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는 힘들어 / 조미숙
며칠 전 저녁에 시내에 갈 일이 있었다. 유달산 쪽으로 올라가는 골목길에 주차하고 한 시간쯤 일을 보고 나왔다. 좁은 골목길에서 차를 돌릴까 말까를 잠시 고민하다 위로 올라가면 돌아 나오는 골목길을 만나겠거니 생각하며 출발했는데 쉽게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을 가다 옆으로 새는 길이 있어 우회전했는데 얼핏 바닥에 화살표 그림이 있는 것 같았다. ‘설마 일방통행 표시는 아니겠지?’ 하며 내려오는데 찜찜하고 불안했다. 앞쪽에서 올라오는 차를 보자 가슴이 철렁했다. 한쪽으로 비켜나 있는데 상대 운전자가 “일방통행이에요.”한다. “정말 죄송합니다. 모르고 들어와 버렸어요.” 사과하고 가는데 또 다른 차가 이어 들어왔다. 이번에는 주차된 차 때문에 비켜서기가 너무 비좁았다. 식은땀이 흘렀다. 간신히 지나치며 또 같은 말을 반복해야만 했다. 다행히 두 사람 다 화를 내지 않았다. 집에 와서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자네는 운전한 지 몇 년인데, 어이구 뭔 민폔가?” 하며 면박을 준다.
남편은 야수교(수송교육연대) 출신이다. 처음에 이 말이 무슨 사이비 종교단체 이름인가 싶었다. 군대에서 운전병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특수차까지 온갖 면허는 다 가지고 있다. 결혼하기 전에 운전면허를 따려고 필기시험까지 봐 놓고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아이들 낳고 키우다 보니 늦게서야 땄다. 워낙 기계를 다루는 데는 소질이 없어 강사에게 맨날 혼났다. 혹시나 나중에 배추 장사라도 해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1종 보통 면허에 응시했는데 기어 바꾸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어느 날인가는 강사가 불같이 화를 내며 차에서 내리라고까지 했다. 남편은 “모르니까 돈 내고 배우는 거지.” 하면서 그에게 실컷 욕하면서 내 편을 들어주었다.
어찌어찌하여 겨우 면허는 땄는데 차를 살 형편이 안 되어 장롱에서 나오질 못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도 남편의 강력한 반대는 이겨 낼 자신이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애써 모은 돈으로 중고차라도 한 대 사야겠다고 선전포고를 했다. 남편은 뭘 그리 서두르냐고 했지만 없는 인맥까지 다 동원해서 바로 계약했다. 그런데 문제는 운전대 잡기가 너무 무섭다는 것이었다. 열한 번의 운전 연수를 마쳤는데도 불안했다.
그것 말고도 밤마다 남편에게 배웠다. 우선 내가 자주 가는 학교까지만 왔다 갔다 했다. 끝없는 잔소리와 큰소리에 지쳐만 가고 내 운전실력은 늘지 않았다. 어느 날인가는 공원에서 주차 연습을 하는데 내가 제대로 후진을 못하자 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쏙 빠지게 야단쳤다. 내 자존감과 자존심이 내팽개쳐졌다. 절대 남편에게서 운전 연수를 받는 게 아니라는 말을 실감했다. 그날로 이혼 도장을 찍고 싶었다. 나중에 남편은 운전은 남의 생명을 다루는 큰일이라 경각심을 일으키려고 그랬다고 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파란만장한 초보운전 시절을 보냈다. 밤마다 남편에게 보고했다. 잘했다는 칭찬도, 아직도 액셀과 브레이크도 구별 못 하냐는 핀잔도, 그럴 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는 조언도 들으면서 무려 5년간이나 초보 딱지를 붙이고 다녔다. 혹시라도 모를 사고에 대비해 내 잘못을 덮어줄 보험이라고 생각했다. 초보라 몰라서 그랬다고 무조건 빌어 볼 요량으로.
크고 작은 사고도 냈다. 한번은 마음이 급해 우회전하다 인도로 올라가 담벼락을 받아버렸다. 사고를 낸 것보다 창피하다는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가까이에서 걸어오는 사람들이 봤을 텐데, 나도 모르게 얼굴이 달아올랐다. 내가 인터넷에서만 본 ‘김여사’(여자들의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주차나 주행 행태를 비꼬는 말)였다. 수리비가 꽤 나아 보험료가 올라갔다.
또 한번은 그날도 마음이 급했다. 초등학교 정문 앞에서 차를 돌리려고 하는데 뒤에 따라오는 차가 학교 안으로 들어가겠다는 깜빡이를 켜고 있었다. 건너편에 주차하려고 후진했다가 그 차를 보고 그만 당황해서 가속 장치를 밟아 버렸다. 경사진 곳이라 그만 힘이 들어갔다. 순간 세상이 멈췄다. 그때부터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사색이 된 나를 오히려 상대편 차주가 달랬다. 사람 다치지 않았으니 됐다고 수리비는 보험 처리하면 된다고 하면서. 충분히 나를 피해 교정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나는 얼른 비켜줘야 한다는 생각이 앞선 것이다. 내 차 뒤쪽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렸다. 거기로 큰돈이 빠져나갔다.
