 예전의 시들이였기에 그는 그녀의 시를 한편도 매거진에 실어주지 않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엉망이 됩니다. 오로라에 의해 잡지가 엉망이 되고, 시인들이 가지고 있던 시쓰는 기계, VT가 다 망가집니다. VT가 없이 시를 어떻게 쓴단 말인가!! 어떻게든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폴은 그의 친구 토니와 함께 시인들에게 시를 써 달라고 전화를 돌립니다.
“내가 직접 쓰라고? 폴, 미친 거 아니야?” , “직접? 물론이지, 폴. 발가락으로 써도 상관없다면.”, “어머나, 시도해 볼 엄두가 안나는데요. 이상한 쪽 근육이 굵어지거나 하면 어떻게 해요”, “싫어.”
그들이 살고 있는 시대는 손으로 시를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트리스트럼 콜드웰을 제외하고는요. 폴이 보기에 오류 투성이인 트리스트럼의 시는 오로라를 즐겁게 만듭니다. 그녀는 가끔씩 몇 군데 사소한 비판을 하기도 했으나 문구를 바꾸거나 개작하는 것은 단호하게 거부합니다. 심상을 표현할 때 오류가 없는 사람이 없기에 개작은 항상 하는 것이란 그의 주장에도 오로라는 트리스트럼이 처음 쓴 대로 놔두라고 합니다. 트리스트럼이 시를 제때, 필요한만큼 만들어내지 못해 초조한 폴 랜섬과는 다르게 오로라는 트리스트럼의 진도가 느려지는 것을 오히려 기뻐합니다. 그런 트리스트럼을 격려한다는 핑계로 오로라와 트리스트럼과의 만남을 주선해주며 폴은 살짝 질투를 느낍니다만 해변무력증을 앓고 있는 이답게 폴은 그저 무심히 그들의 일을 넘겨버립니다. 피크닉을 나갔던 트리스트럼이 모래 가오리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그 자리에 같이 있던 오로라는 사라집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폴은 오로라가 의도적으로 트리스트럼을 죽였다고 생각하고 충격을 받습니다. 오로라를 좇아가나 그녀를 놓치고 만 폴은 집으로 돌아오는데, 자신의 집에 살아 있는 트리스트럼을 발견합니다. 트리스트럼은 오로라에게 멜란더와 코리돈 전설을 들은 후, 반쯤은 동정에서 그리고 반쯤은 놀이 삼아 코리돈의 역할을 수행하기로 마음먹었고, 모래 가오리의 습성을 잘 알고 있는 그는 도리어 오로라를 속임으로써 그가 죽은 것으로 그녀가 믿게끔 한 것입니다.
위험했었다는 폴의 이야기를 들은 트리스트럼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합니다.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요 폴. 애초에 시를 짓는다는 건 그렇게 위험한 일이잖아요.”
이야기 끝에 트리스트럼이 보내왔던 소네트들이 그가 직접 써서 보냈다는 이야기에 그가 기계를 써서 시를 써왔다고 생각했던 폴은 놀랍니다. 트리스트럼마저 VT기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폴이 망연자실하자 직접 써보라고 트리스트럼은 말합니다. 오로라가 자신이 죽었다고 생각하니 어쩌면 시를 쓸 수 있게 되지 않겠느냐며…
일련의 소동 뒤에 폴은 잡지에 채워넣어야 하는 원고를 새어봅니다. 모자란 원고 양이 버밀리언샌즈에 살며 시인이라고 등록한 모두가 1쪽씩만 채워 주면 되는 23쪽 분량이 남았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 우연에 놀랍니다. 문제는 그들 모두가 스스로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는 시인들이라는 것이었지요.
그리고 그 때 폴은 전화를 받습니다. “오늘 저녁에 꽤나 끝내주는 일이 한가지 일어났지 뭐에요. 있잖아요, 아직도 직접 쓴 시가 필요한가요? 한두 시간 전에 뭔가 끼적이기 시작했는데, 그렇게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사실은 그 오로라 데이라는 아가씨에 관한 거에요. 당신 마음에 들 것 같은데.” 스무 번은 넘게 울려 댄 전화 속의 모든 시인들은 오로라 데이에게 바치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합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날 저녁 모든 시인들이 뭔가 독창적인 물건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고는, 몇 분 만에 오로라 데이를 추억하는 구절을 한 두절씩 뽑아낸 것이지요. 그렇게 폴은 마지막 23쪽의 잡지를 채워넣을 수 있게 됩니다.
정말 오로라는 시의 뮤즈, 멜린다였을까요? 폴이 스타스가 5번 스튜디오 거실 벽 위편의 부조에서 보았던, 사진에 가까울 정도로 유사했던 부조 속의 모든 인물들이 맞아떨어진다면…
마지막 전화를 받은 후 나는 자리에 그대로 서서 이 상황을 곱씹고 있었다. 12시 45분이었고, 나는 지쳐서 녹초가 되어 있어야 마땅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뇌는 생생하고 날카롭게 살아 있었으며, 수천 가지 생각이 그 안에서 흘러 넘쳤다. 마음속에서 시구 하나가 스스로 형체를 만들었다. 나는 공책을 들고 그 내용을 적어 내려갔다.
시간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았다. 5분도 지나지 않아 나는 10년 만에 처음으로 시 한 편을 완성했다. 그 너머에서, 내 마음의 표면 근처에서 십수 편의 시들이 나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햇빛을 보고 싶은 바위 속 한 줄기 금광맥처럼.
오로라에게 “진정한 영감을 어떻게 정의”하냐고 묻던 폴은 스스로 답을 찾은 거 같습니다.
글을 쓴다는 건 무엇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소설이였어요.
“그 사람들은 시인이 아니라 기계공일 뿐이에요. .... 제가 말한 배워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감정을 말하는 거였어요. 형식이 아니라 영혼에서 나오는 음악 말이에요.... 오늘날의 시는 죽었어요. 그런 기계들 때문이 아니라, 시인들이 더 이상 진정한 영감을 찾아 헤매지 않기 때문이에요 (184쪽)”
이렇게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한 저도 언젠가 시간이 녹아내리는 것만 같은 시간이 그리고 영혼에서 나오는 음악을 풀어낼 수 있게 되기를 바라며 발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