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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vimeo.com/259473018
◈ 월일/집결 : 2018년 3월 10일(토) / 도봉산 입구(광륜사 뒷편 시산제 행사장, 10시)
◈ 참석자 : 19명 (갑무, 정남, 종화, 진오, 형채, 상수, 재홍, 윤환, 경식, 승렬, 원무, 윤상, 삼환, 전작, 동준, 광일, 양기, 천옥, 황표)
◈ 산행코스 : 도봉분소-광륜사(뒷편)-도봉서원-성불사-우이암-원통사-정의공주묘-연산군묘-쌍문동(뒤풀이장소)
◈ 동반시 : "꽃잎에 곱게 물든 사랑" / 김득수
◈ 뒤풀이 : 소갈비탕에 소·맥주와 막걸리 / '감포왕갈비'< 쌍문동, (02) 992-5202 >
이틀 전 총장님으로부터 산행기자로 지명되어 카톡에 공지까지 된 마당에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 그냥 감사한 마음으로 수행하기로 하고, 어제는 평소보다 일찍 잠자리에 누웠는데, 자기 전에 본 평창 장애인 올림픽 개막식 영상이 머리에 잔영으로 남아 결국 12시가 다 되어서야 숙면에 들었다.
아침 6시 반에 알람이 울어 자리에서 일어나 아침을 먹고 등산준비를 하였다. 평소에 집에서 아침 식사대용으로 먹던 흑임자 인절미 두 팩과 며칠 전에 구리 농산물시장에서 사온 사과를 깎아 배낭에 넣고 8시 반에 집사람 배웅을 받으며 집을 나섰다.
도봉산역에 도착하여 출구를 찾는데, 좌측에 에스컬레이터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보니 그동안 안 와본 사이에 역사가 깨끗하게 리모델링이 되어 조금 대우를 받는 느낌도 들었다. 미세먼지가 나쁨의 단계인데도 제법 많은 등산객들이 줄지어 에스컬레이터로 밀려 올라갔다.
역사를 빠져나와 횡단보도 앞에 서니 광일친구가 진오와 함께 나를 부른다. 반갑게 인사하고 기다리는 사이 카톡에 황표와 동준이 일찍 도착하여 세븐일레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데, 길 건너 세븐일레븐을 찾지 못해 황표 커피를 놓치고 말았다.
광일이 감기기운이 있어 약국도 찾아 보았으나 보이지가 않아 도봉분소 사무실 앞까지 바로 올라갔다. 북한산국립공원 도봉분소 앞에서 한 회장님과 윤상 친구를 만나 함께 기다리다가 분소 앞에서 직원들이 화재예방 행사를 하는데, 찬조 출연(?)으로 동참 해 주었다.
재홍 산우와 합류하여 광륜사 뒷편의 시산제 장소로 이동하였다. 시산제는 예정대로 10시에 시작되었다. 절차에 따라 주요인사와 찬조회원 소개가 있은 후, 각 기별 대표회원이 앞으로 나와 제단에 절하고, 주최 측에서 마련한 막걸리, 시루떡, 사과즙, 등산양말 등 기념품이 분배 되었다.
이날 참석한 우리 20회 시산회 회원은 모두 19명으로 아픈 몸을 이끌고 시산제에 참석한 정남 친구는 등산에는 동참하지 못 하였다. 10시45분, 18명의 산우들은 삼환 산우를 앞세우고 시산회 제330회 도봉산 산행은 우이암을 목표로 등산을 시작하였다.
오르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김수영 시인의 시비(서울 미래유산 2013-040)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기도 하고, 봄을 준비하는 겨울 끝자락의 산천을 틈틈이 구경 하면서 기자로서 약간의 긴장감을 간직한 채 발걸음을 옮겨본다. 조금 올라가니 우이암 2.6km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개울물도 보이는데, 소리없이 깨끗한 낙엽과 바위 사이를 흐른다.
곧바로 오른쪽에 청량교라는 묵직한 돌다리를 건너 금강암이 서있고, 이어지는 개울에 겨울을 간직한 하얀 눈이, 오는 봄을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한 10분쯤 더 올라가다 바위와 소나무가 있는 공터에서 1차 휴식겸 간식 시간을 갖는다. 황표 친구가 삶은계란 20개를 분배하고, 나도 아침에 준비한 사과를 내어 놓았다. 막걸리와 웰빙 차들도 비워지고 있었다.