몇 번의 사고로 남편은 이제 내가 전화하면 겁난다고 했다. 운전한 지 7~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초보티를 벗어나지 못한다. 차가 많고 도로가 복잡한 광주 가는 것은 지금도 두렵다. 낯선 곳을 가려면 상상 운전을 미리 해 보기도 한다. 하이패스 단말기를 달지 않아서 요금소를 통과하려면 카드를 뽑아야 하는데 제대로 벽에 붙이지 못해 차를 세우고 문을 열고 나가서야 빼는 일도 부지기수이다.
최근에는 광주에서 모임을 하고 오는데 뒤의 차가 계속 상향등을 켜면서 바짝 붙어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왜 그런지 몰라 겁부터 났다. 한참을 그러더니 앞질러 가면서 ‘빵’한다. 그렇게 가고 있는데 또 한 대가 지나가며 경적을 울렸다. ‘뭐지? 내 차에 뭔 이상이라도 생겼나?’ 불안이 엄습했다. 함평 휴게소에 들러 차를 살펴봤는데 이상한 점을 찾지 못했다. 떨리는 마음에 자주 브레이크를 밟으며 천천히 갔다. 목포 요금소를 빠져나오면서 번뜩 든 생각이 있었다. ‘그래! 미등.’ 난 항상 기계 조작하는 게 무서워 뭐든지 자동에 설정하고 다니는데 가끔 청소하다 건들었는지 ‘꺼짐’에 표시되어 있기도 했다. 그렇게 고속도로에서 귀신처럼 운전(나중에 이런 차를 스텔스 차량이라고 한다는 것을 앎 )하고 왔던 것이다. 그날 그 시간에 지나친 모든 운전자에게 미안했다고 전하고 싶다. 한소리 들을 게 뻔해 며칠이 지나서야 얘기했더니 남편은 한심하게 쳐다봤다.
아이들 셋 키우면서 차가 필요한 일이 많았다. 주위에서 나를 도와줄 이가 친정이건 시댁이건 아무도 없었다.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도 찾아뵈려면 애들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너무 불편했다. 강진 산골이라 그야말로 산 넘고 물 건너다 보면 해거름이 되었다. 그때 차가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었다. 이제는 찾아갈 친정도 없고, 아이들도 모두 운전할 줄 안다. 가끔 큰애에게 신세를 지기도 한다.
지금도 여전히 운전은 두렵다. 초보티가 팍팍 난다. 이젠 더 이상 사고 내는 꿈을 꾸진 않지만 언제 어디서 사고가 날지 몰라 운전대를 잡으면 바짝 긴장한다. 지구와 내 지갑과 건강을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걸어간다. 요즘은 벚꽃이 만발한 길을 걸으며 봄을 만끽한다. 차로 휙 지나가면 볼 수 없는 것을 눈에 담으며 난 오늘도 두 발로 걷는다.
첫댓글 재밌어서 한눈에 다 읽었어요. 제 이야기 같아서.
고맙습니다.
선생님 저 1종 실기 여러 번 떨어졌어요. 그리고 운전 학원에서 뭘 배웠는지 기억도 안 나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 기억엔 운전 잘 하시던대요.
직진만 잘해요. 하하!
운전하면 누구나 크고 작은 사고를 겪지요. 사고 이력을 재미있게 쓰셨네요. .
선생님이 겪으신 사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요. 인명사고 내지 않은 것에 감사할 따름입니다.
처음 운전을 할 땐 답답한 상대방이 주차를 대신 해 주던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 있답니다. 하하!
누구나 처음엔 초보였는데, 그 시절을 잊고 사는 거지요.
저도 조미숙 선생님의 능숙한 글발 따라서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제 친구(아주 온순한 편)는 남편(법 없이 살 정도로 순한 양반)과 운전하다가 여러 번의 지적질에 너무 화가 나서
"나 안 해." 소리치고는
운전 면허증을 돌로 꽝꽝 찍어, 구멍을 냈다더라고요.
그마음 충분히 이해가 가네요.
고맙습니다.
책 내신다더니, 진짜 작가처럼 잘 쓰셨네요. 아! 벌써 작가죠.
과찬의 말씀!
'초보라 몰라서 그랬다고 무조건 빌어 볼 요량으로' 하하, 그렇지요 뭐라도 믿는 구석이 있어야 힘이 나니까요.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지금도 마음은 붙이고 다닌답니다.
긴장된 사고 순간을 재밌게 쓰셨어요. 믿고 읽는 선생님 글은 언젠가는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답니다. 고맙습니다.
너무 띄우셨네요.
어지러워요.하하!
저도 평범하고 작은 초보 운전 딱지는 혹시 못 볼까 봐 미술 샘한테 부탁해서 큰 글씨로 파서 빨간색 물감으로 칠한 걸로 꽤 오랫동안 붙이고 다녔었죠. 조작을 못해 성에를 어쩌지 못해 애를 먹었던 일도 있었고요. 잊었던 옛일이 생각나네요.
전 마음 같아선 앞쪽에서 크게 붙이고 다니고 싶었어요. 가끔 그런 차를 만나면 깔깔깔 웃습니다. 충분히 공감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