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항 두 개 / 이지선
“이 녀석들을 어째야 할지 모르것어.”
라며 넌지시 운을 떼신다.
새로 이사 갈 집 자랑에 들떠 계시던 동료 선생님이 키우던 구피를 맡아줄 사람을 물색하시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던 셋 중에 내가 “키우기 힘들지 않아요?”라고 묻자 선생님은
‘옳다구나! 드디어 니가 미끼를 물었구나!’ 하는 표정으로
“하나도 안 힘들어! 혼자 물속에서 지들끼리 놀고, 먹이만 뿌려주면 되는데, 뭐가 힘들어?” 하신다.
몇 가지 더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선생님의 설득에 나도 모르게 덜커덕 구피 70여 마리와 먹이, 플라스틱 집, 뜰채 등등을 받아왔다.
구피를 주신 선생님은 참 신기한 분이다. 교실에서 꽃을 몇 그루 키우시는데 대충대충 키우시는 것 같은데도 늘 꽃은 방실방실 했고, 잎은 공장에서 막 나온 조화처럼 반짝였다. 구피도 처음에는 암컷 세 마리, 수컷 두 마리를 키웠는데 어쩌다 보니 70마리까지 됐다는 것이다. 더 놀라운 일은 백 마리가 넘은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분은 그렇게 어렵지 않게 뭔가를 키워내시는 분이었으리라.
식물은 어떤 종류라도 잘 키울 자신이 있다. 하지만 동물은 곁에 두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들이 햄스터를 키우고 싶다며 울면서 졸라댔지만 눈감고, 귀 닫고, 모른 척했었다. 그런데 귀신에 홀린 듯 구피를 70여마리나 들고 집에 들어가자니 좀 쑥스럽기도 했다. 다행히 나의 쑥스러움은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새식구를 가족 모두 반겼다. 특히 둘째는 물고기 부장이 되어서 어항의 물도 갈아주고 먹이도 챙겨주는 역할을 잘 해냈다. 지느러미를 살랑이며 헤엄치는 모습이 하도 예뻐서 시어머니와 친정엄마에게 몇 마리 분양 해드렸다. 먼곳으로 간 구피들은 잘 적응 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우리 집 구피들은 눈에 띄게 수가 줄어갔다. 더 정성 들여 보살펴 주었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녀석들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그 많던 구피는 어디로 갔을까? 구피를 맡긴 선생님께 참 미안했다.
다행히 시어머니의 품으로 간 구피들은 백마리도 넘는 일가를 이루었다. 구피를 주신 선생님도 동물과 식물을 키우는 묘한 재주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더 고수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시어머니다. 처음에는 “이런 거 귀찮아서 나는 안 키울란다.” 라며 마다하시더니 그야말로 어항속에서 구피들이 떼를 이루게 만드셨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고추장 통에다 넣고 키우시더니 어항이 유리로 바뀌었다. 그러더니 산소를 만들어내는 기계가 들어오고, 어항을 꾸미는 돌과 수초가 들어왔다. 어느 날에는 이끼를 청소하는 물고기까지······.어항의 크기도 커지고 개수도 늘었다. 구피 밥주는 시간과 산소를 발생시키는 시간까지도 정확히 지키기 위해 종이에 써서 어항 옆에 붙여 놓으셨다. 새끼를 낳을 조짐이 보이는 녀석은 특별히 산란을 위한 어항에 따로 분리하신다. 새끼들도 크기별로 구분해서 키워야 해서 어항의 개수는 점차 늘어갔다. 고수의 손길을 거친 구피일가의 번성은 지금도 계속 중 이다. 하지만 지금은 예전 같지는 않다. 요양보호사의 일 중에 어항청소는 들어있지 않다고 한다. 시어머니는 요양보호사의 손길이 당신 몸보다는 구피를 돌보는데 사용되기를 바라신다. 구피를 보살피는 것조차 예전처럼 할 수 없어졌기 때문이다. 안방이며 거실 곳곳에 놓여 있던 어항의 개수가 줄었다. 이젠 거실에 두 개 뿐이다. 더불어 구피 일가의 번창도 쇠락기에 접어들 것 같다.
어머니께서 “이 어항 느그가 가져갈래?”라며 넌지시 물으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