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식초 / 박선애
어머니 덕분에 추석이 명절답다. 한꺼번에 밥 먹는 식구가 스무 명이다. 한 편이 가면 다른 가족이 또 오고 명절에 머물다 간 사람이 서른 명이 넘었다. 여럿이 모이니 왁자지껄하니 즐겁다. 뭐든 다 맛있다. 그중에서도 유난히 “맛있네, 정말 맛있어.” 하는 감탄을 자아낸 음식은 전어회무침이었다. 인기가 최고다. 고기, 전, 잡채 등으로 느끼한 입맛을 개운하게 해 준다.
우리 동네는 꽤 넓은 내를 가운데로 두고 들판이 양쪽으로 펼쳐져 있다. 그 들판을 따라 남쪽으로 2킬로미터쯤 내려가면 바다가 있는 가계, 용호, 회동 마을이 나온다. 아침 해가 돋는 높다란 앞산이 남쪽으로 가면서 잘록해진 곳에 소리재가 있다. 거기를 넘어가면 나오는 모사, 벌포 마을도 바닷가다. 아침이면 그 바닷가 마을에서 아주머니들이 고기 대야를 머리에 이고 온다. 골목을 다니며 고기를 사라고 외쳤다. 집을 비우지 않는 할머니는 그들에게 단골손님이었다. 쌀과 생선을 바꿨다.
봄이면 준치, 갑오징어를 잡아 왔다. 갑오징어는 데쳐서 무쳤다. 우리 할머니의 주특기는 준치회였다. 먼저 포를 떠서 살을 발라 썬다. 머리와 뼈는 무쇠 칼로 곱게 다진다. 그것을 한데 합쳐서 무쳤다. 봄 생선회무침에는 방죽에서 베어다가 데친 미나리가 어울렸다. 가을의 고기 대야에는 반짝이는 전어가 가득했다. 쌀을 얼마나 주는지는 관심 없어도 푸짐하게 내려놓은 고기에 마음까지 넉넉해졌다. 절이지 않고 바로 소금 발라(우리 할머니는 이것을 산 소금 바른다고 했다.) 불에 구웠다. 고소한 냄새가 쌀쌀해진 아침 공기와 함께 온 집에 퍼지면 군침이 돌았다. 그래도 우리 식구들은 뼈째 썰어 무친 것을 더 좋아했다. 겨울에는 간재미가 제맛이다. 간재미는 썰어서 막걸리로 빨아야(음식인데 이때는 빤다는 말이 어울린다.) 미끌거리지 않고 꼬들꼬들하면서도 깔끔하다. 전어와 간재미무침에는 무채를 넣어야 맛있다. 이런 회무침의 맛을 내는 데 막걸리 식초가 빠지면 안 된다. 특히 우리집은 남들이 먹으면 깜짝 놀랄 만큼 강한 신맛을 즐긴다. 지금은 보기 힘든 박대도 아주 흔했다. 박대는 앞뒷면의 껍질을 벗겨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쫀득하고 달았다.
생선 외에도 우리 반찬에는 식초를 넣은 것이 많았다. 봄에는 멀리 섬에서 어리굴젓 동이를 이고 팔러 왔다. 이때 말린 파래도 함께 가져왔다. 이것은 요즘에 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과 다르다. 색이 연하고, 잎이 짧으면서 포기처럼 뭉쳐 있었다. 이것을 국포래라고 불렀다. 사 두었다가 더운 여름날 식초를 넣고 냉국을 탔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좋았다. 태풍이 지나간 바닷가에는 청각이 많이 밀려와 있었다. 그것을 주워다가 물을 자박하게 붓고 식초 넣어 만드는 청각 초짐치(초김치)도 참 맛있었다. 어린 상추, 열무도 된장과 식초로 겉절이를 했다. 고구마 줄기를 뜯어다 데쳐서 된장과 식초를 넣어 무치면 그만한 여름 반찬이 없었다. 찐 가지 냉국, 오이 냉국, 미역 냉국, 굴 물회 등에도 막걸리 식초가 들어가야 개운하면서도 감칠맛이 난다. 삶은 돼지고기는 집 간장과 식초를 섞은 초간장에 찍어 먹어야 느끼하지 않다.
