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주의 춘천 이야기35
민중의 승리, 성황신이 된 밭치리의 아기장수
<혼란한 세상을 뚫고 만든 이상향>
우리나라 국민은 2024년을 참 힘들게 넘기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뺏으려는 독재추종자들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정말 위대하다. 불안한 민주주의 체제가 안정된 민주주의로 영원히 이어지기를 바라며, 전국에서 유일하게 살아서 낙원을 가꾸었던 ‘아기장수’ 이야기를 따라가 본다.
춘천에는 2009년까지 밭치리라는 마을이 있었다. 한자로는 전치곡리(田雉谷里)였다. 밭에 있는 꿩을 잡아 고아 드시면 어머니 병이 낫는다는 말을 남기고 하늘로 간 아기장수 이야기가 마을 이름이 되었다.
옛날 조양리에는 과부가 된 김씨 부인이 살았다. 그는 과부가 된 사실보다 아이 없이 혼자 사는 사실이 더 쓸쓸했다. 어느 밤이었다. 갑자기 비가 오고 뇌성벽력이 치더니 갑옷을 입은 장수가 옥황상제의 명령으로 왔다면서 김씨 부인을 안으려 했다. 놀라 밖에 나오니, 푸른 구슬이 있어 자기도 몰래 입에 무니 향기가 좋고 스르르 녹아 사라졌다. 그 후 김씨 부인은 아기를 가졌고, 무지개가 마당을 비추고 오색 채운이 집을 감싸던 날 옥동자를 낳았다. 아이는 사흘 후 “엄마”라 부르고 나무를 날아오르는 등 신기한 행동을 했다. 김씨 부인은 아기장수가 태어남을 알고 관가에서 알까 봐, 아기를 죽이고 자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주일이 되었을 때, 아기장수는 밭 가운데 있는 커다란 밤나무 위에 올라 있다가 자기는 아버지가 계시는 하늘로 올라간다면서 어머니께서 병환이 드시면 밭 가운데 꿩이 졸고 있을 것이니 그걸 잡아 드시면 낫는다면서 하늘로 올라갔다.
<거리를 쓸며, 낙원을 전승>
아기장수는 하늘로 올라갔고, 훗날 마을을 수호하는 성황신이 되었다. 그래서 성황신은 마을을 모든 재난으로부터 보호하며 낙원으로 가꾸었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3월 3월이 되면, 마을 입구를 빗자루로 쓸고, 길을 보수하였다. 그리고 마을 입구에 장승과 솟대를 세웠다. 그 후 성황제를 지내고, 거리제를 지냈다. 이때 축문을 올렸는데, 축문에는 “성황대신 전에…연액, 월액, 일액, 시액, 삼재팔난 관재구설 근심걱정 소멸하옵고…안과태평 점지점지 하소서.”라 했다. 그리고 길을 닦는 ‘가래메기’에는 “헤이야 헤이야아~하(후렴) 얼씨구나 잘도한다…좌상님의 가래질은/ 그 솜씨가 비상하다…그를 어이 당할소냐….”라고 소리를 했다.
이렇게 마을 사람들은 성황신이 된 아기장수가 매년 마을로 내려와서 안녕과 풍요를 주기를 바라며, 길을 닦고 쓸고 제사를 올렸다. 밭치리 사람들은 자신의 마을을 스스로 낙원으로 가꾸었다. 그렇게 낙원을 가꾸려고 아기장수를 죽이지 않고 살려, 이상향이 행해지는 옥황상제가 계신 하늘나라로 올려보냈고,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 좌정하게 했다. 밭치리 사람들은 스스로 민중이 원하는 세계를 건설하였다. 우리 민중은 이처럼 위대하다.
<무참히 짓밟힌 외세 침입>
그러나 밭치리 사람들과 수호신 아기장수가 가꾸던 마을은 2009년 골프장을 만들면서 무참히 짓밟혔다. 외래종교를 믿던 어느 시장은 이 마을을 굴삭기로 밀고, 장승과 장승숲의 나무는 파쇄기로 부수었다. 나는 밭치리 마을을 보존하고자, 관계자들을 몇 번에 걸쳐 찾아갔으나 소용이 없었다. 내 앞에서 그들은 장승숲만이라도 보존하겠다고 했으나 모두 거짓이었다. 그 광경을 보던 나는 관가의 횡포에 그만 울다가 돌아섰다. 2020년경 다른 곳에서 성황당을 짓고, 장승을 세우고 거리제를 다시 지내고 있다. 그러나 옛 모습은 찾을 수 없다. 왜 그때 시민들의 합창을 끌어내지 못했는지 아쉽다. 중구삭금(衆口鑠金)이라, ‘여러 사람의 말은 쇠도 녹인다’고 하지 않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