반시간을 더 오르자 성불사 극락전이 오른편에 자리 잡고 있었다. 대웅전과 극락전의 차이에 대한 토론이 결론을 맺지 못한 채 너럭바위(?)에 도달하여 기념사진을 또 찍었다. 약 30분쯤 지나 2차휴식을 가진 뒤 가파른 길을 더 올라 우이암 직전의 포토 존에서 오봉과 칼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 부터는 다리 힘이 풀리기 시작하였다.
우이암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곳에서 임 산우는 사진촬영을 하다 스마트폰을 절벽으로 떨어뜨렸는데, 소나무 아래 육안으로 보이는 곳에 걸렸다. 마침 근처에 있던 전문등산가 한 노인이 빌려주시는 로프를 허리에 묶고 스마트폰을 회수하여 시산제의 효험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 회장이 시산제에서 받은 시루떡과 사과즙을 그 분에게 건내며 감사를 표하였다. 산우들이 말하길 “오늘 산행기 소재는 이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라고 산행 기자를 위로하기도 하였다.
우이암을 지나 10여 분을 내려가다 넓은 공터를 만나 점심시간을 갖기로 하고 자리를 폈다. 남은 막걸리와 한 회장이 가지고 온 홍주, 그리고 홍어와 한라봉, 겨우살이, 산우들이 정성껏 준비해 온 밥과 과일, 김치 등 푸짐한 식단으로 겨울산행의 맛과 멋을 한껏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의 동반시("꽃잎에 곱게 물든 사랑"/김득수 시인) )는 내가 큰 목소리로 낭독하였다.
"꽃잎에 곱게 물든 사랑" / 김득수
꽃잎이 지고 나면
우리 사랑은 다 한 줄 알았는데 그러나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휘날리는 꽃잎에
우리 사랑은 새롭게 열매 맺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곱게 물들어 가던 사랑
다가갈수록 가시밭길을 걷듯 우리에게 수많은 아픔이 찾아 왔어도
변함없는 사랑이
우리를 하나로 만들어 놓고 두 손을
꼭 잡게 했습니다.
수천 번 꽃이 피고 져도
우리 사랑은 지지 않고 서로 바라보며 거센 비바람을 이겨내듯
함께할 수 있었기에
사랑은 성숙한 모습으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14시경에 점심을 마치고, 하산하기 시작하여 약 10여 분 만에 천년고찰 원통사에 도달하였다. 원통사는 신라 경문왕3년 서기 864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하였고, 조선의 태조 이성계가 기도를 하였다는 석굴도 경내에 있는 유서깊은 사찰이다. 원통사에서 우이암이 바로 보이는데, 원래는 관음봉, 사모봉으로도 불리웠다고 한다.
이어서 가파르고 험한 내리막길을 약 1시간 20분 정도 조심스럽게 내려와, 북한산둘레길 방학동 구간에 도달하였다. 몇몇 친구들이 연산군묘를 보자고 하여 약 20분 정도 둘레길을 걷다가 세종대왕의 딸인 정의공주묘 앞에 도착하였다. 정의공주는 세종대왕의 둘째 따님으로 금슬이 좋았다는 부마 양효공 안맹담과 합장되어 있다. 5분 정도를 더 걸어서 연산군묘역에 다다르니 언덕위에 조선 제10대 임금인 연산군과 부인 신씨의 묘, 그 아래에는 연산군의 딸과 사위의 묘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연산군묘역 관람을 마치고 내려오니 이제 뒤풀이 장소까지 이동하는 문제가 남았다. 다수의 친구들이 택시로 이동하자는 의견에 4명씩 분승하여 정의여고 부근(소피아관광호텔 맞은편)에 있는 '감포왕갈비'(옛 명칭 '감포면옥')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삼환 친구가 미리 예약을 하여 준비된 2층 방으로 올라가 배낭을 내려놓고, 맛있는 김치와 깍두기가 곁들인 갈비탕에 시원한 소·맥주와 막걸리를 마시며 뒤풀이가 시작되었다.
어느 정도 순배가 돌아가자 이 총장님은 안건 토의를 제안하였다. 다음 산행지 검토와 관련한 안건은 원래 계획대로 하자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어 집행부에서 결정하여 공지하기로 하였고, 두 번째 안건인 신원우 산우의 병문안과 관련해서는 시산회의 명의로 총 백만원을 거출하여 원우의 마나님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오늘 산행은 모처럼 시산제가 같이 진행되어 큰 의미가 있었으나, 산행코스는 회원들의 평균수준을 상회하는 장거리의 코스가 아니었나(?) 생각이 든다. 다음번 산행 때엔 안전산행을 위하여 이를 참고했으면 하는 생각을 덧붙이며, 산행기를 맺는다.
2018년 3월 11일 이승렬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