음식 맛은 장맛이라고 하는데, 우리집에서는 그것과 함께 식초 맛도 중시했다. 부뚜막에는 소주독이라는 옹기 항아리가 있었다. 그것은 여느 항아리와는 달리 배가 부르지 않고 물동이처럼 통이 좁으면서 길쭉했다. 입은 작은 양재기나 들어갈 정도로 좁았다. 아침저녁 설거지를 마무리하면서 물 적신 행주로 그 소주독을 반짝반짝하게 닦았다. 거기에는 식초가 살아 있었다. 막걸리를 부어 놓았다가 맑은 촛물이 고이면 떠서 썼다. 식초는 시고 달았다. 할머니는 이것을 아주 정성껏 돌봤다. 식초가 잘 사는지 수시로 살펴보고 기운이 시원찮다 싶으면 불이 벌겋게 타는 나무 막대기를 독에 넣고 휘저었다. 그러면 초가 다시 활기를 찾았다. 식초는 온도가 높은 곳에서 잘 사는 모양이다.
한때는 열다섯 명까지 살았던 식구들이 다 떠나고 나자 식초도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식초 항아리가 소주독에서 두세 되들이쯤 되는 오가리로 바뀌었다. 고추장을 담아 장독대에 놓던 것과 비슷하지만, 주전자 부리처럼 생긴 귀때가 달려 있어 식초를 쉽게 따를 수 있다. 할머니 대부터 내려오던 식초는 어머니가 소홀히 했던지 죽어 버렸다. 할머니처럼 맛에 민감하고 관심이 높은 언니가 새로 구해 와서 어머니가 지금껏 키워 왔다. 언니가 키워 보려고 애써 봤지만 높은 아파트에서는 잘 살지 못했다. 언니는 씨를 보존하려면 분양해야 한다고 사촌인 명자 언니에게 나눠 주었다. 작년부터 어머니는 식초를 키우지 못한다. 이제는 명자 언니가 한 되들이 유리 소주병에 기른다. 추석에 나눠주려고 받아서 모아 놓은 것이 네 병이나 되었다. 조카며느리까지 막걸리 식초 맛을 알았으니 내 몫은 안 남았다. 자주 오는 나는 다음에 가져가라고 한다. 세월이 흘러 입맛도 변하고 전보다 맛있는 음식도 많아졌지만 우리 가족의 식초 맛 애착은 여전하다. 할머니 어머니, 언니로 내려오며 우리집 막걸리 식초의 맥이 겨우 이어지고 있다. 이 맛을 언제까지 누릴 수 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쓸쓸해진다.
첫댓글 글 읽으면서 군침이 몇 번이 도네요. 저희 할머니도 식초병을 굉장히 아끼셨어요. 식초병에 뚜껑대신 솔잎 한뭉치 끼웠놓으셨었네요.
부뚜막에 터줏대감 식초병은 잊혀진 추억인데
전설같은 고향 이야기 부럽습니다. 감춰진 보물 오래 거기 그대로 보전되길 바랍니다.
와, 침이 고이네요. 신기해요. 저도 식초가 들어있던 소주독 기억납니다.
우리 장모님도 고향이 조도입니다. 식초로 무쳐낸 간재미 무침이 최고로 맛있죠. 옛 맛이 잊혀지는 게 안타깝네요.
어머니의 대표음식이 문저리 회무침이었는데 다른 것에 밀려 구경하기 어려운 음식이 되었습니다. 우리집은 소주 대병에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 집 부뚜막에도 있었어요. 감식초, 막걸리식초 등등.
비록 바닷가에서는 먼 고향이지만 남도의 음식은 많이 닮았어요.
저도 파래지국, 열무된장무침, 고구마순된장무침 엄청 좋아합니다.
돌아가신 엄마 손맛이 무척이나 그리워지네요.
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20여 년 전까지만해도 막걸이 식초는 집집마다 부뚜막에서 발효해서 먹었어요.
나도 몇 번 만들어 봤는데 균을 죽이지 않고 관리하기가 어려워요.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잘 발효 시켜 천연식초를 만들어 먹었는지 신기해요.
막걸리 발효 식초로 조리한 음삭을 한번 먹어보고 샆네요. 선생님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새로운 음식 세계를 엿본 느낌입니다. 우리집에 소주독이 있었어도 이런 멋진 글은 못 썼을거에요. 대단합니다.
막걸리 증초를 꼭 보관해서 이어가셨음 좋겠어요. 저희집에도 옛날 정종 병 두개에 막걸리 식초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시 할머니때 부터 내려온 증초예요.
공감 많이 했습니다.